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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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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손

짐 커리

한국에 들어와서 기쁩니다. 아마 오랫동안 스무번 정도 방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에는 모임이 없었습니다. 세워서 모임이 증가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믿는 자들에게 말씀드리겠는데 삼손에 대해서 교제 드리겠습니다. 모르고 영어를 말했습니다. 홍형제는 일본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일본어로 하겠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제가 길게 합니다. 일본어로 하겠습니다.

삼손은 대부분의 믿는 자에게는 수수께끼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나실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나실인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에게만 전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에게는 분명한 약점이 있었습니다. 삼손에 대해서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용사 명단에 삼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우선은 사사기 13 1~21절까지를 읽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더니

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 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지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지니라

5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죽을 날까지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내게 나타났나이다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그로라

12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지 못함을 인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사자가 이적을 행한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이에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우리가 길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잘못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전후를 알지 못하면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전후를 알기 위해서 길게 읽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사기라는 책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암흑이라는 시대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 사건들은 대체적으로 300년 동안에 이루어졌던 사건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직후부터 사무엘 사이에 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17장부터 21장까지는 특히 지독합니다. 실제로는 17장부터 21장까지가 사사기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후반만 나쁜 것이 아니라 전반에도 나쁨이 심했습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여호수아가 죽자마자 이런 심한 사건들이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실제적인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들 앞에 믿음의 길을 성실하게 간 분들이 계십니다. 그들은 많은 분들이 이미 하늘나라에 부름을 받아 가셨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믿음에 성실하셨던 그분들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의 본으로 여호수아를 따라갔다면 17장에서 21장의 사건을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암흑기를 다룬 사사기를 생각해 봅시다.

사사기는 13명의 사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곱개의 활약에 관한 하나의 수기 같은 것입니다. 일곱번 정도 동일한 것이 반복해서 발생했습니다. 이 일곱개의 수기 같은 기록을 네 개의 말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반역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버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적들의 손에 넘겼습니다. 심한 속박 가운데서 그들은 그들의 상태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회개는 세번째 말입니다. 네번째 말씀은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듣고 그들을 건져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네가지 말은 이것입니다. , 고통, 기도, 그리고 구원. 13명의 사사들을 잘 보면 이 네가지가 다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사기는 일곱 개의 수기로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부를 못 보지만 오늘저녁에 조금 보겠습니다. 1장에는 웃니엘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웃니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추구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열심히 추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웃니엘의 이야기도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신약에 의하면 우리는 하늘의 있는 모든 축복으로 복을 받은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풍성하게 축복하려고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나 사사기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것을 열심히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가 받은 수 없습니다. 우리는 웃니엘의 모본을 통해서 이것을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필요라는 것보다 누린다는 것이 더 합당하겠지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축복을 매일매일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영적인 유산이기 때문입니다. 2장은 우리의 과거 같은 것입니다. 2장은 사사기 전체를 기록 계약한 듯한 내용입니다. 나중에 사사기 2장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장을 통해서 보면 사사기 전체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장에는 에훗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에훗은 하나님의 적을 잘 알아차렸습니다. 대단히 살찐 적의 왕이었습니다. 이 모압왕인 에글론은 이스라엘을 매우 괴롭힌 왕이었습니다. 에훗은 용기를 가지고 칼을 준비하였다가 이 왕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한 왕이었습니다. 에훗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이 왕을 죽였습니다. 영적인 의미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오늘날에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대적을 잘 파악해서 그 대적을 죽이므로 몰아내야 합니다. 여기는 아주 살찐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육체의 욕망을 가르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욕망을 죽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4장에서는 드보라라는 여자가 나옵니다. 바락은 남자이지만 힘이 없어서 여자인 드보라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드보라에게 있어서 훌륭한 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 당시 여자가 합당한 그릇이 아니었겠지요. 말하자면 이 정국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단과 육과 싸울 때에 우리의 승리는 대부분이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6~8장에는 기드온이라는 또 한 사람의 사사가 나옵니다. 기드온은 분명히 연약한 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명을 금방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에 합당한 것이 그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으로 표적을 여러 번 구했습니다. 연약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사람을 사용하셔서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연약한 기드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이 원칙을 인계했습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이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틀림없이 우리들도 기드온처럼 우리들의 능력을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든 싸움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충분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기드온을 통해서도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이어서 9장부터 12장까지는 일곱 명의 사사가 나옵니다. 일곱 명의 이름을 나중에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도 그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던 듯 합니다. 이들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받은 땅을 잘 지켜냈습니다. 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사실은 4장에 나오는 것입니다마는 삼갈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연약해 보였습니다. 삼갈은 소를 치는 막대기로 적을 물리쳤습니다. 어찌보면 소를 모는 막대기로 적과 싸웠으니 어리석지요. 적과 향해서 예리한 물건을 가져가야 하는데 막대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러 간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4장의 삼갈은 다른 사사들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막대기를 들고 나아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되면 좋지 않겠습니까?

