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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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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날과 빛의 자녀들의 소망

살전 5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말씀드린대로 5장은 긴 장입니다만 이 전체를 읽고 나서 먼저 1~15절을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나머지를 보기 위해 약간의 요약을 하겠습니다. 15절 이후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간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항상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늦어져서 걱정이 됩니다.

첫번째로 우리가 볼 것은 주의 날입니다. 먼저 구분을 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보아야 할 내용이 다음에 나오는데 낮의 아들들” “빛의 아들들낮에 속한 사람들로서 구별된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이 하나님 말씀 곳곳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놀라운 원리가 있습니다. 또한 그런 원리를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가운데 외적으로 보여지게 표현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싫어 버림받고 거절된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매우 슬프게도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이 이것이 진리인 것을 아는 것에도 불구하고 실행으로 옮기기를 싫어합니다. 이것이 사실인한 우리에게 큰 장애가 되고 결점이 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앞 장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예비하신 것과 우리에게 임하신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나의 삶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발전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투자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성경에는 그런 식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는 본문으로 돌아가면 사도바울은 주의 날에 관해서 갓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던 사람들이 구원받아서 성도가 된 이후로 이러한 지식의 놀라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의 날은 모든 성경의 큰 주제이며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에서 또한 주제입니다. 제가 몇몇 모임을 방문했었는데 성경읽기 시간에 구약을 상고하면서 주의 날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모든 구약 계시의 원칙이 되는 중심을 이루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그 말씀을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들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가 그것을 풀어서 가르쳐 주게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사도는 성도들을 대할 때 구약에 관련된 것들이 바로 너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초기 사람으로서 완벽하게 다 알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이것으로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방인을 향한 이방인에게 간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이 위대한 사도가 갓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그들을 호칭하기를 나의 형제들아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놀라운 관계가 아닙니까? 그리고 때와 시기에 관하여 말합니다.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전에 명백하게 말로 가르쳐 주었다. 이미 너희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교정이 필요치 않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그러한 것과 같은 혼돈이나 헛갈림이 여기에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전혀 다른 일이고 다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영어에서는 완전히 알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적같이 이른다는 말은 원하지 않을 때에 원하지 않는 것이 갑자기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집회를 끝내고 집에 갔을 때 모르는 때에 도적이 들이닥치는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집에 없는 사이에 도적이 왔다 가는 일을 아무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추구해서 자기가 원하는 목적에 최고자가 되고 세상에서 높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많은 것들과는 관계없이 세상을 거짓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관여하십니다. 주의 날이 이를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는 때와 시기를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땅에서는 때와 시기가 있지만 하늘에서는 변화가 없고 영원합니다. “라고 하는 것은 예언적인 진리인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때는 땅에 있는 존재와 하늘에 있는 존재와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때입니다. 그 때에 모든 것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아드님이 영광을 받도록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도 영화를 받으셨던 것과 같이 땅에서도 영화롭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모든 무릎을 꿇게 하며 모든 입이 고백을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예루살렘 밖에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사야 6장에 본 대로 부활하신 하나님의 그리스께서 높이 들리셔서 보좌에 앉아 게십니다. 이사야 6장은 하늘의 때입니다. 이 땅에서는 다윗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중요한 사실을 강조해 드리고 싶습니다. 제 마음이나 여러분의 마음이나 마찬가지로 이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이 영향을 받습니다.

아일랜드에도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천막집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모든 것이 불로 심판 받기로 예비되어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그렇게 끝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그렇게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높이 되신 그리스도로 기뻐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소개되었습니다. 이것이 도입입니다.

3절에 보면 주님께서 오시는 이 주의 날에 이 땅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오심이 확정됨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정하신 뜻이고 변개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말합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안전함을 느끼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대로 평안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며 지내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는 필요하지 않은 세상인가요?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안전과 평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느낌이 커져서 평안과 안전이 확고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멸망이 그들에게 닥칩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문 앞에 무엇이 닥쳤는지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국가의 대변인이나 지도자도 정말 이 세상에 무엇이 닥칠는지 알지 못합니다.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를 것입니다. 홍수가 있을 때를 성경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수가 임하기까지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다가 모두다 멸망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가 멀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상실하였고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버렸습니다.

이 그림은 매우 단순하지만 제게는 매우 큰 뜻을 줍니다.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임함과 같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주님은 세상에 반드시 임하실 것입니다. 잉태된 여자에게는 태아가 들어있습니다. 태아가 점점 자라서 태어날 시점이 이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장차 임할 것이 무엇인지 그 전조가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친한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앞으로 닥칠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생을 마감할지 이후에 우리가 그들에게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힐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 구원을 받은 지 얼마 안되어서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에 야간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급료를 지불하는 것이 저의 일이었는데 앞 주에 근무했던 수당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하고 직장을 잃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와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이 함께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근무를 하고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를 고용하지 못하게 되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더 이상 당신을 고용하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라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농담으로 말하는 줄 알고 나는 여름 낚시를 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소식을 들었는데 그날 밤 마지막 근무를 하면서 그 사람이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당신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이러한 민감함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곧 심판을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이 짧은 구절에 결과를 말해줍니다.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피할 곳이 없습니다.

