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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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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은유

FIVE METAPHORS

 

12-13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은유란 예화를 통해 표현하는 그림언어입니다.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은유는 비유적인 언어형태를 사용해서 어떤 대상이나 활동을 서로 비교하여 동질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대화 중에 자주 은유를 사용합니다. 특히 영어에서는 은유가 흔히 엮여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방금 은유를 사용했습니다! 단어를 서로 잘 조합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엮는다"는 것은 옷감을 꿰매는 동작에서 유래된 하나의 은유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중점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 은유를 사용합니다. 우리도 지금 최상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언어를 조심스럽게 고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은유가 유다서에서 다섯 가지 나타나 있습니다.

성령의 영감 아래 유다는 다섯 가지 은유를 사용하여 1세기말 교회에 몰래 들어온 어떤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암초, 물 없는 구름, 뿌리까지 뽑힌 나무, 바다의 거친 물결, 그리고 유리하는 별들, 이 모두가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을(4)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 은유입니다.

그렇다면 가만히 들어온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우리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로서 2세기경 완전히 이단으로 알려진 영지주의와 같이 철학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일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주재권을 부인하는 거짓된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육신의 정욕을 채우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4). 이들은 성령은 없는 자들로 묘사되었는데(19), 이러한 가만히 들어온 자들은 절대로 믿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동성애의 죄에 빠졌습니다(8). 6절과 7절의 구절과 8절의 "그와 같이"라는 구절이 분명한 결론을 내리게 해줍니다. 초대교회시대부터 동성연애자들이 "벽장 속에서 나와 돌아다녔다"거나 은밀히 동성애가 활동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그들의 죄는 강하게 책망받았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더러운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음이 분명합니다(7).

의심의 여지없이 이러한 거짓 교사들과 그 추종자들은 "교회 안에서" 세력을 얻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도들의 정통적인 믿음과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도자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게 생각하였을 터인데, 왜냐하면 자신들은 영적이고 비밀한 지식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그노시스(영적 지식(靈的 知識))"을 가진 자로 선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모든 중요한 영적인 영역에서 우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육체의 활동을 죄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권장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이 사람들이 자신을 영적인 엘리트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유다를 통해 이들은 전혀 영적인 실제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며,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취하는 자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10). 12절과 13절의 다섯 가지 은유는 이러한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기만적인 특징과 교활한 술책을 폭로하고 하기 위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은유들은 1세기 이단들의 본질을 드러내고, 거짓 교사들의 특징과 술책, 그리고 오늘날 교회 내의 배도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 사용된 "암초"라는 은유는 "점과 흠"(벧후 2:13과 비교)이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암초라는 말이 다른 나머지 은유와 잘 조화되며, 모든 은유가 다 자연으로부터 왔음을 생각해 보면, 유다가 이 유다서를 쓸 때 마음속에 그리던 것일 것입니다. 암초가 주는 이미지는 너무도 생생합니다. 배가 그 앞에 암초가 있는데도 위험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순조로운 항해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금새 아무런 재앙의 예고도 없이 파선과 멸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유다서에 나타난 배도자들은 초대교회의 "애찬" 혹은 교제를 위한 만찬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린(unsuspecting) 믿는 이들의 믿음을 파선시키는데 암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는 이기적인 거짓 믿는 자들은 기회가 되는 대로 진리를 왜곡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에 숨어든 거짓 교사들도 연약한 자들의 믿음을 쉽게 파선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단들 대부분도 표면적으로는 위험해 보이지 않으며, 그들은 훌륭한 교회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쾌활한 미소를 잘 짓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의심없이 따르는 사람들의 영혼을 파멸시키는 암초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단을 정의하자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결론적으로 말해서 행위에 기초한 종교를 주장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교묘하게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바다를 살피지 않는" 사람들에게 제시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크리스찬 사이언스, 유니테리안과 같은 이단들도 스스로를 기독교를 믿는 자들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들은 참된 믿는 이들이 아닙니다. 경험이 없는 선원들에게 이러한 위험스러운 암초에 대해 경고해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항해지도"를 읽음으로 항상 바다를 살피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유다 시대의 배도자들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은유는 바람에 의해 떠다니는 "물 없는 구름"입니다. 이 은유는 특히 여러분이 중동에 살고 있다면 매우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건기 후에 메마른 대지는 비를 갈망하는데, 그때 물 없는 구름이 신속히 달려오고 있다면 얼마나 낙심천만한 일이겠습니까! 물 없는 구름은 외형상 소망을 주지만 결코 비는 내릴 수가 없습니다. 유다 시대의 거짓 교사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서 이러한 일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목말라하는 영혼들에게 외형상 시원한 물을 줄 것 같지만, 그들의 설교에는 생명수가 없다. 종교적인 서적이나 설교 테이프의 홍수와 같은 범람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목을 보면 그 내용 속에 시원케 하는 소나기를 줄 것만 같습니다. 심리적이고, 생리학적인 혹은 영적인 문제에 대한 확실한 도움을 약속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중에 더러는 좋은 것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적인 근거를 갖는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은 "물 없는 구름"의 천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를 약속하나 전혀 실현하지 못하는 헛된 약속을 믿고 투자한 후에야 진실을 깨우치게 됩니다.