다음은 삼손입니다. 13~16장까지 삼손에 관한 기록이 주어졌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32절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4절은 특히 삼손과 관련이 되지 않겠습니까?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분명히 이것은 삼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연약한 점이 많았습니다.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았던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 기억해주십시오. 우리들은 연약하다는 말이 구실로만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매일 그리스도를 섬기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약 여러분이 추구하신다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연약하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치 않습니다. 삼손에 대해서 13~16장을 생각해 봅시다. 사사기 13장에는 삼손의 출생에 관해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4장에는 다툼으로 말미암는 대적이 나타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15장에는 삼손의 생애에 있었던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16장에서는 삼손의 죽음에 관한 많은 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조금씩 생각해 보실까요.

우선 삼손의 출생의 사건입니다. 삼손에 대해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40년간 압박을 당했었습니다. 40년 동안의 압박은 심했습니다. 삼손의 지파는 단 지파였습니다. 단 지파는 40년 동안의 압박을 거의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도 자기의 약점을 안다면 고민해야 될텐데 이 연약한 점을 무시해버리면 큰일 납니다. 단 지파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며, 다른 말로 하면 전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주 부드러운 방법으로 단 지파를 정복해 버렸습니다. 삼손이 있었던 이 시기에 약 20년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가 단 지파가 사는 곳 가까운데 있었습니다. 이때에 단 지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땅을 애써서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키려 하지 않고 도망가버렸습니다. 북쪽 지방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북쪽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가서 사람들이 얼마 없는 곳을 그들의 땅으로 점령했습니다. 삼손이 태어났을 때 단 지파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삼손의 출생이 어떠했습니까? 삼손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실인으로 태어나냐 했습니다. 성경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이 된 사람이 세 사람 있습니다. 그 중에 삼손이 한 사람이고, 사무엘과 세례요한,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는 나실인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나실인의 원칙과 조건을 알아보고 싶으면 민수기 6장을 나중에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봅니다. 그 그림들을 보면 머리카락이 짧아도 어깨까지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사진을 만든 사람은 예수님이 나실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나실인은 나실인으로 있는 동안에 그 머리를 자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정해서 나실인으로 드리는 경우에 한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실인은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어느 경우에나 관계없습니다. 이 나실인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예밖에 없습니다. 그 나실인의 실제의 실 예는 주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전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민수기 6장에 나실인의 서원을 하는 사람은 지금부터 내가 하나님께만 전념한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서 머리를 길렀습니다. 그 나실인은 자신의 친척과 가족의 시신이라도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외면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참된 나실인인 주님께는 그런 상징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자매님들의 긴머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자매님들의 머리카락을 얼마나 길러야 하는지를 알려면 고린도전서 11장을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을 보게 되면 자매님들의 머리카락이 길게 길어 나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자라나오는 자연스런 길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머리카락에 물감도 드리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한국의 습관은 제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저 같은 흰머리를 종종 감추려고 염색을 많이 합니다. 이것은 저의 의견입니다만 고린도전서 11장에는 머리에 물들이는 것이 없습니다. 자연히 자라나오는 길이를 지키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삼손이라는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나면서부터 나실인인 사람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대단히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세 사람 다 처음에는 애기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드리자면 다른 말로 말하면 육체적인 힘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나실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 세 사람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실인이 되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세 사람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삼손 시대 정복했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이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이 블레셋 사람들은 사사기에 의하면 일곱번째 대적이었습니다. 애굽 사람이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은 이 세상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도 오늘날 우리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일곱번째 대적인 블레셋도 애굽에서 태어난 듯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쿠퍼스라는 섬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0장에 의하면 그들은 애굽에서 온듯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시대에 그들이 기근을 당했을 때에 애굽은 안전한 곳인 것처럼 인식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만났을 때 애굽으로 간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이 이야기 전체를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 같은 말을 사용한 듯합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통역자도 필요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날 영적으로 세상과 닮지 않았습니까? 