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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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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진리

짐 커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제가 한국에 일주일째 체재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쁜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특히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말씀을 보는 것은 복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열 번이나 열한 번쯤 정도 제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이 형제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곳을 처음 방문한 것이 아닙니다. 부산이 처음이 아니고 세커리 자매님이 있을 때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인원이 매우 적었습니다. 모임 장소도 작았습니다. 아마 얼리치 형제님이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얼리치 형제님과 함께 와서 주일날 하루 여러분과 함께 지낸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번에 보니까 많은 수가 모였고 넓은 장소에 모이는 것을 보니 아주 기쁩니다. 또한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보는 것도 기쁩니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신약시대의 모임이 어떤 것인지 보고자 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주님을 믿기 전에 교파에 속해 있던 분들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15살 때까지 어떤 교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한 주간마다 너다섯번씩 방문했습니다. 한번도 하나님의 그 교파에서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 교파에 다니는 동안 죽었다면 믿지 않고 영원한 지옥으로 갔을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가운데 어느 모임에 인도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모임이 뭔가 이상하다고 처음에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헌금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파에는 출석할 때마다 헌금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모임이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모임에 참석하면서 그 모임이 점점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에 일년 정도 다니는 동안에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진짜를 찾는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열 다섯 살쯤 되는 어떤 아이도 믿었습니다. 3개월 동안에 그 동네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보러 다녔습니다. 역시 성경대로 모이는 곳을 찾았던 것이죠. 어떤 곳은 모임보다도 재미있었던 곳도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모임보다도 더 활기찼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점점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이고 있던 토대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이라 불리는 목사의 의견에 따라서 모이는 데였습니다. 또 어떤 데는 그 교회의 제도에 의해서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 신자들에게 왜 이렇게 모이느냐고 물었더니 각가지 대답이 나왔습니다. 좀처럼 성경이 이렇기 때문에 모입니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3개월 정도 여기저기 찾아 다녔습니다. 불만만 마음에 느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모임의 장로로부터 침례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믿고 난 후에 3개월 만에 침례를 받고 그 모임에 영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60년쯤 전 이야기입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저는 다른 교회에 가본적이 없습니다.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말씀에 있는 것을 단순하게 믿고 동일한 마음을 갖고 있는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만약에 주님 앞에서 말씀을 올바르게 듣는다면 왜 이렇게 모이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임이 정말로 진지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진지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에 진지하게 믿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믿는 분들이 우리들의 형제자매들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가르침 받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이렇게 단순하게 믿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는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단순하게 믿는 것입니다. 물론 모임생활이나 개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집회에서는 모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모임에 대해서 말하면서도 그리스도인 개인개인 생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임에 잇는 우리 모두가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교회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십시다. 먼저 고린도전서 1 1~9절까지입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린도전서 1 1~9절까지를 읽게 되면 고린도교회가 완전하다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10절부터 마지막까지 읽어나간다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고린도 모임에는 많은 잘못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는 교정적 즉 바로잡기 위한 편지였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록한 편지였습니다. 또한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개인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그 모임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만약 개인이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 있다면 그 개인의 잘못이 그 교회에 손상을 끼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잘못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잘못이 있다면 빨리 이것을 버려야 하고 바로 고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인개인은 하나님의 교회에 본질을 따라서 매일매일의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밤 만약 시간이 있다면 성경 다른 곳도 읽고자 합니다. 시간관계상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릴테니 나중에 집에 가셔서 천천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장 방금 읽은 곳을 포함해서 네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은 사도행전 20 17~38절까지입니다. 세번째는 마태복음 18 15~20절입니다. 네번째는 디모데전서 3 14~16절입니다. 이 네 곳 전체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면서 성도들의 입장 즉 지역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네 곳은 하나님의 교회의 중요한 네 가지가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의 피를 통해서 교회를 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 각자의 구원을 위해서 흘리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랄 만한 것은 사도행전 20장입니다. 믿는 자들의 무리인 지역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산바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구속된 모임입니다. 하나임 앞에는 굉장히 큰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당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그 피를 통해서 샀습니다. 이것이 지역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구속된 것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장에는 또 한가지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2절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고린도에 있는 성도라 부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들은 성도라 불리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각처에서 동일하게 부름받은 자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절은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을 수신자로 해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처음에는 고린도에 있는 사람들을 수신자로 해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로 해서 거룩하여졌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성도라 불림을 받았다. 이들이 배타적으로 그런 특권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도 성별되어서 성도라 부르심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에 대한 인사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인사였습니다. 2절에 보면 이 교회는 제한된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시민 전체가 고린도 교회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거룩해진 사람들만 속해 있습니다. 