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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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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데살로니가인들의 믿음

짐 커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밤에도 데살로니가전서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제 3 1~13절입니다.

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장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2장에서는 무엇을 믿었는지 왜 믿었는지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3장에는 그들이 어떻게 믿었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장에서 그들이 무엇을 믿었는가 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복음의 내용을 의미합니다. 복음은 아시는대로 전체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복음인 이 복음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복음의 비밀이라고도 일컬어집니다. 여러분들이 비밀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신다고 생각합니다만 신약에서 비밀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감추어진 것을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신 것이 비밀입니다. 아시는대로 구약성경에는 복음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감추어졌다는 것은 여러가지 모형 속에, 여러가지 예언 속에 감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 감추어졌던 것이 신약에서는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복음에 바탕이십니다. 복음의 내용 전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진리의 말씀이라고도 일컬어집니다. 물론 그 말씀은 복음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것은 진리입니다. 또 두가지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는 그저 복음이라고 불립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복적 행복이 생기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복을 위해서 이 경륜을 세우셨습니다. 이 편지 안에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습니다만 바울은 너희들의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그와 같습니다. 큰 확신은 이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는 복음입니다. 이 복된 것이 우리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3장으로 들어가면 그들이 어떻게 이것을 믿었습니까? 3 8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서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사도조차도 종종 실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앞 시간에 본 바대로 많은 박해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빌립보, 베레아에도 박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의 참모습을 알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소식을 알기 원해서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아테네)이라고 하는 도시에 혼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덴에 머문 바울에 대해서도 사도행전을 통해서도 아실 것입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여기 저기 다니면서 우상들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관장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덴에서의 반대는 강했습니다. 이것이 이 즈음에 바울의 상태였습니다. 실망해 있는데 디모데가 와서 데살로니가인들이 견고하고 바울을 생각하며 사랑한다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에 대해서 바울은 흥미로운 말을 썼습니다. 바울은 복음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디모데가 가져온 말을 설명했습니다. 실망하고 있는 바울에게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은 좋은 뉴스였습니다.

3,4,5장 가운데 4,5장에서 세개의 말로 할 수 있겠습니다. 1 3절에도 나와 있는데 이미 저희들이 보았습니다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있는데 이 세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3장에는 그들의 믿음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3장에는 그들의 믿음이라는 말이 다섯번 정도 나옵니다. 또한 3장에는 믿음의 결과도 나타나있습니다. 4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그들의 소망의 인내라는 말에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다. 5장에는 바울이 피차간에 사랑을 격려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그들의 사랑의 수고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앞에 나온 3가지의 말을 3,4,5장에서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가지가 특징이 될 것입니다. 만약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다면 믿음의 결과가 반드시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바라게 될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징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피차간에 사랑을 나타낼 것입니다. 역사와 수고와 인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3장에는 그들의 믿음의 다섯가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첫번째는 3 2절에 있습니다.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라고 말했습니다. 3 1~5절까지는 사도바울이 걱정하는 것이 잘 나와 있습니다. 여러 환난들에 들어가 있는 데살로니가 인들을 대하여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환난가운데 들어갈 때 데살로니가인들이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한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대적하는 것은 물론 사단입니다. 그들은 사단으로 말미암아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환난은 많은 경우에 사단으로 말미암습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또한 살인자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우리의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서 중간에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피차를 위해서 기도를 행 합니다. 형제자매들의 중재 기도는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간 것과도 같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말렉과 싸움을 할 때 모세가 손을 들었을 때 이겼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쳐서 손이 내려왔을 때 옆에 있던 두 사람이 모세의 손을 받쳤습니다. 손을 든 모세는 아말렉과 싸우는 이스라엘을 위한 기도이기 때문에 중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모세의 손이 내려왔을 때는 이스라엘이 아말렉에게 졌습니다. 그들의 중재는 결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인 싸움에서 아말렉이라는 적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구약에서 아말렉은 신약에서는 육체의 욕망 같은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육과 싸우면 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계십니다. 우리들의 중보에는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망을 이기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 가르침은 요한일서 1,2장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바울도 그저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각가지 상황에서 그만 실망해버렸습니다. 여러 곳에서 핍박을 받은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모임이 생겼는데 아덴에서는 지역모임이 생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두 명의 개인이 믿은 것으로 보입니다. 모임을 형성할 만큼 사람들이 믿은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때에 매우 실망했습니다. 3 6~8절에서 보게 되면 바울은 격려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 격려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 격려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믿음에 견고하게 섰다는 소식에서 격려를 받았습니다. 6절에 의하면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라고 했습니다.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사도인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의 믿음을 통해서 격려를 받았습니다. 물론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것을 그들의 믿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시험해보기 위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진짜이라면 환난 가운데서도 견고하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랬으며 그로 인해서 바울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8절에 있는대로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믿음에 견고히 서 있으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종들은 격려를 받습니다.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행해 나가는 것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이로 말미암아 격려를 받습니다.

