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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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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집

짐 베이커

한국을 다시 한 번 방문하게 된 것을 커다란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좋은 기억을 갖게 되어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 저는 한 사람의 생애를 상고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족장 세 사람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들입니다. 이 세 사람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애는 상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이 세 사람 중 마지막 사람인 야곱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야곱은 그 생애에 하나님과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그가 첫 번째로 하나님을 경험한 것은 창세기 28장 벧엘에서입니다. 두 번째는 창세기 32장 수십 년 후 다시 벧엘로 돌아 갈 때 하나님과 다시 만납니다. 세 번 째 경험은 창세기 35장에 나옵니다. 이것도 역시 벧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생애에는 적어도 네 개의 집이 나오게 됩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 이삭의 집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집인 벧엘입니다. 세 번째는 21년의 세월을 보낸 외삼촌 라반의 집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그가 마침내 갖게 된 자신의 집입니다. 이번 집회에서 이 네 가지 집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중 첫 번째 집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집은 아버지 이삭의 집입니다. 창세기 25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 25:11).

이삭이 성경에서 왜 중요한 인물이 되었는지는 5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25:5). 아브라함이 그가 얻은 모든 것을 아들 이삭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신약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3:35). 25장에서 몇 구절을 더 읽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빗단 아람의 아람 족 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 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5:19-28).

이 구절은 야곱의 생애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개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집은 기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집은 항상 기도와 연관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가정에서 자녀들을 기릅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 기도의 분위기에서 양육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자녀를 낳기 전에 기도했습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을 했습니다(20). 그리고 21절에서 하나님께 자녀를 주시도록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리브가가 불임이어서 아이를 잉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이삭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갖고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맨 마지막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기도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모든 길이 막혔을 때 기도합니다. 우리는 가정의 모든 문제를 먼저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 기도해야 합니다. 21절에서 이삭은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라브가가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쓰여있습니다. 저는 오래 동안 이 구절에서 ‘이삭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셨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6절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그들을(에서와 야곱)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이삭이 기도를 시작한 것은 40세 때입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은 60세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20년간 기도 했던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구원 받고 나서 술주정뱅이고 어부였던 아버지를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어머니의 기도를 마침내 들어주셔서 저의 아버지가 주님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 기도해야 합니다. 작은 문제도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야곱이 경험한 첫 집은 기도하는 가정입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삭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가정은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에서는 몸이 붉었고 야곱은 정상적인 색깔이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좋아했고 야곱은 조용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달랐습니다. 에서는 사냥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삭은 그가 사냥해온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 사이에 일치가 없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좋아했고 아내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들의 사랑이 서로 갈라져서 분열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기 남편과 아내가 와 계신다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모두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먹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25:29-34).

장자권은 첫째 아들이 갖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장자권은 에서가 갖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야곱은 죽을 쑤고 있습니다. 에서가 들에서 피곤하게 돌아와 죽을 달라고 하자 그는 장자의 명분과 교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에서가 동의하자, 야곱은 다시 말했습니다. “맹세하라에서는 맹세하고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이 장자의 명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이 지상에서의 권한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팔았지만, 에서가 그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 가난하게 살게 되지 않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샀기 때문에, 그 후로는 쌍둥이지만 동생이라는 서러움 혹은 무시 받지 않고 가정 내에서 인정받는 위치를 차지해 만족한 삶을 산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야곱은 그로 인해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타향살이를 오래 동안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돌아 오는 길에 얍복 강가에서 다리까지 절게 됩니다. 그가 결혼하여 이루게 된 가정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종으로 팔려가 버립니다.

오늘 저녁에 제가 성도님들에게 묻고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자권은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장자권은 단지 유산을 두 배나 받는 권리 혹은 가정에서 높은 지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을 상속받는 것입니다.오늘저녁 저는 묻고 싶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구원으로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성도님들께서 생애 가운데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생애의 목표입니까? 우리 생애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생애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이야기를 오늘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1:21). 젊은 청년들, 나이든 성도님들께 말씀드립니다. 성도님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까? 성도님들의 삶에서 첫 번째 자리는 누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수백 년 전에 C.T. 스터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 귀족들의 경기인 크리켓의 아주 중요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앞으로 스포츠 세계에서 장래가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부자여서 아버지로부터 많은 부를 상속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 받게 되자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면, 내가 하는 어떤 희생도 주님 앞에서 대단한 것일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여섯 명과 함께 -그들을 세상은 ‘캠브리지 칠인’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으로 전도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들 모두는 보장된 미래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 결과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장자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제가 잠시 방문하는 이 기간 동안,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의 가치를 우리가 깨닫게 된다면 이 짧은 방문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님들도 아마 잘 아시는 짐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잃어버릴 수 없는 것(영원한 상급)을 얻기 위해 영원히 간직할 수 없는 것(이 세상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이 세상에 살았던 가장 위대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8:35).

