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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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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아디라 교회

다시 의왕모임에 오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형제님이 앞서 말씀을 전하실 때 내가 한국말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내용을 알고 나니 매우 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항상 말해 오기를 가나안은 천국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을 보면 적들과 늘 싸우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2 18~29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러분들이 두아디라 모임을 방문해 보았으면 어떨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김포와 강서모임을 방문했을 때 기뻤습니다. 여기 의왕모임을 다시 오게 된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를 두아디라 모임으로는 초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거기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만나고 싶지 않은 이세벨이라는 여자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세벨이라는 이름이 진짜 이름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특징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 딸의 이름을 이세벨이라고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 즉시 떠오르는 것은 악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여인이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을 가장 화를 내셨습니다. 이 모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우리는 모릅니다. 에베소는 아시아해에 연해있는 해안 도시이고 거기서 북쪽으로 서머나, 거기서 약간 북쪽으로 가면 버가모, 거기에서 약간 동남쪽으로 내려오면 두아디라가 있습니다. 에베소는 거의 중심지로서 아시아 전역에 복음이 퍼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도시에서 아주 좋은 여인이 온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두아디라에서 온 여인 루디아가 사실상 유럽에서 최초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여러분의 딸에게 붙여줄 좋은 이름입니다. 외국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이름들을 자기 딸들에게 붙여주는 경우가 흔합니다. 부모님들은 자기 딸이 루디아, , 도르가처럼 자라기를 바라면서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 메시지와는 상관없습니다만 저는 룻이라는 이름의 자매와 결혼했습니다. 루디아는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 13~15절을 펴서 이 좋은 여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지를 보겠습니다.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인이 나옵니다. 그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들었습니다. 거의 즉시 이 여인이 침례를 받은 것을 보십니까? 앞 시간들에 침례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루디아는 주님께 충성하고 싶었고 그 첫 단계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복음 전하는 자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기를 원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에 많은 여인들이 주님께 공궤하며 섬겼던 것을 기억합니다. 여기서 주의 복음 전하는 자를 섬기는 것이 나옵니다. 15절의 마지막을 보면 매우 열정적으로 강권하여서 하나님의 일을 도우려고 노력한 것을 봅니다. 40절에는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풀려나면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충성되고 신실되기 때문에 일군들이 의지할 수 있는 자매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가지를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루디아가 일어나서 가르치기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자매에게 전해주신 지역모임의 자리에 그 여인은 충성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도왔습니다. 교사들은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지 않으면 가르침에 전무하기가 어렵습니다. 지역모임 내에 가르침의 자리를 따로 남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매들에게 지역모임 내에 특별한 자리를 주셨는데 교사들을 돕는 자리입니다. 형제와 자매가 각각의 부여 받은 자리를 잘 지킨다면 그 모임은 훌륭한 모임이 될 것입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이 루디아가 두아디라 성으로 복음을 가지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두아디라 모임에는 선한 일이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으로 돌아와서 보면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여기에 보면 선한 사업과 행위를 봅니다. 그 모임에 사람들은 마치 루디아와 같이 행동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루디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지역모임에서 그러함 섬김을 주님께서는 사랑하십니다.

18절에 주님께서는 이 지역모임에 자신을 세가지 모습으로 나타내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로, 두번째는 그 눈이 불꽃같다고 하시며, 세번째로 그 발이 빛나는 주석과 같다고 하십니다. 이 모습은 앞서 사도요한이 이상 중에 본 주님의 모습인데 그 모습이 나올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을 때 바로 지역모임의 주인이라는 말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다른 여러가지 뜻이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는 지역교회의 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12살 되셨을 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부모에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집에서의 권세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눈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 눈이 불꽃 같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가지신 지식적인 면으로 보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말은 고린도전서 3장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공력이 어떻게 불로 시험을 받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금과 은과 보석은 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나무와 풀과 짚은 타서 없어져 버립니다. 불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주님의 눈입니다. 지역모임에서 여러분의 행위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보고 계십니다. 어떤 것이 끝까지 남을 것인지 어떤 것이 타서 없어질 것인지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의왕 지역모임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지역모임의 지체로서 한 분 한 분을 주님께서 감찰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을 보십니까? 순전한 가운데 끝까지 남는 무언가를 여러분 가운데 보십니까? 아니면 많은 사람의 지혜를 보고 계십니까? 지금 바로 이 순간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주의 발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악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판관으로서의 능력을 말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아!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눈이 불꽃 같고 발이 주석 같으니 참으로 두려운 장면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역모임 내에서의 주님의 모습이 이러한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백성 가운데 계신 이러한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부분을 우리는 자주 놓치는 것 같습니다. 지역모임은 단순히 친목단체가 아니라 주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경건과 모든 거룩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지역 모임이 유치원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능하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조용히 앉아서 경외함으로 들을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그렇게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둘이나 있어 압니다. 아일랜드의 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경외함으로 배웁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아이들을 이해 하십니다. 기억할 것은 어른 들은 반드시 지역모임 내에서 경외함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눈이 불꽃 같고 발이 빛난 주석 같은 분이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시며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역모임에 성도들은 선한 행실로 그 특징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두아디라는 그 좋은 예입니다.

