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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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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확장(2)

-짐 베이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복음이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님은 복음이 확장되는 프로그램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 8절이 그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출발합니다. 주님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 다( 19:14) 하고 유대인은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이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복음이 증거됩니다. 베드로의 전도로 유대인 3천명이 구원받았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을 싸고 있는 유대로 전파됩니다 이를 우리는 지난번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을 유대인에게만 위해서 주신 것은 아닙니다. 주님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 다음은 사마리아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이르면 복음이 사마리아에 이릅니다. 수천 명의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은 또한 스데반을 죽이고, 커다란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막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흩어졌다는 단어는 원어로는 씨를 뿌린다는 단어입니다. 사단은 흩지만 하나님을 이를 사용해서 씨를 뿌립니다. 그래서 흩어진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 중 일부가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그리 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프로그램의 3번째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네 번째 지역에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일은 안디옥에서 일어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프로그램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복음이 한국, 영국, 미국 등 각처에서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 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1:25-30).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록 커다란 핍박으로 수가 줄었지만, 형제 한 사람을 즉각 안디옥으로 보냅니다. 그는 바나바입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격려자 입니다. 그는 오자마자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주께 붙어있으라고 격려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바나바가 복음을 계속 전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바나바의 섬김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셨다. 나는 여기서 이같은 사역을 계속 하겠다 어떤 모임에서는 한 사람만이 가르칩니다. 즉 그가 혼자 말씀을 증 거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필요를 느낍니다. 바나바는 격려와 위로의 은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안디옥 성도에게 첫 번째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디옥 교회에는 가르침이 필요했습니다. 바나바는 이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디옥을 일시적으로 떠납니다. 그는 다소로 갑니다. 거기에는 구원받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구원받은 바울입니다. 그는 구원받은 후 자신의 생애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미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준비를 조용히 (아마 3년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성경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40년간 광야에서 인도합니다. 그러나 이를 감당하기 전에 모세는 40년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젊은 청년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실제로 섬기기 전에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같은 준비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는 지역교회입니다. 개인적으로 말씀을 철저히 공부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에서 경건성을 키우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기 위해 민감해져야 합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서부터 이미 주님을 증거했고 자기 고향 다소에서도 그러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한 사람도 바나바였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성실하게 참여했던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강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개발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안디옥 교회로 데라고 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처음 왔을 때에는 그 혼자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이 공통으로 일합니다. 바나바는 격려했습니다. 바울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다 주지 않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전도, 어떤 자에게는 격려, 어떤 자에게는 교사의 은사를 주십니다. 신약성경에서 볼 때 우리는 바울이 능력 있는 교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를 통해 격려를 받았고, 바울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성장해갑니다. 두 사람의 사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지역교회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일하는 것으로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지자들이 옵니다. 이제 최소한 4명이 일하게 됩니다. 그 중 아가보를 통해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에 특별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커다란 필요가 생길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에 헌금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이를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헌금은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전달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사도행전 12장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겠습니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11장과 13장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12장에는 3사람이 나옵니다. 이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 그들입니다. 12장 끝에는 다른 3사람이 나옵니다. 바나바, 바울, 마가 요한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야고보는 순교합니다. 베드로는 감옥에 갇힙니다. 요한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후에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밧모 섬에 갇혀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게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대해 더 이상 기록하지 않고 안디옥에 의해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을 기록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13장이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13:1-4).

