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짐 플레니건

이전의 묵상에서 2장에 있는 구주의 성육신에 관한 누가의 설명은 황제 카이사르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지만 곧바로 목수 요셉에게로 옮겨진다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제시되었던 것은 하나는 주권을 묘사하고 다른 하나는 빈곤을 나타냈으며, 진정한 주권이 그렇게 구유에 있는 것처럼 또한 진정한 빈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그분의 부와 영광을 완전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구주의 빈곤 또한 실제로 측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가난하게 되셨다”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너희가 그분의 가난을 알고”(고후 8:9). 그분은 하늘과 땅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소유하셨습니다. 천 산의 언덕에 가축은 그분의 소유입니다(시 50:10). 그러나 그분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다른 단어들은 신약성경에서 가난한으로 번역되어 빈곤의 변화 정도를 나타내는 이 단어는 “가난”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주님은 결코 재산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세상에서 재물을 축적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돈을 취급하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약간의 개인적인 의복을 남기셨는데 이것들은 무단 도용 당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또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은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때 당시 그녀는 주님을 위한 제물을 바칠 때, 가난한 사람을 위한 율법을 따라서 단 두 마리의 작은 새들만 제물로 드렸습니다(눅 2:22-24; 레 12:2,6,8).

 

황제와 그의 자손은 주홍색과 왕족의 옷을 입었지만 목수는 참으로 가난했고 마리아의 자식은 강보에만 싸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세상에 대한 신성한 방문을 위해 일시적으로 자신의 영광이 가려진 지극히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그런 다음 목자들을 소개합니다. 오늘날 베들레헴의 들판에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의 계시가 죄인들 중 가장 가난한 목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통회하는 마음 중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도다.”라는 명패를 읽습니다. 천사의 사자들이 먼저 목자들에게 기별을 전한 것은 얼마나 흥미롭고 또한 얼마나 매우 합당한 일인가요. 그들은 왕과 그의 무리, 총독과 사분영주들을 모두 우회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 당시 유대에서 섬겼던 대제사장들과 대제사장들의 무리들을 무시하고 겸손한 목자들에게 먼저 나타났습니다.

 

목자들은 들판에 머물고 밤을 지새며 그들의 양떼를 돌보았습니다. 밤낮으로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는 힘든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의 목자가 베들레헴에 오셨고 구유 침대에서 강보에 싸여 잠자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분은 육체의 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거니와” 또 다시 “나는 선한 목자라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아느니라”(요 10:11,14). 그분은 고용되지 않았습니다. 양들은 그분의 것이었으며 그분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실 것이고, 그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을 사랑할 것입니다. 목자들이 “이제 우리가 베들레헴까지 가서 … 일어난 이 일을 보자”(눅 2:15)라고 말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기억에 남는 밤에 있었던 광경과 장면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수많은 천군이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소수의 비천한 목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것과 참으로 그들이 가져왔던 메시지! 그것은 기쁜 소식과 큰 기쁨의 메시지였습니다. 구주가 탄생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그리고 땅에서는 평화! 아마도 창조의 날 이후로 이처럼 기뻐할 때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천군에 속한 천사들 중 일부는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기 38:7)라는 창조의 아침을 기억하였을까요?

 

주목할 것은 선포하는 천사가 목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 주위에 비취었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나 주님의 영광보다 더 큰 것은 영광의 주님 그분이 강림하셨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누가복음의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고약 40여일 후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아기를 데려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의 위선과 불신과 민족의 무관심이 한창일 때에 진정으로 메시아를 기다렸던 마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들 중, 시므온과 안나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안나가 있었는데”(눅 2:25,36).

 

시므온은 얼마나 진실한 예배자였는지! 그는 그리스도를 팔에 안고 성전에 서서 위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시대 이후에 우리는 더 큰 성전에 서서 하나님의 복 안에서 그분의 아들에 대한 은혜에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여기에 어떤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한 시므온(28절)은 그들을 축복합니다(34절). 하나님을 좋게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좋게 말합니다. 또한 시므온은 이스라엘을 너머를 볼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던 그분이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이 되실 분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안나도 마찬가지로 이 날을 위해 기다려 온 진실로 헌신된 혼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우 고령이었습니다. 그녀는 결혼 이후 91살이 되었지만 7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이제 84년 동안 과부가 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그녀는 금식과 기도의 봉사에 자신을 드렸으며 밤낮으로 결코 성전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 대한 말들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바라는 자들에게 그분에 대해 말했습니다. 구속자가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어떤 추억인가요! 그러나 경이의 중심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입니다. 우리도 또한 진심으로 섬기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