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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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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를 통한 사탄의 시험

살전 2:17-3:13

알렉스 윌슨

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3: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밤 읽은 데살로니전서 3장의 큰 주제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잘 됨을 위하여 매우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입니다. 사단은 성도들의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을 시험하고 유혹하는데 허락을 받았습니다. 사단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사용한 핍박의 방법은 잔혹하고 극심한 환난의 형식으로 동료 자기 나라 사람에게서 그 환난이 오도록 사용하였습니다. 사단은 처음 성경에 드러나 알려진 것 같이 대단한 전략가입니다. 그가 계획하는 것은 어떠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반대하고 훼방하는 것입니다.

먼저 2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어제 집회에서 보았던 내용의 핵심은 복음을 받은 자들에 대한 사도바울의 관심과 마음이었습니다. 사도가 했던 말 가운데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도 바울이 권면하고 위로할 때에는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차지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종 간에 사랑과 유대가 직접적으로 친밀하게 맺어졌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사도 요한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임 가운데 모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원리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더욱 진전되도록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환난이 왔을 때 모임의 성도들을 지켜주는 수단입니다. 궁핍과 환난이 올 때도 사랑이 모임의 성도들의 일치를 유지시켜 줍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환난으로 말미암아 불과 몇 주 만에 사도 한 명이 제거되었습니다.

17절에 보면 이미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모임을 형성한 뒤에 떠났습니다. 이들은 이별에 관한 강한 말씀을 썼습니다.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사랑과 애정이 크게 자랐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떠나게 될 때에 사도의 마음을 매우 슬프게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떠난 것은 몸만 떠난 것이고 단순히 헤어졌을 뿐이지만 그 마음과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또 하나의 교훈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운데 성도들이 이별하는 가운데 그들을 하나로 일치하게 만드는 사랑이 결코 훼손되거나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압도하시는 사랑 가운데 그 사랑은 오히려 더 커져갑니다. 이러한 사랑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든 성도들을 돕고 있습니다. 사단은 매우 능력이 있는 자로서 성도들의 분리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괴적인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셔서 오히려 성도들을 강하게 해주시는 기회로 삼으십니다. 우리가 서신서에서 이러한 것들을 발견합니다.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점점 오랫동안 떨어져 있게 되는 만큼 오히려 그 성도들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음을 알게 됩니다. 사도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것이 떠 올랐습니다. 자신이 들은 소식은 자기가 느끼던 것과 같은 감정을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역교회의 능력 속에서 볼 때에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실행이 되어야 됩니다. 모임의 모든 다른 지체들을 돌아보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모임 교제 가운데서 지리적으로 멀리 있던지 간에, 어떠한 환난을 당하고 있던지 간에 그들을 향한 기도와 돌봄과 관심은 매일매일 지속되어야 합니다.

17절에 나와 있는 사도의 강한 열망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다시 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해 동안 그 소망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을 보기 전에 두번째 서신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몇 년 후에 그러한 가르침의 서신을 썼습니다. 매우 소중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보기 이전에 두번째 서신을 써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사랑과 돌봄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그 의지와 그의 마음이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18절로 가면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하였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데 있어서 모든 전략과 능력을 사용하는데 능수능란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듯이 하나님의 뜻과 길들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와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혜롭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이것들을 인도해 오셨습니다. 저를 아는 지식과 성장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잘 따라와서 그 뜻의 완성에 이르게 되면 뒤를 돌아 보았을 때에 비로소 그 때에야 지혜와 인도하심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쓴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큰 환난 가운데 처해있다. 그 환난 가운데 우리가 애쓰고 있다. 인내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실행을 통해서 사랑의 하나님을 비로소 안다 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보혈을 흘려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닥치면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하고 아무런 대가나 희생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끝났으니까 그 다음에 오는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에 이러한 것들이 더욱 강하게 일어납니다. 어려움이 닥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나에게 허락하셨다고 믿는 마음이 점점 커져갑니다. 이러한 환난이 극심하여 슬픔을 자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거룩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개인적인 가르침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 이것을 없애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이 어떠한 강도이던지 간에 유지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배우기를 바라는 그 가르침이 완전하게 되기 전에는 그 어려움을 제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와 데살로니가 성도들 사이에 처한 어려움을 보았습니다. 사도가 말하는 내용과 여러가지 다른 부분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2장을 넘어가기 전에 놀라운 내용을 하나 보기를 원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로 구원받은 데살로니가인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이 점점 더 커져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놀라운 말을 보겠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이들을 생각할 때에 사도 바울은 장래의 영광을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들이 천국에 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이 아닙니다. 보통 우리들은 천국에 가면 편안하고 좋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도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그러한 뜻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말한 바는 주님의 오심이며 이 주님의 오심은 각 장마다 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에 바로 그 자리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섬긴 그가 그들과 그 자리에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위해 오실 때에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영광 가운데 그들이 사도와 데살로니가 성도 모두가 특별한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우상숭배와 패역한 기준의 삶을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있던 자리로부터 그들을 주님께서 건져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하나님께 이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하나님의 일꾼을 사용하여 말씀을 전파하고 그들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 모든 것들이 완성됩니다.

