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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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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시작의 내적 모습

살전 2

오늘밤 노원에서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있게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공통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밤 주님의 능하신 손을 펴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열어 인도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 며칠 동안 우리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제 김포 모임에서 사도행전 17장의 일부와 데살로니가전서 1장의 말씀을 교제했습니다. 주요 내용을 말씀드리면 먼저 인사와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이 거듭나서 외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보았습니다. 이 때에 이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부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어제 다루었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것은 거듭남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이 첫 경험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자라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진보가 있어야 되는데 그 진보는 영적인 진보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한 진보는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진보는 성령의 능력과 믿음의 실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결과는 외적인 삶의 변화로 나타나게 됩니다.

어제 집회에 참석하셨던 분은 기억하시겠습니다만 데살로니가전서 처음 세 장은 복음이 전해졌을 당시를 정확하게 회상이 되고 있는 장면을 드러냈습니다. 주요한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때 믿음으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만큼 어디까지 초기에 붙들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어제 보았습니다.

데살로니가 2장을 읽겠습니다. 처음 복음이 들어왔을 당시를 회상하게 됩니다. 처음에 읽으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의 내적인 사정과 그것을 전해 받은 자의 내적인 사정을 보게 됩니다.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6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4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능하신 출발을 경험한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은 자의 내적인 감정과 원함이 이 데살로니가전서 2장 첫 부분에 자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경험이 말씀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의 내적인 감각을 자극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8절에 나오는 내용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함께 있는 자들의 내적인 마음 상태를 잘 읽을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한 자가 됨이라. 여기서 보는 봐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와 함께 있던 이 초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복음 전하는 것은 전문가의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 전도자의 마음은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아가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서 행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의 내적인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즉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그들이 들었지만 사람의 하는 말로 그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은 받았습니다. 여기 이제 갓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진실로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몇 달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완전한 구원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가운데 능력으로 이미 작용하여 자신들의 삶 가운데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도록 역사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그것을 아는 자 속에서 역사하는 활동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늘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로도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능력이 주어집니다.

1 5절에 나오는 진리를 우리는 어제 보았습니다. 5~10절까지 많은 말씀이 있지만 그것은 5절의 진리를 확정하는 내용들입니다. 5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이들은 자기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이 그 말씀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한 말씀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능력이 되며 인도하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세번째로 이 말씀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 가운데 너희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개인에게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14번 나옵니다. 복음이 최소한 6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게 하려고 부르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 하나님의 교회의 초기 모습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진리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이 말씀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실행에 있어서 매우 도움이 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펴든지 공적인 자리에서 펴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펴는 것은 좋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동기는 나보다 더 연장자이거나 더 성숙된 그리스도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기준들은 가면 갈수록 더 높아지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행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진실로 하나님과 가까이 연합된 자들입니다. 사람들의 규정이나 규칙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은 하나님께 합당히 하게 하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를 불러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부르심을 하늘에서 이 땅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은 거룩함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힘을 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2절에서는 2장의 인사말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2장에서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바는 그들의 모임이 형성되던 때에 어떤 것이 중심이 되어서 행하였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 우리가 믿는 바 중에 하나는 죄없는 완벽한 가운데 들어간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다 보면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의 완벽하게 합당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 소망없고, 희망없고, 능력없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긍휼만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여러분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처음에는 우리들에게 험난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진정 거듭났으며 구원을 확신하며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영광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여러분들의 자리를 가지게 됩니다.

