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

짐 커리

저는 한국에 말씀 때문에 여러 번 방문했지만 전주에는 처음 왔습니다. 정말로 기쁨 가운데 왔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상고하고 싶습니다. 오늘 밤에 말씀을 인도받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즉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상고하고자 합니다.

이사야 42 1~7절까지입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어서 50 4~7절입니다.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이사야서는 첫 복음서라고 보통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주님은 사복음서에 나오는 것처럼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은 주님께서 왕으로 보이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종으로 나타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주 예수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이사야서는 주 예수님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책입니다. 이사야서에서 특징적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고엘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분이 고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엘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룻기에 알려져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룻기에는 한 사람의 미망인이 자기 자부와 함께 이스라엘로 가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슬프게도 이 미망인은 자기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들이 모암으로 가 있을 동안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유산을 팔은 것으로 보입니다. 매우 가난한 상태에서 자기 집으로 도달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룻기 속에 강력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부자인 것 같습니다. 그는 미망인인 나오미의 친척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족관계의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과는 어떤 사람이 판 그 재산을 되돌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히브리 말로 고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엘이라는 말은 친족을 말합니다. 유산을 속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고엘이라고 불리는 친족과는 그 가족을 위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 당시는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 바로 재판정으로 끌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족 중에 누군가가 살인을 당하면 그 중에 고엘이라고 불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고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잘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친족입니다. 그에게는 속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세번째는 복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고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혈육을 가지셨습니다. 혈육을 가지시므로 우리와 같은 친족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육체를 입으셨습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구속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대로 우리들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올 복들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들이 위험했었습니다. 사탄이 이것을 가져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이제 이것을 되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또 한가지가 있겠습니다. 보수자 즉 복수하는 입장에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있는대로 최후의 심판은 우리 주님에게 넘겨져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방금 말씀드린대로 이런 세가지 관점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천천히 이사야서를 읽으신 분들은 이 이사야서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먼저 1장부터 39장까지의 구분입니다. 1장부터 39장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아기로 태어났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1장부터 39장에서 주님께서는 우리 같은 혈육을 가질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나중에 7장과 9장을 천천히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40장부터 마지막까지 또한 두 구분이 있습니다. 40장부터 57장까지 한 구분이 있습니다. 그 안에 이사야 53장이 들어 있습니다. 53장의 예언은 무엇이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입니다. 이것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의 대가를 지불했던 것입니다. 내일 밤에 다시 53장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약 성경 중에 이사야 53장은 가장 중요한 곳 중에 한 곳일 것입니다. 53장을 천천히 읽게 되면 아무도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기 훨씬 전에 예언되셨습니다. 두번째 부분이 40장부터 57장까지입니다. 53장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서는 주 예수님이 구속 주로서 보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은 58장부터 66장까지입니다. 세번째 부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서 특히 하늘로서 오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세번째 부분은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위대한 용사로서 그려져 있습니다. 주님의 옷이 있는데 그 옷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피는 대적의 피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판주로서 나타나시는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보수자 즉 복수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미있는 말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는 이 세가지 발판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복음서는 분명히 우리들의 친족이 되신 그리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하게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33년 동안 사람들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도 맛보셨습니다. 주님의 그 육신에는 죄가 없으십니다. 주님은 그 죄의 대가로 죽으실 이유는 없으셨습니다. 주님의 육체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근친 친족이라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사도들의 활동인 사도행전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무엇이 소중히 다루어졌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가 장사 되신 것, 그리고 부활하신 것을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주로서의 역할입니다. 사도행전에 이것이 발표되었습니다. 사도들의 편지 가운데 이 내용이 설명되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활동,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은 무엇이었습니까? 물론 요한 계시록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 말을 타시고 보수자 즉 복수하시는 것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친족, 우리들의 구속주, 우리들의 보수자 즉 복수하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고엘이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나중에 룻기를 천천히 보셔서 보아스라고 하는 구속자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보아스는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중의 하나입니다. 룻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리들을 영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보아스의 긍휼을 조금도 받을 자격이 없는 룻은 보아스에 의해서 죽은 자의 모든 재산을 되돌려 받고 또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천국에 계신 우리들의 고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첫 복음서인 것만이 아니고 앞으로 오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이 어떤가를 잘 말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우선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육체를 입지 않으면 안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들의 고엘로 보내셨으니 이것은 이사야서 처음 부분에 언급하는 내용들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망의 능력의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져가려고 하는 사단의 능력도 전부 부숴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으셨습니다. 죽음은 사망을 가지고 사망을 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잃은 것들을 모두 하나님께로 되돌렸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과 만물 위에 제 일인자로 가장 높으신 분으로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골로새서 1,2장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에서 거절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날에 빌립보서 2장에 있는 것처럼 모든 무릎이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역시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김정일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나중에 주 예수님 앞에 주로 고백해야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예수님 외에 4명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우선 첫째는 이사야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립니다. 또한 엘리아김도 나의 종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다윗도 나의 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도 나의 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각각 네 부류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사야 자신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사야 20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이사야는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가 벌거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런 모습이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지 않습니까? 주님은 물론 벌거벗은 몸과 벌거벗은 발로 다니지 않았지만 십자가 위에서는 어떠했습니까? 로마 군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모두 가져가 버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그렇게 십자가 위에서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그 옷 때문에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사야가 수치를 당했습니다만 원래는 주님이 그러했습니다.

