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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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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의 실행

 

알렉스 윌슨

고린도전서 11 17-34

17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19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

고린도전서 1 4-7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먼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알아보기 위하여 1장을 추가로 읽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순수하게 거듭난 성도를 일컫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였으며, 이 풍족한 은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들에게 풍성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일들이 태동되며 시작되었고 실제적으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성도로서 특징짓는 부분에 있어서 전혀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주어진 모든 은사로 그들의 성도됨이 나타나고 그 나타남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소망 가운데서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놀랍고 풍성한 은사들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의 머리되심을 흘려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랍게 풍성한 은사들을 받은 사람들이 주의 만찬을 대하는 태도를 보게 되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모든 은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서 드러났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은사들조차도 고린도인들이 이러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지 못하였습니다. 영적인 은사들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성도를 보존하는데에 다른 역할을 합니다. 앞 시간에 홍형제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주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고 나를 위하여 어느 정도의 일을 해 주셨는지를 올바르게 평가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보존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교회가 모일 때마다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교회에게 주신 두 가지 상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장들이 진행되고 있는 방향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앞서 오전에 본 부분에서는 되돌아보는 구도가 창조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고자 하는 곳에서는 갈보리로 돌아갑니다. 또한 주님의 오시는 날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주심 가운데서 창조로부터 주님의 오심까지라는 이러한 구도를 우리가 좀더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모든 성도들이 말씀 안에서 보전 받는데 유익할 것입니다. 창조로부터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의 중간에 갈보리가 있습니다. 즉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주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창조로부터 오심까지 목적의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임과는 달리 세상은 주님의 머리되심에 관하여 거절하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지역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주님의 머리 되심을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누가 중심에 있는가를 또한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 자로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증거하고 나타내는 일에 주님이 중심에 계시다는 것을 선언하는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서 성도들이 그로 말미암아 힘을 얻습니다.

 

어두움이 점점 짙어지는 이 시대에 성도들이 흔히 쉽게 저지르는 잘못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나타내는 일을 점점 희미하게 하는 잘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주의 만찬에서 나타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전에 보았던 고린도전서 11장 첫 부분에 나오는 이 원리가 두번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원리를 강조하고 교정을 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교정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갔습니다. 주의 만찬에서 생기는 문제를 교정하기 위해서 사도들과 주님께서 함께 계셨고 만찬이 시작되었던 그 다락방으로 사도 바울은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 어려움이 얼마나 크던 지간에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에서 그 문제의 시작과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혜와 사람의 지식과 방법은 하나님의 지역모임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는 세상에서 필요한 그것들의 각각의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역교회에서는 오직 성경만이 해답입니다.

 

17절부터 22절까지를 보면 그 은사가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 나뉘어진 모습을 봅니다. 23~26절까지는 만찬에 그 제정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는 바울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 문제를 교정하고 바르게 하기 위해서 27~34절까지 사도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2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를 칭찬하노라고 하였지만 여기 17절에서는 너희를 칭찬하지 않노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모인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며 이 표현은 18절에 나옵니다. 20절에도 모여서라며 모임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많은 것들이 있지만 모임은 모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말씀을 따라 모이지만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일 때에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 태도가 그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성도들간에 모여서 영적인 교류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뻐하는 자들이 모이는 그러한 모임입니다.

 

