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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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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이사야 53장과 63장의 대조는 시편 22편과 24편의 대조와 같고, 요한복음 19장과 계시록 19장의 대조와 같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의 대조이다.

 

이사야 63장은 간단하지만 심오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주님이 여기 계셨을 때 그들이 물었던 질문이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그들이 물을 질문이다. 그분이 “나귀 새끼 곧 어린 수나귀 위에 앉으시느니라”(마 21:5). 겸손하게 성 안에 들어오자 그들은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다(마 21:10). 그분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면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반복될 것이다(시 24:8-10). 어제의 문제이고 내일의 문제다. 여기 63장에서 이사야는 메시아의 승리와 옹호의 날을 예견하고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외친다.

 

정복자는 에돔과 보스라에서 돌아오고 있다. 다른 병행 구절에서는 므깃도와 감람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모순은 없다. 남쪽의 에돔에서; 상대적인 북쪽의 므깃도에서; 예루살렘 중심 근처에 있는 감람산을 통해 메시아는 승리로 지날 것이다. 이것은 계 14:20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피가 나와 말 굴레에까지 닿았으며 천육백 스타디온이나 퍼졌더라”. 천육백 스타디온! 백육십 마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길이! 감람산에서 므깃도까지 그리고 다시 에돔으로 돌아서 그분은 승리를 거머쥐고 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현재 장에서 그분은 에돔에서 돌아오신다.

 

“물들인 옷을 입고… 이자는 누구냐?” 우리는 많은 사랑을 받는 찬송가(주님이 입으신 그 옷은-역자주)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 감정은 감동적으로 아름답고 언어는 탁월하다! 그러나 이사야 63장에 대한 해석은 풍자다. 이 옷을 더럽히는 피는 십자가의 피가 아니다. 이것은 아마겟돈과 에돔의 피다. 그것은 그분 자신의 피가 아니라 그분의 원수들의 피다. 땅은 포도주 틀이 되었다. 심판은 수확이다. 포도가 포도주 틀에서 짓밟히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영광 가운데 돌아오실 때 적을 밟으실 것이다. 포도주 틀에서 포도를 밟는 사람들의 옷이 밟힌 포도의 즙으로 얼룩진 것처럼 그분의 옷에도 그분께 짓밟힌 적들의 피로 물들 것이다.

 

그분의 옷은 영광스럽다. 그분의 모든 옷은 항상 몰약 냄새가 난다. 그분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갓난 아기 때는 강보를 두르고, 그분의 사역 동안 이음새 없는 옷을; 그 마지막 저녁 다락방에서는 종의 앞치마를 두르고; 그 마지막 날 아침에는 조롱의 붉은 옷을 입고, 무덤에는 아마포 옷을. 이제 “왕 중의 왕과 만주의 주”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이 새겨진 피로 물든 옷이 있다. 그분의 의복은 참으로 영광스럽다.

 

그분은 자신의 능력의 위대함 중에 나아가신다. 그들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분을 어떤 명백한 연약함으로 보았는가. 목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나무에 못 박힌 갈릴리 사람! 불명예스러운 그날 이후로 세상은 그분을 보지 못했다. 그분은 하늘에 숨겨져 있다. 왕이 거절되었다. 망명 중인 주권자; 그러나 이제 그분은 권능으로 돌아오신다. 그분의 거절당함은 냉담하고 잔인했다. 그분의 승리는 의롭다. 이것은 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분은 “구원하기에 능하시다”. 그들은 그분에게 외쳤다 “너와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그분은 그들 누군가 말했듯이 “그는 다른 사람을 구했지만 자신은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분은 남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 그분은 그 땅을 해방시키고 참으로 임마누엘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오신다(사 8:8).

 

승리자의 “홀로됨”에 주목하라.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노라.” 그분은 이 땅에 있을 때 얼마나 자주 “혼자”였는지. 그분은 기도에서 “혼자”였다(마 14:23). 그분은 마가복음 4:10 섬김에서도 “혼자”였다. 그분의 아들 신분의 유일함에서도 그분은 “혼자”였다(눅 9:18,36). 그리고 고통 속에서 “혼자”였다(요 16:32). 여기 이사야 63장에서 그분은 다시 “혼자”이시다. 홀로 그분은 포도주 틀을 밟으신다. 홀로 그분은 의로운 분노로 대적을 짓밟으신다. 홀로 그분은 포위당한 백성의 구원을 이루신다.

 

복수의 날이 왔다. 그분의 사역이 시작될 때 우리 주님은 이사야 61장을 읽을 때 나사렛에서 책을 닫으셨을 때 얼마나 자비롭게도 복수의 날을 발표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소개하는 것은 받아 들일만한 해였다. 은혜의 날이었다. 적절하게 그분은 책을 닫았다. 그러나 63장에서는 모두 다르다. 이제 복수의 날이다.

 

민족들은 현재 그날을 준비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상업적으로 세상은 죄의 사람의 출현과 환난의 날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징후를 찾지 않지만 징후가 있으면 그것을 볼 수 있다. 도덕적으로 조건은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킨다. 정치적으로 그림자가 크다. 이스라엘과 중동의 움직임이 있는 유럽 왕국들은 모두 종말을 가리키고 있다. 종교적으로 깊고 어두운 그림자도 똑같이 크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카리스마적 혼란은 그날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쉽게 믿게 만든다. 상업적으로도 합병, 거대 기업, 비즈니스 세계의 독점은 다가올 독재에 대한 적절한 준비다. 사람은 예수님이 거절한 것을 마귀에게서 받아들일 것이다(마 4:8-9; 계 13:2하). 이 세상의 왕국은 사탄의 영감을 받은 초인간이 지배할 것이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에게 무릎을 꿇고 그의 표를 받을 것이다. 많은 신자들이 순교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덫에 걸려서 멸망할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구원자가 올 것이다.

 

아마겟돈은 군대가 집결할 장소로 보인다. 짐승의 군대와 북부 동맹의 군대; 동방의 왕들과 남방의 왕들이 다 모였다. 갑자기, 영광스럽게, 인자의 오심의 징조가 나타난다. 서로의 적들은 어린 양에 대한 공통의 적으로 동맹이 된다. 주님이 오신다! 그분은 그들 모두를 진압한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직접 잡혀 산채로 불못에 던져진다.

 

얼마나 큰 승리인가! 얼마나 영광인가! 어떠한 승리인가! 이사야는 외친다 “물들인 옷을 입고… 의복이 영화롭고… 자신의 큰 능력으로 다니는…구원할 능력이 있는 이 사람은 누구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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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