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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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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시작의 외적 나타남

살전 1

알렉스 윌슨

오늘 교제할 말씀은 데살로니가 모임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모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배경을 먼저 살펴보는 것으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들로부터 어떻게 믿음이 외부로 퍼져 나가는지 그 모습을 또한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을 여러군데를 살펴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목적하심과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내면과 헌신을 이 가운데서 보게 될 것입니다.

이들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이방인들이고 일부는 유대인들인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우상에 가득 젖어 있던 사람들인데 이러한 사람들이 변화를 한 것은 전적으로 변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덕분이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기초적인 원리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변화하고 형성하는 능력을 나타냅니다.

이 지역은 우리가 흔히 아는바 대로 오늘날의 그리스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요즘 세상에서는 그리스가 주목 받는 중심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라고 하는 도시는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그리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 800만이 안 되는 도시로서 현재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2,3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입니다. 2,300년이라는 역사는 한국에 비하여 짧을지는 모르지만 이 이름은 데살로니가 왕 카산드라라는 이름에서부터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 왕은 자기 아내를 매우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를 존중히 여기기 위해서 자기 아내의 이름을 붙여서 부르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알렉산더 대왕의 여동생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중요한 위치에 도시가 세워지고 유지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말씀드리고 있지만 성경에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배우는 가르침은 매우 간단한 가르침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차지하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에 주목시키는 것은 구원과 거듭난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의 주목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집중을 시키십니다. 주석을 다 돌아볼 수는 없습니다만 이 지역에 말씀이 처음 들어갔을 때에는 회당에서 먼저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 나오는대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고 음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에서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데살로니가의 기록을 남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1,2,3장은 완벽하게 복음이 최초에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첫 세 장을 보는 것이 우리가 살펴보는 주 내용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교훈을 주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 안에 믿는 자들에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여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성령의 도움으로 그 공부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것이 가능한지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이 빠져들고 우리 스스로를 제한하여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의 품으신 큰 뜻을 매우 조금밖에 배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단순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 17장에 기록과 데살로니가전서가 쓰여진 기록은 실제로 몇 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변화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나약해 보입니다. 이 당시는 일부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고 일부는 유대인들이고 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짧은 시간 동안에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충만하게 가졌습니다. 그래서 젊은 믿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선입견일 뿐입니다. 또 다른 면으로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들도 또한 있었습니다. 분명히 가르쳐지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어떠해야 되는지를 그들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가르치는 하나님의 교사로부터 이들은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분들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을 오래 경험했는가와 상관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아는 채로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이전에 빌립보에서 넘어왔는데 그 빌립보에 있을 동안에는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매우 험악하게 다룸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감옥에서 풀려났기 때문에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음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일랜드에서 여기에 오는 동안에 크게 고생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가 회복하는데는 며칠이면 충분했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시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도시에 오기 위해서 기록되지 않은 여러 도시들을 거쳤겠지만 전도자들은 데살로니가에 들어와서 회당이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가서 거기에 있는 성경을 열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를 보여드릴까요? 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을 온전하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방해가 있고 어떤 핍박이 오고 어떤 도전이 오든지 간에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굳게 붙들고 있었습니다. 오늘밤 여기 모이신 분들에게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권고하시고 그 다음에 주님에 대한 증거를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으면 어떻게 들으리요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무리를 보시고는 이 양떼들에게 누가 복음을 전할꼬 하고 말씀하셨으며, 복음을 받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에 부활하고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사도행전 17 2절에 보면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4 16절에 나와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주님께서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치신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습관을 따라, 지금 보는 사도들도 규례를 따라, 이와 같은 초기의 믿음을 보인 사람들의 규례는 성경을 열어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믿는 자들이 해야 될 것은 형제든 자매든 자기에게 주어진 때에 그 기회가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서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전해서 곧 그들에게 닥칠 영혼을 준비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회당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어보면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께서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구원자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해를 받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는 것은 구원의 단순하고 명료한 내용이고 이것을 통해서 사도는 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증명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리고 헬라인의 큰 무리들이 적지 않은 귀부인도 바울과 실라를 좇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 속한 데살로니가의 시작을 우리들은 봅니다. 이런 것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함을 발견합니다. 먼저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함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들이 구원받은 바로 그 날에 이들이 회당에 속했던지 우상에 속했던지 자신들이 해 오던 습관들을 멈추었습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아야 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난 사람들은 바로 그 날에 거듭난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원했습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이들은 이 날 이후로 회당에 돌아가거나 우상에 돌아가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이 때에 헬라인의 큰 무리가 권함을 받아 구원받았다고 했으며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있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그 단순함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구원함을 받고 그리고 따로 모이게 됩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큰 유형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것이 신약성경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시기하여 움직였습니다. 여기에 이 사람들은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과 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잘못을 떠넘기려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를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베뢰아에 전도자가 올라 갔을 때에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전하는 복음을 듣고 자신이 반대하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듭난 사람들을 살펴보는데 이 일에 있어서 이것을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생각해야 될 오묘한 말씀입니다. 이 때에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복음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자기들의 모든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시기하는 시기심이 많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우리들 주변에서 그러한 태도를 많이 봅니다. 이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읽겠습니다.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바울과 두 동역자들이 보내는 인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인사의 한 개로 구성된 단순함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지역교회에게 사도가 써 보낸 최초의 영감받은 서신입니다. 자기의 사도권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호칭이나 계시가 없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내려오던 종교적인 것들은 다 배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는 표현은 다른 서신에 비해 여기에만 나오는 유일한 표현입니다. 이 표현이 데살로니가후서에 시작할 때 똑같이 반복이 됩니다. 이 때 언급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자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즉 이 백성들이 완전한 보호하심 가운데 존재하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들에게 적용시켜서 우리가 구원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보호하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명확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시작할 때에 이들의 주목을 정확하게 한 곳으로 모으고 있습니다. 매우 명확한 표현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쏠리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보통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리고 주님께 어떻게 해야 될지를 구하는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여기서 우리가 배우는 놀라운 원리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가 기도를 할 때마다 이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고 자기가 전파해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 기도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이 하나님께 한 사실에 대해서 바울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감사하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실제의 감사의 근원은 우리를 위해 주신 은혜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져야 됩니다.

