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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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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피터슨

빌라도의 인내심과 그의 선택권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확실히 헤롯이 자신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유죄 평결 없이 예수님을 돌려보냈습니다. 예수님의 무죄에 대한 자신의 선언은 사형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벌하겠다고 선언한 것 조차도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눅 23:16 이하).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죽음뿐이었습니다.

편리한 관례

빌라도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합리적인 선택이 남아 있었습니다. 유대 민족이 기뻐하도록 유월절에는 총독이 그들이 선택한 죄수를 석방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유월절 절기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미 사형을 선고받은 또 다른 예수 바라바가 구금되어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 당국자들에게 마지막 협상을 제안했으며 이것이 자신을 이 비참한 딜레마에서 확실히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유명한 죄수

바라바는 평범한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폭도이며 살인자였습니다(막 15:7). 확실히 유대인들은 이런 사람이 사회에 풀려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어떤 알려지지 않은 죄수를 선택하는 대신에 의도적으로 가장 악명 높은 죄수인 바라바를 선택하여 제안했습니다(마 27:17). 빌라도의 추론은 틀렸습니다. 그는 합리적인 군중이 아니라 광적인 군중을 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라바의 석방과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구했습니다.

불안하게 하는 꿈

빌라도는 그날의 이례적인 일들과 그가 심문했던 사람의 놀라운 성품에 대해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의 공식적인 판결은 “재판석”에서 내려질 것입니다(마 27:19). 그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판결이 될지도 모르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는 아내에게서 온 메시지로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 의로운 사람과 조금도 상관하지 마소서. 이 날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많은 일로 시달렸나이다”(19절). 일반적으로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을 신들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이 꿈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빌라도의 아내에게 말씀하셨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의 아내의 불길한 메시지의 한 단어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의로움” 빌라도와 헤롯은 모두 예수님의 무죄하심에 동의했고 이제 세 번째 목소리가 그것을 확증했습니다. 그녀가 꾼 꿈의 메시지는 “빌라도, 가능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라! 결과가 어떻든 고소를 기각하라!” 빌라도는 앞에서 했던 질문을 다시 반복했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 원하느냐?” 그러자 그들은 '바라바로소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21절).

잔인한 요구

빌라도는 그가 심의하고 있는 동안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모여 있는 군중을 선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큰 무리였습니다.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설득하여 그들이 바라바를 요구하고 예수님을 죽이게 하매”(20절). 폭도들이 요구할 때 흔히 그렇듯이 감정은 과열되고 논리와 합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빌라도는 또 다른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내가 어떻게 하랴? 하니 그들이 다 그에게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매 총독이 이르되, 무슨 까닭이냐,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거늘 그들이 더욱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더라”(22-23절). 총독은 예수님의 무죄를 세 번이나 선언했지만(누가복음 23:22 참),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들에 대해서만 말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선택에는 큰 아이러니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공식적인 고발은 비록 거짓이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폭동에 속한 것이었습니다(눅 23:2). 그러나 그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폭도를 석방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바라바라는 이름이 “아버지의 아들”을 의미하는 사람을 석방하는 것을 찬성하면서 동시에 실제로 “아버지의 아들”이신 분을 배척했습니다! 그의 성이 실제로 “예수”였다면(각주 1 참조), 사람들은 어느 예수(구주)를 선호하는지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민족은 나사렛 예수가 아니라 더 호전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그들의 기대에 더 부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택이 이루어졌고 빌라도도 그렇게 했습니다.

쓸모없는 손 씻음

“빌라도가 자기가 아무 성과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소요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나는 이 의로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니 너희가 그것과 상관하라”(마 27:24). 폭동을 피하는 것이 빌라도의 정치적 성공에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결백을 선언하는 것은 그가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빌라도의 미래에는 또 다른 “심판석”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거부했던 그리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의 손을 씻는 의식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의 손은 여전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군중과 빌라도의 선택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에 관한 우리의 선택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관저에 서 계시네.
친구도 없고, 버림받고, 모두에게 배신당하셨네.
귀를 기울이라! 갑작스러운 외침은 무슨 뜻인가?
“예수를 어떻게 하랴?” 

예수님은 여전히 재판대에 서 계시네.
이제 선이든 악이든 하나를 선택해야 하네
이제 그분의 뜻은 영원한 결과를 산출하리.
“예수를 어떻게 하랴?” 

“예수를 어떻게 하랴?” 
중립을 지킬 수 없으니.
언젠가 당신의 마음은 묻겠지
“그분은 나를 어떻게 하실까?”라고”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