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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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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 교회

쟈켓을 입지 않고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예절보다는 더워서 그렇습니다. 긴 겨울이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더운 계절이 왔습니다. 계시록의 빌라델비아 모임을 보기 전에 사사기 6장을 먼저 보겠습니다. ㅇ형제님이 말씀을 전하시며 가정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갖기 전에 가정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사사기 6 6,11~16

“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우리 모두는 기드온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모든 미디안 사람들을 단 300명으로 물리친 사실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제가 말씀드릴 주제는 아닙니다만 미디안이 가리키는 말이 무엇인지를 아시는지요? 미디안이라는 뜻은 싸운다, 다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매우 미약하게 된 것은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싸움이나 다툼이 모임을 약하게 만듭니다. 모임 내에서의 다툼이 여러분들을 매우 낙담하게 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다툼이 가정을 파괴합니다. 계속적인 다툼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가정의 생활을 망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나는 경우는 여러분의 경우가 아니고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한국의 모든 가정들은 완벽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있던 나라에서는 완벽한 가정을 한 가정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완벽한 모임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완벽한 모임이 있는데 제가 거기에 더해지면 완벽한 모임이 아닐 것입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자를 찾았습니다. 매우 약한 사람을 통해서 구원자를 찾았습니다. 15절에서 기드온이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보십시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이것보다 더 작아질 수 있습니까? 매우 작고 매우 약한 사람입니다. 12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무엇이라 말합니까?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라고 인사를 합니다. 기드온은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어떻게 큰 용사인지 아닌지를 알겠습니까? 약간 낯선 면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큰 용사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가정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기드온은 말합니다. 누가 옳습니까? 둘 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손 아래서 그 손을 의지하면 그는 큰 용사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는 약하며 작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약하거나 작다고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저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더 이상 모임에 갈 수가 없을 것 같다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대로 은퇴를 해버릴까생각합니다. 은퇴는 보통 바빠진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끝내고 싶습니다. 아무 결과를 보지 못하는 복음 전파에 너무나 지쳤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가정을 이끌어가시는 자매님들은 어떻습니까? 매우 건강하고 활달한 자식으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습니까? 물론 축복입니다만 애들이기 때문에 매우 시끄러워집니다. 제 첫째 아이는 매우 얌전하여 제가 무엇이라 하면 그대로 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모임에 성도님들이 말하기를 내가 그들의 축복을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당신에게 또 하나의 자식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평범한 아이를 주실 것을 기도 했습니다. 그 말은 곧 행동이 고약한 아이가 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둘째가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아이를 모임에 데려오는 것은 자매님들에게는 어떻습니까? 밤새도록 아이들과 씨름을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자기를 돌봐 달라고 합니다. 자매님들은 ! 너무 지쳤다고 생각하실 만합니다. 여러분들이 약하다고 하실만 합니다. ‘그냥 하늘나라로 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피곤한 것은 피곤한 것이죠?

기드온은 자기 자신을 매우 작고 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났습니까? 우리가 진정 주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면 왜 이렇게 지치고 열매가 없습니까? 제가 한 때 복음을 전할 때는 그 자리에는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복음집회 끝나고 기다려 보았지만 거기는 아무도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아일랜드에서 6주 동안 매일 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여러 주가 지나갔지만 아무도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정말 실망했었습니다. ‘만약 저의 할아버지가 전했었으면 수십 명이 구원받았을 것인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다른 형제하고 같이 복음을 전했으면 이 연속 복음집회 동안에 수십 명이 구원받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그 열매를 보지 못하는 것을 아마 형제님들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왜 우리가 결과를 보지 못하던가 아니면 왜 약함을 느끼고 있는가?

