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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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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일곱가지 비유

짐 커리

만나게 되어서 기쁩니다. 신약성경의 비유에는 한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포도원을 사용하는 사람이 주인에게 세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 나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상속자이니 죽여버리자. 저는 오늘 그런 느낌이 듭니다. 아마 하루 종일 말씀을 교제할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죽여버리자 혹시 이런 생각이 없으십니까? 끝까지 함께 분발해봅시다. 금요일부터 마태복음을 생각해 왔습니다. 오늘도 마태복음의 연구에 대해서 계속 연결시키고자 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3장부터 보겠습니다. 물론 13장에 오기까지 내용들을 자세하게는 보지 않았습니다. 자세하게 보려면 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복음서의 개략을 보아 왔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마태복음을 혼자서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13 1~17절을 봉독하겠습니다.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나중에 다시 읽겠습니다만 지금 드리는 말씀은 방금 읽은 말씀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금요일부처 지금까지 교제했던 것들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는대로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영적으로 어릴 때부터 계속 들어오셨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천국이라고 불리어집니다. 3,4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대부분이 하늘의 왕국이라는 의미로서 천국이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늘의 왕국이라는 의미로 천국을 천국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기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의미로 천국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천국이나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것을 물론 나타냅니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그냔 천국이라고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스리는 지위, 그리고 장소라는 의미가 강조되는 것입니다. 천국이 지배하는 곳이죠. 우리들이 성경말씀의 연구를 통해서 이제부터의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보이는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수도가 되는 도읍지(서울)도 없습니다. 이 대사(大使)는 사울 때까지는 잘 나타나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것은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2천 년 동안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보다도 더 많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로마라는 나라는 없어졌습니다만 하나님의 나라의 내면적인 나라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영국제국도 망했고, 쏘련도 망했고, 독일 3제국도 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국은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의 왕국은 분명하고 확실하며 분명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러한 왕국 즉 천국의 설명이 아주 자세합니다. 우리들이 생각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1~4장은 왕의 자격 즉 왕의 신임장에 해당하는 장이었습니다. 이 왕국 즉 천국의 왕되신 분의 자격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7장에는 왕의 명령이 나와있습니다. 왕국과 왕국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 것이 분명하게 나와있습니다. 8,9장에는 그 왕국의 능력이 나와있습니다. 8.9장에서 주님께서는 약 10가지 정도의 기적을 행해주셨습니다. 자연에 대해서 그리고 영의 세계에 대해서, 도 사람 개인개인에 대해서 주님의 능력을 분명히 증거했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능력은 모든 면에 분명하다 그런 뜻입니다. 10~12장에서는 왕되신 그리스도가 거절된 사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격, 그리스도의 가르침, 그리스도의 기적이 있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13장에서는 주님이 다른 것을 말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왕국인 천국을 거절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천국적인 왕국은 비밀스런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은 매우 중요한 한 장입니다.

