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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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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역사적인 1948년 5월 14일 팔레스타인에서 소수의 유대인 무리들이 말다툼을 벌였다. 그날 오후에 새 이스라엘이 태어나고 주권 선언이 전 세계에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선언문에 문제가 있었다. 이 유대인들 중 일부는 무신론자였다. 그들은 문서에 하나님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면 서명을 거부할 것이다. 반면에 그들 중 일부는 독실한 종교적 정통파 사람들이었고, 그러한 역사적인 종이에 하나님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으면 서명을 거부할 것이라고 했다.

 

선언문은 오후 4시에 읽혀질 예정이었다. 오후 2시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논쟁에 잠겨있었다. 그런 다음 타협이 왔다. 새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과 주권에 대한 엄숙한 선언, 성명서에 서명한 것이 “이스라엘의 반석을 신뢰함”이라는 선언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룹의 각 개인은 “이스라엘의 반석”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선택했다. 그들 중 정통파 사람들은 그것을 신성한 칭호로 올바르게 보았다. 무신론자들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군사력과 국가적 결단력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한 딜레마가 그런 곳에서 그러한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렇게 타협된 해결책이 필요했어야 했다는 것은 비극적이다.

시험되고 분석된 기초석에 대한 이사야 28:16의 약속은 신자에게 매우 소중하다. 미래의 남은 자들에게도 소중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 약속은 처음에 의도된 것이었다. 믿지 않는 나라가 죽음과 언약을 맺을 때인 적그리스도 시대에 그 불경한 동맹이 피난처로 신뢰받으며 무너질 때에; 그리고 심판의 물이 범람하며 거짓말의 피난처를 쓸어버릴 때에; 그날에 여호와께서는 남은 백성을 위한 확실한 터전을 시온에 마련하실 것이다. 심판 중에 구원이 있을 것이다. 노아의 대홍수 때에 방주가 물 위로 안전하게 들어올려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자는 이미 그 동일한 반석에서 쉬고 있다. 모임은 지역적이든(고전 3:9-11, 지역교회) 가장 넓은 형태이든(마 16:18, 몸된교회)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세워졌으며 또한 개인적인 신자(마 7:24)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찍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확실한 기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우리가 장차 민족에게 아직 비준되지 않은 언약의 모든 특권과 복을 미리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반석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언급된 성경, 마태복음 16장과 고린도전서 3장에서 건축자들이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태복음 16장(모임에 대한 처음 언급인 에클레시아 )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건축자이시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개인적으로 새로운 모임을 세우실 굳건한 반석이시다. 그분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 위에 그리고 그분에 의해 이 안에 지어진 모든 돌은 살아있는 돌이다(벧전 2:5). 열등한 재료는 없다. 건물은 무너질 수 없다. 사탄 왕국의 모든 세력이 그것에 대항해도 승리할 수도 없다. 그것은 견디어야 한다. 그것은 나누거나 파괴할 수도 없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신비롭고 영적이며 영원하며 난공불락이고 흔들리지 않으며 무적이며 파괴할 수 없다. 그것은 선택되고 보배로운 주요 모퉁이 돌인 건축자 자신의 특성을 취한다.

 

지역모임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지만 구별되어야 한다. 여기에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건축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의 건축은 우리의 책임이며, 인간에게 맡겨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실패가 있다. 금과 은과 보석이 쌓이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다. 이것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 건축자들이 부주의하게 될 때 거의 확실하게 나무와 풀과 짚이 있다.

 

불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지만 지금이라도 부지런하자. 지역 증거의 질을 높이자. 우리가 그 일을 방심하지 말고 지키자. 현대 복음전도의 의심스러운 방법들; 음악적 혁신의 가벼운 매력; 지성주의의 육체적 호소; 이것들은 조잡한 솜씨다. 이는 건물의 건전성에 좋지 않은 징조다. 기독교 교파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느슨한 태도에 주의하자. 모임에 대한 이따금씩 그리고 일상적인 영접이 증가하면서 모임의 고유한 분리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명백한 실패; 그리고 “봉사활동”, “훈련센터”, “조직”, “협회”로 향하는 경향이 모임에서 “추가”되고 있다. 이것들은 그분의 이름에 대한 지역 증거를 견고하고 신뢰할 수 있게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의 무거움을 느끼면서 건축자로서의 우리의 존엄성에 진실하자. 그분의 말씀에 의해 승인된 그분 자신의 토대의 특성에 따라 건축하자. 어리석은 말을 버리고, 우리의 여러 지역에서 그 모본에 따라 그분의 기쁨과 영광을 위한 건물을 세우도록 하자. “저마다 어떻게 그 위에 세울지 주의할지니라.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전 3:10-11).

 

반석에는 몇 가지 다른 흥미로운 측면들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건설하는 확실한 반석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또한 우리가 폭풍을 피하는 은신처 같은 보호 반석이다(사 32:2). 그분은 우리가 마시는 반석(고전 10:4); 그리고 그분은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져 멸망할 걸림돌이시다(벧전 2:8). 언젠가 그분은 이방인 세상 권력의 최종 형태를 분쇄하고 자비를 구하기를 거부하는 교만한 죄인들을 가루로 만드는 돌이 되실 것이다(단 2:34), 우리는 이스라엘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지는 복을 받는다(마 21:44)

 

가난한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함께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시 19:14, J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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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