사단의 목적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성도가 주변에 있습니까? 그들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고 기쁨이 됩니다. 아침에 집회 때에 처음 온 사람이라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 순간에 시작하실 수 있는데 그 시작은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는 시작입니다. 이것을 계속해서 3장에서 말하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기만 아덴에 머무는 것을 좋게 여기고 디모데를 알아보도록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데살로니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자기들과 함께 있는 동류들과의 교제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알아보는 것뿐만 아니라 세워주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일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그들의 믿음을 말씀으로 위로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셨던 원칙 그대로 사도바울은 말씀의 원칙을 따라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까운 장면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지키기 위해서 큰 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그러하지 않겠다는 매우 주관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돌아보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속을 다 아셨는데 베드로는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할지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의 뜻은 믿는 자들을 흔들어서 정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도록 허락하심으로써 믿는 자들의 속을 드러내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신 것이 실패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이것으로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것으로 회개하고 회복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여기서 배우는 것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백성들을 가르쳐서 교훈하실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보내진 일꾼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엄청난 시험가운데 갓 태어난 아기들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을까요? 우리들을 환난 가운데 처하게 하셨는데 오히려 그러한 일로 그리스도인답게 만드셨던 그러한 환난의 기회가 있었는지요? 그러한 환난이 올 때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을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 지켜주는 유일한 수단은 믿음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던지 간에 이길 수 있고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6장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확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이것이 이 땅에서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기대되는 바입니다. 저는 명확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 여러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를 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환난이 있습니다. 마치 믿는 척 하지만 환난의 때에 결국은 세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그러나 여기에 큰 위로가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이 땅에서 믿는 여러분에게 있는 것은 세상을 이기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믿음을 굳게 하고 믿음을 진보시키는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장차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도록 이 땅에서 하나님께 배우고 인도 받는 것입니다.

사단이 이 땅에서 성도들에게 하도록 허락 받은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 목적에 따라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바에 따라 국한됩니다. 그 짧은 것이 13절까지의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이 진리가 다섯 번 언급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 3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뜻하신 바는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과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에 그 믿음이 더욱 자라가는 것입니다.

