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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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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 8. 06:48 횃불/1985년

하나님의 시간표

하나님께서 보신 이방 세계 지배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히브리 선지자에게 이방인의 지배의 전체적인 과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계시하는 7장으로 돌아간다.

3절과 4절에서 우리는 대해 혹은 지중해에서 올라오는 사나운 네 짐승을 본다. 이 짐승들은 우리가 큰 신상에서 보았던 같은 이방 세계제국을 대표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는 자기의 목적을 위해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짐승을 일어나게 한 하늘의 네 바람이 일어났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울타리가 쳐진 바다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방종족의 들끓는 대중의 상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모두 흔들고 계시며 종종 사람이 알 수 없게 그의 뜻과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자들을 세우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처벌한 느부갓네살,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린 바벨론의 교만함을 치기 위한 다리오, 하나님께서 예언한 70년의 끝에 정확하게 자기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귀환시키고 돕도록 한 고레스등이다. 고레스의 이름이 그가 태어나기 100여 년 전에 이사야 44:28 45:1~5에 언급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세계 세력으로 등장했던 로마제국조차도 그리스도의 초림의 길을 준비하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일으키신 것이다. 또한 로마의 통일된 영향력과 언어도, 그렇지 않으면 전파될 수 없었던 복음의 전파를 위함이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는 것으로 예언되었던 그리스도의 탄생의 장소도 가이사 아구스도의 칙령에 의해 가능했다. 그 이유는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2:1~4). 네 바람과 네 짐승은 우리에게 우주적인 혹은 전세계적인 특징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나, 신상에서 이 제국들은 사람의 창작으로서 보여졌고 사람의 관점으로 나타났다. 여기 7장에서는 그들의 단순한 계승 혹은 행정적인 조직보다는 성품이 나타난다. 또한, 그것은 철두철미한 하나님의 관점이다. 그들은 지배를 위해 광적인 욕망으로 서로 사납게 파괴하고 찢으며 망가뜨리는 동물이다.

 

네 짐승

첫째는 날개 달린 사자이며, 이것은 바벨론이 선택한 상징이요 극치이다. 바벨론의 고대의 유물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같이 날개 달린 사자가 바벨론 왕과 제국의 상징으로 탁월하다. 그러나,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퇴보가 있다. 그 이유는 그의 날개가 뽑혔기 때문이다. 그는 능력을 빼앗겼고, 적어도 그는 속도가 줄어 들었다. 또한, 그는 사람처럼 서고 사람의 마음을 가진 것처럼 행한다. 사람처럼 행하고 사람의 마음을 가진 사자는 그의 사납고 왕 같은 성질이 거의 없어졌고 길들여 졌으며 제어받는 참으로 불쌍한 짐승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더 이상 독자적이고 전제적이며 당당한 존재가 아니다. 그는 부드러운 마음과 같은 동정을 가지고 마치 한 때 두려움을 주었지만 이제 사랑을 얻고자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춤을 추는 곰을 생각나게 해준다. 이것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손자 벨사살의 차이점에서 볼 수 있는 바벨론의 쇠약해져 감이다.

다음에는 큰 곰이 나오는데 당당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지만, 느린 걸음에도 불구하고 전복시키고 부숴뜨린다. 또한, 그러한 것은 메대 바사의 힘이었다. 그 짐승은 그 입의 잇사이에 세 갈빗대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을 케일(Keil)과 다른 이들은 메대의 탐욕스런 강탈에 의하여 밥이 된 바벨론, 루디아, 그리고 애굽을 나타낸다고 한다. 왜냐하면, 메대 바사제국은 문화나 명성이 바벨론에 훨씬 못미치지만 훨씬 더 탐욕스러웠고 억압적이었다. 5절에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고 한 말씀은 아주 적합하다. 그 이유는 그 문제를 넓고 깊게 연구했던 역사가에 의하면 그처럼 잔인하고 파괴적인 혹은 규모에 있어서 이같은 무리가 땅에서 거의 보기 힘들다고 한다.