부산 동래 모임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존귀한 피로 말미암아 산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는 굉장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한 되어 있습니다. 부산 시민 전체가 이 특권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성도뿐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은 또 한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의하면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힘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 잇는 사람들에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전하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주님의 이름에는 구원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믿으면 구원시키는 힘이 그 이름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복음을 전하는 능력은 주님의 이름에 의거하는 것입니다. 동일하게 모임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의 능력에 의해서 모든 것이 지배되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디모데전서 3장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임의 책임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단순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여러분 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보혈로 말미암아 산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의 놀라운 이름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의 이름과 말씀 모두를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 1세기의 가르침이었습니다. 2002년 지금에 와서도 똑 같은 것을 가르쳐야 되겠습니까? 물론 오늘날도 그렇게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다른 모든 교회가 가르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것을 그대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 2절에는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에게 받은 것을 있는 그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유다서 3절에 의하면 우리들이 믿는 믿음은 단번에 주신 사도로부터 받은 믿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사도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부탁 받은 것을 전해야 할 터입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부탁되어졌습니다. 이것이 변할 리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1세기에 있던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 3절에도 동일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가르침을 가르치지 말게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1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부탁 받은 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아시는대로 여기저기에서는 많이 변해 있습니다. 성경의 단순한 가르침은 여러 곳에서 무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신에 사람들의 전통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임으로서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적 모임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오라 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의미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어 영어 한글도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 영어에서 교회라고 하면 무슨 무슨 동맹이나 단체 같은 것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같은 경우에는 일본통일교회라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홋카이도부터 큐슈까지 같은 가르침을 가지는 이런 무리들이 동맹형태를 갖고 있는 형태로 쓰이는 것입니다. 캐나다에도 캐나다 통일교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문선명씨의 통일교와는 다릅니다. 기독교계에 있는 조직적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라 하면 교회당 건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밤 큰 건물 앞으로 모임으로 오면서 지나왔습니다. 그 큰 건물 위에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어떤 형제님이 저것이 장로교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 의미는 그 건물을 교회라는 말이었겠지요. 영어도 같은 의미입니다. 교회라는 의미를 인위적으로 사용하면 매우 애매하죠. 성경에는 교회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동맹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교회당 건물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경에 교회라는 의미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말보다도 집회라던가 모임이라는 말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성경 처음 기록된 원어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겠습니까? 신약성경에는 117회 정도 교회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4번의 경우에는 전혀 그리스도인과 관계없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7장 같은 경우에는 그 용어를 사용했어도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을 가리켰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는 에베소에 있는 민회를 가리켰습니다. 여기는 종교적인 의미가 없으며 기독교와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4번이나 그러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몸된교회를 가리켜 14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 그리스도의 몸된교회를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오순절부터 주님의 공중재림까지 믿는 모든 사람이 이 몸된교회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국가간에 구별이 없습니다. 남녀의 구별도 없습니다. 또한 피부색깔의 구별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의 정도에 관한 구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시인하면 몸된교회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단 어느 교회에 속하든지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몸된교회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세계에 오순절부터 오늘날까지 믿은 모든 사람들이 이런 면에서 우리들의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 바 된 몸된교회인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에베소서 1장에서 3장 근방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 신약성경에서 14회 정도입니다. 나머지 99번은 지역교회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지역교회에 대해서는 99번 같은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가운데서는 지역교회에 대한 가르침이 몸된교회에 대한 가르침보다 더 많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몸된교회는 완전한 것입니다. 그 교회를 세우는 자는 주님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그 교회에 아무런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몸된교회를 더 좋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교회는 다릅니다. 우리들의 매일매일 생활은 지역교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덕을 세울 수 있고 도는 그 덕을 부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교회의 성결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되죠.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즉 지역교회는 성경에 의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계에서는 성경적인 지역교회를 그다지 잘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교회인 지역교회는 각각 독립되어 있습니다. 부산시내에 있는 지역교회와 부산시외에 있는 지역교회가 각각 동맹을 맺은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한국전체에 있는 지역교회가 조직을 만들어 합병되어 있는 그런 형태가 아닙니다. 각각의 지역교회는 주님에게 직접 속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계속 명령하면서 오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예루살렘에서 나간 사람들이 어떤 지역에 가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마케도냐 고린도 사람들은 우리 예루살렘 본부에서 말하니까 하시오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각각의 지역교회는 독립되어있습니다. 1세기에는 기독교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교회의 본부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본부는 없습니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보다 모임이 더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경험이 한국에서의 경험보다 길겠지요. 