기드온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밀을 타작하기에 바빴습니다. 혼자서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19절 이후를 보면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이 밀 타작하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계속해서 밀을 타작했습니다. 이것은 이런 것과 같은데 내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내가 하나님을 배우겠다. 이것을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겠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간에 열심히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결과를 미리 약속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릴 것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강조해 드리고 싶은 사실은 기드온은 약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밀을 열심히 타작하는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큰 용사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적은 힘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지속하는 사람을 통해 용사를 발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사람을 통해서 큰 은혜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빌라델비아 모임으로 가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 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왜 이 말씀을 기드온으로 시작했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약하지만 여전히 열린문을 두고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빌라델비아 모임은 대단한 모임입니다. 물론 그들은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나쁜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며 서머나와 같이 이들을 비판하신 적이 없습니다. 서머나는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책망을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를 보게 되면 성도가 고통 받고 있다면 그 고통 받는 성도를 책망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영국의 격언 중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발로 차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망하고 비판하는데 대단한 재능이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저는 책망하는 것은 영적인 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집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깊은 사람은 집을 세웁니다. 모든 사람들이 집을 세우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고 무너뜨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머나는 핍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책망을 받지 않았고 빌라델비아는 약하기 때문에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다. 약한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는 로마서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믿음이 약한 형제에게 거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소자에게 실족케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작은 자가 되고 약해질 때에 우리가 하는 행동을 주의하기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가 비판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에 대해서 저는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 입다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어제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아내가 말하도록 시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서 제가 멈춰야 하는데 한 말씀을 더 드리고 말았습니다. 죄송하게도 자매들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그 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제가 비판적이었다고 생각하며 잘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약한 모임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위로하는 말씀을 하시며, 물론 자신을 나타내는 말씀을 그 전에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며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그 열쇠를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거룩한 자를 생각하면 물론 여러분들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을 생각하게 되면 순전함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드린 부분은 제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라 짐 알렌 형제님의 생각입니다. 짐 알렌 형제님의 견해에는 이 진실하다는 말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구약을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희생제사의 모습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보게 됩니다. 희생제사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성막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요셉과 같은 다른 이의 삶 가운데서 또한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자 또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실하시고 그분이 바로 순전함 자체입니다. 알렌 형제님이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가르쳐진 모든 가르침의 완전한 순전함이 바로 이분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좋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라는 책을 다른 형제님이 쓴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진실하신 분의 모습을 기억해 주시고 구약의 모든 부분들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갖고 계신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윗의 열쇠입니다. 1 18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십니다. 저는 이 다윗의 열쇠를 1장에 나오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와 대체시키지 않습니다. 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는 장래를 위한 것이지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의 열쇠는 바로 자금을 위한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서 이 다윗의 열쇠를 언급하시면서 그것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다윗의 열쇠라는 점을 주의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셨습니다. 다윗에세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네가 하나님의 집을 세울 것이다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를 원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시고 내가 너에게 집을 세워주마라고 하시고 그 집 가운데서 구원자가 나타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메시야가 오실 것에 대한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이사야 22 22절의 말씀의 인용입니다. 거기서 열쇠를 가진 사람은 청지기입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이 곳간을 열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요셉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세기 41 56절에 요셉이 흉년 때에 무엇을 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열쇠를 가진 사람은 청지기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추적해 보면 요셉은 집에 있을 때도 충성했고, 감옥에 가서도 충성했으며, 왕궁에 있을 때도 충성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쇠를 가지신 자신을 보여 주심으로 지역모임의 선한 청지기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역모임을 돌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지역모임에 공급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섬길 수 있도록 그 지역모임을 인도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이것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8절에서 네가 약하나 그러나 나는 네 앞에 열린문을 두었도다내가 너의 약함을 알지만 내가 너에게 열린문을 준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약함이 존재하기 전에 미리 문을 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 주는 위로는 열린문을 주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실제로 약했던 것일까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약했습니다. 기드온은 말하기를 나는 지극히 작은 자 중에 작은 자입니다라고 했을 때 아니다 너는 그렇지 아니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래 네가 약한 자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 대화 중에 제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표현을 하면 상대가 아닙니다, 아닙니다라고 부정해 줍니다. 그것은 그냥 친절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음식을 만들었는데 제가 보아도 음식 맛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말하는 다른 사람들이 맛있어요라며 칭찬을 해줍니다. 제가 피곤하다 해도 아니예요, 형제님은 힘이 좋으십니다제가 생각했을 때 말씀이 별로인데도 불구하고 들은 사람들이 아니예요,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무어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그것을 친절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거짓말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니, 아니, 아니야, 너는 약하지 않아!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네가 약하다. 내가 너의 약함을 사용하겠다. 내가 너의 앞에 열린문을 둘 터이니 아무도 닫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대한 이유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네가 내 말을 지켰다.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환경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이웃은 바알을 섬겼을 것입니다. 자기 집에조차 아버지 집에는 바알 신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에게는 하나님의 유산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순종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단순하게 신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주면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으로 인해서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주고 싶어집니다. 그 사람이 어떤 특정한 물건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에게 그러한 물건은 주지 않습니다. 저의 자매가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것을 주지 않습니다. 자매는 싫어하지만 저는 맛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갔다가 줍니다. 아내가 기뻐하는 것을 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줍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모임의 구성이 차이가 좀 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각각의 생각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특정한 방식을 요구하실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단순히 그것을 하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어떤 자매가 머리를 멋지게 말고 와서 머리에 너울을 덮기를 싫어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실제로 카나다에서 어떤 한 자매가 내 머리가 화려하기 때문에 모자로 내 머리를 덮는 것이 싫어서 나는 모임에 안간다는 분이 있습니다. 머리를 너무도 예쁘게 잘 했기 때문에 그것을 덮는 것이 싫어서 모임에 안간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머리에 쓰기를 싫어합니다. 그 자매는 누구를 기쁘게 하고 싶어 합니까? 주님께서는 그 자매에게 모임집회에서는 쓰라고 요구를 하셨습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다투기를 그만 두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네가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모임에 개인들에게 주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개인에게 말씀하신다면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과 같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오 용사여이것이 기드온을 보신 평가였습니다. 그를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말을 지켰다