성경에는 비슷한 것을 가르치는 세 군데가 있습니다. 레위기 23, 마태복음 13, 요한계시록 2,3. 레위기 23장에는 이스라엘의 일곱절기가 나와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일곱비유가 나와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2,3장에는 일곱교회가 나와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가르쳐온 내용입니다. 레위기 23장의 일곱절기를 여러분 다 아시잖습니까? 첫째절기는 유월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절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임시초막에 거하는 절기였습니다. 그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정되어 있는 그란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뭇가지로 초막을 만들어 일주일정도 거주하던 그런 초막절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이스라엘의 천년왕국의 안정된 상태를 나타내는 그러한 그림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일곱절기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부터 천년왕국에까지의 선이 연결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가운데 그대로 놓아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분명하게 나타내주셨습니다. 계시록의 2,3장의 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는 역시 사도시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직전의 교회를 나타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는 교회시대 마지막 교회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부터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까지는 일곱교회시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도 같습니다. 일곱비유도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일어나기까지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비유라고 일컬어지는 일곱가지 비유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일곱비유는 현재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왕국, 천국으로서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14가지 정도의 비밀이 나옵니다. 신약성경에서 비밀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여러분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13장의 11절을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비밀이란 것은 어떤 것입니까? 에베소서 3장에 충분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3 4,5절을 보시면 비밀이란 것의 설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5절에 보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감추어진 것, 사람들은 자기 능력으로 이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세대에서는 이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4,5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은 신약시대의 사도들, 신약시대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드러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 4절의 그리스도의 비밀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라는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것이 나타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비밀은 모두 그렇습니다. 구약성경 가운데서는 신약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신약성경 가르침 가운데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어떤 비밀은 교리를 가르침을 나타내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6 19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것은 복음의 가르침의 비밀입니다. 디모데전서도 봐주시기 바랍니다. 3 15,16절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여기는 경건의 비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과 관련된 비밀인 것입니다. 이 지상에 사는 성도들이 주님을 위해서 성별되는 결심과 관련되는 비밀인 것입니다. 또는 성도들의 헌신, 주님을 향해서 자기 자신의 모두를 드리는, 지상에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것,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되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비밀은 가르침(교리)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 나오는 비밀은 헌신에 관한 비밀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3 11절의 비밀은 역시 시대와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교회시대를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2 7절입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불법의 비밀입니다. 물론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에 니므롯이라고 하는 조직부터 요한계시록의 끝까지 바벨론이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이미 사단이 그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바벨론이라는 조직은 그리스도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조직입니다. 바벨론이라는 조직에는 적그리스도의 모든 활동이 그 속에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그 마지막 종착은 그리스도에 반역하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불법의 비밀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비밀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마태복음 13장의 비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2 1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이 주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마태복음 12 14절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낸 왕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12 14절입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서 몸을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 자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습니까? 구약성경에 선지자가 말한 말씀이 성취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길가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말을 들을 것이다. 이것이 2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또 이후에 주님이 또 한가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확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했어야만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론은 24절에 있습니다. 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했습니다. 바꿔 말한다면 하늘의 능력, 천국의 능력을 눈으로 보았지마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들 스스로가 이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스스로가 정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버리셨습니다. 비유라고 하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신화가 아닙니다. 또한 비유도 아닙니다. 비유라는 말을 썼지마는 이것은 단순히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씨뿌리는 비유는 씨를 실제로 뿌리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있는 것이지요. 또한 여자가 가루 서말속에 누룩을 넣는 비유도 보통 예사로 행해지는 실제로 있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바다에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모으는 비유도 마찬가지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골라서 담는 것도 실제로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행하고 있는 사항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님은 이런 것을 가지고 주님 자신의 것을 더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유인데 보통의 실제로 있는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13장의 설명을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16,17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리고 13,1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주님이 이것을 비유로 말한 것은 주님의 나라를 거절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천국의 비밀을 감추어버렸습니다. 이 비유로 말미암아 말이죠. 그리고 나중에 제자들에게 몰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13장 안에는 씨뿌리는 비유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는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비유를 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것입니다. 12장 마지막에 보시면 주님은 주님의 형제와 모친을 가지고 실제로 누가 형제요 모친인가를 말씀하시면서 믿는 자들이 형제요 모친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3 1절에 보면 주님은 그 집에서 나와 버리셨습니다. 집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입니다. 13장부터 28장까지는 어느 정도 주님께서는 나와버렸다, 나와버렸다, 나와버렸다는 말들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13장은 이로 말미암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곱비유는 일반 사람들에게 바닷가에서 말씀하신 비유였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묻는 것을 보아서 일반인들이 몰랐던 것이 분명합니다. 나중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나오는 3개는 주님이 집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몰래 말씀하신 설명이었습니다. 이 일곱비유는 현재의 하나님의 비밀인 천국의 비유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 나라는 눈에 보이는 왕이 없습니다. 또한 나라의 국경선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또한 수도인 서울도 현재는 없는 상태의 천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왕국에는 실제의 수도가 있습니다. 머지않아 이 수도가 하늘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옛날에 아브라함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성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끝까지 장막에 살았드랬습니다.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이 성은 현재 하늘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 의하면 이 수도인 예루살렘까지 믿음으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 21절의 의미이겠지요. 우리들의 국적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실제로는 서울시민, 부산시민이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신랑이 신부를 위해 단장한 것 같더라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수도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적인 수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왕국 동안에, 또한 영원한 날 가운데서 예수님의 지배의 중심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예루살렘이 중심입니다. 그 시에 소중히 여김을 받는 존재는 교회라 불리는 존재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다스리시는 그 왕은 자기 영광을 그 새 수도로 가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면 그기에 사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을 하나님은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는데는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은 아마 인공위성 같은 그런 도시이겠지요. 그래서 전 우주를 지배하는 중심지가 되겠지요. 영원까지 하나님의 왕위가 그기에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태양이 필요없습니다. 그 도시에 빛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이 모든 기록은 요한계시록 19~22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능하면 계시록을 볼 때 문자 그대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늘 영적인 의미를 추구해야 될 필요는 없습니다. 가능하면 문자 그대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많은 문제가 없어질 것입니다. 만약에 계시록 가운데 천사라는 말이 나오면 해석을 하지 말고 천사라고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늘에서 우박이 덜어진다 고 하면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계시록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계시록은 마태복음이나 사도행전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기록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간단하게 복습을 하십시다.

