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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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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 3 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지역교회를 오게 되면 저는 그냥 집에 가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이 모임을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대화한다면 아마 당황할 것 같습니다. 이 모임의 특징이 저의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 대해서 가르치는 말씀집회가 있었는데 5일정도 진행되었습니다. 첫날은 솔로몬의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정에 대해서 그리고 솔로몬의 기도에 대해서 가르쳤을 때 듣는 이의 모두의 마음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정이 진행되면서 솔로몬의 건축 계획으로 진행이 되면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뿐만 아니라 그 외의 큰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여러가지 지혜와 부에 대해서 말하게 되고 날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고조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아시는 대로 솔로몬의 마지막 때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 모든 금들이 더 이상 빛나지 않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 지은 큰 건축 계획들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우상을 위한 신전들을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아는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큰 자였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큰 왕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이도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마지막은 나쁘게 끝났습니다. 말씀 전하는 분이 이렇게 끝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이제 성경을 덮고 집에 가서 기도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주여! 나를 지켜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마찬가지로 라오디게아 모임에 대해서 읽을 때 같은 마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모임을 볼 때에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 입에서 토해 내겠다는 모임에 우리가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매우 비극적인 결말로 저희는 도착해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많은 라오디게아인들의 태도가 제 마음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인들의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보통 영어권에 대해 말하기를 무슨 상관이냐라는 표현을 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다가 망가뜨리면 , 어때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합니다. 10대들이 법을 어겨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 어때라고 해버립니다. 어른들이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도 누가 상관하겠는가?”라며 그냥 넘어가버립니다. 어떤 고약한 법이 만들어진다 해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무슨 상관이냐?”라며 그냥 넘어가버립니다. 모임에 있는 분들조차도 문제가 발생을 해도 상관하려 하지를 않습니다.

이 일곱 지역교회와 관련된 비밀에 대해서 보는 것이 약간 도움이 되겠습니다. 1 20절에 일곱 별의 비밀의 비밀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주님께서 왜 이 일곱 지역모임을 택하셨을까요? 이것을 통하여 이 일곱 지역모임에 각각 다른 상태를 보여주시고자 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것을 보면 지역교회의 역사에 관한 큰 힌트들이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200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이 지역교회의 흐름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 역사와 일곱 지역교회들을 맞추어보게 합니다. 이것을 함께 잠깐 돌아보겠습니다.