어떤 나라는 한국보다 모임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영국이 이러하니까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할 리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캐나다의 모임은 성경을 따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국 모임도 말이죠. 몸된교회는 성경가르침에 의하면 늘 하나였습니다. 언제나 단수였습니다. 왜냐면 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몸된교회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지역교회는 어떤 때는 복수로 표현됩니다. 갈라디아서에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이라는 말은 갈라디아에 몇 개의 모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된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몸의 눈, 몸의 손이란 것은 모임에서 일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몸이라는 것은 육체의 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머리와 손과 발이 있는 몸 말이죠. 바울은 육체의 몸을 가지고 실 예로서 사용한 것입니다. 지역교회는 몸과 같습니다 그런 뜻입니다. 눈이 있습니다. 눈의 역할은 귀의 기능이 아닙니다. 귀의 역할은 손의 기능이 아닙니다. 또한 손의 기능은 발의 기능이 아닙니다. 바울은 실제적인 몸을 통해서 지역교회에는 여러가지 기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지체들은 각각의 기능들이 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교회는 일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육체의 몸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지체가 각각 의견이 다르면 곤란합니다. 모임에도 같습니다. 어떤 지체는 이렇게 합시다. 또 어떤 지체는 이렇게 합시다 하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모임 안에서는 일치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바울은 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 잘 아시겠죠. 몸된교회는 지역교회와 다릅니다. 지역교회는 몸된교회와 다릅니다. 몸된교회에 속해 있는 자들은 모두 믿는 자입니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든 믿는 자는 몸된교회의 지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지역교회는 몸된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지역교회에는 다 속해있지 않습니다. 많은 믿는 자가 참으로 믿는 자라도 다른 교회에 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역교회의 징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 전에는 하나님의 지역교회에 영접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게 되면 다른 지체와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가운데 지역교회에 영접이 되면 그 지역교회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갈지 모릅니다. 그래서 새로운 형제 자매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들의 생각, 그들의 마음, 그들의 의견을 잘 조사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마 안되는 동안에 모임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임의 일치도 깨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우리는 한가지를 부탁합니다. 이 모임에 더해져 영접받고 싶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 만약 그 형제자매가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그 지역모임에 영접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임의 질서와 징계에 순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몸된교회에 영접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몸된교회에 더해지는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원의 주로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몸된교회는 하나입니다. 지역교회는 또 다른 하나입니다. 물론 여러 의미에서 닮은 점도 있습니다. 물론 지역교회는 이상적으로 몸된교회의 모든 것을 증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형제자매 모두가 주님을 단순하게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지역에서 함께 모일 수가 있겠죠. 그렇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역교회를 보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구나 하게 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성경말씀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모일 책임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구원은 받았지만 교파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것을 보여줄 권면도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조금 전 세 개 가운데 하나를 생각해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0장은 지역교회의 가치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존귀한 피를 통해서 구속 받았다. 그 정도로 하나님 앞에 가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교회의 순결이라는 면이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순결한 자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은 지역교회의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지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임 가운데 독재자로 계십니다. 물론 사랑이 넘치는 독재자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해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이든 분이나 젊은 분이나 모임의 모든 형제자매님들이 말이죠. 그러나 디모데전서 3장은 모임의 증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교회의 세가지 특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교회의 특징을 갖고 있는 모임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없으면 안되는 조건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결국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임 가운데 독재자로 계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되신 그리스도를 순종합니다. 여러분 잘 기억해 주십시오.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믿는 자들을 권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모임에 있는 나이든 분이나 젊은 분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 의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을 위하여 자신을 비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순종합니다. 이것은 지역교회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특징의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고 실제적인 주로 증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두번째 특징입니다. 모임에 있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조건 붙이지 않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 무엇이라 하면 그것을 알던 모르던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매들의 너울 말이죠. 처음 자매들이 모임에 올 때 너울을 안 썼을지도 모릅니다. 모임에 있는 자매들이 모두 너울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쓰니까 나도 쓰야지 하고 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왜 너울을 쓰야 하는지 몰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보니까 고린도전서 11장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라고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뜻은 모르지만 성경에 있으니까 그럼 됐다하고 썼 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좋습니다. 그 의미를 전혀 몰라도 성경을 단순히 순종했습니다. 더욱 좋은 것은 그 의미를 알고 쓰는 것입니다. 지역교회를 말씀드리면서 고린도전서 11장도 다룹시다. 이것은 자매님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인 지역교회는 말씀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이 모임에는 여러분의 의견과 저의 의견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성경말씀 모두가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이 두번째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과 14장에서 성령의 주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그 뜻대로 형제자매들에게 그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성령이 그 뜻대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마 다른 조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 많은 형제 자매들이 다른 것을 생각해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는 어쨌던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 성령에는 주권의 힘이 있다. 오늘밤 처음이었지만 주님의 몸된교회와 하나님의 지역교회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잘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일도 이어서 특히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지역교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2 125 부산 동래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