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피터슨
우리는 겟세마네에서 우리 주님을 마지막으로 보았지만, 그분이 동산으로 떠나시기 전에 다락방에서 보내신 시간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길한 선언
가룟 유다를 포함한 그분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이 다 깨끗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을 때(요 13:11) 혼란스러운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휘젓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전에 언급하신 많은 말씀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그들에게 “나와 함께 빵을 먹는 자가 자기 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하였나이다”(요 13:18)라는 성경 말씀(시 41:9)이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제자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들 중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고 충격적으로 암시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리라”(마 26:21).
구주의 음성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구주께서 이 계시를 드어내실 때 “영으로 괴로워”(요 13:21)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괴로워했습니다. 마태는 그분께서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신 후 “그들이 심히 근심하며”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즉시 시작되었습니다. “주여, 그게 나니이까?”(마 26:22). 유다도 물었지만 그분을 “선생님”(또는 “랍비여”)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은 적신 빵을 유다에게 건네면서 “네가 말하였도다”(25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빵 조각을 받은 뒤에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라. 이제 상에 앉은 자 중에는 아무도 그분께서 무슨 뜻으로 그에게 이것을 말씀하셨는지 알지 못하고 (요 13:27-28).
알려지지 않은 음모
오직 예수님만이 유다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계획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훨씬 더 일찍 그분은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하나는 마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6:70). 다른 제자들은 확실히 유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공식적인 배신 행위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음모는 그가 지난 몇 년을 함께 보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식사 전에 유다는 이미 예수님을 수제사장들에게 약속한 값으로 넘겨주기로 동의했지만, 예수님을 넘겨줄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셨기 때문에 그러한 군중이 없을 때를 찾아야 했습니다(눅 22:6). 그는 언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방문 이후로, 예수님의 야간 관행은 예측 가능했습니다. 그분은 군중을 피해 동산에 계실 것이었습니다(참조, 눅 21:37; 마 26:30; 요 18:2). 예수님께서 그에게 빨리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제 실행에 옮겨집니다. 밤이었으며 유다는 식탁을 떠나 수제사장들에게로 갔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동안 예수님은 나머지 열한 제자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할렐 시편(113-118편)을 부르면서 만찬을 끝냈습니다. 해질녘에 새로운 날의 시작이 되자 우리 주님은 이렇게 노래하실 것입니다. “이 날은 주께서 만드신 날이니 그 날을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로다”(시 118:24). 역사상 이런 날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노래를 마치고 동산으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나 그분을 붙잡으려는 권위자들을 피하기 위해 평소에 기도하시던 장소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불필요한 입맞춤
겟세마네에서의 고된 시련을 뒤로하시고 예수님은 열한 제자에게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렸습니다. “일어나라. 우리가 함께 가자.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 26:46).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시자마자 한 패거리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채 모여들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계실 곳이라 알고 있는 장소로 당국자들을 이끌고 왔습니다. 관원들도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유다는 약속된 신호(48절)에 따라 쉽게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그분께 가까이 나오더라”(눅 22:47).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다락방에서 유다가 도착했을 때 입맞춤을 하셨는데, 이제는 유다가 그분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유다는 “선생님이여, 안녕하시옵니까”(마 26:49)라는 인사로 애정을 가장한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따뜻한” 환영에 속지 않으셨고, “네가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배반하느냐?”라고 응답하셨습니다(눅 22:48).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했지만, 아마도 그것은 유다를 그의 행위의 비열한 본성을 깨우치고 하나님 앞에서 그의 상태의 참된 본성을 그 자신의 혼에게 드러내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계획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롭게도 구주께서는 유다를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네가 하는 것을 속히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요 13:27).
신원 확인의 입맞춤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곧 명백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로잡으러 온 자들에게 앞으로 나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로다”(요 18:4-5). 그분은 기꺼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셨고, 그들은 계획을 계속 실행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동전을 모았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은화
우리는 배신자 유다가 자신의 “보상”을 어떻게 사용하려고 계획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재무담당 유다가 열두 제자의 돈주머니에서 훔친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지 못합니다(참조 요 12:4-6).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배반한 대가로 받은 은 30냥을 결코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주-마태복음 27:3-10을 사도행전 1:18-19과 비교하면 유대 지도자들이 은 30냥으로 유다의 이름으로 땅을 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로잡은 자들을 엎어버리거나 자신을 구출하도록 하늘의 군대를 소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짐에 따라, 유다는 그가 “무죄한 피”(마 27:3-10 참조)를 팔았음을 자인했습니다. 그가 허비한 것은 그의 혼이었습니다. 어둠의 권세와 끔찍하고 치명적인 거래를 하고 예수님을 배신한 것만큼이나 무서운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동산을 떠나기 전에 느리지만 순종적으로 그분을 갈보리까지 인도할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디디시는 나사렛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다시 한 번 목격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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