에베소는 첫 200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초기시대는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받은 성경을 직접 배우고 그것을 따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려는 열정을 상실해 버리는 사랑을 그들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150년 동안은 핍박으로 그 특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신으로 자처하는 시저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죽임을 당했는데 이것은 서머나의 핍박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버가모의 상태로 넘어가게 됩니다. 버가모는 결혼이라는 의미를 설명해드렸습니다. 오순절 이후 300년쯤 지나서 로마황제는 실제로 기독교를 흡수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연합으로 성도의 믿음을 이방 종교와 섞어버렸는데 복음 전도에는 효과적이었습니다. 칼을 목에 갔다 대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냐? 안 믿으면 너를 죽여버리겠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제가 아는 바로 일본제국 역시 일본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이 기독교 국가는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힘으로 국가를 만들 수가 없소.”라고 했는데 일본 왕이 그 말을 듣고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복음이 전해졌을 때 여러분이 직접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한 일은 1,000명의 선교사와 수백만권의 성경을 공급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1,000명의 선교사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오순절 이후 300년경이 지난 후에 로마황제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이방종교를 섞어버림으로써 믿음을 변질시켜버렸습니다. 그 섞인 결과가 두아디라입니다. 그 이후로 1000년간 로마 카톨릭이 지배를 하게 됩니다. 두아디라를 보면 그 가운데서 로마 카톨릭 체제를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95개조의 반박문을 붙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에 대항했습니다. 갑자기 복음의 진리가 회복되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어있는 사데교회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개신교회들이 여러갈래로 갈라져 버렸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1700년대와 1800년대에 복음의 회복이 놀랍게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로 빌라델비아교회가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질문을 던져봅니다. 오늘날 빌라델비아의 교회의 상태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까? 1700~1800년대는 놀라운 복음 전도의 시대였습니다. 세계 전체로 선교사들이 퍼져 가면서 교회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문이 놓인 것 같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러한 열정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제 고국에서 라오디게아 상태를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저는 역사에 세세하게 말씀드리지 않고 개요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처음에 셋과 뒤에 넷으로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뒤에 네 개의 상태는 주께서 오실 때까지 지속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두아디라교회의 상태는 로마 카톨릭으로 대변이 되는데 이 상태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이름만 남아 있는 기독교라는 기독교계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빌라델비아라고 불리는 이 상태가 다행스럽게도 작지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상태는 주님께서 오실 때 대부분의 상태를 차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일곱 개만을 보았을 뿐입니다. 다른 시대는 시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은 주님께서 타작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지진과 큰 쓰나미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다시 오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 물론 주의 성도를 건지시러 오실 것입니다. 이 때에도 이 땅에 남아있는 자는 환난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은 심판을 받기에 이미 다 익었습니다. 만약에 이 지구의 판이 갑자기 뒤틀려 버리면 온 세계가 멸망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환태평양대의 재난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 피해가 어떠할지 이미 알고 잇습니다.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일본에 그 지진들, 다음은 누구입니까? 밴쿠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그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면 칠레나 이런 남아메리카 지역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 이러한 일들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징조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진이 전혀 없다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오늘밤이라도 당장 오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 지구가 재앙을 당하기에 충분히 익었다는 것입니다. 나무에 과일은 너무 오래 익어버리면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제 마음을 두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남겨질 우리가 아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재앙이 올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것들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어떤 복음 전도자가 있습니다. 다른 형제에게 이 전도자가 어머니가 자식에 가지는 사랑에 대한 예화를 들려주었습니다. 말하기를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 예는 이렇습니다.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매우 좁은 집에 문이 하나 있는데 그 집을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범죄가 많은 위험한 지역에 있는 집처럼 창문마다 창살이 다 되어있으며 문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가족이 그 문을 통해서 매우 큰 물건을 꺼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물건이 문에 끼었을 때 남자가 그것을 꺼내려고 이리저리 움직여 봅니다. 어찌할 줄 몰라서 어떻게 해야 되지하면서 돌아보고 있을 때 갑자기 창문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에 큰 물건이 끼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아이가 불난 집 안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큰 물건을 꺼내기 위해서 남자가 용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 불이 점점 거세게 타고 있으며 아이는 울면서 엄마를 찾습니다. 남자는 끼어 있는 물건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달려가서 끼어 있는 물건을 잡고 한 손으로 그 큰 물건을 끄집어 당겨냅니다. 그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엄마는 큰 힘을 발휘해버렸습니다. 이 복음 전도자가 생각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가지셨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화로 이것을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은 형제가 똑 같은 이야기를 이야기 해주어야지 하고 다음주 주일이 되었습니다. 집에 대해서, 문이 하나에 대해서, 그 문을 꽉 막아버리는 큰 물건, 아이가 안에 있으며, 꽉 낀 물건 때문에 어찌할 줄 모르는 남자, 그리고 큰 주먹을 가리키면서 엄마가 그 물건을 끄집어 내었다는 것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것을 듣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다하며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뭔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린다던가 감동보다는 혼란스러워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집에 가서 자기 아내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왜 내가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들은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고 오히려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더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그 집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지 않았지요?”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이 불이 났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는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를 말합니다. 아이처럼 어찌할 줄 모르는 상태를 말해줍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일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집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왜 그들이 그리스도가 필요한지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라오디게아 지역모임에는 불이 났다는 사실을 빼고 복음이 전해집니다. 이것을 좋아하던 말던 무슨 상관이냐? 그리스도를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를 한번 시험해보라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저희 나라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은 복음을 받아야 하며, 지옥 불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믿지 않으면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너희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하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불이 꺼져 버렸다. 너희의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 세상을 따라서 그냥 조용히 가고 있구나.

14절에서 주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시는지를 보겠습니다. 주님 자신에 대한 세 가지를 나타내고 계십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아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진실로 또는 진실로 그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기도 끝에 이 아멘을 사용합니다. 그의 기도를 듣고 난 뒤에 다른 성도들이 아멘 해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을 갖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완전한 인식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가리키실 때 이 아멘이라는 말을 사용하시면서 자신이 진실된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사람으로서 참되고 충성된 증인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충성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상태와 바로 대비가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진정 참된 증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상기시켜 주시기를 내가 참된 증인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는 말은 호칭입니다. 미국 대통령의 부인을 퍼스터 레이디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처음 부인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위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조의 근본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근본이라는 호칭은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심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에 대한 세 가지 묘사를 보았습니다.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하나도 좋은 말씀을 하지 못하십니다.

