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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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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도구의 감사와 헌신

삼상 1:20-2:10

1: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하나님의 도구로서 쓰임을 받는 한나의 삶을 지난 시간에 보았습니다. 한나를 다시 보는 이유는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의 필요는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계시다면 필요를 가지려는 존재가 어디 있겠으며 그 하나님의 뜻이 누구의 마음 가운데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작은 슬픔으로 되지만 끝나는 것은 기쁨으로 끝납니다.

한나의 슬픔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자연적인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수만 있는 영적인 축복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만 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왜 나를 여기에 처하게 하셨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녀를 통해서 누구든지 이러한 뜻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자녀의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십니다.

실로에서 희생 제물을 먹은 뒤에 한나는 일어나서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비웃음으로부터 자유로웠고 모든 원수들의 대적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자기의 문제를 직접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특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를 주님께 직접 아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큰 특권입니다.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는 한나의 모습을 봅니다. 이 기도가 시작될 때의 모습을 보게 되면 한나의 마음 속에 있는 심령의 깊은 슬픔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실행은 이와 같은 시작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여인은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여인의 슬픔을 굽어 보셨습니다. 여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간구하기를 주의 여종을 돌아보며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여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잊지 아니하시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소망을 여인의 마음 가운데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기도하기를 만일 이것을 해 주신다면하고 기도했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서원했습니다. 이 모습은 자연적인 인간적인 차원에서 자신을 구하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러한 소망을 가졌다면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구했던 것은 자기 자신의 만족을 구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한나가 이해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 존재해야 된다는 그것이었습니다. 블레셋이 지배하던 초기 때에 삼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도구로서 삼손이 일어났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만 그것을 유지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삼손이 하나님께 헌신해야 했던 그 이상을 한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이 지속되는 동안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즉 그가 태에서부터 무덤까지 나실인이라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그와 같이 완벽한 조건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나는 그와 같이 자기 자식의 삶이 평생토록 여호와께 드려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서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이 일어나는 모습을 한나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훨씬 뛰어넘는 미래를 바라봄으로 나중에 찬송에서 그러한 소망을 나타내었습니다.

이것을 조정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모임 가운데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에 필요뿐만 아니라 그 필요가 점점 발전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증거를 계속 유지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일으키시는 그 실행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임은 우리들이 속해 있는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헌신해야 되고 노력해야 되는 필요성을 보는 사람이 이 안에 있을 것입니다.

여인이 그 필요를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한나를 주목하였습니다. 한나가 자기의 깊은 마음에 집중하여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한나는 입술을 움직여 기도했으나 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나의 기도하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여러분과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우리 입술을 통하여 나는 그 소리가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그 내용입니다. 우리가 공적인 집회에서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한나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으로부터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을 조성하실 때 우리는 너무 늦게 알아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슬픔을 가진 여인이었지만 한나가 표현한 말에 의하면 여호와 앞에 나의 슬픈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자기의 슬픈 심정을 표현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심령을 완전히 비웠다는 말입니다. 그 여인의 마음 가운데 있던 것들을 다 뒤집어서 쏟아내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마음의 집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다는 뜻입니다. 16절에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바로 이 장면이 우리들이 보고 있는 이야기에서 큰 전환점의 모습입니다. 멸시 당하고 슬픔이 가득해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던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마음의 모든 짐을 하나님 앞에 통하였습니다.

이 여인의 기도와 실행이 매우 빠르게 응답되었습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엘리는 이 여인이 말한 것을 보장해 주지를 않았습니다. 다만 여인이 하나님께 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구했을 뿐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이 여인은 엘리의 말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으로 즉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여러가지 것들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기도를 드려 놓고는 내가 무엇을 구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응답을 해 주셨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알아 보는데 우리는 얼마나 느린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그리고 나서 즉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돌아갔고, 먹었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기도가 응답되고 이루어질 것을 아는 가운데 하나님의 전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나의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바라던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서 슬픔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즐거움으로 응답을 해주십니다. 그 여인을 구원해주는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셨으며 사무엘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여호와께 구하여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약간의 상상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한나가 아들인 사무엘을 쳐다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들으셨구나 하는 것을 매번 생각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가족이 유지가 되었습니다.

