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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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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집에서의 기도와 생활

짐 커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기쁘게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말씀에 이어서 디모데전서를 함께 살펴보실까요? 2장 전체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을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어제 말씀드린대로 디모데전서는 세 편지 중에 하나입니다. 이 서신들은 바울이 기록한 편지 중에 맨 나중에 기록된 편지들이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기록한 편지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 생애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그는 무언가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간증을 계속하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개척전도에 상당히 관심이 있지요. 광주에서도 외국으로 전도를 나갔다면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하겠지요. 늘 새로운 일이 있으면 우리들은 관심을 같습니다. 그만큼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보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광주에서 멀리 가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광주 안에서 전도를 계속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개척전도만큼 중요합니다. 이것이 디모데전후서의 목적입니다.

이 당시 여러 도시에서는 하나님의 교회 즉 모임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간증이 세상을 떠나간 후에도 간증이 계속되도록 이 편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디모데전후서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저께 디모데후서 4장을 잠시 보았습니다.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부탁한 아름다운 것은 그리스도인 들이 믿어야 할 믿음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디모데전서 3 16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내일 밤에 이것을 좀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2장은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디모데전서 1장은 본대로 디모데전서에서는 다섯개의 명령이 있었지요. 이 다섯개의 명령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행동 즉 생활이 두드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1 5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명령의 목적 즉 경계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는데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청결한 마음으로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나는 믿음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명령의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동일하게 1 18절에 이 명령은 디모데에게 한 명령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명령되었습니다. 우리도 지상에 있는 동안에 선한 싸움에 참가하고 싶지요. 큰 승리자인 주님께 속해 있다면 우리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에 매일 싸움을 하고 또한 이겨야 될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이미 승리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감스럽게도 잘못 가르칩니다. 어떤 곳에는 이러한 생각이 있습니다. 주님께 열심히 순종하는 사람들이 승리자이다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연약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승리자가 아니다. 승리자를 위한 특별한 보상이 있다. 그 보상은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2,3장의 교회에 대한 편지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 교회 승리자들에게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5장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씀드린 이 내용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승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믿음이 승리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들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승리자이십니다. 우리들은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주님의 승리에 동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승리의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물론 우리들은 승리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복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에베소서 1장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모든 믿는 자의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동참되어 있기 때문에 승리자입니다. 실망해서 뒷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승리자이기 때문에 승리자로서 살아가십시다. 디모데서의 흐름과 조금 벗어났지만 이것은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사역으로서 종의 입장에서 풀려났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구속하신 것은 다시 한번 종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종에서 건져내시고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종이었던 우리는 이전 주인을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새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해야 될 것입니다. 노예 시장의 종에서 풀려날 때 이전 주인이 얼굴을 내밀지 모릅니다. 옛날 주인이 전처럼 이 물건을 들고 가거라하고 명령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당신이 들고 가시오 이렇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의 주인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주인인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든 승리의 결과는 우리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1 19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 믿음에서 떠나버렸습니다. 20절에 보면 특히 두 사람,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을 자기의 것이 아니라고 떨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두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사탄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린도전서 5장에 보면 지역교회도 이런 힘이 있습니다. 지역교회에서 출교하는 것은 사탄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도 엄숙한 것이지요. 실제로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것을 인정하는 곳입니다. 모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순종해서 모여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로와 집사와 모든 성도가 같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 안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바깥은 어떻습니까? 교회바깥인 광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합니까? 광주 시민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이시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구를 순종합니까? 자기들 마음 속에 역사하고 있는 죄의 원칙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입니다. 나중에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탄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지배 밑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외인과 교중 사람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모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해 갑니다. 교회 바깥 사람들은 사탄의 영에 지배되어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해 있으면서 주님의 보호를 또한 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주님의 지킴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믿는 사람이 출교된다면 사탄이 지배하는 곳에 가서 그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이지만 그곳에는 주님의 지키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미의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그런 믿는 자도 지키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출교된 것은 사탄이 지배하는 쪽으로 가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은 그러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자기 스스로가 내어쫓았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말 믿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을 모욕했기 때문에 주님을 공격한 저편에 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있을 수 잇는 것들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권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바울이 권한 것은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이것을 하나하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기의 원함을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바울은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인 경륜은 2 4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모든 사람은 구원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바램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열매 맺는다는 것입니다. 모임 안팎에서 열매맺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해야 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번째는 왜 여자가 남자를 순종해야 되는 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조금씩 생각을 해 보실까요.