골로새서 마지막에 보면 다른 종류의 두 모임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가 그 주변에 있었습니다. 이 세 모임이 같은 지역에 있었습니다. 히에라볼리, 골로새, 라오디게아. 이 도시들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히에라볼리는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한국에도 유명한 온천이 많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에는 많이 있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관만 땅에 꽂으면 온천수가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입니다. 온천마다 물 색갈이 다른 것을 압니다. 어떤 곳에는 갈색, 어떤 곳에는 초록물이 나옵니다 어떤 곳에는 하얀 물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온천이 당신의 건강에 가장 좋은 온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온천이 건강에 좋다고 생각을 하시는지 안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온천이 몸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히에라볼리에 있는 온천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좋은 관광지였습니다. 이 온천은 의료 치료적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에는 온천이 없습니다. 아주 시원하고 청량한 깊은 광천수가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온천에 질린 사람이 골로새에 와서 관을 박아서 나오는 물을 마시면 매우 청량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는 온천도 없고 광천수도 나오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물의 형태의 지하자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디에서 물을 얻었을까요? 한쪽에서 긴 관을 통해서 가져옵니다. 골로새에서 끌어오는 물이 출발할 때는 차가웠지만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쯤이면 온도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들이 히에라볼리에서 의료의 목적으로 온천수를 끌어오려고 했었다면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 물이 어떠했을까요? 만약 큰 통에 담아서 가져온다 해도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쯤이면 그 물의 온도가 어떠했을까요?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미지근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마셔보고는 바로 뱉어버릴 것입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 16절을 보겠습니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치료적인 목적의 뜨거움도 없고 상쾌하게 하는 차가움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희들은 쓸모가 없구나. 너희들이 뜨거웠다면 의료적인 목적으로 소용이 될 텐데, 너희가 차갑다면 마시기 좋을 텐데그러나 라오디게아 모임은 주님께서 사용하실 수가 없는 모임이었습니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섞여서 견딜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 말하는 바를 들어보십시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해서 할 말이 많았습니다. 17절이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말해주는데 세 가지입니다.

나는 부자다, 부요하다, 부족한 것이 없다

여기에 쓸모없는 지역모임과 그것을 알지 못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으니 괜찮습니다.”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그 이상으로 이미 커져버렸습니다. 이것이 지구상에 있는 오늘날의 많은 모임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성장해버렸습니다. ‘복음시간을 가지는 대신에 커피와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자. 누구도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이미 구식이다.’ 예전에는 등대가 홀로 빛을 비추어 위험을 알려주었지만, 제가 있던 캐나다에는 태평양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브리티스 콜럼비아 지역으로 배들이 수없이 와서 부딪혀 침몰했기 때문입니다. 브리티스 콜럼비아 해안에 보면 일본 배들도 많이 침몰되어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브리티스 콜럼비아가 있는 밴쿠버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등대가 뱃사람들에게 경고의 표시로 비추어 주었습니다. 뱃사람들이 말하기를 저 빛이 없으면 나는 사고를 당해 죽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말합니다. “등대는 이미 구식이다. 큰 등대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다. 큰 배들은 등대를 보고 다니지 않는다.” 이 말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복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등대와도 같은 복음증거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끝이 나버려 경고가 사라져 버립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누가 상관하겠느냐. 그 등대 불을 꺼버려라. 우리는 더 진보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지옥의 가르침보다 더 큰 것을 가지고 있다. 죄 그것은 예전에 말이고 할아버지 때나 통하던 말이지 우리는 앞 세대 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심리학이다. 우리는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자. 사람이 어떻게 자기 문제를 풀어나가는지를 우리는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나는 부자라 다른 어떤 모임들보다도 더 부요하고 더 똑똑하고 더 많은 것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식이 풍부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대학교에서는 더 이상 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가르쳤었습니다. 그런데 지식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지역모임이 그리스도가 이제는 필요 없다 할 정도로 성장해 버렸습니다. 자만하게 되었습니다. 자급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스스로 만족합니다. 나는 부자다. 저는 2011년 지금의 전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는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역모임에 주는 말씀입니다. 이 지역모임은 바로 세상과 똑같아져 버렸습니다. 어떤 성도라는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너무 그렇게 소리치지 마세요,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합니다. 복음 선포하는 대신에 성경공부를 하시죠. 불교신자, 일본 신도 신자, 기독교인, 다 모아놓고 똑 같은 수준에서 서로 토론을 해 보시지요. 이것이 오늘날에 존재하는 모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남자로 하여금 일어나서 성경의 권위를 선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거짓되고 잘못된 수준의 가르침을 놓고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이 지역 모임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나는 부자라고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너는 가난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게다가 자신의 상태도 알지 못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알지 목하는 사람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약함을 안다면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참으로 연민을 느낄 것입니다. 영적인 교만이 라오디게아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자만할 것이 하나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값 주고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에 말씀하는 세 가지 살 것이 17절에 나오는 다섯 가지 부족한 것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눈 먼 것에 대하여 내게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벌거벗은 것에 대해서 내게 와서 흰 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내게서라는 말에 강조가 있습니다. 이 지역 모임에 필요한 필요를 그리스도께서는 충분히 공급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자기 자신들은 부요하다고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가난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책망 받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은 지옥을 가르치고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은 죄인이오라고 하고는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데려갑니다. 금을 사라는 것은 세상에서 무역하듯이 실제로 금을 사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임 금을 가졌다는 것은 그 금을 사기 이해서 얼마만한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교만을 대가로 내어야 했습니다. 영적인 금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영광을 대신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교환대상인 것처럼 그리스도로부터 금을 가지는 것과 세상의 영광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가지십시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금을 가지기를 바라신다면 세상의 것을 버리고 여러분의 죄를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얼마나 벌거벗고 있는 상태를 말해줍니다. 너희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옷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실제 상태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안약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에 필요를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준비를 그리스도께서 이미 하고 계십니다. 우리 지역 모임에서 어떤 금을 진정 원하십니까? 하늘의 보화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의 어떤 것을 더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대 가운데서 비교적 부요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단순하고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삶만 돌아보아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집이 점점 더 커지고 좋아집니다. 차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교육과 직장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세상의 일들이 지역모임의 힘을 빼앗아 갑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인식조차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교육이 필요하고 저도 역시 큰집이 필요합니다. 내가 살 수 있으면 큰 차도 필요합니다. 최신형 휴대폰이 필요하고 새 컴퓨터도 필요합니다. 나는 이것이 필요하고, 필요하고필요하다는 것이 세상의 외침입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 여러분! 스스로 대답해 보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원하는 바입니까? 제가 제 마음 가운데서 라오디게아를 발견하듯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이러한 상태를 발견하십니까? 진정한 금을 얻기 위하여 이제 그리스도께 가야 할 때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차를 팔아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말씀은 물질적인 것이 영적인 축복을 제약하지 않도록 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캐나다는 기독교 국가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그들은 전능한 달러 화를 숭배합니다. 어떤 때는 미국 달러보다 캐나다 달러가 더 낫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물질을 갖기 원하며 그 물질이 신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점점 지역모임들이 물질화 되어갑니다. 순수한 삶을 위해서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약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진정한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십시오. 캐나다의 어떤 형제들은 엎디어서 무릎 꿇고 너희 성경을 열어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의자에 물론 앉아 있어도 상관 없습니다만 마음으로는 무릎을 꿇고 여러분들이 성경을 열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열고 자기의 진정한 상태를 말씀으로부터 확인하시라는 말씀입니다.

