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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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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

짐 커리

제가 한국을 방문함으로 말미암아 저는 기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복된 것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순하게 말씀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신다면 더욱 복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편지 요한삼서 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을 하나님을 위해서 전하는 사람들은 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 말씀을 전한 것을 순종하는 것을 보는 것은 더 기쁜 일입니다. 그럼 함께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오늘 저녁부터 광주에 있는 동안에 디모데전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씀을 하지만 실제로가 그것이 성경 그대로가 아니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 그 자체를 여러분들에게 설명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어쩌면 이 말씀을 여러 번 들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우리들은 잘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억을 시킴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럼 디모데전서를 생각해보십시다. 1 1~17절입니다.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우리는 긴 구절을 읽었습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의 말씀의 뜻을 알기 쉽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어렵다. 알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당신 성경 읽어보았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니오 별로 읽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성경내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알기 위해서 먼저 성경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디모데전서 1장 대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의미를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구약성경에는 세 가지 큰 구분이 있습니다. 모세오경과 역사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욥기, 시편, 잠언과 같은 시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세번째 구분은 예언서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역사서가 있고, 시라고 하는 노래책이 있고, 세번째는 예언서라는 책이 있지요. 신약성경에 들어가도 동일합니다. 역사에 관한 책이 5권 있고, 그리고 로마서로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는 새롭고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유다서까지 21권의 편지가 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편지를 가지고 말씀하셨습니다. 21통의 편지 속에는 우리들이 알아야(실천) 할 중요한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믿는 지를 알려면 이 편지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 편지 중에 하나의 1장을 읽었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도는 13개의 편지를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편지가 14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서도 바울의 편지겠지요하고 그 사람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시는대로 히브리서에서는 바울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히브리서는 바울의 편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밤에는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밤 말씀의 일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바울은 13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조사해보면 4가지의 구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의 구분이 있습니다. 로마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의 3편지는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믿고 있는 믿음의 토대에 관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특별히 그러합니다. 형제님들이여! 하나님의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고 싶으면 로마서를 잘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것입니다. 두번째 구분은 고린도정후서와 갈라디아서입니다. 이 세권의 서신은 교정적인 서신으로 잘못된 것을 고치는 서신입니다. 고린도에는 여러가지 잘못이 있었습니다. 사고방식도 잘못되었고 활동도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리디아서에 의하면 갈라디아 지역교회들에는 잘못된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서 이것을 교정했습니다. 이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라는 편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헌신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를 잘 보면 그 사람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께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권을 읽으면 우리들은 주님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헌신적인 편지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에 이어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라는 편지가 세권 있습니다. 이 세 권은 목회서라고 불리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리들을 잘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 세권의 목회서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디모데후서 1장에 나와있습니다. 14절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바울은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은 어디다가 위탁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귀중한 귀중품이 있으면 그것을 은행 같은 데에 보관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돈은 은행에 맡겨놓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물론 국민 은행에 맡겨놓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 저에게 아름다운 것을 맡겨 놓았습니다.

