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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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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전에 택하심의 복

짐 커리

에베소서 1 1~14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편지에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에베소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경륜을 세우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까지는 그 모든 것이 이 경륜을 위한 준비에 불과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이 경륜에 대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실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를 모든 구속으로 축복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에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 1~14절까지 믿는 자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것을 오늘 자세하게 상고하고자 합니다. 그 배경으로서 이 서신의 구조를 보겠습니다. 1,2,3장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5,6장에는 그리스도인의 책임 또는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하는 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로 되어 있습니다.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4 1절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2,3장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5,6장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그 부름심에 합당한 삶을 행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은 우리들의 입장과 우리들의 축복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주 안에서라는 말은 우리들의 책임을 나타냅니다. 전반은 입장이고 후반은 우리들에게 있어야 되는 바 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여기에 걸맞게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두가지를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1~3장은 소위 말하는 교리입니다. 4~6장은 의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라는 말이 1~3장에서 7번 나옵니다. 그리고 3장부터 후반에는 주 안에라는 말이 종종 나옵니다. 역시 모든 믿는 자들은 주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1~3장에는 모든 축복은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전혀 없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동참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모임에 속해있던 속해 있지 않던 관계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매일 믿는 자들의 축복을 생활가운데서 누리고 있겠습니까? 여기서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축복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행해야 되겠습니까? 에베소서 후반에 그것에 대해서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1 1~14절까지를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기록한대로 보면 우리들은 놀랠 것입니다. 왜냐하면 1~14절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긴 문장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큰 구분입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원문에는 1~14절까지가 한 문장입니다(쉼표도 없고 콤마도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축복을 많이 말하고 싶은 말을 드러내고 싶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넘치면서 이렇게 긴 문장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이렇게 기록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이 축복을 받았습니까? 물론 모든 믿는 자들입니다. 1 1절에 있는 명칭이 흥미롭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하는 축복이지만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두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또 하나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 서신 전체와 관련이 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자들로서 확인되었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늘에 있다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에베소라는 구체적인 지역에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 있음과 동시에 하늘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의 가르침 즉 교리를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그 가르침은 통해서 어떻게 행하여야 되는가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땅에 있으면서도 하늘에 있다는 것을 매일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럼 3절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되어있습니다. 3절에는 적어도 3가지 생각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3절에 표현 중에서 이상스런 면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7개의 명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허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셈의 하나님이라고도 일컬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명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명칭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허락된 명칭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다른 유가 없는 명칭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나의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께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 계신데 충실하셨기 때문에 이 축복이 우리들에게 왔습니다. 이 축복은 어떤 것입니까?

신령한 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령에 의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이 선물, 이 복은 성령으로 성령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무언가로 말미암아 무언가에 의해서 무언가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고 하면 땅에 있는 복을 추구할지 하늘에 있는 복을 추구해야 할지 선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늘에 있는 복을 성실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추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상의 재산, 명예, 교육 등은 복 받는 기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 모든 믿는 자들이 이 복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믿는 자들이 영적인 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 땅의 복을 보게 됩니다. 존번연의 천로역정이 있습니다. 성경을 중심 하면서 이것을 보면 여러분에게 많은 은혜가 될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어떤 곳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뭔가를 합니다. 자기 발 앞에 있는 무언가를 하면서도 자기 머리에 있는 면류관을 보지 못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있는 복을 보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이 땅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는 우리의 영적인 복, 즉 신령한 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을 추구하면서 여기에 걸맞게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복입니다. 이 복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령에 따라서 우리들에게 부여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활동하셨습니다. 이 복은 어떤 것 하고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신 복입니다.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늘에 있는 신령한 복, 즉 영적인 복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복, 영적인 복을 입었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조금 전에 부른 찬송처럼 이 땅에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우리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유혹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령한 복 그것뿐입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복을 이미 주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그리스도인들에 복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복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3~14절은 주어진 복이기 때문에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하늘에 가기까지 복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은 버려주시기 바랍니다. 벌써 우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복 하나하나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모든 복을 이미 받았으므로 이 복의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복들을 기록할 때 너무 축복이 되어 한 문장으로 길게 써버렸습니다. 모든 신령한 복,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14절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지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말이 11번 나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복을 받은 가치가 조금도 없는 자들입니다. 만약 가치 없다는 것을 알고 싶다면 2장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복을 위해서 엄청난 시()를 말씀하셨습니다. 한글과 일본어에는 나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원어에서는 하나님이 시를 지었다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2 10절에 그의 만드신 바라(일본어성경=하나님의 작품으로 되어 있음) 원어에는 이것을 시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영원히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 시가 되지 않습니까? 이 세상의 것과 비교할 때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2장에서 살펴보시면 어떠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이것을 말해 주셨습니까? 전혀 가치가 없는 자들을 통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을 받는 자격이 우리 안에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히 똑같은 생명에 동참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존재는 그리스도의 존재와 같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있는 대로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가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복의 첫번째는 무엇입니까? 4절을 다시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즉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이 택함이라는 말을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를 알던 모르던 여기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했습니다. 얼마나 복된 은혜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만약 자기가 죄 가운데 들어가면 이 복, 곧 구원을 잃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특히 이런 생각이 유행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내 구원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두려움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면 언제가 우리를 버리겠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만약 창세 전에 이렇게 하셨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다 아시는 것입니다.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이나 다 말입니다. 구원받는 까닭이 아니고 모든 것을 하나님은 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후에 그것이 우리들의 구원의 확신이고 구원의 확신의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택함의 기초로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정말로 믿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내일 주님이 오셔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년에 오셔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택하사라는 택함은 실제로는 어떻게 어떤 의미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택한다. 어떤 사람들은 멸망시키려고 택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멸망받도록 택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의 대화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손님이 오도록 종들을 보냈습니다. 종들이 나가서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오시오 하고 기다렸습니다. 그 예화에서는 오시오라는 초청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다 거절했습니다. 갈수 없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고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한 사람도 자의적으로 그 왕의 초청을 받아들인 사람이 없습니다. 그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잔치는 이미 준비되어버렸습니다. 초청된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습니다. 왕은 또 한 종을 보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어떤 사람들을 이 잔치에 오게 하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할 때 어떻게 전합니까? 역시 요한복음 3 16절은 우리들의 복음의 근본이고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복음을 말하면 이미 잔치가 준비됐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오시오 오시오 말합니다. 복음을 들은 한국 사람, 미국사람, 영국사람들은 대체로 듣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 복음을 듣고 들은 대로 다 온다면 이 모임 장소는 좁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청을 듣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한 사람도 오지 않습니다. 구원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처음에 종들을 보낼 때는 복수로 보냈는데 다음 보낼 때는 단수로 보내시며 이번에는 성령을 같이 보내셔서 믿는 사람 속에 함께 거하십니다. 만약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간다면 그것은 누구의 탓입니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멸망 받기 위해 택함을 받았다고 세상 창조 때부터 오늘날까지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나라에서나 전해지지 않는 나라에서나 보면 복음을 받은 다음에 사람들은 거절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잔치의 자리가 차기까지 사람들이 믿도록 성령이 역사해서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초청에 있는 우리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로서 우리를 복 주셨습니다. 1~14절까지 몇 개의 복들이 든든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2006 10 11 전주남부모임

(마지막 몇 분 동안은 분명하게 듣기가 어려워 빠트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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