19절에 내가 사랑하는 자가 나옵니다. 이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변질되어 버렸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대한 사랑은 여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든지 들어와서 그러므로 네가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간혹 이렇게 말합니다. “왜 이렇게 악한 일들이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가?” “왜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는가?” 제가 모든 답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서 물질적인 것을 없앰으로 말미암아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방편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20절에 이 말씀은 개인적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문을 그리스도께서 지금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복음에 적용하기를 좋아합니다마는 지금 이 말씀은 모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라오디게아 상태는 온 세계에 지금 퍼져 있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하나님께 다시 열정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당신은 한국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모임의 역사가 매우 복잡합니다. 우리는 해결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과 관련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서 하시는 말씀은 너는 아직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환경을 탓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을 두드리시는 그 두드림 소리에 우리 각자가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주의 입의 말씀으로 내셨습니다. 입에서 토하여 내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그 마음의 회복을 바라고 계십니다.

21절은 주님의 문 두드리는 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기는 참된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를 나누어 갖습니다. 복음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구원받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이 땅을 지배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주님께서 친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데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여러분들은 보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안으실 것입니다.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왕의 보좌가 하나 있고 그 주변에 다른 보좌들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왕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을 왕의 주변의 보좌들에 앉히실 것입니다.

이것을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고 약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보좌에 앉을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이것을 믿으면 진정 다른 삶을 사실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불이 일어나서 그 불이 확 달아오를 것입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면 그에게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진정 믿는 자이고 내 이웃이 지옥으로 가게 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에게 말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증거하지 않는 이유를 아십니까? 우리 마음 가운데 너무나 많은 라오디게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맡깁니다. 집에 돌아가서 여러분들 스스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불타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두드리시는 두드림에 반응하는 한 사람이 바로 저일 것입니다. 저의 기도는 여러분들의 구원자께 열심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 5 10() 의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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