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피터슨
구경꾼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빌라도가 방금 명령을 내렸고 곧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군중은 세 사람이 십자가 처형지로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제 죽음의 행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죄수들은 Via Dolorosa(라틴어로 “고통의 길”)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 좁은 돌길은 사형수와 그들의 무거운 십자가, 그리고 그들을 따라가는 군사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 돌로 덮인 좁은 길이었습니다.
구경꾼들은 자신의 눈으로 분명하게 목격했습니다. 사형수 중 한 사람은 무죄한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분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 나가셨는데”(요 19:17).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고소한 자들의 불의와 하나님의 공의에 기꺼이 자신을 복종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갑자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구경꾼들의 숨죽이는 소리와 통곡소리가 그 길을 가득 채웠습니다. (금찍한 채찍질로 여전히 피를 흘리고 있는) 예수님의 등에 달린 무거운 십자가는 그분께 너무나 힘겨운 것이었습니다(주-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두 조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직기둥과 가로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위해 가로대에 묶여 있었을 것입니다). 군사들이 군중을 살펴보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갈 사람을 찾았습니다. 시몬이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예수)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마 26:35)라고 말한 시몬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헌신적으로 따르던 시몬 베드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시몬
한 군사가 창으로 가볍게 쳐서 구레네 시몬을 끌어내어 그에게 처형장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가게 했습니다. 구레네 사람에게는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군사가 “창으로 끌어냄”은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 시몬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유대인 순례자였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곧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고전 5:7)음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던 시몬은 아마도 이후에 일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도왔던 사람의 주목할만한 행동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용서하는 영을 목격한 시몬은 머물면서 지켜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가 억지로 십자가를 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회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5:21(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기록된 마가복음)과 로마서 16:13을 비교해보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시몬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골의 곳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소동이 예수님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백성과 또 그분으로 인해 슬피 울며 애통하는 여자들의 큰 무리가 그분을 따라오더라”(눅 23:27).
잘못된 동기로 애곡함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을 지르는 소리 중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여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28절). 그리스도는 그들의 동정, 눈물, 연민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들의 믿음,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들의 미래는 어둡고 두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시몬이 그분의 뒤를 따르고 아마도 두 강도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들려주는 예언적인 음성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수태하지 못하는 자와 해산하지 못한 태와 젖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29절). 미래에 대한 심판은 너무나 두려울 것이므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 한탄할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의 불임이 복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산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여 이르기를, 우리 위로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30절). 성경의 마지막 책에는 환난 기간 동안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 것을 예상하면서 이 정확한 언어를 동일하게 사용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아들을 거부하는 지상 거주자들을 기록합니다(계 6:16-17). 이 여자들(그리고 모든 죄인)은 산과 언덕으로 가서 그들을 짓밟도록 작은 산들을 부르는 것보다 지금 자신들을 구원하도록 산들과 작은 산들을 만드신 분을 부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끝내신 후, 예수님과 군사들은 마침내 고통의 길을 따라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그들은 “갈보리라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눅 23:33). 그러나 첫 번째 못을 박고 소름 끼치는 행동을 하기 전에 유례없는 자비의 제의가 베풀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거부하신 잔
그들은 “쓸개를 섞은 식초를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더니 그분께서 그것을 맛보시고 마시려 하지 아니하시더라”(마 27:34). 마가는 (15:23) “몰약을 섞은 포도즙을 그분께 주어 마시게 하였으나”라고 덧붙였습니다. 쓸개와 몰약은 모두 마취제였고 십자가에 못 박힌 희생자들이 느낄 고통을 줄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마시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도움 없이 온전히 고통을 견디고자 하셨습니다. 시몬, 강도들, 여자들, 군사들, 그리고 모든 구경꾼들은 아마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 잔을 거부하신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관심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마 26:42, 요 18:11).
이제 고통의 길은 그분 뒤에 있었지만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은 여전히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통의 길이라고 불리는 비아 돌로사를 따라
어린양처럼 메시아, 그리스도 왕께서 오셨네.
그러나 그분은 당신과 나를 향한 사랑으로 그 길을 걷기로 선택하셨네.
고통의 길을 따라 골고다 언덕까지.
우리는 갈보리까지 왔지만 아직 그곳에는 일어날 많은 일이 남아있습니다. 계속해서 이 신성한 사건들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빛 가운데로 걸으며 > 갈보리로 가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십자가에서 세 번째 외침(The Third Cry from the Cross) (0) | 2026.01.12 |
|---|---|
| 십자가에서 두 번째 외침(The Second Cry from the Cross) (0) | 2026.01.12 |
| 십자가에서 처음 몇 시간(The First Few Hours on the Cross) (0) | 2026.01.11 |
| 십자가의 첫 외침(The First Cry from the Cross) (0) | 2026.01.11 |
| 선동하는 칭호들(Provoking Titles) (0) | 2026.01.10 |
| 예수를 어떻게 하랴?(What Should I Do With Jesus?) (0) | 2026.01.10 |
| 더 이상 원수가 아니다(Enemies No Longer) (0) | 2026.01.10 |
| 불의한 자들 바로 앞에서(The Just Before the Unjust) (0) | 2026.0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