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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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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쁨

전도서 11:9-12:1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전체를 읽으십시오)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쉽지 않고, 영적인 성장도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정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혹이 있고, 우리를 극단으로 흐르게 하려는 시험도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에게 어떤 것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조언해주는 선배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과 갈등 속에서 합당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삶을 즐기고 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즐겁고 행복한 감정만을 좇아 살게 되면 우리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을 정죄하는데 이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것은 재미나 행복에 탐닉하고 방종하는 삶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고상한 척, 혹 너무 심하게 경건의 모양을 내고자 하면, 다른 그리스도인 친구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참된 경건이란 자신에 대해서는 표준을 높게 하되, 다른 그리스도인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너무 고고한 삶을 추구하다보면 우리의 삶에 기쁨을 잃기 쉽고, 우리의 삶이 메마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누가 보겠습니까? 따라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합당한 균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단지 마음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편에는 쾌락주의자가 되는 위험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삶의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합당한 태도를 견지하지 않으면 낙담과 침체의 위험이 있습니다. 전도서는 우리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대한 바른 자세를 잡아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으로 이 전도서를 읽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이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낙심과 낙망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고 의미 없다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사실, 이 전도서는 "삶의 참된 즐거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삶의 행복과 즐거움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쉽게 단정해버릴 수 없는 책이며,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성경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된 이 전도서에 대한 해석이 교회 역사를 통해 다양하게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수 차례 이 전도서를 읽은 후에야, 전도서의 전체적인 메시지가 분명하고 명료하게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모른다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그것이 공부하는 것이든, 사업을 하는 것이든, 소유를 많게 하는 것이든(잠 1:12-2:11) 상관없이 헛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는 삶이란 모든 것이 헛되고, 무익하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전도서에서 이러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소경된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전도서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굉장한 것이 됩니다. 믿는 이는 삶 속에서 참된 행복과 즐거움을 실제로 만끽하게 됩니다. 실제로 전도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의 상급인 것입니다(2:24-26, 3:12-13, 5:18-20, 9:7-9을 보시오).

비록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허락하시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두신 우리를 향하신 뜻과 계획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서를 살펴보면 성령님이 이 점을 여러 번 강조하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도서 3:10-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지만 제한을 두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사람이 이 우주를 아는데 제한이 있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예측할 수 없지만, 주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신 것을 알므로, 믿는 이들은 아무 염려 없이 주님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3:1-11). 그 이하의 본문을 살펴보면(3:12-13), 우리는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록 인생이 수수께끼 같고, 모순처럼 보이고, 때로는 의미없는 나날을 보내는 것 같을지라도 우리로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행복을 주시고, 그 낙을 누리도록 인도하시는 한 우리가 삶을 즐기고, 기쁨을 추구함으로 웃음과 오락을 누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서의 전체적인 메시지입니다. 전도서의 모든 구절은 이러한 조망아래 읽고, 또 이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상고하기 전에, 이 전도서에 대한 해석 중 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은 이 전도서의 처음 부분을 하나님이 없는 삶이란 모든 것이 헛되다는 조망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구절들이 문맥이나 전도서의 전반적인 흐름과 관련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인용된다면, 전도자의 말처럼(전 1:2) 헛되이 전도서를 가르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3장 19절에서 사람과 짐승의 운명이 일반이라는 구절을 읽고나서,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성경적인 것인가요? 우리가 성경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성경은 이러한 생각을 가르치지 않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전도서에서도 그러한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문맥을 통해 살펴볼 때 그렇지 않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장 17절을 보면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록하고 있는 저자도 사람과 짐승이 다를 뿐만 아니라, 사람만이 도덕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심으로써 사람과 짐승이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계시를 통해서만이 사람의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는 진리를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12장 7절에서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도서를 특별히 주의해서 읽어야 만이 소위 난해 구절들을 본문에서 빼내서, 전체적인 흐름과 관계없이 멋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시편 49편 12절과 20절을 보면 이와 유사한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전도서에서 밝히고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한 지침을 살펴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있는데, 전도서의 결론부(12:13-14)에 함께 열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며, 장래에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삶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는데 있어 명심해야 할 이것들은 사실 전도서 마지막 두 구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도서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언급한 이 구절들 외에 5:1-7, 8:12-13, 11:9-10, 그리고 12:1-7을 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모든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11:9 상).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11:9 하)는 지침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젊고 또 기회가 있는 대로(11:9-10) 낙을 누리고 살 수 있지만, "너의 창조자를 기억"(12:1)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을 과도한 정욕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늙고 쇠했을 때보다(12:1-7) 젊고, 건강하고, 헌신할 힘이 있을 때 더 중요합니다. 주말에는 학업에서 손을 놓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야외로 소풍을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습니다. 너무 딱딱한 얼굴을 버리고, 유머와 덕담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좋습니다. 또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좋습니다. 결혼관계 안에서 부부간에 성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며,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심판을 받거나 상을 받을 것을(고후 5:10)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남용하는 시험에 쉽게 빠질 것도 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지침을 따름으로써 삶의 유익한 오락이 절제 가운데 누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 가운데는 슬픔의 때와 시험의 때, 기쁘지 않은 때가 있어야 할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외적인 행복이나 즐거움만을 바라는 안이한 삶의 태도를 교정하십니다. 전도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교훈하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3:4, 7:2-4을 보시오).

성경의 모든 책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빛을 통해 읽을 때, 성경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전도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위해서 삶의 기쁨에 대한 전도서의 지침을 신약성경의 다른 교훈과 함께 상고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전도서의 전체적인 메시지가 신약성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 6:17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한 우리가 삶을 즐길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러한 삶의 즐거움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포기하는 특권이 있음을 신약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 그리스도인인 경우 주말에 유익하고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오락을 포기하고, 캠퍼스 전도 프로그램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인 그리스도인은 스포츠계에서의 명망과 장래를 포기하고 주님을 더욱 섬기기 위해 작은 교회의 목회자나 어려운 사역을 맡아 일할 수도 있습니다. 젊은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더욱 섬기기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해외선교에 자신의 일생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물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우리는 주님이 부르셔서 맡기신 영역에서 충성되게 섬기기 위해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포기할 특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즐거움을 모르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의 정상적인 모습은 이러한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이에 대한 균형잡힌 삶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전도서를 성경전체와 조화롭게 읽기만 하면, 우리가 삶을 즐겁고 유쾌하게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지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데이빗 리더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