우선 첫째로 바울의 원함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버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되 특히 임금들과 높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한국의 국무총리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또한 내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까? 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까요? 2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그들이 구원받기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믿고 구원받으면 좋지요.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씨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틀림없이 정말로 믿는 사람입니다. 때때로 그는 메스미디어를 통해서 조롱을 당했습니다. 그가 진지하게 말할 때 신문들은 그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신문이 말하기를 정치가는 저렇게 자기의 이야기를 바로 말하지 않는다고 놀렸습니다. 그들은 지미 카터가 본심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글을 썼습니다. 그 언론이 지미 카터가 참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본심이라면 사고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평을 했습니다. 카터는 가능하면 그리스도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던지 그가 가기만 하면 언론으로부터 굉장히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지미 카터가 지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번째 선거에서는 그를 뽑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아마 한국도 그렇겠지요? 정치세계는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높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무시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기의 모임에 모이게 하고 복음을 전할 자유만 주면 그 사람들에게는 그만인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박해가 계속된다면 정직한 삶을 못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는 경건한 매일의 삶을 못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때로는 좋지 못한 일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도록 해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특별하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중재의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1절 그대로입니다. 도고는 특별히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자를 위해서도 우리는 도공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이나 자기 친척이 믿지 않는다면 도고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일반적인 기도도, 일반적인 간구도 해야 되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야 할 것은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까? 있으면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 우리들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로부터 부탁 받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국과 일본 이런 나라에서는 매일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회교 국가들은 아주 시끄럽게 되어있습니다. 잘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회교국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한군데도 없습니다. 저는 이집트에 간 적이 잇습니다. 말레이지아에 간 적도 있습니다. 이집트와 말레이지아는 회교국가 가운데 극단적이지 않다고 알려진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말레이지아에 산다면 이웃에 전도지 한 장만 전해도 여러분은 감옥에 갈 것입니다. 어떤 모임에 성도들이 말레이지아에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도 극단적인 나라가 아니라고 말을 하지만 어떤 장로형제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매일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 나라에 형제 자매들이 그러한 상태에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한국도 그렇습니까? 일본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매일 안정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모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집트에도 이렇게 모임을 모이기는 합니다. 카이로에 있는 모임의 집회는 이 정도 됩니다. 밤이 되면 이 정도의 인원이 모입니다. 그 가운데서 회교로부터 회심되어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소위 말하는 기독교계 가운데서 회개하고 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의 모임 장소에서 모일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만약 회교신자가 회심하게 되면 그 사람은 국가를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밀리에 성도들이 그 사람을 외국으로 가도록 주선해 줍니다. 왜냐하면 다른 가족이 그 사람을 발견하면 친족이라도 그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생활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가난한 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해야 하죠.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원했습니다.