22 23절을 보게 되면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그를 견고케 하리니 그가 그 아비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요 여기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엘리아김을 마치 못으로 비유해서 단단히 박힌 못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당시 왕들은 신실하지 못한 왕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아김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단단히 박힌 못같이 보장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것도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받으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언제까지 그기에 앉아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될 때까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지않아 그 목소리가 전 우주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이런 목소리로 말이죠. 내 원수로 내 발등상 되게 하기 위해서 일어나라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마치 단단히 박힌 못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나 또는 그 외 모든 존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영광을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주님은 엘리아김보다도 훨씬 분명한 분이십니다.

37 35절에는 다윗도 나의 종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윗은 모든 대적을 발로 밟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오랫동안 대적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다윗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적에게 많은 대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번도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적이 없습니다. 시편 22편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말입니다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말했습니다. 시편 22편은 다윗의 무언가와 관련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편 22편에 있는 실제적이 상황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일곱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라고 우리가 자주 말하지 않습니까? 주님은 실제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외치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죄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주님은 인간의 손으로만 고난을 당하신 것은 아닙니다. 훨씬 더 큰 고난은 흑암 가운데 있었던 세시간이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이 목소리가 전 우주에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은 세시간 외에 무덤에 잠시 계시다가 부활하셨습니다. 현재 주님은 영원하신 능력으로 생존해 계십니다. 다윗보다 훨씬 더 훌륭한 전복자로서 머지않아 나타나실 것입니다.

네번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립니다. 41 8,9절입니다. 이스라엘은 미래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1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말로 부드러운 말, 그리고 은혜의 말씀을 말씀하셨습니다. 묶여있는 하나님께서 자에게 미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곱이여, 나의 친구여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그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들을 통해서 전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전세계가 미래에 복을 받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 세계가 더욱 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을 제외한 이 네 부류가 나의 종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종이라고 불리운 이 네 부류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신묘한 그림자 중에 하나였습니다.

40장부터 62장까지 나의 종에 대한 네 개의 노래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40장에서는 하나님의 종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장에서는 이 종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0장에서 62장까지 네 개의 노래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42 1~7절까지의 말씀 주님의 빼어나심 즉 모든 무리의 머리되심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조금전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뜻이 그러합니다. 만물 위에 맨 위에 계신 분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독생자 앞에 만물이 무릎을 꿇고 주라고 고백하지 안으면 안됩니다. 42장에 그러한 느낌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1절을 보시면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조금 후에 42장 초반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두번째 노래는 49장에 있습니다. 49 1절에서 9절까지입니다만 여기에 기록된 것은 종의 인내입니다. 천천히 보시면 제가 말씀드린 그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나님의 일을 하시면서 참으로 인내하셨습니다.

세번째 노래는 50장입니다. 50 4~9절까지. 이번에는 종의 끈질김(악착같음)입니다. 어떤 일이 주님 앞에 놓여있을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시는 모습입니다.