머리 넷과 네 날개가 달렸던 표범은 분명하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속력으로 빠르게 정복했고, 알렉산더의 죽음 후에 그 신하로 있던 네 장군에 의해 나누어진 헬라제국이다. 새의 날개 넷은 승리하는 네 장군을 나타내고 후에 계속해서 네 머리는 그곳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마게도냐와 헬라를 차지 했던 카싼더(Cassander), 시리아와 북부 아시아를 차지했던 셀리우커스( Seleucius), 소아시아와 트라기아를 차지했던 리시마커스(Lysimachus), 애굽과 팔레스타인과 아라비아를 차지했던 톨레미(Ptolemy) 이다. 댓포드(Tatford)는 여기의 첫번째 세 짐승은 여호와께서 호세아 13:7,8에서 언급하신 것들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사자 같고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내가 새끼 잃은 곰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여기서 8절의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는 말씀은 네번째 짐승을 말할 것이다.

 

네번째 짐승

다니엘 7:7에는 세상의 네번째이며 마지막 제국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는 네번째 짐승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다. 또한. 열 뿔이 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로마제국이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현재까지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열 왕국의 연합에 의해 이루어 질 것을 하나님께서 특징지우셨다. 여기서 짐승의 열뿔은 이상의 열 발가락과 합치되며, 그곳 위에 내려질 최후의 멸망 바로 전의 마지막 무대를 나타낸다. 다니엘에게 계승되는 환상을 통하여 우리는 전의 환상에서 알 수 없었던 상세함을 갖게 되며, 각 상세함은 어떤 중요한 특징에 주의를 끌게 한다.

이 환상을 유심히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장차 나타날 제국에 왕 하나가 더 나타나 열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열한 째는 그들 중 세 개를 뿌리째 뽑아 버린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온전하게 우위를 차지할 때까지 자란다. 이제 드디어 사건들이 명확하게 촛점이 맞혀지고 또한 우리는 서부 세계를 차지하고 아마겟돈의 마지막 결전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 대항할 마지막 큰 세계의 독재자에 대한 예고편을 본다. 계시록 19 19절을 보라.

 

7, 9:27,28, 11:36~45, 24:15-21, 살후 2:3~10, 13:1~10, 17:12~18, 19:19에서 우리가 따라간 예언의 흐름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말씀들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땅의 사단의 총독인 이악한 인간에게로 이끈다. 그는 여러 곳에서 뿔, 짐승. 불법의 사람, 멸망의 자식, 악한 자 등으로 불리운다. 그는 스스로 전통과 법률 위에 절대자가 된다. 또한 모든 것은 세 때 반이라는 한때와 두 때와 반 때 동안 혹은 다니엘서 9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의 완성까지 이미 살펴본 7년의 마지막이고 치명적인 이레의 반 동안 그의 손에 주어진다. 그는 성도들과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는 대환난을 일으킨다. 그는 지극히 높은 분과 대항하여 참람된 말을 한다. 다니엘 9:27에서 이 독재자는 7년의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정하지만 그 이레의 절반에 즉3년 반 후에 미운 물건을 세움으로써 언약을 파기한다. 이것은 우리가 잠시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점이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미운 물건이 새워지는 것은 대환난의 공포의 순간의 시작이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24:15~22).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상고한 모든 말씀은 우리를 하나의 무서운 개인, 하나의 세계 역사의 중대한 기로, 또한 위기의 한 순간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장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최상의 본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께 대한순종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표현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온 가족이 그 아름답고 흠없으신 표준을 보도록 하려고 바로 그분을 가리키십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한 말씀을 보게 됩니다 :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5:8). 구유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이 땅 위에서의 그분의 삶은 아버지께 대한 온전한 복종의 삶이었으며. 그분은 다음과 같이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8:29),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4:34).

아버지께서는 두번씩이나 열린 하늘로부터 자기 아들을 증거하셨는데, 첫번째는 나사렛에서 그분의 사적인 삶이 끝났을 때 있었고, 나중 것은 그분의 공적인 삶의 중간쯤에 그분이 변형되신 산 위에서 있었습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3:17, 17:5). 우리 주님께서는 사역의 끝에서 참으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7:4), 그분의 순종은 죽기까지 곧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이르는 것이었습니다( 2:8). 그러기에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권면의 말씀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2:10).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그분을 깊이 생각하며 생활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순종하기를 배우는 것이상으로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선생님과 똑같은 훌륭한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친히 만물의 으뜸이되셔야만하기 때문입니다( 1:18). 그렇지만 우리는 순종의 자녀들이란 칭찬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살 수는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육체를 가지셨을 때 순종함을 배워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5:9). 그러므로 그 산에서 음성이 들릴 때에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라는 중요한 말씀이 더해졌던 것입니다. 온전히 순종하셨던 분은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명하심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사랑의 순종이기 합니다( 14:21).

 

(1985 11월호)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