9절의 사단의 회를 보겠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서머나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주변에 상항이 매우 악한 영향력으로 인해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약함으로 인해서 안 좋아졌을 때에 대적이 강해지는 것은 더 안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 모임에 대해서 주님께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강력한 대적을 보느냐 그들 중 일부를 너희 앞에 와서 절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저들이 알게 하리라천년왕국 때에 그들이 와서 무릎을 꿇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실제 역사 가운데 있는 지역모임의 일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이 지역모임이 실제로 있던 당시에 사단의 회 중에 있던 몇몇이 그리스도를 얻게 될 것을 말합니다. 사단의 회 중에 있는 몇 사람이 거듭날 뿐만 아니라 그 모임(빌라델비아)으로 들어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와서 엎드린다는 것은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무언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볼 때 고린도전서 14장이 생각납니다. 방문자로서 그 모임에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 23~25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이 말의 유사함을 보십니까? 이들은 엎디어서 너희 가운데 하나님의 계심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빌라델비아 지역모임에 주어진 열린문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약합니다만 그러나 승리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구원받은 것도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가장 구원받지 못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안 믿을 것 같던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구원받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형제 자매자매 여러분, 저나 여러분은 약할 수는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의 모임에 대해서 대적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대적 중의 일부가 빌라델비아 교회 같은 그러한 교회에서조차 대적하던 사람이 돌아와서 무릎을 꿇고 배웁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줄을 그들이 배우게 되며 지역모임의 진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유대의 회당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역모임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거기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0절은 또 하나의 다른 포인터가 있습니다.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것은 장차 온 세상에 임할 일이며 무슨 의미입니까? 계시록을 계속 읽어나가면 온 세상에 임할 환난을 보게 될 것입니다. 대환난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 환난입니다. 큰 환난으로부터 너를 건져내어 지키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서머나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은 그 환난으로부터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충성하면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땅에 임하는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참된 믿는 자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입니다. 두아디라를 교제할 때에 주 예수님께서 새벽별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새벽별은 의의 해가 떠오르기 전에 보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왕국이 이르기 전에 휴거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빌라델비아에서는 휴거가 대환난 이전에 일어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노아와 에녹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아는 심판을 통과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녹은 심판 전에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구분입니다. 환난을 통과하여 구원받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정해진 것이고 교회에게는 환난 전에 들림받는 것이 정해진 바입니다. 이것은 모형(그림)이며 그 실체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전체에 휴거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 1~10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방금 읽은 구절의 말씀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주의 날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밤에 도적같이 이를 것이라고 전에 교제 받은 적이 있습니다(2). 믿지 않는 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절에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봅니다.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른다하였습니다.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이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4절에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여기서 차이점을 보십니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이 밤에 도적같이 임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멸망이 닥쳐오지 않습니다. 9절에 분명히 이르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이것은 문맥의 분명한 의미가 영원한 진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날로 표현되는 그 하나님의 노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주님께서 말하는 시험의 때를 말하는 그 노하심입니다. 그래서 지역교회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빌라델비아 지역모임에는 놀라운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약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그대로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약해서 다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여길 때 서 있을 필요만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작습니다. 사람도 적고 숫자도 적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네 앞에 열린문을 두었고 아무도 닫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기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장래의 섬김에 이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됩니다. 장래의 예배에 참여하고, 섬김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입니다. 계시록 마지막에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그때부터 섬김이 시작될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동산에서 일하며 기뻤습니다. 저는 그 아담이 불평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힘든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인도를 받았습니다. 죄없이 주를 섬기게 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한가지는 이 땅에서 최상으로 했던 것보다 더 좋은 섬김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피곤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을 것이며 가장 높은 섬김을 하는 종이 될 것입니다. 지금 섬기는데 약하다고 느끼는 성도들은 그 날이 되면 충만한 기쁨으로 섬기데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잡고 섬기시면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들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빌라델비아 모임은 약한 모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한 모임에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 모두가 굳게 붙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05 10() 의왕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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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