그러나 9~13절까지는 바울의 중재의 기도가 있습니다. 우선 중재 기도의 본질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바울은 그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감사의 이유는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라고 감사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믿음에 견고했기 때문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종에게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재 기도는 그들의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10절에 보게 되면 바울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데살로니가에 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단으로부터 방해를 받았습니다. 사단으로부터 방해를 받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그들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주야로 그들의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믿은 지 얼마 안된 분들이었습니다. 4장 전반에 그들의 재림에 대한 착각은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것이 그들의 부족함의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우리의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사랑이 점점 넘치도록 기도했습니다. 12절에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이 넘치도록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기도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10절을 보게 되면 바울의 기도는 매우 열심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신 것이 마태복음 6장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기도 내용을 오늘날 우리들이 그대로 외우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은 모범적인 기도입니다. 첫째로 이 기도는 매우 짧았습니다. 그 짧은 기도는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부족한 점들을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주야로 그들을 위해서 간구함으로 기도를 하는 수고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주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미쳤다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을 열심히 순종한다면 그렇게 볼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도중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증거를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말했습니다. ‘바울아,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일로 말미암아 미쳤다고 듣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 정중하게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어떤 유명한 무신론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멸망으로 간다고 믿는 자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희생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은 크지 않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 정도로 열심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무엇을 버렸습니까? 빌립보서 3장을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전에 가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모두 헛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이전 것들을 배설물같이 여겼습니다.

만약 우리가 열심이 없게 되면 믿지 않는 자들이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상당히 오래 전에 토론토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제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캐나다에서는 젊은 믿는 자들이 맨 뒤에 앉습니다. 어느 주일 밤 복음집회시간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뒤에 앉아있던 때때로 오는 불신자가 있었습니다. 그 집회 이후에 그 불신자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형제님이 그 사람에게 이야기하러 갔습니다. 그 불신자의 집에까지 갔습니다. ‘오랫동안 복음집회에 잘 나오더니 요즘은 왜 잘 안 나오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불신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뒤에 앉아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열심히 듣지 않고 서로간에 잡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중요하게 안 듣는다면 그렇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되어서 나는 듣지 않기로 했습니다.’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듣던 불신자가 젊은 믿는 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그만 방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들에게 전해준 복음은 매우 놀랍습니다. 바울은 주야로 수고하면서 데살로니가인들을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목적도 분명합니다. 그들의 믿음의 부족함이 온전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보충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길이 열리도록 기도했습니다. 피차간에 사랑이 넘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13절에도 또 하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즉 기도하노라 했습니다.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들이 주님 앞에서 아무런 흠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 중재기도는 실로 무엇을 위한 목적이겠습니까? 4 1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고 했습니다. 4장 전반은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에 있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행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우리들에게 특별한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눈을 떴을 때 기억해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하루 하나님을 기쁘시게 행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4 2,3절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라고 했습니다. 또한 9절에 보면 형제사랑을 충분히 드러낼 것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그리고 형제 사랑을 피차간에 드러냅니다. 결국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에 동참되어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데살로니가의 믿는 자들을 위해서 바울은 이와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 격려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이 서신에서 매우 소중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미래에 일어날지 아닐지 하는 애매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기다리는 우리는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그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3장과 4장 전반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따라가는 자로서 거룩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피차간에 형제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미래에 오시겠지 하는 그저 예언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정말로 기다린다면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실행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요한일서 3 1~3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만약 주님이 다시 오심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머지않아 다시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품고 있는 자답게 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2006 10 15 부산 명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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