마태에 의해서 하나님의 왕국인 천국이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증거와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전도자, 사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지금 시대는 특히 이방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그러한 일들이 나와있습니다. 이방인의 때가 끝나면 다시 한번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회복이 됩니다. 이것은 아직도 미래의 일입니다. 지금 현재 믿는 자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한 몸이 됩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중요한 비밀 중의 하나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비밀도 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어서 한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몸된교회입니다. 그래서 여기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통해서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가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그럼 잠시 쉰 다음에 마태복음 13장을 구체적으로 보시겠습니다.

-휴식-

마태복음을 보아 주시겠습니까? 24~52절까지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천년왕국까지 이어져 일어난 일들을 분명하게 가르친 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입니다. 두번째 비유를 주님이 말씀 하실 때 씨뿌리는 이는 인자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7절의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인자, 주님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같은 13장의 4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끝이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씨를 뿌리는 그 인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씨를 뿌린 이후부터 세상 끝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누구에게 말씀하신 것인지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2절에는 큰 무리라고 되어 있는데 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의미를 감추는 비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10절에 의하면 제자들이 주님께로 나아왔습니다. 18절부터는 그들에게 몰래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36절을 보시면 주님께서는 무리를 떠나셔서 제자들에게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 51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까지의 비유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이 의미가 일반인들에게는 감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럼 일곱가지 비유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세가지 구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시대에 관한 세가지 구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4절까지는 이 시대의 처음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씨뿌리는 비유에 의한 것입니다. 이어서 가라지 비유도 처음 부분을 연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25~35절까지는 지금 시대의 흐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6~52절까지는 왕국의 완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의 본질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일곱 비유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처음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 처음에 씨를 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2천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은 씨를 뿌려왔습니다. 주님 시대의 그 시작은 오늘날까지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때때로 전도를 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의 일 가운데서도 모든 일이 다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땅의 네 가지 종류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씨의 문제가 아닙니다. 씨가 잘못되지 않으며 씨를 뿌리는 방법도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씨를 가장 잘 뿌리는 사람은 주님 자신으로서 말씀을 내셨습니다. 물론 어떤 씨들은 길 가에 떨어져버렸습니다. 그기는 조금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공중의 새가 그것을 그만 먹어버렸습니다. 두번째는 돌밭이고 세번째는 가시밭이었습니다. 씨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하게 뿌려졌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문제가 생기자 말씀을 받지 않았음을 나타냈습니다. 왜냐하면 뿌려진 씨가 전혀 열매를 맺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네번째 땅의 종류는 어떻습니까? 열매를 역시 맺었습니다. 잘 갈려진 땅도 똑 같은 비율로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율은 달라도 열매는 맺었습니다. 어떤 것에는 열매가 많이 열렸습니다. 어떤 것은 아주 조금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좋은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물론 열매를 맺었다는 것은 우리의 전도의 성공이나 노력의 결과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듣는 사람들의 마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의 가지가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에서는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생활가운데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도에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열매를 안주시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생활가운데 열매를 맺는 것은 여러분과 저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을 순전하게 받아서 반응했다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활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열매를 맺는 일에 깊이 주의를 해야 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믿는 자의 생활에는 열매가 분명히 있을 터입니다. 백배 정도의 열매가 있을 수 있겠지요. 60배도 있을 수 있겠죠. 모두 똑같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매를 맺을 터입니다. 만약 이런 열매가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믿는 자인지 의문이 가는 것입니다. 어쨌던 시대의 시작부터 이러했습니다.

