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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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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짐 커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밤에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할 수 있어서 저는 무척 기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한분 한분 마음속에 말씀을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늘밤에는 먼저 사무엘상 1장 전체를 보겠습니다.

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5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7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17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19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오늘밤에는 사무엘의 출생에 대해서 세가지 관점에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첫번째는 사무엘의 출생의 여러 가지 사연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의 출생과 관련된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사무엘의 출생의 결과로 말미암아 복된 결과가 생겼습니다.

성경에 매우 흥미롭게 쓰여 있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마 사무엘상은 오늘날로부터 3,50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사무엘을 교훈삼고 이 말씀을 자기 삶에 적용시키기도 합니다. 불교 신자들은 동일한 책을 가지고 매일 육을 위해서 사는 생활에 적용을 시킬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계에서 그 서적이 그 기록된 것이 현재 불교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도 대체적으로 그런듯합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생활가운데서 말씀을 적용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는 생명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만이 성경의 흥미로운 점이 아닙니다. 성경은 많은 인간의 역사를 다루는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역사의 역사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구속의 활동의 역사입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하는 말이 중요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알렉산더 대왕의 관한 기록들이 성경에 거의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알렉산더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이것이 알렉산더 대왕이 아닌가 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은 구속에 관한 것들을 주님 측면에서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신비로운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도한 우리들의 교훈을 위한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명령과 교훈을 가지고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명령과 교훈만을 가지고 말씀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의 전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보면 창세기는 인간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우리들에게 이것이 어떻게 설명이 되었습니까? 일곱명의 인생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담을 통해서, 두번째는 노아를 통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서, 그리고 요셉을 통해서, 그 가운데서 아주 짧지만 에녹이라는 사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는 이 일곱명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인물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우리들에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 상고를 했습니다. 이전에는 서울에서 삼손에 대해서 상고를 했었습니다. 또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놀라운 여호와의 종에 대해서도 저희들이 상고를 했습니다. 이전에 예언된 이사야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에 대해서 저희들이 상고했었습니다. 오늘밤에는 그 중에 또 한 사람인 사무엘에 대해서 상고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한 인물을 택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사무엘이 어떤 경우로 해서 태어났는지 저희들이 읽었습니다. 이 사무엘이 출생한 배경에는 하나님을 떠나가서 영적으로 타락되어 있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사사기 마지막 21 25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후반에 나오는 4개의 장은 사사기 마지막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사사시대의 중반쯤에 발생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사기의 긴 시간은 왕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모든 나라 가운데 있는 민주주의같은 그러한 양식이었습니다. 위대한 정치가였던 윈스턴 처칠은 민주주의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 가운데 민주주의라는 정치는 가장 나쁜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다. 말을 들어보면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처칠의 말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 있는 대로입니다.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래서 사회 여러 사람들은 각각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이런 속담이나 격언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에는 ---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독재주의보다는 나은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로 정하신 것은 참된 독재주의입니다.

사사기 마지막에 왕이 없는 상태는 반역을 나타내는 상태입니다. 이 이후에 태어난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했을 때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너를 거역한 것이 아니라 나를 거역했다고 하셨습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기의 마지막 4 21,22절을 보면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만약 룻기가 보아스 시대였다면 사사기가 끝나기 150년 전 즈음에 있었던 사건으로 보입니다. 시간적으로는 그러하지만 성령께서는 보아스의 자손과 사무엘의 출생의 연결을 시켰습니다. 사사기와 룻기의 마지막을 서로 합해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네 개의 장에는 대단히 심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정도의 악이 행해졌습니다. 사무엘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위해 왕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들이 요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왕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룻기 4장에 나오는 다윗이라는 왕이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가 타락한 상태의 매우 극심한 상태였습니다. 사무엘이 출생했을 때는 왕이 없는 것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제사장들도 타락해서 실패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에 관해서 사무엘상 1~6장 사이에서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장들 때문에 특별한 목적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은 민수기 27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와 엘리의 아들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반복하고 반복해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각도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횟수보다도 매일 하나님 앞에 섰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이 엘리라는 사람은 사무엘상에서 앉아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제사드리기 위해 서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두 아들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 하나는 룻기 초반에 나와 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은 이스라엘 땅을 떠나서 모압 땅으로 가버렸습니다. 