매년 서원제와 매년제를 드리러 올라가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상 처음에 엘가나는 가족과 함께 한나에게 자기의 분깃을 많이 주었습니다. 21절에 보면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매년제와 서원제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엘가나 온 집이 여호와 앞에 서원을 하러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젖을 떼기 전까지는 하나님 앞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한나는 결심하였습니다. 22절에도 역시 하나님 앞에 자기의 서원한 바를 한나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데리고 처음 올라가게 되면 그 때는 아이를 다시 데리고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 했습니다. 여인은 단독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그의 결심에 동의해 주었습니다.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대로 하라고 함으로써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각각이 하나님 앞에 자기의 위치와 질서를 지켰습니다. 23절에 남편 엘가나가 말해주기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이 말은 남편의 자리를 그대로 지켜서 한 말이고 하나님께서 아들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 부분을 나아가기 앞서 한가지를 더 보겠습니다. 잠언 10 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하나님의 축복이 이 아이를 주심으로 인해서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무자함이 이 아이를 세상에 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옵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어떤 노력도 들어갈 곳이 없고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러한 노력이나 절차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의 축복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의 마음이 다 동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라고 우리들은 믿습니다. 오늘밤 모인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아이가 젖을 떼었습니다. 아마 세 살 정도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이를 실로로 데리고 갔습니다. 희생을 위해서 수소 세 마리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아이를 하나님 앞 존전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번제를 위해서, 또 하나는 감사제를 위해서입니다. 첫째 수소를 잡고 엘리 앞에 사무엘을 보였습니다. 엘리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였습니다. 엘리는 이 여인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하나님의 원칙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삶 가운데 이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위해서 마음 가운데 원함을 주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주십니다. 그 축복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원리가 여기 들어있습니다. 제가 온 아일랜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기가 살던 삶을 그대로 살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삶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은퇴하고 편안히 살기를 생각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 이후에 구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척도로 인정받는 헌신된 삶을 살아주기를 바라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역대하 9장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것들의 목록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니 내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내게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하나님 앞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다 주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우리는 드릴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이 때는 이 원칙에 따라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드릴 때는 시간과 방법과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 가운데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저희들이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 하였습니다. 여인은 아이를 하나님께 드린 날 아이 없이 홀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 희생을 드렸습니다. 엘가나는 경배를 드렸습니다. 한나는 기도하여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섭리를 뛰어넘는 노래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면 아이와 떨어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구약성경의 욥의 경우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것이 마땅하니 여호와께 감사드릴뿐이니이다

여호와께 아이의 평생을 드리고 여호와께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면 일이 어떻게 바꼈는지를 보게 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할 때에만 진정한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저는 원칙을 말씀드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은 구원의 기쁨이나 평안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얼마나 불쌍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여인의 강건함이 하나님 앞에서 찾았습니다. 이 찬송의 경우에 있어서 이 여인은 하나님께 소유된 여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인데 점점 더 그리스도를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족한다면 결코 만족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슬픔을 가져올 따름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욱 소유하면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더욱 가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누리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건해질 것입니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라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입을 벌려 기도할 때 나의 원수들은 나의 기도를 듣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아무도 비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였으므로 이 모든 것들을 말하였습니다.

저의 경험을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즐거움을 잃는 경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잃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의 생필품들을 가지고 자기의 만족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 그러한 기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이 여인의 기쁨이 얼마나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하였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 다른 사람이 감명받도록 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드리는 이 여인의 찬송은 오직 여호와께서만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밖에 다른 이가 없다하였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반석으로서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하나님과 같은 다른 것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취할 때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3~10절까지는 여인의 찬송은 대부분이 구약의 말씀들을 인용한 것입니다. 모세오경으로부터 시편까지의 내용들이 여기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을 경험한 경험들이 이 찬송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나는 자기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으시고 믿을만한 분이심을 자기의 삶을 통해서 증명해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특징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온전히 한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내가 구하였을 때 아브라함에게 신실하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신실하셨다. 자기의 자녀에조차 하나님 앞에서 결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쇠약해져 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경험하였고 증명하였고 하나님께서 변치 않으셨다는 사실을 다시 감사를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자와 내치시는 자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실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원하시는 모든 것을 이루시고 완수하시는데 그것을 방해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 두 종류의 백성이 존재함을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들 위에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패역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혼자 살아가며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존재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이러한 비교하는 진리의 말씀이 3~10절까지에 있습니다.

(2012 5 16 의왕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