3~10절에는 구원받고 하나님께 드려진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강조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사람들이 얼마나 약했던지에 상관없이 이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에 삼중으로 말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먼저 믿음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삶 가운데서 일을 할 때에 믿음의 역사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 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삶 가운데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구원받기 이전에 삶이 어떠했던지 직업이 무엇이었던지 미래의 꿈이 무엇이었던지에 상관없이 구원 이후에는 바뀐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하는 것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또한 동료 믿는 자들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수고를 통해서 표현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꿈을 사랑하고 자기의 직업을 소중히 여기던 아끼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소망의 인내가 나옵니다. 물론 이들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 이것은 특히 사도의 서신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소망으로 두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견뎌야 될 환난과 시험과 핍박이 얼마나 크던지 간에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충분히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님께서 보장해주십니다. 이러한 소망 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이 세상에 다른 것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6 9절에는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 나옵니다. 이러한 외적인 요인들은 진정한 구원받은 사람들의 증거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삶을 강조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본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역사를 하고 수고를 참으며 어려움 가운데서 인내를 하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 저 사람들은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구나! 여러분들이 대학을 다니며 공부를 하던지 직장을 다니던지 대부분의 사람들 중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여러분들을 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세상의 기준이나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똑같이 말을 하고 가치를 생각한다면 아마 그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보고 놀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 보임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회를 우리들은 받았습니다. 이들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사도행전 17장으로부터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참으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확인과 강조가 이루어진 것은 기독교계가 시작된 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중에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5절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즉 이 것은 말씀을 듣는 문제 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르치냐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우상이 가득찬 도시에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의 단순함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마음 가운데 이 복음의 말씀은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를 인식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복음 전하는 자의 어떠함이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우리들은 어떤 일이 이루어졌는지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만 그 일어났던 일의 모든 이면에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마음 가운데 이것이 사실이고 진리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은 이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5절에서 말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 바랍니다. 여기서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에서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해서 이들의 태도가 확신을 주는데 도움을 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고백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는 사람들에게 말을 잘하는 영역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목한 것은 이들의 영혼에 대해서 가르치는 사람의 태도를 본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하는 자가 그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그 전파되는 복음의 실제 살아있는 예로 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1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겠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6)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과 연합되어서 복음을 전해준 사람과 함께 시작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따르는 자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그 순간에, 몇 년 몇 달이 지난 뒤가 아닙니다. 믿는 그 순간에 우리와 주를 본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감으로써 점점 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거듭날 때에 어떤 환난을 당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시작할 때에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모임을 이루고 또 핍박을 받았는데 그 핍박 가운데서 이들은 기뻐하였습니다. 이들은 많은 환난을 받았는데 이 환난에 대해서는 2장에서 좀 더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구원을 받음으로써 자기들에게 처한 대가가 어떠하던지에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거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빌립보에서 들어간 두 전도자들이 감옥에 갇히고 심하게 맞고 착고에 채였으며, 그리고 풀려나서 복음을 전하러 왔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거듭나고 구원받은 다음에 사방으로부터 몰려오는 핍박을 받고 그 핍박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이들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전도자가 말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에서 마게도냐와 아가야는 그리스 전 영토를 말합니다. 믿은 지 오래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 믿는 자들은 믿음이 어린 자들에게 도전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증거에 참여하는 젊은 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그러한 분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구원으로 말미암아 그 구원을 여러분들이 증거로 나타내고 있으며 성령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서 사도바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들린다에서 이들의 입으로부터 복음의 말씀이 퍼져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내에서는 잠잠하고 조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임이 유지되려면 복음이 말해져야 합니다. 가서 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가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소중하고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임 내에서는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복음 전하는 자가 없으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나타날 기회가 없게 되고 나중에는 가르침을 받을 대상조차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가 온 아일랜드에서 편만한 문제입니다.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 즉 그리스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지 어디를 가던지 간에 이들이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진리를 따르고 진리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 이상으로 복음을 증명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이 당시에 헬라는 지식으로 융성한 곳이었고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이었음에도 이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 저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증거를 세웠습니다. 제가 있는 나라의 모습이 생각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여러분들도 이 부분을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삶에는 우리는 그러한 것이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루어진 것은 처음에 사도행전 17장에서처럼 데살로니가에 복음이 처음 전해질 때에 바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의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주십시오. 친애하는 믿는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받은 자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선 자입니다.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않고, 이것은 포기하지만 저것은 절대 포기 못하는 그런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구원을 받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돌아서서 그리스도의 은혜가운데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우상숭배는 그 다음으로(?) 미루어져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여러분들의 꿈, 직업, , 욕망들입니다.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것이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삶의 힘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시고 여러분들에게 영생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립니다. 사망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이십니다. 주님의 오심이 매우 가까워졌습니다. 지금 그것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언제가 자세한 내용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떠한 일이 이루어져서 주님의 오심을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주님께서 우리들을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장래에 노하심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분을 우리들은 기다리십니다. 이것으로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장차 진노하심이 임하면 세상에는 견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진노하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흘리신 보혈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012 5월 25일(금) 김포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