자세히 보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한 결과는 하나님의 유업을 상실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오미는 두 아들과 남편을 잃고 며느리 룻과 돌아왔을 때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채로 그 두 여자는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왕이 없습니다. 제사장들은 실패한 채 있습니다. 백성들 가운데는 정말로 가난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사무엘상 1장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엘가나라는 사람의 가정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가나 가정에는 불안과 불행이 있었습니다. 그기에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 아내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지만 엘가나에게 매우 사랑 받는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그 일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한나를 통해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인도를 받아야 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신약에 있는 모임에서도 더욱 그러합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여자는 남자보다 언제나 약한 존재이겠습니까? 어느 정도 육체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약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사사기 중에 드보라라는 여자분이 있지 않았습니까? 바락이 나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드보라는 어쩔 수없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여기 저기에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여자들을 사용하십니다. 룻기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 실례 중에 하나입니다. 기근이 났을 때 모압 땅으로 가고자 하는 생각은 남편이 했을 것입니다. 모압으로 가기전 생각은 엘리멜렉답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발생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원인은 이스라엘의 타락이었습니다. 모임은 어떻습니까? 모임이 영적으로 기근을 만나면 그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의 여기저기 나오는 것을 통해서 그 원인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개개인의 영적인 타락과 모임의 타락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나오미 남편은 기근시에 모압으로 가서 무언가를 구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영적인 상태를 인정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회복을 구해야 했을 것입니다. 역시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때때로 모임에서 이런 시각을 갖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교회로 갑시다. 그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까 라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왜 영적인 기근이 일어났는지를 조사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근이 해결되도록 하나님 앞에 구해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왕이 없고 있는 제사장은 실패했습니다. 또한 가정적인 불행도 있었습니다. 한나는 우리들 자매들에게 모범적인 자매가 될 것입니다. 물론 형제자매들이 한나를 생각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특히 한나는 모임의 자매들에 대한 모본이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한나를 통해서 한가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이렇게 처참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전혀 없는 엘리는 큰 착각을 했습니다. 한나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입술을 움직이는 것은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엘리는 이 여인이 취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 속에는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1장의 상황을 보면서 2장의 한나의 감사기도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의 고민은 자기가 자녀가 없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나가 성태치 못하는 것만이 한나의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는 이스라엘 전체의 영적인 상태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위한 사람을 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한나는 브닌나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나쁜 상태이지만 불평하지 않는 한나였습니다. 또한 엘리라는 제사장은 어떠했습니까? 착각해서 취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엘리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는 어떻게 했습니까?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이 여인은 올바른 여인 같습니다. 그런 영유로 해서 야고보서 5 16절의 말씀이 한나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물론 야고보서 5 16절의 배경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배경은 사도행전 초반으로 보이는데 집단 가운데 병든 사람에 관한 처치방법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모임의 관점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구원받았지만 모임의 진리를 잘 모르는 유대교에 속해있던 사람들의 초기단계의 배경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가운데 죄로 말미암아 병이 든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기름을 바르고 그 기름을 약으로 여겨서 바르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장로들은 이 당시에 기도하면서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낫게 하기 위해서 야고보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어 흠정역은 한국어나 일본어 성경과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의인 속에서 움직이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저 기도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있는 상태를 보고 고민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무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고민하는 가운데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의 덕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은 것입니다. 한나의 기도는 마치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또 한가지를 배웁니다. 영적인 타락은 매우 심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내적으로 고민하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한나를 통해서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났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을 세워 주셨습니다. 한나가 기도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뜻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출생으로 말미암아 매우 놀라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00년 전에 영국에서 모임에 페레디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매우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매우 유익한 몇 권의 책을 만드셨습니다. 그 내용은 아주 좋지만 제목은 제가 볼 때 적당하지 않았는데 사무엘의 생애를 잘 설명한 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상시에 예비된 인물 이런 제목이었습니다. 조금 설명하자면 마치 하나님에게 비상사태가 있는데 그 비상사태를 준비하는 인물처럼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처음부터 비상사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무엘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그릇을 하나님이 쓰셨습니까? 고민하고 있는, 기도하고 있는 여인을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위해서 쓰셨습니다. 매우 놀랄만한 방법입니다.

