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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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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복음서에서 “베스”로 시작하는 여섯 곳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베들레헴, 벳바라, 벳세다, 베데스다, 벳바게, 그리고 베다니입니다. 접두사 “베스”는 “의 집”을 의미하며 이 장소들은 주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임하시면서 우리 세상에 오시고 마침내 감람산의 베다니에서 떠나신 주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감동적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베들레헴과 베다니 사이에는 완전한 사람의 아름다운 행로가 있습니다. 그 행로를 따라가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기쁨이며, 하나님께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준 그분의 삶의 아름다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라는 뜻이고 그 빵의 집에 하나님의 빵이신 그분이 오셨습니다(요 6:33).

 

베들레헴은 요한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계셨던 생명의 현현으로 세상에 생명의 시작을 알리셨습니다(요일 1:2). 우리의 교제는 이제 하나님의 빵을 먹으며 잔치함으로 아버지와 함께합니다.

 

베들레헴의 언급할 때마다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가요? 어느 날 나는 베들레헴의 중심에 나이든 성도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그 사랑하는 사람은 내 팔을 붙잡았고 그의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의 뺨을 흘러내릴 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가 베들레헴인가요? 여기가 베들레헴인가요?”라는 말이 전부였습니다. 구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추억이 넘쳐나게 합니까! 붐비는 여관; 구유; 포대기 옷; 그녀의 갓 태어난 아들과 나사렛에서 온 평온한 처녀; 몇몇 목자들; 하늘로부터 탄생을 알리는 천사들의 무리. 아마도 캐롤의 감정은 사실일 것입니다.

 

오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
여전히 주님의 누우심을 어떻게 보는가,
주님의 깊고 꿈 없는 잠 위에
고요히 별들이 지나가고
그러나 어두운 거리에서는 빛나고
영원한 빛,
모든 시대의 희망과 두려움
오늘밤에 주님 만나요.

 

하지만 더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89개 장들이 있지만 그 중 누가복음 2장은 다른 곳에서 발견할 수 없는 성육신에 관한 세부사항을 유일하게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는 위대하고 선한 여러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마에는 가이사, 나사렛에는 목수가 있고, 베들레헴 들에는 목자들이 있으며, 하늘 위에는 천사들이 있고,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두 연로한 성도가 있습니다. 로마, 나사렛, 베들레헴, 하늘, 예루살렘 등 이 장의 범위는 얼마나 광범위하지만 모든 것이 진정한 위대함으로 구유에서 아기, 하늘에서 오신 주님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이사의 통치, 목수의 빈곤, 목자의 직무, 천사들의 영광과 성도들의 경건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주권, 더 깊은 빈곤, 참된 목자의 성품, 더할 나위 없는 영광, 그리고 놀라운 경건함은 모두 강보에 쌓여있는 거룩한 아기에게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트,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성하다고 강탈한 직함이었으며 그의 제국에서는 카이사르에게 신성한 영예가 부여되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세상에서 그는 실제로 주권자였고, 그리고 그 주권 안에서 그는 그의 왕국의 거주민에 대한 인구 조사를 실시하라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조상의 도시에서 등록하도록 요구되었으며 이로 인해 다윗의 집안의 가족이 되는 요셉은 그의 약혼자 아내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여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 아구스트는 자신보다 더 큰 주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황제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 안에 휘둘리는 것과 같았고, 실제로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갈 것을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가까워진 탄생은 실제로 오랫동안 약속된 메시아의 ​출​현이었으며 메시아가 유대 땅 베들레헴, 에브라다에 있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예언이었습니다(미가 5:2). 물론 요셉의 고향 나사렛에서 훨씬 더 가까운 바로 몇 마일 떨어진 거리에 베들레헴, 하갈릴리트 베들레헴, 갈릴리 베들레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편리했을지 모르지만 예언에 따르면 유대의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5,6마일쯤 떨어진 곳인데 이는 어렵고 종종 위험한 나라를 거쳐서 나사렛에서 70마일을 여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수를 움직인 것은 카이사르의 통치권이었지만 카이사르를 움직인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여행했으며 누가는 거의 사실적으로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처럼 그들이 거기 있을 때에 그녀가 해산할 날들이 다 차매 그녀가 자기의 맏아들을 낳아 포대기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 2:6) 많은 다른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했었고 그 도시는 여관이 있었으나 혼잡했습니다. 누군가 “방이 없다”고 말했으며, 또한 마리아는 그녀의 맏아들을 낳고 강보에 싸서 그분을 구유에 눕혔습니다. 메시아가 오셨는데! 최고의 환영도 없었습니다. 어떤 화려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유에 누운 아기는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심”(딤전 3:16)이었습니다. 이제 신자들은 노래합니다,

 

저 마구간에서 그분은 누구인가?
목자들은 누구의 발에 넘어지는가?
주님이시여, 오 놀라운 이야기여
영광의 왕이신 주님이시여,;
그분 발 앞에 우리는 겸손하게 내려가
그분께 관을, 그분께 관을 만물의 주님.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베들레헴에 대한 첫번째 언급이 아닙니다. 최초의 언급은 창세기 35:19; 48:7에서 발견되며 여주인 라헬이 아들을 낳으면서 베들레헴 외곽에서 죽었습니다. 그녀는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그를 베노니라 이름지었지만 그의 아버지 야곱은 “나의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베냐민으로 그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복되신 주님에 대한 예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분을 슬픔의 사람으로만 알았지만 그분의 슬픔에서 하나님의 우편으로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현재 묵상과 일치하지 않는 사사 시대의 베들레헴에 관한 다소 슬픈 언급이 있지만 베들레헴은 당시 보아스와 룻의 고향이자 그리스도의 빛나는 조상 다윗의 출생지였습니다.

 

보다 더 많이 말해야 하지만, 또 다른 장을 위해서…

 

http://www.truthandtidings.com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