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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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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피터슨

헤롯은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갔던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한 빌라도에게 여전히 화가 나 있었을 것입니다(눅 13:1). 빌라도가 개인적으로 헤롯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는 우리에게 “그들이 원수였다”(눅 23:12)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 관계의 특성을 바꿀 죄수가 이른 아침에 도착했습니다.

불법적이고 급하게 계획된 야간 회의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유대인 공의회는 아침에 다시 소집되어 예수님께 공식적으로 유죄 평결을 선언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 회의에서 이 사건을 빌라도에게 어떻게 넘길지에 대해 논의할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신성모독 혐의는 즉시 기각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지만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요 18:31 참조). 그것은 빌라도의 권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결박되어 끌려가셨습니다.

빌라도에게 보내짐

공의회는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수 있는 세 가지 혐의에 합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민족을 부패킨 죄,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한 죄,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한 죄를 범했다고 했습니다(눅 23:2). 마지막 혐의만이 빌라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건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면밀히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빌라도가 그분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그렇게 말하는도다”(3절).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신 이 왕권의 본질을 분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그분의 종들이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요 18:36). 빌라도는 예수님이 실제 위협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공의회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갈릴리에서의 그분의 가르침을 언급하는 더 많은 비난이 뒤따랐습니다(눅 23:5). 갈릴리는 헤롯의 관할에 속했기 때문에 빌라도는 이 아침 사건의 골칫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마침 그 때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었으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그에게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더 중요한 문제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님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헤롯에게 보내짐

빌라도와 달리 헤롯은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이 더해진 이 일을 기쁨으로 접했습니다. 그는 이 기적을 일으키는 자에 대한 많은 소식을 들었고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빌라도가 이 사건에 대해 본질적으로 자신의 조언을 구함으로써 자신을 영예롭게 한 것이 헤롯을 매우 기쁘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침례 요한을 죽이고 예수님도 죽이겠다고 위협한 바로 그 헤롯(안티파스)이었습니다(눅 13:31 참조). 이제 그는 그분과 대면했습니다. 헤롯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잠잠하셨습니다. 더 많은 질문에 더욱 잠잠하셨습니다. 누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아무것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눅 23:9).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가야바에게 말했고 심지어 그에게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와 대화를 나누며 그분의 나라의 본질과 진리를 증언하는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헤롯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참수하라는 요구에 비겁하게 굴복했을 때, 그는 요한의 음성뿐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도 잠잠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그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그를 향해 잠잠하셨습니다.

헤롯의 이야기는 비극적입니다. 요한이 살아 있을 때 헤롯은 요한이 의롭고 거룩함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마가는 우리에게 “그의 말을 달갑게 들었기 때문이더라”(막 6:20)고 알려줍니다. 아마도 그가 요한의 메시지를 들을 때 영적인 갈망이 그 안에서 격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였고 이것은 지금입니다. 요한의 처형을 명령한 이후로 모든 영적 감수성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성경은 마비된 양심에 대해 경고합니다(딤전 4:2).

헤롯과 그의 군사들은 예수님이 심문을 받아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나서 그분을 치욕스럽게 하는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왕이라고 주장했던 예수님에 대한 비난과 희롱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빛난(화려한)”(lamprov 람프로스) 옷을 입히고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 당시에 갈릴리에 있지 않았던 헤롯은 빌라도에게 맡기고 그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통치자 사이의 불화가 해소되었습니다. “바로 그 날 빌라도와 헤롯이 함께 친구가 되었더라. 그들은 전에 서로 원수 사이였더라”(눅 23:12).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짐

화사하게 단장한 예수님은 갑자기 빌라도의 문 앞에 나타났고 그들이 끈질기게 추구했던 사형 선고를 아직 받지 않은 공의회 의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공식적으로 유대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그를 조사하였으나 너희가 그를 고소하는 그 일들에 대해 내가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였고 내가 너희를 헤롯에게 보내었지만 그 역시 전혀 찾지 못하였도다. 보라, 그는 죽을 일을 하지 아니하였느니라”(눅 23:14-15). 예수님의 등에 두른 겉옷보다 더 눈부신 것은 그분의 명백한 무죄였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의 그런 의외의 합의는 예수님의 완전한 무죄를 의심할 수 없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시, 빌라도의 평결은 “무죄”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고집했습니다. 빌라도는 또 다른 가능한 수단을 생각했습니다. 유월절 축제 기간 동안의 행해지는 어떤 관습이 그에게 탈출구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잠시 동안 빌라도는 자신과 헤롯 사이의 이 환영할만한 화해를 돌아보며 감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판은 원래 그의 시대에 성가신 일로 간주되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즐거운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빌라도가 알지도 못했고 배운 적도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훨씬 더 의미 있는 화해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가셔야 하는 행로 도중에 자신 앞에 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고후 5:19) 갈보리까지 가시는 중이셨습니다. 슬프게도 빌라도와 헤롯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화해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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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