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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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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 25. 18:48 바울과의 항해

영생(永生)

영적인 의미에서 바울과 함께 항해했던 사람들 중에 청년 전도자였던 디모데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생을 취하라(딤전 6:12)고 편지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디모데를 권면했던 이 말씀은 동일하게 우리들을 위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영생을 취해야 한다면 이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생의 사도라 불려 마땅할 사도 요한은 영생에 관한 진리를 잘 나타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실을 통해 영생을 입증(立證)한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세상에 계신 동안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동일하신 생명이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서에서든 거듭거듭 이 영원한 생명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분깃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영원히 멸망치 않음을 우리에게 확신케 하십니다( 10:28-30). 실로 그 생명이 영원하지 않거나 단순히 시험적이고 불확실한 것일 수는 없습니다. 이에 관하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 어떤 의심이 있거나 난해하게 여겨진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진실하고 헌신적인 봉사는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내가 마지막 날에 잃어버림을 당할지도 모르는 불안이 있다거나 나의 충성에 따라 나의 구원이 지속된다고 생각한다면 진실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순수하게 충성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은 늘 자신에 관한 문제에 허덕이게 되며 자신의 영적 안전을 도모하고자 이기적인 동기에서 봉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영생이 성경 어느 곳에서든지 가르쳐지고 있음으로 보아 반박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영원한 생명이란 끝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모든 신자가 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생명의 시작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생명은 그가 하나님께로 나는 순간에 받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혈통을 따라 이미 영적으로는 상실된 육체의 생명이 이어져 갑니다. 새로운 출생(신생 또는 중생)에 따라 하나님의 가족으로 더해지며 영원하고 빼앗을 수 없으며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생명의 소유자가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3).

그러나 현재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가르침에 덧붙여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생명을 푯대로써, 또는 실제적인 경험으로써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남다른 점입니다. 그러기에 이 진리에 관해 바울의 글만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상고했어야 할 진리의 전모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지만, 이제 염려할 필요는 없다(그렇지는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요한의 진리는 우선적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에게 부탁하신 진리가 따르게 됩니다. 영생은 지금 우리의 것이며 또한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니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1:2).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안에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 속에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되는 날을 간절히 바라면서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 영생을 누리게 될 실제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는 썩어져 가는 몸에서 영생을 얻으며 장망성에서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때에야, 그는 영생과 함께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이며 진동할 수 없는 도성(기초가 있는 도성)에서 활동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될 것입니다.

간단한 실례를 들어봅시다. 어린아이가 출생의 순간부터 자연적인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통해 실로 그의 스스로 택한 정신적 생활이 가능하게 됩니다. 신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생하는 순간부터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영생의 소망 속에서 살아있으며 마지막으로 지상에서의 연단(훈련)이 끝나게 되고 영적 교육이 완성된 후에 영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25:46).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할 때 세 번이나 영생을 취하라고 제의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시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이 부분의 말씀은 새로운 사실에 대해 분명하게 비춰줍니다. 우리가 이미 영적으로 영생을 얻었지만 아직도 이런 상태에 이르러 있지 못합니다.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은 아직도 미래의 상태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전에 해오던 일에서 이 생명적인 일을 대단히 다르게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영생이란 하나님과 함께 교제 가운데 있는 생명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 생명이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소멸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생명입니다. 죽음의 상태에서 홀로 영원한 생명을 밝히 드러내 주신 그리스도처럼 행하는 것이 참 생명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하여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이 생을 가지고 있으며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유창하게 말하지만 이 참된 생명을 시험해 볼 때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 서글픈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내가 영생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생활에서 나타내게 마련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갈망했던 것이 바로 이 참된 생명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이 참된 생명을 보기 원했습니다. 바울의 전 생애의 목적이 이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3:7, 8).

이것은 진토와 같은 몸인 질그릇에 영원한 생명이 나타나는 길이며 장차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에 합당하게 사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전도출판사 출판 바울과의 항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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