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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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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짐 커리

안녕하십니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어를 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40년 전에 한국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20년 만에 제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어서 저에게는 대단히 즐거운 일입니다. 저는 동경 후후 모임에 잠시 와 있는데 후추모임 성도님들이 강서모임 성도님들에게 안부전해 달라고 제가 부탁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과 함께 잠시 성경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쩌면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이 여러분과 제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경을 문맥에서 찾고자 하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 어쨌던 한가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하나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혀 모순이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전체가 기록되는데 1400~1500년이나 걸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성경의 통일성을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성경공부에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가지를 말한다는 것은 기적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면 알겠습니다만 성경은 보통 책과는 다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있는 것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어떤 것입니까? 성경의 중심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주 옛날에 영어로 된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 책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책은 66권 속에 있는 그리스도라는 책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구약성경을 보면 그리스도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에 있는 아벨, 요셉등은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는 분입니다. 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성경의 통일적인 테마는 주 예수 그리스도임에 틀림없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이것은 종교적인 책이 아니며 종교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잘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통일성과 일치에 대해서 충분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이런 관점에서 마태복음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부터 조금씩 읽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 1,2절입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1 16 ~ 2 6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러라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오늘 우리가 교제할 주제는 1장부터 4장에 있는 주제를 교제하고자 합니다. 그럼 성경의 통일성 즉 성경의 일치라는 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구약성경에는 큰 구분이 세 개 있습니다. 우선 역사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가 역사서입니다. 이 책들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말해주는 책들입니다. 다음은 다섯권의 시(노래)가 있습니다. 시편이라든가 아가서라든가. 그것은 구약 한 가운데 있는 책입니다.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를 예언서라고 불립니다. 역사서는 우리들의 지력에 관해서 말하는 책입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욥기나 시편들은 역사서에 비해서 우리들의 마음에다가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우리들의 애정에 관한 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서는 우리들의 양심에 말을 합니다. 예언서에서는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해야 되는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해서는 안되는 것도 자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구약은 지력과 마음과 다리() 이렇게 해서 세가지 부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우리들 전체에 대해서 말하는 책인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39권의 구약성경이 모아진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도 같습니다. 신약성경의 처음 구분도 다섯 권이 역사서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사도행전까지 실제적인 역사책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무엇을 행하셨는가의 사실을 기록하는 책이었습니다. 다섯번째 사도행전이 계속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지력(지식)에 관한 부분입니다. 다음에는 신약의 21권의 책이 있습니다. 21권은 우리들의 양심과 우리들의 애정에 관해서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그리고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행해야 될 것입니다. 맨 마지막에는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을 통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미래의 이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단순하게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습니다. 성경은 한 권의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아무렇게나 66권이 모아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특별히 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밤은 신약성경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처음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마태복음을 다룰 때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을 어쩌면 다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주님 앞에서 올바르게 행한다면 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약성경에 처음 나오는 다섯권은 모세오경입니다. 창세기에는 내려간다는 말이 자주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덴낙원으로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마지막에는 입관해서라고 말하며 관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요셉의 시체를 넣은 관으로 끝나버립니다. 나그네로서 시작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버린 상태였습니다. 내려갔습니다. 출애굽기는 나오는 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나갔습니다. 하나님께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애굽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나갔던 것입니다. 레위기는 들어가는 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속받았기 때문에 지성소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레위기는 역시 예배의 책입니다. 다음은 민수기입니다. 민수기는 진행해 간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 길을 진행해 갔습니다. 신명기는 건너간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가는 준비를 한 책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모세오경은 서로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신약성경으로 들어가면 처음 복음서도 그러합니다. 사복음서는 분명한 관련성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구약과 신약성경을 생각해봅시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내일 모레 교제할 하나의 서론입니다만 조금씩 조금씩 진행시켜 나가겠습니다. 신약을 생각해보면 진보 진행이라는 말이 분명히 나옵니다. 66권의 성경은 그 성경 각각의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66권 성경가운데 특징적인 말도 나옵니다. 예를들면 창세기에는 제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브라함 이삭 등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출애굽기는 피라고 하는 말이 특징적으로 나옵니다. 동물의 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구속되었습니다. 레위기에는 거룩하다는 말이 특징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들은 거룩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민수기에는 수를 센다는 말이 특징적으로 자주 나옵니다. 두번 정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셈을 당했습니다. 광야생활 처음에 민수를 하고 광야가 끝날 즈음에 또 백성의 수를 세었습니다. 그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수와 마지막 수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에서 한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손해를 보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죄를 범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심판 받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수는 처음과 비슷했습니다. 손해를 본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불충실함으로 말미암은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충성으로 말미암아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는 두번 말한다는 신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두번 말씀해 주셨다는 그런 뜻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위해서 중보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명기에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자세하게 율법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알 수 있습니다. 66권은 성경마다 특징적인 말들이 나오고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약성경의 특징을 봅시다.