오늘 이 장자권을 통해서 모든 성도님들이 자신의 삶을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 말씀을 통해서 제 믿음을 시험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삽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위해 살면 그 마지막은 허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면, 만일 우리가 함께 모여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면 장자권을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 거래는 매우 중요한 거래입니다.

야곱은 미래를 위해서 장자권을 샀습니다. 에서는 지금을 위해 장자권을 팔아버렸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생애의 차이를 잘 압니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나로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27:6-13).

이 시간에는 야곱의 어머니를 살펴 보겠습니다. 리브가는 장자인 에서 대신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아이를 임신 했을 때, 쌍둥이가 뱃속에서 싸워 걱정이 되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두 아들에 대해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25:23). 그러나 라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 지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 이삭이 죽을 때가 된 줄로 착각해 에서에게 축복하고자 하자, 리브가는 야곱을 이삭처럼 변장시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이상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이미 충분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못했습니다.

에서가 사냥해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갔을 때, 아버지가 야곱의 속임수에 넘어가 야곱을 자신으로 알고 축복 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 라반 -최소한 500마일 이상을 가야 합니다- 에게로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비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 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27:43-45).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이후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합니다. 21년 후야 곱이 드디어 돌아왔을 때는, 어머니 리브가는 이미 죽은 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잘못된 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잘못된 것을 빼앗아 가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 모든 일들이 그 심판대 앞에서 조사받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무조건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 씀을 가르치는 교사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이를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4:11-12).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 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섬길 때 그 마음의 동기까지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 , 보석으로 지어야’ 합니다. “나무, , 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불로 타버리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2-13).

우리의 봉사는 어떤 재료로 되어있을까요? 이같은 문제를 갖고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신 적이 있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이 이같은 점검을 해보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이 잘 아는 대로, “금과 은과 보석은 얻기 쉬운 재료가 아닙니다. 금을 얻으려면 땅을 파야 합니다. 제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석도 땅 속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지푸라기는 여기 저기 많이 있습니다. 얻기 쉬운 재료입니다.

혹시 모임에서 장로 일을 하시는 형제님들이 여기 계시면,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모임에서 어떤 일로 섬기고 계십니까?” 저도 가끔 제 자신의 섬김에 대해 살펴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내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 드린 것 중 어떤 것이 가치 있는가?”

고린도전서 3장에 그 같은 심판이 나옵니다. 배경은 지역모임입니다. 지역 모임에서 우리는 만찬을 뗍니다. 여기서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예배는 참석하시지만, 기도집회에도 참석하시나요? 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마다 참여하십니까?” 이것이 금, , 보석과 나무, , 짚을 말하고 있는 배경입니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자매님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자매다. 기도집회에 참석해봤자 소리내어 기도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자매님들이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 아예 집회에 나오지 않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야곱의 생애 자체를 말씀드리려는 게 아니라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야곱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의 삶과 마음을 살펴보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을 마쳐야겠습니다. 내일 계속해서 야곱의 생애에 나오는 하나님의 집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야곱의 생애가 지역모임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는 창세기 28장의 위대한 장에서 벧엘이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는 또한 디모데전서 하고 연결됩니다. 내일 오시기 전에 이 대목을 미리 읽어 오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로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서신의 주제는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바로 지역모임입니다. 주님은 더 이상 이제 사람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든 성전 안에 계시지도 않습니다. 이제 성도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즉 지역 모임으로 모일 때 거기 계십니다. 그래서 모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도님들이 이렇게 오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이렇게 좋은 환경 속에서 교제할 수 있는 데 대해 감사합니다.

그러나 작은 무리가 모인다 할지라도 소중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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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