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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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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질서(주님의 머리되심)

알렉스 윌슨

고린도전서 11 2~16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6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16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우리가 읽은 이 말씀에는 사도가 다루고 있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11장은 두 구분으로 나누어지고 각 부분은 두 상징으로 대변이 됩니다. 이 두 상징은 하나님의 머리되심을 나타내는 것들입니다. 11장 뒷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상징물을 또한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이 11장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이 말하고 있는 범위를 볼 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교회가 나오며, 18절에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 22절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나옵니다.

 

오늘 볼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일 때에 모임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역교회로 모일 때에 일을 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11장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이 글을 써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교정입니다. 11:34 마지막에 보면 그 남은 것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귀정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이 11장에서 언급된 두 내용이 시급하고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나중에 다룰 문제들은 이 두 문제에 비교하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문제보다도 이 두 문제를 통해서 성도들의 관심과 마음이 주목되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라고 말함으로써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남자에 대해서 마땅히 해야 될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10절에서 여자에 대해서 똑같은 어조로 마땅히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 될 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즈음 보면 남자와 여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말씀의 권위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것이 우려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역교회에서 하나님의 머리되심을 나타낼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머리되심을 나타내는 방법은 하나님의 질서를 실행함으로써 표출이 됩니다. 그 하나님의 머리되심을 실행으로 나타내는 것은 남자의 쓰지 않은 머리이며 여자의 덮은 머리입니다. 16절에서는 이 실행이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서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과 말씀의 변치 아니함을 우리가 알 때에 하나님의 백성과 지역교회에서 시대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머리되심의 내용을 좀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머리되심은 진리에 있어서 그 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질서를 나타내는데 하나님의 머리되심이 가장 최우선에 있습니다. 온 우주 가운데 이 하나님의 머리되심과 질서가 표현됩니다. 여기에 있는 것을 보고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틀린 생각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될 것은 지역교회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 모으신 이 모임은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신약교회에서 다룰 수 있는 대상입니다. 곧 이로 인해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길 것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들의 증거를 귀히 여기시고 성도로 인정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 스스로를 겸비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4:23절에 온 교회가 함께 모여라고 했는데 이 말은 교회가 함께 모여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23절에는 한 장소에 두 부류의 무리가 함께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접된 자들이고, 그리고 무식한 자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교회와 그 위치에 대해서 배우지 못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지만 아직 교회의 교제 가운데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한 부류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그 자리에 와서 말씀을 듣지만 믿지 않은 자들(아직 구원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초기에 모임의 형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오직 믿는 자들만이 모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지역교회의 증거에 참여하기 위해서 거듭나고 배우고 영접된 자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를 합니다만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약모임 내에서의 집단은 오직 이 지역교회뿐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모든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역교회로 인도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지역교회 내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모든 지역교회의 모임에서 수행되어야 할 내용이 있음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매 번의 집회 또한 누구도 쉽게 볼 수 있도록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이 나온 이유는 당시 고린도 모임에 있던 성도들이 이 명확한 구분을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고린도 지역에서 남자들이 여자처럼 행동하고 여자가 남자의 자리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종교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점점 머리에 쓰는 것을 거절하고 버리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심의 문제입니다. 지역모임 내에서 일어서서 말씀을 증거하는 모든 형제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 중요한 문제는 고린도교회에서 처음 표면화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쓸 때에 형제들아라고 부릅니다. 이 초기 시대 때 마치 장군이 명령하는듯한 어조로 말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계속 교정만 하고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분들은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이 곧 명령임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하고 부여해야 합니다.

 

2절에서 말하는 유전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유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 의해서 영감받아 전달된 실질적인 안내를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23절에 실행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즉 사도 바울이 교회에 가르친 것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 받은 것을 전하는 것이며 개인적으로 추가한 것이나 뺀 것이 없이 그대로를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러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나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빼거나 더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주의 머리되심에 대한 가르침을 할 때에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주님께서는 백성들이 이 실행과 나타냄이 어떤 전통이나 물려 받은 것을 실행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이것을 실행하는지 그 의미 또한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실행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행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을 해야 되는지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실행만 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드리는 주된 내용은 여자의 머리는 기리어져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 모인 자매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만 과연 이 자리에 모인 자매들 중에 왜 머리에 쓰야 하는지를 영적으로 알고 게신 분이 몇 분이나 될까요? 하나님께서 이것을 유전으로 주셨다는 사실을 단순히 알고 시작하는 것은 금방 지나갈 수 있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고 지나가고자 할 때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명령)가 있습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기서 말하는 머리의 의미는 권세와 질서를 말합니다. 즉 온 우주적으로 이 지구에 사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모든 남자에 관한 권세를 갖고 계시다는 선언입니다. 대부분의 이 지구에 사는 남자들은 이러한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세는 존재합니다. 그리고 모든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하나님의 지역교회에서 남자의 자리는 권세의 자리입니다. 여기도 궁금함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거하실 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복하셨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지시하심에 온전히 순복하셨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코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보다 열등하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머리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역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자매들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자리는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자리이고 하나님의 질서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타내기 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자매들의 자리가 필수적이며 그로 말미암아 남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구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요? 하나님의 지역교회 안에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는 남자는 매우 창피한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매우 어리석다고 하는 것이며, 스스로 여자의 자리를 취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가리는 것입니다.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똑같이 그 머리를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자리를 뛰어넘는 행동입니다.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모든 남자보다 뛰어나다, 우월하다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말씀이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서 남자는 하나님의 머리되심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권위와 지역교회 안에서의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즉 지역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남자의 영광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을 어떤 이유와 근거에 의해서 이러한 가르침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질서가 나타나기를 바랬던 것일까요? 사도바울은 이것을 가르칠 때에 유대의 유전이나 구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나 문화적인 유전을 가지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바로 창조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에 있어서 이것은 귀중한 가르침이며 그 말씀이 나온 처음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고 하는 것은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정하신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창조의 내용이 이미 이와 같이 기록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남자를 통치하는 자리에 두셨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하나님께 책임이 있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통해서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수행하고 완수하는데 아담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돕는 베필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원하시는 바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아담의 위치는 지배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와의 자리는 아담을 돕고 보조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있어서 자기의 위치가 조력자라는 것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러함으로 하와는 아담에 비해서 열등하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아담을 돕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주신 자리를 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들이 지역교회 모임으로 모일 때에 머리에 쓰는 것을 주목합니다. 머리에 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옛 것을 고집하는 전통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지역교회 내에서 남자와 여자가 순종을 하고 실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증거하고 드러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거절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즉 이 가르침에 대해서 기뻐하지 아니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이러한 실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러한 가르침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론하려는 태도가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질서를 대적하려는 육신적인 의지와 욕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질서가 말씀대로 온전히 증거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 가운데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우리들 가운데 그대로 실행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3년 10월3일 노원모임)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