네번째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고난입니다. 네번째 노래는 52 13절부터 53 12절까지입니다. 놀랄 정도로 미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매우 놀라운 노래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문은 40장입니다. 40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61장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연결시켜서 42장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42장에서 말씀하기를 보라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42 1~7절까지 좀더 자세히 보고 마칩시다. 처음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종이었습니다. 또 다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는 무수한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존재는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10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중요한 말씀이라 읽겠습니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여기 나온 두루마리 책은 물론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실망한 그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주님의 죽음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약성경 전체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실로 독생자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이셨습니다. 42 2절도 보십시오. 재미있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주님은 실제로 자기 주장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때로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주님 자신을 숨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으로부터 영예를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신 목적이 하나뿐입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3절에도 재미있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종은 이 정도로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보통은 갈대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갈대는 상하지 않았다면 쓸 용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상한 갈대는 아무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어서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같은 3절에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연기를 내는 등불은 대단히 좋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을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보통 우리는 그 등불을 그만 꺼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나의 종이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어떻습니까?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이 이전에 상한 갈대였고, (우리 성경은 꺼져가는 등불인데 일본어와 다른 성경은 연기를 내뿜는 등불입니다.) 눈을 맵게하는 연기를 내뿜는 등불이 아니었습니까? 이제 그 의미를 아셨습니까? 이런 느낌이 들도록 우리는 잘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종은 이러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이러한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부드러운 분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택함을 받은 하나님이 바로 나의 종이라고 부르는 분이셨습니다. 종으로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 10절을 나중에 천천히 봐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주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멜기세덱은 왕이면서도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이 성경의 세 군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은 창세기 14장에 나오고 여기는 멜기세덱이 역사적인 인물로 나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살렘이라고 하는 도시의 왕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말기바랍니다. 멜기세덱은 실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어디서 왔는지 언제 죽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부러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멜기세덱은 언젠가 태어나서 언젠가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록 속에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보면 예수님 같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 같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5, 6, 7장에 나오는 세번째 멜기세덱의 기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시편 110편입니다. 시편 110편은 멜기세덱에 관해서 어떤 면에서는 예언적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멜기세덱은 실제적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 예로서 멜기세덱이 존재했습니다. 시편 110편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에는 그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택함을 받으시고 또한 일을 부탁 받으시고, 또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여호와의 종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50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우리성경의 난하주에 보면 제자라고 되어있음)의 혀를 내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학자(제자)라고 하는 것은 배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은대로 행하셨습니다.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주님은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것은 마태복음 11 28절의 말씀입니다. 50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이것은 거저 말을 듣는 귀가 아닙니다. 귀를 열으셨으므로하는 이 말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다들 기억하고 계시지요. 어떤 종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가난해서 있던 것들을 다 팔고 어떤 사람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희년이 되면 이 종들은 전부 다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풀려나는 것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풀려나는 것입니다. 이 희년은 우리의 구원과 비슷합니다. 이 종이 종으로 살고 있는 동안에 주인이 아내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내는 출생으로 말미암는 종이었습니다. 그때 자녀가 태어납니다. 그 태어난 자녀도 출생으로부터 종이 되는 것입니다. 희년에 종으로 팔렸던 사람들은 돌아오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종 되었던 아내와 태어날 때부터 종 된 자녀는 해방되지 못합니다. 남편은 혼자 종에서 해방되어 풀려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종인 남편은 이렇게 합니다. 그 종은 말합니다. 내가 섬기는 주인을 내가 사랑합니다. 나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한다고 그 종은 말합니다. 절대로 나 혼자 자유롭게 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이 종은 자기 아내와 자녀와 영원히 종으로 있기 위해서 문설주로 갑니다. 주인은 송곳을 가지고 그 종의 귀를 뚫습니다. 그 종의 귀에 난 상처는 그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난 상처의 표식입니다. 이사야 50장의 이 말씀은 바로 그러한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태어나셔서 홀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종이 나의 아내와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 종이 문설주에 가서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은 것 이상으로 주님은 십자가까지 가셨던 것입니다. 50 5절에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하는 말은 바로 그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6절은 여기에 이어집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분명한 십자가에 관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렸습니다. 6절 후반을 보십시오.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정도로 하나님의 종이라 불리우는 분이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진짜 종의 반응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지요?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종들이 되셨습니다. 우리들의 종으로서의 모본은 틀림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 자신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7절에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은 큰 목소리로 아버지 하나님께 외치셨습니다. 뜻이라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망을 이기시고 능력으로 부활하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42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즉 종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 유명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절 초반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셨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긴 시간 말씀을 잘 들어주신 것을 고맙습니다.

2006 10 10 전주남부모임

 

 

'주옥같은 말씀들 > 짐 커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과 데살로니가인들의 믿음  (0) 2008.05.29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  (0) 2008.05.28
그리스도께서 오심  (0) 2008.05.27
사무엘  (0) 2008.05.26
히스기야  (0) 2008.05.24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0) 2008.05.23
창세 전에 택하심의 복  (0) 2008.05.22
삼손  (0) 2008.05.19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