다음은 바울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께 서울에서 말씀을 보았던 비유 중의 하나입니다. 잔치가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 초대 받은 사람들이 가지 않았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주인이 그러면 종을 보내어 다른 사람들을 청해 오라고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안 믿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5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유대인은 구원받기를 바라고 이방인은 구원받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십니다. 이것은 곧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사람이시기 때문에 죽음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6절의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충분했습니다. 세상처음부터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불하신 속전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 충분합니다. 만약 구원받지 않는 사람은 이것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 속전을 지불했습니다. 이것은 기약이 이르면 증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약이 이른다는 것은 언제입니까? 물론 지금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죠. 구원의 날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속전에 대해서 증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7절에 보면 바울은 이 복음을 맡았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며 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8절부터 세번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열매입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를 한다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공적인 기도는 형제님들의 책임입니다. 8절에 보면 각처에서 남자들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 여기 남자라는 말은 틀림없이 남자에 한정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각처 모든 곳에서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모였을 때 공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남자가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단순하게 지키기 위해서 오늘 저녁에도 자매들은 목소리를 내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먼저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남자들이여 각처에서 기도할 때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시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는 것은 거룩한 생활 깨끗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기도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어떤 형제가 장사판에서 나쁜 짓을 하면서 장사하는데 모임에 와서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문자 그대로 손을 들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과 카나다, 일본, 한국에서는 문자 그대로 손을 들고 기도를 하지 않지요? 인도에서는 늘 그렇지는 않지만 참으로 손을 들고 기도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그것이 나쁘지는 않겠지요. 바울이 손을 들고 기도하라는 원 의미는 손을 들기보다도 순결한 삶 가운데서 기도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순결하지 않은 사람이 기도하면 형제자매가 그 기도에 아멘 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선적인 기도라고 여겨질 것입니다. 진지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모임에 서서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주님 앞에서 매일 진지한 삶을 산다면 그때는 그 사람의 기도에 큰 소리로 아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다음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 분노는 형제자매들에 대한 감정입니다. 만약 형제나 자매에게 분노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기도할 때에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다툰다는 것(doubting, 의혹을 품고 있는=KJV)은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어쨌던 이런 것들이 생활 가운데 있으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없지요. 형제자매들이 일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바울은 이것을 원했습니다. 이러한 열매를 기대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9절에서는 이와 같이 하면서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이와 같이 라고 말한 것은 남자들이 기도한 것 같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이 라고 말한 것은 남자들에게 원하는 것처럼 여자들에게도 동일한 것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여자들에게는 염치와 정절이라는 열매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단장하되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밤에는 자매님들보고 그것은 안됩니다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들이 그렇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일본에 자매님들도 대체적으로 그렇습니다. 형제님들이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매님들이 그대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순종하는 자매님들을 칭찬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매님들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어떤 자매님들은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전혀 머리를 땋으면 안됩니까?라고 묻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자매님들의 머리 길이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긴머리. 이것은 가장 단순한 대답입니다. 자매들은 자기 머리카락을 자를 리가 없습니다. 자연스런 머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긴머리는 자기에게 영광이 된다고 고린도전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긴머리를 간수하고 거두기 위해서 땋은 머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신부가 머리에 얹는 카츠다라는 만든 머리가 있습니다. 신부가 많이 꾸며서 머리에 얹는 것입니다. 거기는 금이나 장식들을 비녀처럼 꽂습니다. 아마 1세기에도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의미입니다. 머리가 긴 가운데 그 머리를 간수하기 위해서 땋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머리에 장식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여자답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10절에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여자는 경건한 삶을 행해야 합니다. 열매라고 그랬는데 열매보다도 몸 장식이 맞겠습니다. 여자가 품행을 나타낼 때는 외형보다도 선행으로 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자가 선행으로 행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염치와 정절로 단장한 아름다움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11절에서는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큰 일이지 않습니까? 21세기에 와서 여자보고 종용히 하라고 하면 대단히 낡은 생각이 아닌가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자매들의 인권은 권리는 어떻게 되느냐? 세상 사람들은 여자들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쁘다고 말합니다. 자매님들은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되는 것이죠? 만약에 이 의미를 모른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로 고통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제가 있는 모임에서 방문하는 사람에게 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 모임에서 가장 훌륭한 형제님은 모리다 자매님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있는 모임에서 성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 모리다 자매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매님은 15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걸을 수가 없습니다. 손도 뒤틀렸습니다. 16,7세 때 라디오를 듣고 구원받았습니다. 친구로부터 모임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침례 받고 모임에 더해진 지가 40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제가 전도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를 도우러 왔습니다. 35년 동안 전도출판사의 모든 책은 그 자매님의 펜으로 엮어졌습니다. 