부탁 받은 아름다운 것을 보존하고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보존해야 할 것은 사도시대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유다서를 조사해보면 이러한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부탁한 것은 단번에 부탁했다고 되어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결정적으로 부탁했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에 의해 제 1세기에 부탁된 것은 오늘날도 같은 것입니다. 베드로나 디모데나 디도 같은 사람에게 또한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쳤습니다. 디모데나 디도 같은 사람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것을 받고 다르게 바꾸어 버리는 사람에게는 부탁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탁 받은 그대로 다시 부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와 디도로부터 부탁 받은 사람들은 또한 그대로 오늘날 우리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수년 내에는 오시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주님이 더디 오시면 다름 사람에게 부탁 받은 것을 부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와 같은 말씀집회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제가 부탁 받은 것을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여러분들이 부탁 받은 것을 보존하며 지키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부탁 받은 아름다운 것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기독교계안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많이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의 편지를 조사해보면 오늘날의 목사제도가 성경에 어디 있습니까? 물론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1세기에 있는 서신 기록들을 보면 오늘날과 같은 큰 교회당과 같은 기록들이 있습니까?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이는 장소는 이것보다 더 단순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를 권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단순하게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집회장소가 이렇게 훌륭한 장소가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런 정도의 건물을 짓는 것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짓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필요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분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매우 중요한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듣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으면 이미 들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 같은 그 상태 그대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르침 받은 것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그 다음의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수가 없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어린아이 상태 그대로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가르침 받은 말씀을 단순하게 순종하십시오. 믿음이라고 하는 아름다움이란 실제로 무엇이겠습니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믿음의 모든 것입니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의 목회서에서 바울은 이것을 기억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세상을 곧 떠나가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여기저기 모임들은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가르침들이 들어오는 시기였습니다. 1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많은 모임들에는 이상한 생각들이 들어왔습니다. 디모데후서를 특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거짓교사에 대해서 경고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2002년이 된 이 시점에서 거짓교사들이 적어진 것이 아니냐? 모든 교회 모든 교사들을 거짓교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는 거짓교사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거부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어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처녀출생도 거절하는 데가 있습니다.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하신 것도 어떤 곳에서는 거부되고 있습니다. 또 많은 곳에서는 주님의 다시 오심도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기본적인 가르침이 여러 면에서 부정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부탁 받은 아름다운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목회서신서 3권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 세 서신이 기록되었습니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디모데전서에서 몇가지를 생각하면서 이것을 지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디모데전서에 나오는 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디모데후서에 나오는 아름다운 것들은 지킬 뿐 아니라 전해야 되는 것도 있습니다.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르침 받은 것, 부탁 받은 것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의 불신과 타협하지 않은 채 말이죠. 그뿐 아니라 부탁 받은 것을 전해야 합니다. 디도서에 의하면 그 동일한 아름다움을 행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존(지킴)합니다. 이 아름다운 것을 전합니다. 그 아름다운 것을 그 아름다운 채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지키고 싶으면, 아름다운 것을 전하고 싶으면, 아름다운 것을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매일 생활 가운데서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려고 할 때 자신이 안지키면 당신이 부정(不正)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목회서신서의 세 가지를 잘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전서는 아름다운 것을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합니다. 디모데후서의 아름다운 것은 전해야 합니다. 디도서의 아름다운 것은 매일 생활가운데서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 서신서에서 두 가지를 강하게 강조합니다. 하나는 건전한 가르침, 또 하나는 근신하는 행동 또는 생활. 어떻습니까?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늘 함께합니다. 건전한 가르침, 거기에 합당한 생활의 행보, 디모데전서에는 가르침이라는 말이 8번 정도 나옵니다. 세 서신 전체에서 가르침이라는 말이 15번 나옵니다. 또한 믿음이라는 말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그 가르침을 따라 행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의 목적입니다. 내일 모레 집회를 위해서도 디모데전서를 읽어주시고 가능하면 세번, 네번, 반복해서 읽어오시기 바랍니다. 디모데전서를 읽는데는 여러분이 신문을 읽는 시간보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아마 디모데전서는 10분 이내에 다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모레까지 두 세번 읽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내용을 잘 기억하시겠지요.

그럼 디모데전서 내용을 지금부터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 편지는 전체적으로 명령이라는 말로 쓰여졌습니다. 예를 들면 1 3절에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18절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5 21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6 13,17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다섯번 명하노니 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특히 5 21절을 주의해 보시기 바랍니다. 엄히 명하노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편견과 관련되어서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모임에서 어떤 사람은 부드럽게 다루고 어떤 사람은 거칠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잘못해도 부드럽게 다루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잘못하면 엄하게 다루고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엄히 명하노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엄한 명령은 천사들 앞에서 역시 믿는 자의 행동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디모데서의 진짜 핵심은 3 14,15,16절이 될 것입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때는 로마 감옥에 투옥된 이후였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때쯤 일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받은 송사는 올바른 송사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머지 않아 자기가 석방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디모데야 나는 네가 있는데 가겠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바울은 3년 이내에 다시 감옥에 투옥됩니다. 두번째 투옥에서 바울은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할 때는 전도가 되는 것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바울의 2차 투옥에 대해서는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쨌던 바울은 1차 투옥에서 풀려났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곧 내가 디모데 있는 곳에 갈지도 모른다. 내가 빨리 가기를 바라지만 빨리 가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것을 네게 말하기를 바란다. 너와 함께한 사람들이 이 서신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행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고 싶지 않습니까? 특히 디모데전서에서 그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성도들로 구성된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를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이 건물은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지금 시대에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들 가운데 주님이 계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보다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말하면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하나님의 집의 본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계 사람들은 이 건물이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드나들 때 조용히 드나들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종교적인 분위기를 지키면서 말이죠. 전혀 이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모임에 드나들 때 시끄럽게 드나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소가 거룩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죠. 더욱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모임이 하나님의 집이라면 우리의 행동은 엄숙해야 할 것입니다. 모임의 본질, 하나님의 집에 걸맞도록 매일매일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모일 때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매일 학교에서, 회사에서, 장보러 갈 때, 가정에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집에 동참되어 있는 자로서의 합당하게 행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3 15절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시간이 있으면 이것을 더욱 살펴봅시다. 16절은 이 관계로 해서 편지의 중심이 됩니다. 이곳이야말로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전하고 믿음을 행하는 중심인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중요점에 결집된 것 같습니다. 믿음 중에 아주 짧게 설명할 수 있는 핵심 중에 핵심인 것입니다. 아시는 대로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16절입니다.