1년 전에 엘튼 페어필드 형제님이 말씀하실 때 제가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경험을 기억합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립니다. 믿음의 강도와 성장이 1년 전의 이 자리에서의 믿음보다 더 깊어졌습니까? 이것은 모든 성도들에게 관련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의 문제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내가 주님의 능력과 함께 살고 있다고 믿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바는 무엇이든지 간에 여러분들의 잘 됨과 최선을 위한 주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전에 여러분과 같이 있었을 때에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전에 큰 어려움 가운데 처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장차 받을 환난이 과연 너희에게 이른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축복하실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 이상으로 그들에게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환경에서부터 주어지는 시험에서부터 그들의 믿음의 실체를 확인하십니다. 그러한 시험 가운데서 실족하고 실패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자신을 증명해 낼 것입니다. 자신의 믿음의 깊음과 마음의 기쁨을 그것을 통해 증명해 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이로 말미암아 더 커지게 됩니다. 5절에 말하기를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한가지로 여러분들의 주목을 이끌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일상 가운데서 어떻게 지내십니까? 여러분들 가운데 혹시 아픈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하고 사도바울은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관심이 있어 돌본다고 할 때 흔히 일상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바울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알고 싶었던 유일한 한가지는 저들이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하는 자가 저들을 실패로 만들었는가 그 한 가지였습니다. 사도바울이 일을 하며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수고한 모든 것들이 헛되게 될까 걱정하였습니다. 물론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일상에 관하여 관심과 걱정을 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가졌던 가장 큰 관심은 이들의 믿음이 환난을 통하여서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리고 때가 지나서 디모데가 그들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저희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폭풍과 같은 어려움 가운데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로서 매우 시작 단계의 경험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깊은 것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지역 모임에서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고 행하는 사람들을 사용합니다.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들이 활동하도록 하시는데 몇 년이나 걸리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에베소 교회를 보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많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됨을 유지하였습니다.

이 데살로니가 모임에는 갓 구원받은 성도들만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지역 모임에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은 주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부터 여러분들이 자라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욱 축복을 받고 인도를 받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한다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우리도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믿음이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랑이 더욱 성장하였습니다.

좀 심각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이곳만이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러한 것들을 배우는 유일한 장소인가요? 여기가 하나님의 모임입니까? 여기가 하나님을 교제하는 곳이라면 이 안에서 더욱 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안에서 지역교회 성도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 말씀이 가르치는 것을 배웁니다. 이들을 하나님의 지역교회 밖에서 주님께서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잘되거나 어떤 다른 것을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역모임이야말로 주님께서 중심에 위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자기들이 속해 있던 사회가 어떤 체제에 속해있었던지 간에 그 안에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가운데서는 그들이 살았던 사회적인 생활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주님과 여러분의 친밀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위치시키신 그곳에서 여러분들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열릴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성장시키기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곳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러한 것을 잘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그들이 환난 가운데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여러분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흔드는 이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사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를 옥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에 가르치시고 싶어 하시는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그 무엇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처음 나타났던 것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배우고 익히고 자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분명하게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안에서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높은 수준에 이미 도달하였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가 마지막으로 말하는 바는 우리가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배경이나 자라온 문화가 다릅니다만 서로가 다르게 해 왔던 것들에 대해서 공유하며 기뻐하는 것들이 적을 수 있지만 이것들을 아는 것은 좋습니다.

데살로니가 인들이 믿음에서 잘 행할 때에 서로에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나와 있습니다. 밤과 낮으로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주야로 즉 지속적으로 심히 간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모임에 구성원들 각자를 위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한 모임 가운데는 모임에는 사단이 어려움을 가져오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너희 얼굴을 보고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지의 이유를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친교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환난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견뎌내었습니다. 이들은 거듭난 지 얼마 안된 젊은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은 자세히 보지 못하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내일 좀더 보겠습니다. 그들의 지식에 있어서 약간의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 다 나와 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어나 그들의 실행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약간의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앞으로의 일에 주님께서 오실 때로 맡겼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이 사도는 자기의 지식이나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방식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길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그제서야 움직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겼습니다. 기도하며 바라는 바는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시기를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이 땅에서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너희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함에 있어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강림하실 때에주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주님께서는 주의 백성들만을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심이 데살로니가서 초반부에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오셔서 이 땅에 내려 오실 것입니다. 한 성도도 빠짐이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과 연합하여 이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이 사도의 큰 기쁨은 그 때에 함께 있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영어와 한국어의 어려움이 없이 대화할 수 있을 것이고 복음을 듣고 믿음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그 때 함께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주님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에서 더욱 교제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될 것입니다.

(2012 5 27일(일) 의왕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