영적으로 진보되고 더욱 배가되는 그러한 잘됨과 축복이 나타나야 하는 모임인데 실제적으로는 그러지 못하고 나빠져버렸습니다.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그 모임 가운데 분쟁 즉 나뉘어짐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구분이나 어떤 갈라짐은 없었지만 그 안에는 분쟁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지역모임의 집회 가운데 성도들의 다름이 나타났습니다. 편당이라는 것이 모임 가운데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구분된 어떠한 특징으로 인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임 내에서 내적인 어떤 분쟁이나 갈라짐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하고 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지역교회의 증거에 전혀 다른 모습의 실행과 어그러짐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모임 가운데는 가진 부자와 빈궁한 자 사이에 갈라짐이 생겼습니다. 성경은 증거하는 그대로 이것이 지역교회 집회 중에 발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집회 중에 모인 성도들은 모두 동일한 기초에서 시작한 자들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동일하게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세한 상황을 다루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겠습니다만 주요한 사항은 주의 만찬상 앞에서 이러한 구분이 드러난 것입니다. “너희 중에 이러한 분쟁이 있다 함을 들었다내부의 이러한 분쟁이 외부로 드러났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너희를 다르게 다루실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있어서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들이 나타나게 될 거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과 편당이 생기는 것은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주장으로 말미암음입니다. 그러한 움직임들 가운데 처음과 마찬가지로 건전하게 증거해온 자들이 그 가운데서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사는 서방지역은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소한 이유로 자기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모임을 떠나버립니다.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자리에서 증거를 지킴으로 주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20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선언해서 안먹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만찬을 대하고 있지만 그 태도가 나타나는 모습이 주의 만찬의 어떠함을 드러내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잘 살고 자기의 먹을 것을 준비해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모임에 먹을 것을 챙겨올 때에 빈궁한 자들이 오기까지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의 만찬을 먼저 먹어버립니다. 그 중에 일부는 취해버립니다. 1장을 읽은 이유는 여기에서 취하고 편당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1장에서 칭찬을 받은 바로 그 동일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편의 기자가 읊은 대로 나를 지키고 보존하소서라는 시를 알고 있습니다.

 

22절에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하나님의 교회에 와서 행하는 것이 마치 자기 집에서 행하는 것처럼 행한다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모임에 늦게 오는 자들은 가난하거나 대부분 그 시대에 노예 신분이었을텐데 그들을 기다리지 않음으로 그들을 부끄럽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늦게 온 이 사람들은 자기 식사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임이 모일 때에 오직 한 분 주님께로 모이기를 바라십니다. 정확한 것을 다 세세히 알 수 없지마는 이 말씀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이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자기와 출신이 비슷하고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임 내 작은 그룹을 또 형성하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는 성경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절대로 모임 내에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제 사도는 여기를 지나서 이 증거를 회복할 수 있는 가르침의 근거로 돌아갑니다. 보통 말하기를 최초 출현의 원칙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근본적인 증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23절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고 말하며 사도바울은 이 가르침을 베드로나 요한이나 그 만찬을 직접 제정할 때 그날 주와 같이 있었던 다른 사도들에게 배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가르침을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보다 지혜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러한 만찬은 유대인들을 위해 주신 것이고 유대인 믿는 자들을 위한 유대인적인 것이라고 주장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주님께서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이방인 믿는 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직접 주셨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서 마찬가지로 증거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거듭난 사람들은 그 육적인 성정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가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무엇을 너희에게 전했던지 그 전한 것들은 모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해답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적인 구성을 보면 주님께서 이것을 제정하시던 순간에 이미 팔리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제자 중 하나였던 사람이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과 얼마면 주님을 넘겨줄 것인지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종종 모임의 집회에 둘러 앉았을 때에 둘러 앉은 모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이 어떠한지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이유에 대해서 또한 생각합니다. 그러한 축복을 우리를 위해서 주시고 보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사도가 주목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주님을 기념하는데 있어서 가장 작고 핵심적으로 필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올바르게 평가합니다.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이것은 주님의 흘리신 피로 우리의 구원을 보증하는 보증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그 단순한 모습이 이제까지 남아서 우리들이 지금도 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사람들로 인해서 확장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주님의 가르침을 전할 때에 자기의 생각을 더하지도 않았고 자기의 판단을 빼지도 않았고 오직 있는 그대로를 고린도전서 11장에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세상에다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까지 이 간단한 예식을 행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만 이러한 예식이 행해지도록 주님께서는 구분해 주셨습니다. 상항이 어떠하던지 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역교회 내에서는 주의만찬이 실행될 것이고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장을 떠나면서 사도바울이 가르친 교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가지는 특권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심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둘러 모일 때에 주의 몸과 피를 분별해야 됩니다. 모임에 모이는 것은 늘 해서 친숙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살피라고 사도바울은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만찬의 자리에 모여 앉았을 때에 주님께서 어떠한 고난을 받으셨는지를 올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각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피를 흘리실 때 받은 그 고난이 얼마나 중한지를 우리들이 분별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주님께서는 홀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로 넘겨지셨습니다. 바로 이 단 한가지 이유, 즉 주님을 올바르게 분별치 못한 이유에서 실질적으로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약해지고 몸으로 실제로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했지만 그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함께 모여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일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가르침과 책망을 한 이후에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에서 흔히 하는 것처럼 모임에서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고난을 주님께서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10월 3 노원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