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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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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피터슨

갈보리. 이 단어는 성경에서 단 한 번 발견되며(주 – “갈보리”는 그리스어 골고다 (“해골의 장소”)의 후기 라틴어 칼바리아 (“해골”) 번역에서 유래) 우리 중 대부분은 실제 유적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묵상에서 세상에서 가장 자주 사용되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구주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갈보리라 하는 곳”(눅 23:33)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날을 묘사한 복음서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자원해서 갈보리까지 가겠다는 그분의 뜻은 다시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갈보리와 거기에 임박한 죽음이 그분의 마음에 끊임없이 있었다는 것은 그분이 하신 많은 예언들에서 분명합니다. 그 중 일부는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고, 일부는 그림으로, 그리고 한 편은 가슴 아픈 비유 형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예언들

우리 구주께서는 그분의 죽음의 장소를 분명히 예언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그를 정죄하여 죽게 하고”(마 20:18). 그분은 예루살렘이 그분의 죽음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곳은 수십 년 전에 그분의 부모가 그분을 합당한 희생물과 함께 주께 바쳤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눅 2:22-24). 다시 예루살렘에서 그분 자신을 드리는데 수반되는 희생물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자신의 죽음의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얼마 동안 그분의 죽음을 모의하고 있었고, 우리 주님은 그분의 예언에서 그들을 지목하셨습니다(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러나 그들은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소송을 로마 당국에 넘겨야 했습니다. 유대지방의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결국 그들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했습니다(요 19:16). 우리 구주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이방인이 개입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서 …  그들이 그를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요”(눅 18:32-33). 그리스도의 말씀의 정확성에 주목하십시오. 유대 권위자들은 그분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로마 당국은 그분을 죽도록 넘겼지만 또 다른 가해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마 17:22)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 그분을 배반하는 음모에 연루될 것을 일찍이 암시하셨습니다(요 6:70-71 참조).

당연히 전지전능하신 주님은 자신의 죽음의 방법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를 정죄하여 죽게 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요”(마 20:18-19).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의한 고통과 죽음의 끔찍한 특성을 고려할 때, 그분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분의 음성에 떨렸지 않았을까? 궁금해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또한 자신의 죽음에서 역할을 예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시면서 양들을 위해 그분의 목숨을 버리십니다. “내가 내 생명을 다시 취하려고 그것을 내놓기 때문이라.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며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버리노라. 내게는 그것을 버릴 권능도 있고 그것을 다시 취할 권능도 있노라”(요 10:11,17-18). 주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버릴 권세를 가진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사복음서 기자들은 단순히 소극적으로 “예수님께서 죽으사”라고 기록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죽음을 그분 자신이 성취하신 것으로 묘사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마 27:50, 막 15:37, 눅 23:46, 요 19:30).

놀랍게도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과 관련하여 가리키신 많은 명백한 예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예: 막 9:32). 제자들은 그분의 분명한 선언을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은유적인 예언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세심하게 표현한 문장으로 기억에 남을 은유(隱喩)로 예언하셨습니다. 첫째,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탈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화산에서 “두 사람이 그분과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더라. 그들이 영광 중에 나타나서 앞으로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셔야 할 그분의 죽음에 관하여 말하였으나”(눅 9:30-31). “죽음”이라는 단어는 벗어남(탈출)을 의미하는 헬라어 “ἔξοδος”(1841, 엑소도스)를 번역한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놀라움 가운데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마도 그들의 생각은 또 다른 출애굽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의 민족을 이집트 파라오의 속박에서 출애굽을 인도했습니다. 엘리야는 나라를 거짓 신들에게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종의 탈출을 이끌었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이 맞이했던 메시아가 가장 많은 사람들을 위한 가장 무거운 속박에서 가장 큰 탈출을 이끌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죄와 사탄과 사망의 속박 속에 있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또한 야고보와 요한이 다가오는 그분의 왕국에서 영예를 얻으려는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대속물로서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마 20:28). 탈출로서의 그분의 죽음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맞춥니다. 대속물로서의 그분의 죽음은 그 해방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데 필요한 대속물로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주실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자기 희생은 다가오는 그분의 왕국에서 위대하게 될 사람들을 특징짓습니다.

한 알의 밀로서의 그분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은유적 예언입니다. 생명 없는 자신의 몸이 무덤에 안치되어 추종자들에게 당혹감과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기 며칠 전,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남거니와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아이러니하게도 바리새인들은 방금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19절)라고 말했습니다. 헬라인들도 그분을 보고 싶어했습니다(20절).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밀알처럼 보이지 않고 땅에 묻힐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추수를 하려면 그와 같이 심는 것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그 한 알의 씨에서 얼마나 많은 알곡이 나왔는지! 우리가 그러한 풍성한 수확의 일부임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께서 땅에 심겨진 것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실 때 들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 그분께서 이것을 말씀하사 자신이 어떤 죽음으로 죽을지 표적으로 보여 주시니”(요 12:32-33). 이것이 요한복음에서 세 번째로 우리가 이 은유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8:28절에서, 예수님은 그분이 높이 들리실 때 어떤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그인 줄을 알며”). 여기 요한복음 12장에서 그분이 높이 올리심은 세상이 그분을 알아볼 뿐만 아니라 마치 영적인 자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그분께로 오도록 이끌 것입니다(“나 …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32절). 요한복음 3장에서 그분께 나아오는 결과로 니고데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3:14-15절).

연대순으로 보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은유적 예언의 마지막은 그분이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시고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였습니다. 떡을 드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준 내 몸이라. … 저녁 식사 뒤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라”(눅 22:19-20). 분명히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희생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실 불과 몇 시간 전이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두 번 언급된 그 소중한 말씀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비유적 예언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포도원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비유(28-32절)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아버지를 거부할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33-41절)에서 그분은 포도원 주인이 기대한 열매를 받으러 보내심을 받은 아들 “상속자”(38절)를 거절하고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하십니다. 포도원 농부들은 그 아들을 영접하고 공경하기는커녕 상속재산을 자신들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쫓아내고 죽였습니다(39절). 그러나 농부들이 상속재산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가 그들의 사악한 행위에 대해 심판을 보냅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시편 118:22-23을 인용하여 자신이 버림받은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농부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종종 예수님의 수난 예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기서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의 비유들을 듣고는 그분께서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깨달았으나”(마 21:45)

우리는 구주의 수난에 대한 예언의 표면만 살펴보았을 뿐입니다. 놀랍게도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요 18:4).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예언에서 성취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길을 큰 경외심을 가지고 연구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갈보리까지 옮겨가신 그분을 경이롭게 여기고 경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1. 6. https://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