2 1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축복이 이 복음 전하는 자가 이들 가운데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에게 들어간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역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데살로니가에 오기 이전, 복음을 듣기 이전의 일로 이들을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빌립보에서 받았던 고난과 능력을 언급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왔을 때에 어떤 환난이 일어난다고 해서 복음전하기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만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들 가운데 복음을 전한 이 사람들은 그들의 몸에 이미 하나님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고난과 능력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말씀이 증거하는 바대로 인도함을 받겠습니다. 진리와 성경에 있는 바를 형제가 가르치는 것은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 전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전하는 당사자 본인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증거를 스스로 행실을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도록 권면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는 단순히 자기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게 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영적인 가르침과 원리를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좀더 나아가서 3~6절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3절에 나오는 것은 이들에게 빠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들이 가르침과 동기의 내용은 부정한 것이나 간사한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와서 몇 마디 적은 말로 자기들을 믿도록 한 것을 상당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전함을 부탁을 받은 이 사람들은 100% 깨끗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증명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자로서 복음을 전한다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형제든 자매든 간에 이러한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사람들 앞에 내어놓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한번 말씀드려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말씀하실 때 어떤 형제가 말하기를’ ‘어떤 성도가 말하기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가능한 방법일지는 몰라도 적절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하신바 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구원 가운데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을 나타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얼마나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집회 끝나고 돌아가면서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는데 아마 이것이 첫번째 생각하는 기회가 아니기를 바랍니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두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목적과 여러분들의 소망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하나님께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여러분들은 정말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행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순전함을 보십니다. 5절에 나와있는 내용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전혀 없습니다. 한번도 아첨의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허한 말로 사람들을 추켜세우는 일이 있습니다. 또한 탐심의 동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취해 오고 싶어서 이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면 저 사람이 나에게 뭘 원하는 것이지? 나에게서 뭘 원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지? 하고 보통 생각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전혀 가식적인 동기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된 것들은 데살로니가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동기가 전에 유대인이었던, 전에 우상숭배자였던 간에 그들에게 전달되어 하나님께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6절에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기를 자랑하거나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였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사람으로 여김을 받습니다. 이 사도바울은 그 행하는 것이나 영적인 말씀의 가르침을 보나 신약성경에서 가장 큰 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사도가 사람들에게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고 모임들이 생겨나지만 이것을 자기의 공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하심과 은혜로 이룬 것이지 자기는 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고 거기에 참여하는 특권을 여러분과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이 사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사도가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즉 다른 사람들에게 큰 자이고 내가 이렇게 큰 일을 하니까 나에게 그만한 합당한 대우를 하고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당연할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사도는 그러한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도의 동기와 그 안에 하는 일과 그리고 그 일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들과 들어있는 목적을 볼 때에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희생했다는 것입니다. 그 봉사 가운데 어려움과 고난을 감당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삶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함 받는 영혼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복음이 전파되고 모임이 세워지는 놀라운 축복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의 동기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을 섬기는데 충분히 드리고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전심사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충분히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어떠한 면에 있어서든지 이 복음을 전하는 자와 같이 자기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여 곧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가진 것을 사용할 마음이 있습니까? 제가 아일랜드에 있을 때 말씀을 전하면서 이 동일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질문을 자신에게 자주 하고 있습니다.

7~12절에서 사도가 하는 말은 이들에게 대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생활의 태도에 있어서도 말씀에 합당하였습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 가운데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녀가 아닌 남의 자녀를 기르는 유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유모가 남의 자녀를 봐 주는 것이 아니라 유모가 자기 친 자녀를 기르는 것같이 기른다는 것입니다. 유모는 자기 친자식을 돌볼 때에 자기가 가진 모든 기술과 지식을 그리고 마음을 동원해서 자기 자식을 돌볼 것입니다. 모임 내에서 형제자매들은 이와 같이 말할 수 없는 축복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7절에서 이렇게 말한 것을 봅니다.

8절에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라고 말하여 말씀 듣는 자들을 향한 마음의 열망을 표현하였습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라고 하였지만 복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사도는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그 당시로 돌아가서 갓 믿었던지 아직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받기 전이던지 그들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말씀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나타내었고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형제로서 그들에게 모든 마음을 쏟아주었습니다.

저는 사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혹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제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까 제 고향 땅에 있던 어떤 분이 악수를 하면서 잘 쉬었다 오십시오하고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9절에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말씀을 전할 때 전하고 말씀을 전하지 않을 때는 자기 손으로 수고와 애를 써서 자기의 필요와 생필품을 직접 조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한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한 많은 일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온 사람들은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거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고 경계하기를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보통 부드러운 사람으로 자애로운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만 자기 자녀에게는 아비가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받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처럼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함께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는 바로 이 사람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 모든 형제 자매들이 알아야 할 바는 자기 자녀를 유모가 사랑하듯이 모든 성도들 각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에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자기 나라와 영광으로 부르셨는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잊을 만큼 이보다 강력한 동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13-16절 사이에서 그들 안에 있는 것을 좀더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속이 변한 결과가 겉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처음에 강조드렸던 바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와 영접한 자세를 보았습니다. 그들을 특징지은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삶 가운데서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삶에서 문제 되는 것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을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살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해야 될 것을 무시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사람은 단순히 자기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입으로만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너희는 지역교회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유대에 있는 지역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다.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는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데살로니가 성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미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핍박을 했던 유대인들은 주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와 연결된 모든 자들을 대적한다 하였습니다. 이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금지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구원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은혜와 축복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바라는 바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마음으로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우리들의 마음을 특징지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큰 구원을 우리들에게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가운데 이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 세상을 지나서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이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평가하고 계십니다. 사단은 우리의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와서 우리의 시간을, 생각을, 노력을, 이러한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부터 떠나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보았던 데살로니가에서 발생했던 이 일은 불과 몇 주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서신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달되었을 그 시점에 그 사람들은 구원 받은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영혼들입니다. 이것이 대부분 우리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가졌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믿음을 지켜주십니다.

 

(2012 5 26일(토) 노원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