마태복음의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산입니다. 다섯번 정도 주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5~7장에 산상수훈, 주님은 제자들에게 산에 오르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24,25장은 감람산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산 외에 다른 산에 관한 것도 있습니다. 특징적인 말은 산입니다. 마가복음은 산이 아니고 이번에는 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0번 정도 주님은 사람들의 집에 드나드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산도 아니고 집도 아닙니다. 누가복음의 특징적인 것은 길입니다. 주님은 세번 정도 길을 여행하신 기록을 남기셨습니다. 9장부터 19장까지 한 긴 여행 같은 느낌입니다. 주님은 길을 가시면서 하나님의 복을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행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산도, 집도, 길도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이층 다락방 사건이었습니다. 왜 이러한 것들이 각 복음서에서 강조되고 있겠습니까?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산이라는 높은 장면은 왕의 위엄과 어울리지 않습니까? 마가복음의 특징은 집입니다. 마가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종으로 나타내는 책입니다. 종은 주인의 집에 가서 일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습니까? 세번째 누가복음은 주 예수님을 완전한 사람으로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 가면서 말씀하거나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세가지 길을 가신 분이셨습니다. 요한복음도 같습니다. 요한복음은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완전한 독생자로서 나타내는 서신입니다. 요한복음 13장과 17장 사이에서 이층 다락방에 모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자세하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주님은 왕이시고, 종이시고, 인자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인 본질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주님에 대해서 네 가지가 나옵니다. 여러분과 함께 저도 생각해보고 네 가지입니다. 지금은 특별히 그 중에 네 개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스가랴 9 9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너희 왕을 보라. 이사야 42 1절에서는 나의 종을 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 6 12절에서는 이 사람을 보라. 이사야 40 9절에서는 너희 하나님을 보라 이 네 가지는 사복음서의 중심입니다. 이 네 개는 각각 사복음서의 테마입니다.