물 없는 구름의 특징은 바람에 불려 다닌다는 것입니다. 이 은유에서는 배도자들이 유행하는 문화의 바람에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거짓 교사들도 이와같이 그들이 영향을 받은 문화적인 사상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버리고,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운동(여권(女權) 신장 운동)을 좇아 성경을 그릇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부에 대한 욕심과 물질주의에 대한 관대한 태도는 우리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입니다. 믿는 이들은 항상 문화에 대해 민감해야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세를 알고(대상 12:32)"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전통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경을 살피고 지속적인 검토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적인 영향을 입어 혹은 현대문화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억지" 해석하거나, 성경을 지나치게 개정, 혹은 개역해서는 안될 것이입니! 사단은 자신이 문화를 지배하면 거짓 교사들이 비성경적인 생각들을 교회 안으로 슬쩍 들여오는 것이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 문화의 사단적인 영향을 경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는 유다가 구원받지 못한 자들과 또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세 번째 은유입니다. 중동지역에서는 열매를 맺어야 할 나무가 가을에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분명 나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세히 나무를 살펴서 뿌리 없는 나무임이 확인되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사실 그 나무는 죽고 또 죽은 것인데, 즉 열매가 없으므로 죽은 나무요, 뿌리가 없으므로 죽은 나무인 것입니다. 이 은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얼마나 정확하게 구원받지 못한 종교적인 선생들을 묘사하고 있는지요! 예를 들어 대부분 구원받지 못한 목사들은 교회 안에 많은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영적인 결과를 보지 못합니다. 어디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는 경고의 메시지와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 협착한 길"이 되심을 아는 증거가 있습니까?( 7:13-14) 어디에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장차 오는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임을 성경적으로 증거함으로써 오는 회심의 결과가 있습니까?( 3:18,36, 5:24, 14:6) 어디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벧후 3:18) 지체가 있습니까? 구원받지 못했으나 자유적인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는 나무들을 살펴보면 성경적인 진리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음이 발견됩니다. 그들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음을 전파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경고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장차 오는 심판이나 지옥을 문자적(文字的)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열매 없고 뿌리 없는 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죽고 또 죽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은유는 기독교계 안에 존재하는 이단에 대한 것으로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마음속에 생각한 거친 물결(파도)라는 것은 해변 바위를 세차게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결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한 폭력적인 충돌은 전형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의 하나님이 성경에 정하신 한계를 지속적으로 무너뜨리고자 애쓰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그 결과는 자기의 수치와 불신앙의 거품을 내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유명한 동성연애자 교회의 수치스러운 행태들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다의 거친 물결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분명히 정죄하고 있는 그러한 죄악된 삶을 공개적으로 설파하고, 또 행하고 있지 않은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거친 물결에 휩쓸린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구출하는 일을 해야 하며(22-23),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아무리 요란한 거친 물결이 엄몰할지라도 반석에서 결코 떨어지지(조금이라도)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유리하는 별들"이란 이단적인 단체의 인도자들을 설명하기 위해 유다가 사용한 다섯 번째 은유이다. 옛날에는 바다사람이나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별을 길 안내자로 삼았습니다. 별에 의한 항해는 가능했는데, 이는 북극성과 같이 확실한 별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길 안내가 가능했었습니다. 그밖에 별이나 행성들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지구처럼 태양 주위를 1년에 한차례 공전하듯이 "유리"했습니다. 이 은유를 통해 오늘 교회의 구원받지 못한 인도자들에 대한 그림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지요! 또 이것은 얼마나 비극적인 모습인가요! 이러한 목사들은 교인들을 인도하는 빛인 체 하지만 실제로는 진리로부터 벗어나 길을 잃은 자들입니다. 예를 들어, 얼마나 많은 "TV 부흥사(prosperity preachers, 미국에는 TV를 통한 설교가 보편화되어 있다-역자주)"들이 온갖 종류의 영적인 인도와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하는지! 그러나 실제나 끊임없이 헌금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심성 없는 신자들의 삶은 실제로 죽은 것과 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유리하는 별들"을 좇는데서 돌이키면 그 환상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정된 별에 우리의 나침반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비록 몇몇 TV 부흥사들이 참된 믿는 이들이지만, 여전히 "유리하는 별들"과 같은 사람들의 수가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 2:15-16)기를 참으로 구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유리하는 별들과 같은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죄되었으며(4),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가기로 판결을 받았습니다(13).

은유의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특성은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나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놓치기 쉬운 부분을 시각화하여 선명히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사용하신 다섯 가지 은유는 1세기 그리스도인의 눈을 열어 주어 이단에 속한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도 유다서에 나타난 다섯 가지 은유를 통해 오늘날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구원받지 못한 지도자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그들의 기만적인 올무와 술책을 폭로하려는 성령님의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 데이빗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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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