4-7절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의 위치를 말해줍니다. 형제들아 라고 다시 한번 호칭을 말하면서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다고 그 위치를 말해줍니다. 어두움은 알지 못하는 어두움 가운데 처한 세상을 말합니다. ‘형제들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있지 아니하다고 말합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의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를 알게 됩니다. 너희는 어두움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아들이요, 자녀를 아들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원래 표현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 됨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할 때는 하나님의 특징을 그대로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우리가 아들을 낳으면 아들이 나의 특징을 그대로 닮아서 나오는 것과 같은 그러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어떠한 특징을 그대로 닮습니다.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였다. 즉 우리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 간에는 차이가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과는 다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세상은 어두움에 속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이 우리는 잠을 자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근신하지 않은 분들은 부정한 것과 옳지 않은 것들이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식을 받은 사람은 근신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복수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게임이나 스포츠를 좇아 다니거나 세상의 가치나 패션을 좇아 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멸망을 당할 세상에서 주의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이러한 것들이 세상에 있기 전에 우리는 하늘로 옮겨갑니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잡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대로 세상은 밤입니다. 밤에 처녀들이 등불을 들고 밤거리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합니다. 부전한 죄를 범하는 자들은 어두움 가운데 자기들의 죄를 숨겨주기 때문에 밤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라지난 집회 동안에 보았던 내용은 사단은 믿는 자의 믿음을 깨드리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8-10절에서는 보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말미암아 제공된 성도들의 특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흉배를 붙이라고 합니다. 흉배는 방어무기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지나고 있는 세상의 대적에 대한 것입니다. 흉배가 붙어 있는 부분은 우리의 마음과 사랑이 담겨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사랑은 항상 보호되어야 합니다. 이 위험한 세상을 지나는데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믿는 믿음입니다. 4장에서 본 바와 같이 장차오실 주님의 강림하심을 바라보는 그 내용의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얼마나 멀리서 이 땅을 내려다 보시든지 간에 여기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 주셨든지 간에 주의 날이 반드시 임합니다. 또한 사랑의 흉배라고도 되어 있습니다. 이 흉배를 통해서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나타나고 그 흉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모든 성도들을 지켜주십니다.

투구는 머리를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머리는 생각을 담고 있으며 온 몸을 제어하는 중심입니다. 이 머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와 약속의 진실함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이 투구는 특별한 투구인데 구원의 소망의 투구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러한 헬멧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은 그 구원의 목적의 완전한 완성을 의미하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빌립보서 321절에 나오는 대로 우리의 낮은 몸을 주님의 영광스러운 형체와 같이 변화되는 것이며 그것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기뻐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최고조에 이르는 완성까지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그대로 볼 것입니다. 또한 변화된 새 육체를 말하는 성도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잠깐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이 지금 새 몸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몸을 변화시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몸은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매우 겸손해야 합니다. 젊을 때는 좀 다르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몸은 겸손을 나타냅니다. 이 몸이 장차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것을 가치있게 보아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9절에 중요한 말씀을 강조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심판과 관계가 없습니다. 장차 오는 심판을 우리가 통과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면 교회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여기 이 9절이 말씀하는 것이 이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장차 임할 환난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장차 오는 노하심으로부터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기위해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좀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4장 마지막에서 주님께서 공중에 임하시고 땅에 있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올라가 만납니다. 바로 그 장면이 주의 날이 바로 이 땅에 임하기 이전에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말씀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하여도 그 전에 우리는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우리가 자든지 깨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셨느니라형제자매 여러분 여기가 우리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하늘에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던지 간에 지금보다 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사도는 이들을 위로하는 말씀을 합니다 11절에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피차 권면하라고 합니다. 이 모임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속한 모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 저는 이것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모든 구원 받은 자들에게 이 말을 하였습니다. 너희 스스로가 함께 서로 권면하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교제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의 책임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피차 권면하는 것이 책임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이들이 행하고 있는 실행이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오마 모임에서 모임 안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풍성한 번영의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따라 보여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임내의 형제자매들을 권면하며 덕 세우는 것이 저의 임무였습니다.

마치면서 이것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나 앞으로 우리가 될 ㅇㅇ 가운데서 저는 이것이 놀라운 일이라고 제 마음 가운데 생각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가 울리고 사람이 왔다 갔다 연락이 오고 그리고 점심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바쁘게 몇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나에게 주어진 축복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우리가 얼마큼 가까웠는지를 불과 몇 시간 전에 보았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 앞에 우리의 눈을 돌렸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새로운 재산을 가지면, 만약에 새 집을 가지면 사람들을 초청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까?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땅의 가치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이 사람들은 모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은 권하는 자들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일하는 특징을 나타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너희를 다스리며 너희를 권하는 자들, 그들을 알아보라고 말합니다. 그들을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들이 감독이라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임이 세워진 지 불과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잘 됨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들이 나타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으고 교정하고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들을 알아보는 것에 계속하기를 바랐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이것들을 더욱 계속하라고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서 항상 평안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 모임 가운데 계신 분들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임의 집회 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고 나옵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데 여러분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귀에 뭔가 말씀을 들려주게 됩니다. 그런데 그 들려지는 말씀이 자기 자신이 듣기가 어려운 부분이 왔을 때 다시는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말하기를 이런 사람을 가장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사도는 그들을 말씀가운데 돌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처음에 거절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반응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위로의 말씀, 권면의 말씀을 듣던 그 말씀을 하는 이유는 그 마음 가운데 성도를 사랑하는 이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잘됨과 보존을 위해서 주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르게 존중되는 가운데 모임 안에 평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제 데살로니가 모임으로 돌아갑니다.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했습니다. 규모가 없는 자들에게 경고를 하라고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라고 합니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모임 안에서는 독재자나 지배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약함을 도와주고 기다리고 참는 그러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분량입니다. 잘못하고 떠나가는 자들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도 믿는 자들의 책임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에 대해서 종종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안위하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권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권계를 받을 수 있는데 화를 내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에게 권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규모없고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랑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16-19절에서는 개인적인 삶 가운데서의 위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후 끊김)

(2012 5 28일(월) 의왕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