두번째 비유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린 결과로 가짜와 진짜가 있었습니다. 곡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열매입니다. 가라지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라지와 곡식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라지와 곡식이 자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씨를 뿌리셨습니다. 원수인 마귀는 자기 사자들을 통해서 가라지를 뿌렸습니다. 그것이 어디입니까? 세상 안에서입니다. 교회 안에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교회 안에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교제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이것을 구분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것들은 세상에 뿌려진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일부분에 기독교계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감스럽습니다만 참으로 믿는 사람들도 이 거짓 기독교계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불신자와 함께 그 교회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도 그렇지요? 저는 30년 전에 교파에 속해 있는 어떤 형제라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는 미국 사람인데 한국에서 열심히 전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순수한 신자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한국어를 잘 했습니다. 그에게 한국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이전 미국대통령 클린턴씨를 보시기 바랍니다. 일반 사람들이 봐도 그 사람의 행동은 나빴습니다. 그는 스캔들이 있는 중에 성경을 끼고 교회다니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정말로 믿는 사람이겠습니까? 가라지가 아니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가라지와 곡식을 어떻게 구별할지 방법을 모릅니다. 일본에서 발행하는 요미우리 영자지에 재미있는 글이 실렸었습니다. 영국의 어느 유명한 박사가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옛날부터 인류의 전쟁은 분명하다. 그것은 종교이다. 그가 있는 아일랜드의 내분은 기독교와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의 전쟁도 기독교와 관련이 되는 전쟁이 아닙니까? 회교권 내에서 기독교와 충돌되는 것도 종교문제가 아닙니까? 이로 말미암아 그 박사는 기독교를 완전히 거부해버렸습니다. 그 학자에게는 기독교가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대비된다고 보겠지요. 자기 자신은 그에 전혀 관계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가라지가 있습니다. 진짜 곡식도 있습니다. 이것을 구별하는 데는 어떤 때는 어렵습니다. 모임에도 때때로 가라지가 들어오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주 주의하면서 새로운 믿는 자들을 모임에 영접을 합니다. 아무리 진지하게 아무리 주의깊게 살펴봐도 때때로 가라지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어쨌던 가라지와 곡식이 섞여 있으니까 영접하는데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때때로 틀릴 수 있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가능하면 모임에 가라지가 들어오지 않도록 더욱 잘 주의해서 모임에 영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번째 비유는 겨자씨 비유입니다. 이 겨자씨 비유는 기독교계의 표면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아주 작은 것으로서 시작을 했습니다. 작은 나라에서, 형편없는 동네에서, 주님이 처음에 선택한 열 두 제자는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도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도 교육받지 않은 사람으로 인정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소중이 여김을 받는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30년 내에 세상이 온통 뒤집어졌습니다. 이것은 참 좋습니다. 그 능력은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1세기가 지나지 않아 그 방향이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성한 성경말씀은 점점 더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의 가르침처럼 되어버렸습니다. 2,3세기에서는 단순한 말씀으로 믿는 사람들 속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가 큰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많은 나라의 왕들과 대통령들이 그 나무 사이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외견상으로 보이는 기독교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 나뭇가지에는 나쁜 자들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네번째 비유는 누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넣어버렸습니다. 이것은 기독교계의 외견이 아닙니다. 기독교계 안에 있는 내부의 가르침의 문제입니다. 역시 누룩이 들어가버렸습니다. 지금 현재는 그리스도의 단순한 가르침을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나 교회종류라는 것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훌륭하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각가지입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모임과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켜야 된다고 하는 생각들이 거의 없습니다. 모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단순하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옛날부터 나온 전통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미국에서 하는 모임의 전통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일본에서 하는 것은 일본에서 하는 방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말씀을 떠나 있다면 하루빨리 말씀의 단순함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누룩을 대단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섞여 들어와버렸습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닷가에서 나오셔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다섯번째 비유부터는 집에서 하셨습니다. 다섯번째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화였습니다. 이것은 아마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겠지요.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밭이라는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1세기 중반부터 이스라엘은 전세계로 흩어졌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많이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의하면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이것은 뉴욕주 안에만 그렇습니다. 미국전체, 캐나다 전체, 유럽 각국들, 또한 지중해 연안에 있는 유대인들, 이들이 일시에 이스라엘로 간다면 그 좁은 이스라엘은 곤란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한번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감추어진 보화와 같은 것입니다. 이들을 주님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비유에 있는대로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으로 그들을 샀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위한 주님의 십자가의 사역이겠지요.