어느 책을 번역하던 그 자매님이 편집했습니다. 제가 일본어로 쓰면 그 자매님이 편집을 합니다. 이 자매님은 성경 가르침에 매우 구체적입니다. 어떤 형제님이 와서 제가 있는 모임에 교제를 하면 성경하고 다른 것을 말하면 그 자매님이 바로 와서 형제님 저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임에서 40년 동안 한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모리다 자매님은 하나님이 정한 여자의 위치를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11,12절 그대로이죠. 여자는 종용히 배우라.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종용히 배우라. 고통스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음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13절을 보면 에덴동산의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와보다도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습니다. 에덴에서 속은 것은 아담이 아니었습니다. 이와가 꾀임에 빠져서 죄를 범했습니다. 이와가 꾀임에 빠졌지만 아담은 이와 때문에 알고도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죄는 이와의 죄였습니다. 이와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열매를 만지면 죽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죽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해버렸습니다. 그것을 따먹었을 때 그날부터 죽기 시작했습니다. 사탄은 이와야 네가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 이것은 너를 위해서 큰 덕이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너에게 전혀 덕세움을 높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너의 덕을 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고약한 분이다. 먹으라 괜찮다. 여자는 속았습니다. 그 거짓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든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 우주의 지배자로 아담을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대리인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와를 배필로 지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지배해야 했습니다. 이 지배인의 배필로서 하나님이 하와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가 되었지요. 양쪽은 각각의 익명이 있었습니다. 대리인과 돕는 배필. 속은 하와는 어떻습니까? 자기 남편 대신에 자기가 대리인 역할을 했습니다.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열매를 따먹고 또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순서인 질서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우주전체는 그런 모양이 되었습니다. 불신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질서가 전혀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질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질서가 다시 한번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고 하나님의 질서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올바르게 지키겠다는 표시는 무엇입니까? 자매님들의 긴머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너울인 것입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머리를 짧게 하는 것입니다. 너울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양쪽이 다 남자건 여자건 하나님께 임명을 받았습니다. 에덴의 질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다시 한번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 질서를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이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1장의 가르침입니다. 천사들이 죄를 범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즉시 심판으로 넘겨졌습니다. 죄를 범한 천사들은 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도 그들은 구원을 받지 않습니다. 죄를 범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두번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천사들도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보다 신분이 낮고 죽을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그 구원받은 결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단순하게 순종한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다른 곳에 가고 싶습니까? 그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있게 하신 곳이구나하고 아실 것입니다.

마지막 15절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자매님들 여자를 위해서 복된 곳입니다. 여자들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어떤 교회 선생들은 이 여자가 해산한다는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가 조심스럽게 생활하면 진짜 해산할 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자매들은 정절가운데 있으면서도 해산할 때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는 경건한 여자가 그 해산에서 보호를 받은 것이 아니죠? 그럼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도 또한 전후 관계를 통해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부터 나온 말씀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특별한 것을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결혼한 다음에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해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아내로서 또한 어머니로서 집안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5 14절을 보시면 바울은 젊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이것은 2 15절의 말씀과 꼭 같은 것입니다. 21세기 중반부터 많은 여자들이 일터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은 그것이 옳은지 어떤지는 다르게 보더라도 많은 어머니들이 일하러 나갑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처럼 일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곤란하다는 사고방식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보통은 어머니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그 집을 다스려야 합니다. 남자는 그 집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집의 사랑과 힘의 중심이며 근본입니다. 형제님들이여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집의 머리라고 해서 독재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형제들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이죠. 그러나 자매님들의 경우 중국어 한자를 아십니까? 그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자는 무슨 글자입니까? 위에 갓머리 변이 지붕을 말하고 밑에는 여자가 들어 있습니다. 결국 여자가 있을 곳은 집안입니다. 일본어에서는 집가()에 안내()(카나이), 집안에라는 뜻으로 아내라는 말을 씁니다. 그러면 자녀를 낳습니다. 그리고 남편에 의해서 그 집을 다스립니다. 여기 기록되어 있는 대로 그 여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 구원이 영혼의 구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건한 여자입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얻습니까? 하와의 잘못을 거듭하지 않도록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여자는 하와처럼 남편보다 앞서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배필이죠. 관리인도 아니고 남편의 대리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수행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것입니다. 지키시기 바랍니다. 여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정한 것을 받았습니다. 집안 전체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음으로 말미암아 다스리는 일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하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보호를 받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매우 단순하지요. 남자건 여자건 하나님의 집에 잇는 자로서 이렇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내일 밤은 3장에 나오는 장로와 집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십시다. 고맙습니다.

2002 1 23 광주북부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