분명히 목회서신서이기 때문에 가르침에 대한 말들이 소중히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1 11절에 보면 영광의 복음의 복된 것에 대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바른 교훈 즉 건전한 교훈이 나옵니다. 바른 교훈 즉 건전한 교훈은 이 교훈을 가리키는 것인데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은 복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보는 흠정역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다른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광의 복음이라고 번역된 영어성경도 있습니다. 멸망으로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는 그런 뜻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에서 바울 자신도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단언(斷言)하고 있습니다. 1장은 결국 복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2장으로 들어가면 가르침이 좀 달라집니다. 그 복음에 합당한 가르침입니다. 2장에서는 기도, 그리고 열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일 이것을 다룹시다. 3장에 가면 장로들과 집사에 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장로와 집사들이 필요하고 없으면 안됩니다. 아름다운 것과 이 믿음을 지키려면 참으로 장로들과 집사들이 필요합니다. 4장은 이 세상의 악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5장은 서로간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 간의 관계입니다. 6장은 더 넓은 의미에서 일반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1장이 결국 하나님의 복음의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로 1~5절까지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처음은 디모데에 대한 인사입니다. 그리고 3,4,5절에는 바울이 명령한 그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명령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부탁 받은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가르치지 말게 함이었습니다. 이것은 3절의 말씀이죠.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에베소에 있었겠지요. 에베소 모임은 매우 축복된 모임이었습니다. 바울은 계속 전도할 때에 오랫동안 에베소에 머물렀습니다. 바울은 특별하게 에베소서를 기록하여 그들에게 보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에 가서 살면서 에베소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요한이 밧모섬에 가기 전에 에베소에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임은 매우 은혜를 입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에 좋은 일에 결과를 받았습니다. 잘 가르침 받았습니다.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와 동시에 맨 위에 있는 최고의 가르침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로부터 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는 직접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에 의하면 에베소 믿는 자들이 첫사랑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잘 가르침 받았습니다. 매우 복된 자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사랑으로부터 떨어졌습니다. 우리들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올바른 가르침이 그리스도인의 길에 모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없으면 안됩니다. 우리들 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하나님의 종도 우리들의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아시는 대로 어떤 교파에서는 인기 있는 목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우리 교회 그 선생님은 훌륭히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것보다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따뜻한 첫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에 보낸 가르침이죠. 그 에베소에는 잘못된 가르침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야 내가 네게 명하니 사람들이 내가 너에게 부탁한 이것 외에 가르치지 말도록 명하라

6~10절에는 거짓교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그들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이들이 율법의 선생이 되고 싶었지만 자기들이 하는 말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율법이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이란 말씀은 특히 죄를 범한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9,10절에 있는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율법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바른 교훈 즉 건전한 가르침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바른 교훈 즉 건전한 가르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11~16절에서 이 명령의 이면에는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직분을 내게 맡겼다. 이 일을 맡겨 주셨다. 나는 이전에는 참으로 잘못된 사람이었다. 핍박자, 훼방자, 이것을 잘 알지 못하고 행해버렸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죄인을 하나님은 사랑을 넘치도록 베푸셨다. 왜 그랬습니까? 여러분이 믿어야 하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나 같은 이러한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면 어떠한 죄인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율법은 많은 사람들을 책망합니다. 그러나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16절에서 어찌해서 나 같은 자가 긍휼을 입었겠습니까? 바울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를 믿어서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심한 죄인 중에 괴수인 사람을 구원해 주셨다.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17절은 찬송이 됩니다. 바울은 어쩔 수 없이 갑자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17절에 보면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하고 찬송을 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의 마음에 느낀 감정을 아시겠습니까? 이 동일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가르침을 형편없는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복음에 우리가 참여하고 있다면 참으로 주님을 찬송하겠지요! 실제로 믿는 사람들의 입에는 찬송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 동참되어 있는 자로서 합당하게 매일매일 생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럼 내일 모레 밤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2 1 22 광주북부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