역대상 6 22절부터 조금 일어보면 대단히 재미있는 것이 나옵니다. 역대상 6장에 의하면 사무엘은 레위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 상에는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역대상 6장에는 분명히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지파 뿐만 아니었습니다. 고라 자손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라에 대한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고라와 그 주변 사람들은 모세를 대하여 대적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기에 더해졌습니다만 땅이 입을 벌려서 그들을 삼켜버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민수기 26장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고라의 자손들이 다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라 자손에게 참으로 큰 것이었습니다. 그들도 반역자로서 죽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편을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시편에는 그 제목이 기록되어 있는데 전체가 12편 정도인데 고라 자손을 위하여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죽어야 될 고라 자손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노래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편들은 특히 고라 자손들을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깊고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그 중에 고라 자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출생했습니까? 어머니는 매우 고민하면서 기도해서 출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로 사무엘이 태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다윗과 솔로몬이 왕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매우 극심한 사사기의 상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복된 결과가 이스라엘의 영광을 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의 출생과 관련된 인물들은 어떤 인물들입니까? 먼저 엘가나라고 하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엘가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러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1장을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엘가나 가족과 관련된 경배, 예배라는 말이 몇번 나오는지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엘가나와 관련된 경배, 제사, 드린다는 말이 특징적입니다. 나쁜 상태의 시대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한 가족이 매우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출입하고 있었습니다. 아내 중에 한명인 한나는 하나님께 열심히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엘가나의 순종입니다. 엘가나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브닌나와 그 자식들에게 하나님께 경배드릴 제물의 분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태치 못하는 그 아내에게도 얼마를 주었습니다. 아들인 사무엘이 태어났을 때 소 세 마리를 실로로 가져올 정도였습니다. 기근이 생겼을 때 모압으로 가족을 데리고 갔던 엘리멜렉과는 대조적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압 외국 땅으로 가면 필요한 것을 구할지 모른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엘가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제사를 드리면서 그 가족도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엘가나라고 하는 말의 의미는 소유물(재산)입니다. 엘가나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유업을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나라는 말의 뜻은 은혜라는 뜻입니다. 또한 동정이라는 말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 속에는 없는 것이 한나 속에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엘리는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엘리는 자기 아들들이 나쁜 짓을 했을 때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나 마음 속에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한나와 관련된 특징적인 밀은 무엇이겠습니까? 역시 기도라는 말입니다. 한나는 자기가 성태치 못하는 것을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창세기에 나오는 라헬과도 상당히 다릅니다. 라헬은 자기 남편에게 내가 죽지 않도록 자식을 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아마 라헬은 자식이 없는 것을 남편 탓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자기의 문제와 자기 나라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 나갔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한나를 복주신다면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 드릴 마음도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 구했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주십시오 라고 구했습니다. 아들을 주신다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자식이 태어난 후 3년 된 해에 그 자식을 데리고 실로에 갔습니다. 젖 땔 시기이기에 약 3살쯤 되던 해였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랫동안 하나님께 구했던 그 아이를 얻었습니다. 귀여운 세 살 애기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복을 위해서 그 귀여운 아이를 되돌려드렸습니다. 2장 이후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을 드릴 때 한나는 아들이라고는 사무엘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부터 사무엘이 민족과 하나님을 위해서 드려지기를 바랬습니다. 모임에는 부모들이 많이 계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어떠한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잘 기억해 두십시오. 자기 자녀를 하나님을 위해서 제물로 드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쨌던 그런 마음이 있으면 복될 것입니다. 성공하는 장사꾼이 되는 것보다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복될 것입니다. 한나는 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한나의 본을 따라서 그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세번째 인물은 제사장 엘리였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이 엘리는 네번이나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한나에게 조금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없는 제사장이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최초로 계시를 받았을 때 그것도 엘리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반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비로소 엘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인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녀들에게 아무런 훈계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안 좋은 제사장이 아닙니까?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제 다시 한 사람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 말씀은 사무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그 실체는 하나님께서 나중에 세우시는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의 출생으로 이스라엘에 어떠한 복이 임했습니까? 첫번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사무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무엘의 보고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두번째는 사무엘로 말미암아 다윗이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큰 기쁨을 가지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다윗을 의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의 통치로 말미암아 평안과 안위를 오랫동안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로 말미암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영광스런 왕으로 되게 하셨습니다. 이 셋을 통해서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엘가나와 그 가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엘가나보다도 더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에게 많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한나보다 더 많은 긍휼을 입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그들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엘가나, 한나, 사무엘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엘가나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열심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면 대단히 복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06 1013 여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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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