이제 문제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두아디라 모임에는 거기에 있지 말아야 할 여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들의 죄는 그 여인을 용납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지적하십니다. 그 모임에서 그 여인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은 자칭 여선지자라고 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은 모임 내에서 매우 잘못된 것을 가르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멈추시오하고 제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역 모임 내에서 음행과 우상숭배가 이 모든 것들이 한 여인 이세벨 때문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역모임에 부패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이 세상에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역모임의 자매들이 모두 루디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아디라 성도들은 아마도 우리 모임 가운데는 매우 능력 있는 자매가 있다는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고린도 지역모임을 기억하십니까? 자기들 가운데 존재하는 죄를 용납할 수 있는 포용이 있다고 스스로 자만하였습니다. 이 두아디라 지역모임에서 이 여인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형제들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합이 힘이 약했기 때문에 왕비 이세벨이 모든 악한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역모임을 이끌어갈 능력 있는 형제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세벨을 감당할 만큼 두아디라에 있던 장로들이 힘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잠깐 지역모임에서 자매들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자매들이 집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베드로전서 3장을 보시면 됩니다. 여인 안에서 참다운 아름다움은 거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위험한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자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얼굴에 얼마만큼 분칠하느냐가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닙니다. 두아디라에서 이세벨이 한 일은 자기를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이세벨은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화장을 한 여인이었습니다.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러나 그리스도인 자매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고 단정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모데전서 2 8~13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여기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나오는데 아담한 옷을 입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갖추었습니다. 자기를 나타낼 때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치장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선행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자매님들을 지역모임에서 발견할 때 기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따로따로 축복하셨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의 얼굴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여러분의 얼굴이 어떠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을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결혼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역모임에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 한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세상에 나가면 항상 눈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지역모임에 오면 제가 편안합니다. 세상에서도 제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옷이 아담하지 않다면 아름다운 자매가 아닐 것입니다. 이세벨이 무슨 옷을 입었을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아담한 옷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스스로 자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디모데전서를 보면 여인들은 가르치기를 허락되지 않다는 것을 봅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기르는데 있어서 자매들에게 특별한 일이 주어졌음을 봅니다. 디도서 2장을 보면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늙은 여인이 젊은 여인에게 집안에서 어떻게 일을 해야 될지를 어떻게 남편을 사랑해야 될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디도서 2장에 나오는 늙은 여자가 젊은 여자를 가르친다고 하는 그 가르침은 남자처럼 일어서서 가르치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디도서 2장의 가르침은 서로서로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배우도록 하는 입장의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2장의 이 이세벨은 지역모임에서 직접 가르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지역모임을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자신을 선지자라고 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가 나를 통하여 나왔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라고 하는 말씀은 저 여인이 내 종들을 망치고 있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멈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임해서 그녀를 침상에 던질 것이고 그의 자녀들 또한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직접 심판을 받게 될 실제인물들임을 말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다른 지역모임들은 두려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역모임을 파괴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어떤 지역모임을 압니다. 매우 크고 사람들이 붐비고 말씀집회를 여는 그러한 모임을 압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오늘날 두 세 형제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을 두렵게 하지 않습니까? 고린도 지역모임은 많은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아 약하고 병들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을 겁나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없이는 행동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역모임 내에서 죄를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21절에 보면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다고 했듯이 회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24절에 보면 이세벨을 용납하지 않는 자들이 그 지역모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모임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 있는 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세벨과 그 자녀들은 심판하실 것이지만 이 남은 자들은 믿음 가운데 굳게 서 있었습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간에 여러분의 지역모임이 이와 같이 굳게 서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반대할 때 참으로 어렵습니다. 매일 같이 주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이것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떤 때는 자매가 집에 와서는 막 울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지역모임에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죄가 용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매만이 문제를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이 경직되기 시작합니다. 아픔을 느낍니다. 병일지도 모릅니다.

25절에서 한가지를 하시고자 한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 진리를 굳게 붙잡고 흘려 보내지 마라.” 주님의 다시 오심이 첫번째로 약속된 모임이 바로 이 모임입니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엇을 위해 서 있는지를 내가 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기다려라. 모임이 회손되어 있을지라도 내가 갈 터이니 기다려라.” 주님께서는 다른 어떤 약속들을 많이 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내가 간다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 남은 자들은 지역모임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눌려져 있었습니다. “내가 갈터인데 언제가 너희들이 나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임이 너를 반대한다 할지라도 언젠가 나와 함께 만국을 다스릴 것이다. 천년왕국이나 영원의 시대에 들어가면 이 때에 압제 받던 백성들은 주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새벽별을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버가모 지역모임에 대해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감취었던 만나 즉 그리스도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새벽별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진정한 믿는 자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리스도입니다. 더 나은 것이 있습니까? 왜 여기서 주님께서는 새벽별이라고 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매우 어둡습니다. 의의 태양이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떠 오르기 전에 그것을 알리는 새벽별이 보이게 됩니다. 말라기 4장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만 여기의 새벽별은 교회에 대한 약속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곧 새벽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오기 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입니다. 물론 대환난 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새벽별을 보게 되는 의미는 새벽이 밝아온다는 의미이며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믿는 자들을 만족시킬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새벽별을 어둠에서 바라봄으로써 날이 밝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지역모임은 가장 부패한 지역모임이었습니다. 이 완전히 부패한 가운데 순전한 새벽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밤 여러분들이 이 새벽별을 보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 5. 9() 의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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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