마태복음은 주님을 특별히 왕으로서 계시해주는 기사입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할 때 마태는 목적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주권자로서 나타낼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주 예수님을 모든 사람의 구원의 주로서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1 1절을 다시 한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여기에 대해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글 성경은 모릅니다만 일본 성경은 틀렸습니다. 일본어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질서는 안됩니다. 한글도 별로 안 좋군요. 생각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다윗보다 앞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하면 질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원문은 다윗이 문제였습니다. 원문은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것이 옳습니다. 말하자면 주권자 왕, 다윗의 자손이지요. 두번째는 모든 사람의 구원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 1절은 마태복음 전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6장 마지막까지 주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2장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12장에 보면 다윗의 자손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주님은 거절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주님은 이방인들을 축복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모든 민족을 축복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내용을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13장을 봐주시면 그 안에는 7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마지막은 바다에 그물을 치는 비유입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씨를 뿌리는 분이 누구였습니까? 13장에 설명이 있습니다. 씨를 뿌린 분은 인자라고 했습니다.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씨뿌리는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다에 그물을 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천년왕국 처음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 시대의 마지막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곱가지 비유를 보면 지금 현재는 이 과정을 거쳐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축복을 거절했기 때문에 축복이 이방인에게로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 바로 처음 구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나중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 1절은 다윗의 자손.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가 올바른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서 내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반을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에는 교회에 대해서 가르치는 곳이 두 곳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왜 마태복음 안에서 교회에 대해서 두번 말씀하셨는가 하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복음서는 분명하게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잘 나타내는 복음서입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교회가 나옵니까? 어쩌면 적당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거절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으로 인정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미래에는 선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로마서 9~11장을 조사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성립하였기 때문에 이제 곧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아직은 교회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은 왕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복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독생자를 거절하는 가운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 이것은 마태복음 16장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지상에는 여기저기 지역교회가 있습니다. 지역교회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8장에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거절되었지마는 교회시대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모든 민족을 축복하는 시대입니다. 이 축복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지역교회가 증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말하는 일치 통일성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태복음에 교회가 두번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첫 복음서인 마태복음에서 교회의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복음서는 분명하게 이스라엘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나중에 로마서 9~11장을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을 내가 택했다. 너희들의 죄 때문에 선민으로 인정되고 있지 않다. 그 대신에 이방인들이 복을 받는다. 그들이 거부한 대신에. 또한 이방인들이 주님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대인처럼 이방인도 주님을 거절한다면 심판을 받겠지요. 그 때에 유대인들을 하나님이 선민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그대로 사실은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9~11장의 가르침입니다. 동일하게 마태복음은 유태인들을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너희들이 그 축복을 거절하면 다른 사람들이 왕의 축복을 받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1장부터 12장까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3장부터 주님은 유대인들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28장 마지막은 어떻습니까? 온 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은 이스라엘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알겠습니까? 마태복음에는 직접적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한 곳이 23곳 정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그러한 인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만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 구약성경에 이러한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있다고 들어도 여러분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의 그 인용을 받기 위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나사렛 예수가 정말로 구약 속에 있는 메시아일까 라고 생각을 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속에는 이것이 아주 강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너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해버렸다. 그러나 분명하게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만 마태복음 전체에서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왕으로서 여러 면을 나타내셨습니다. 왕궁의 왕으로서 충분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들이 그 왕국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두번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사단의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알세붑에게 지폈다고 이렇게 말하면서 사탄에게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더러운 여자, 이런 사람들과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욕을 했습니다. 그래서 왕국은 일시적으로 중지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어떤 어떤 도시는 예수님의 왕국의 수도다라고 말할 수 있는 데가 없습니다. 런던도, 와싱톤도, 모스크바도, 서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수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는 비밀이라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3장의 일곱가지 비유의 의미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현재 그리스도의 비밀은 영적인 것입니다. 지금 현재 그리스도의 비밀은 어디에 존재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비밀의 형태를 띤 것입니다. 서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예수님의 왕국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할 것입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서울 사람들은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은 여기에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참된 왕을 이 세상에서 드러내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특히 지역교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교라는 것은 여기에서 실패를 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계 안에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중심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는지 아닌지가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난 나라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북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일랜드라는 작은 섬은 일본의 시코쿠만한 섬입니다. 북 삼분의 일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문에서는 신교와 구교의 싸움이라고 들었을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아 그것이 기독교계 일입니까? 라고 말하겠지요? 그 가운데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 내란에 가담해 잇는 사람들은 신교건 구교건 가담한 사람들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만약 주님이 북아일랜드를 다니면서 평화하라고 말씀하시면 그들은 총으로 주님을 쏠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회라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진짜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안 계신 왕이 계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왕이 계십니다. 그분을 이 지상에서 대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국적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속한 자로서 지상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 왕국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왕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왕국의 출현은 중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네번째는 아주 복됩니다. 이제 머지않아 이 왕국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4,25장의 말씀입니다. 열처녀에 관한 말씀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왕국에 살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 속에는 왕이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등과 기름을 가지고 그 처녀들처럼 말이죠. 또한 왕이 오시는 것을 전혀 믿지 않는 그런 불신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은 등을 위해서 기름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처녀를 교회에다가 비유를 적용시켜서는 안됩니다. 불신자들에게 당신 등에는 기름이 준비되었습니까? 라고 묻는 것은 관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와 같이 둘로 나뉘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고 주님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믿는 신자들입니다. 그들은 왕국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멸망을 받습니다.

또 하나의 비유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 사건이 나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다시 나뉘었습니다. 한 쪽은 양이고 한 쪽은 염소. 양들은 살아있는 채로 왕국을 향해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염소는 역시 안 믿는 사람들이니까 멸망을 받습니다. 천년왕국의 처음은 아주 복됩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았기 때문에 그러나 초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기에 못 들어갑니다. 요한복음 3장 그대로입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때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물론 교회는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공중으로 휴거됩니다. 왕 되신 주님의 신부로서 왕과 함께 다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년왕국 동안 주님이 지배하는 지배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미래는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왕되신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왕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천년왕국도 우리 육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날이 오기까지 열심을 품고 이 지상에서 주님을 대표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주님을 대표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과 제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면 올바르게 그리스도를 대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입니다. 한국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이것을 그리스도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은 자로서 매일매일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천년왕국의 영광의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주님을 위해서 걸어갑시다. 고맙습니다.

2002 1 18 강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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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