특히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는 말하기를 너무 심한 말을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종교인 우리와 너무 사이가 전연 좋지 않습니까? 라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뉴에이지 사상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종교 가운데 신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의 사상과 말은 그렇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은 한 분 뿐이요 그분은 창조자라고 하면 그들은 화를 냅니다. 하는 말이 그리스도교만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나님만이 하나님이 아니예요.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한 분 뿐이라는 딱딱한 생각은 버리시오.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즉 종교가 우리를 심하게 핍박하는 것보다도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심하게 핍박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함께하자라고 거짓말을 하며 접근할 때는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이런 면에서 애굽은 바로 이 세상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사기에는 가나안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길게 말하면 시간이 길어지니까 가나안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나안은 우리들을 연약하게 하는 이 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말렉 사람들이 나오는데 아말렉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모압 사람들입니다. 에훗이 죽인 왕이 모압왕 에글론인데 이것은 육의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디안 사람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유혹을 하는 곳입니다. 미디안이 삼손 시대에 좀 등장합니다만 특히 삼손 시대에는 블레셋 사람이 등장합니다. 일곱번째는 아모리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 아모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강하게 대적했던 사람들입니다. 이 일곱 대적을 통해서 우리들을 대적하는 세상의 본질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처음에 그의 문제 즉 여자와 관계를 맺습니다. 특히 삼손은 세 명의 여자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아마 삼손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일본어 성경이나 한국어 성경에 나쁘게 기록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좀 더 자세히 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여자는 딤나의 여자였습니다. 삼손은 단순하게 그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아내로서 맞이했습니다. 자기 부모가 몰랐다고 기록되었지만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계획된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치는 시기를 구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딤나와의 결혼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나쁘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이후에 여러 일이 있어서 그 딤나 여인의 부모가 그 여인을 삼손의 첫 여인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삼손이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혼 문제를 다룰 생각이 없습니다. 이혼문제는 너무 복잡한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삼손은 어떤 첩 되는 사람을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여인에 관한 용어가 드보라에게도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만약 그 말이 나쁜 말이었다면 드보라에게 사용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를 취했던 간에 삼손이 취했던 그 아내의 이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하자면 삼손은 두번째 여인에게도 나쁜 의미로 관계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드릴라인데 가사의 여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유명한 여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삼손은 단순하게 앞의 두 여인처럼 사랑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삼손은 끝내 드릴라에게 속아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삼손이 약한 면이 있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삼손이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잘 보면 그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쓰임 받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용사 가운데 삼손의 이름이 나오는 듯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단 지파는 별로 도와주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것은 삼손의 죽음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삼손의 죽음으로 무엇이 일어났습니까? 그 이후에 블레셋 사람들은 한번도 이스라엘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놀랍습니다. 물론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머지 않아 사무엘이 일어났습니다. 사무엘도 하나님에 의해서 나실인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이 왕으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잘 물리쳤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삼손의 죽음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그 힘의 원천은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힘은 어디서 나타났겠습니까? 사실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고 볼 수 있는 삼손의 죽음으로부터 진짜 힘이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동일한 시선을,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약 오늘날에도 세상을 이기려고 한다면 삼손처럼 자기의 목숨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 14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물론 삼손의 생애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갈라디아서 6 14절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2006 10 9 의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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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