여섯번째 비유는 진주입니다. 극히 값진 진주입니다. 이 진주를 장사하는 사람은 사기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진주는 바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비유에서 바다가 나오면 대부분이 전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 것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면 성경문자 그대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씀은 분명하게 비유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문자 그대로가 아닙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서 교회라고 하는 극히 값진 진주를 사셨습니다.

일곱째 비유는 각종 물고기를 모는 바다에 치는 그물에 비유했습니다. 마지막 세가지 비유는 이 마지막 시대에 관한 주님의 비유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회복되어 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극히 값진 진주처럼 주님의 소유가 됩니다. 그물 치는 비유에 의하면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았습니다. 나쁜 것은 내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5장과 닮아 있습니다. 25장에는 양과 염소를 구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양들은 살아있는 채로 천년왕국을 맞이하는 사람들입니다. 염소는 심판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말입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아둡니다. 나쁜 것은 내어버립니다. 이것은 천년왕국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은 산채로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7장과 14장을 나중에 보시기 바랍니다. 계시록 7장과 14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이 왕국을 전하기 위해서 14 4천명이 택함을 입습니다.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직전에 전 세계에 나가서 왕국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7장과 14장에 의하면 아마 14 4천명이 유대인 전도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의 일의 결과로 많은 나라와 방언들에서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죠. 이들은 좋은 그릇에 담긴 고기와 같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한 25장의 양들과 같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13장의 가르침입니다. 일곱가지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 때부터 천년왕국 때까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마태복음 16장에서 18장까지를 교제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에 관한 것입니다. 16장에는 몸된교회인데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일곱가지 비유에서는 극히 값진 진주가 결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 시대에서는 몸된교회를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형태의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참된 몸된교회는 존재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것을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6장입니다. 지상에서는 무엇을 봐야 하겠습니까? 역시 지역교회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믿는 사람들. 이것은 모임들 또는 지역교회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상세한 것이 특히 바울서신 속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교회라고도 불리웁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도 불리웁니다. 성도들의 교회라고도 불리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에서 지역교회의 본질을 봐야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교회에 관한 한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몸된교회와 지역교회. 지역교회가 몸된교회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지역교회는 어떤 면에서 몸된교회의 본질을 나타냅니다. 그럼 오늘밤에 마태복음 16,18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2002 1 21 강서모임(일군들을 위한 집회)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