여기서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본이 나옵니다. 안디옥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았습니다. 성도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바나바를 보냈습니다. 그 후 바울이 함께 동역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 선지자들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한 지역교회에는 하나님이 일으킨 많은 은사가 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13장에는 여러 행동이 취해집니다. 우선 5명의 선지자와 교사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당시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선지자의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계시를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같은 은사는 오늘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 주어진 것입니다.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으나 이제 우리는 66권의 완성된 성경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진리에 대해서도 서선서가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특별한 계시를 개인에게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사의 은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격려, 전도자 은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 5명의 일꾼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진리를 성도들에게 제시했습니다. 모임은 일인만이 사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아무나 사역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기도집회에 서 기도하거나 예배 시간에 감사를 하기 위해서 은사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뿐입니다. 가정에서 기도하면 할수록 기도집회에 참석할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하면 할수록 정기적인 기도집회의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안디옥 모임은 형제들 사이에 차별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 차별이 없었습니다. 만일 어떤 형제가 대학교수인 경우 우리는 그에게 어떤 영적 은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 은사를 대학교에서 주지 않습니다. 영적 은사 는 지역교회에서 개발됩니다. 성경학교에서 주는 것도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헤롯의 왕궁에서 자란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그는 어릴 적에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시므온은 아마 노예였을 것입니다. 지역교회로 모일 때 왕궁에서 자란 자와 노예가 함께 모였습니다. 둘 다 하나님에게서 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때는 왕궁에서 자란 자가 말씀을 전합니다. 어떤 때에는 노예인 형제가 전하기도 합니다. 그의 말을 왕궁에서 자란 자가 듣습니다. 교회는 참으로 놀라운 곳입니다.

또한 교회에는 종교적 차별도 없습니다. 구약시대라면 한 종류의 사람만 일할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온 5명 중 바나바만 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만이 레위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레위인 형제가 노예 형제의 말씀을 듣습니다. 교회에는 종교적 복장의 차별도 없습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은 특별한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특별한 의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에는 피부색의 차이도 없습니다. 시므온은 흑인입니다. 나머지는 백인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차별 없이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족적 차별도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홍수를 지나 땅에 안착할 때 단지 8명만 있었습니다. 노아, 아내, 세 아들인 셈 함 야벳, 그리고 그들의 부인들입니다. 3명에게서 지구상의 모든 인종이 나왔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복음이 증거될 때 광야를 지나는 에디오피아 내시가 구원받습니다. 그는 흑인입니다. 그는 함의 후손입니다. 9장에서는 누가 구원받습니까? 그는 다메섹 도상으로 가는 사울입니다, 그는 셈족입니다. 10장에서 누가 구원받습니까? 그는 고넬료 입니다. 그는 이태리 사람, 야벳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 종류의 사람을 구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모임에는 민족적 차별이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일문 5명 중에는 셈 후손이 두 명이며(바나바와 바울), 함의 후손이 한 명(시므온), 그리고 두 명의 야벳 후손(마나엔, 루기오)이 문제없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 성도님들이 스코틀랜드에서 온 형제의 교제를 경청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주님이 머리가 되시고 성령이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많은 사람을 사용해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모든 은사를 주지 않습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님들은 성령이 주는 은사를 사용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게 안디옥 교회의 모습입니다.

왜 교회가 세워집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섬겼습니다(2). 모든 교회는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하나님이 합당한 자리에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육신을 부인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금식한 것입니다(2). 이 두 가지가 될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교회에서 역사할 자유를 가지셔야 합니다. 성령이 안디옥 교회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성령은 바나바와 바울에게 말하지 않고 교회에 말하셨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이 우리를 불렀다고 교회에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임 가운데 어떤 형제가 성령이 나를 부르셨다고 말하나 교회가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가장 신뢰받고 있는 일꾼은 아마 바나바와 바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둘을 따로 세우고자 하십니다. 이제 바나바와 바울은 안디옥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다른 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안디옥에는 교회를 도울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야 안디옥 교회는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가고 나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적인 간증을 보일 수 있습니다. 말씀 사역만이 성도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말씀 사역만이 성도들에게 교회적인 간증을 나타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사역의 목적은 일꾼 없이도 하나님의 영광을 계속 나타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안디옥 교회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성급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는 이 일에 대한 확신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 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교회의 보냄을 받지 않고 성령의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두 사람을 안디옥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이 두 사람에게 안디옥 교회를 떠나게 하고 계십니다. 모임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이 간 후에도 교회는 든든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교회의 간증을 계속하게 강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점이 일꾼들의 천거조건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자는 이 구절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 다른 원칙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속한 지역교회의 영적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긴 것에 대해 지역교회가 만족스러워해야 합니다. 이같은 지원을 얻기 전에는 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같이 해서 소위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 됩니다.

두 사람은 그들이 잘 아는 지역인 구브로로 먼저 갑니다. 그 후 오랜 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다 사도행전 13 40절에서 바울이 최초로 공적인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최 초로 전한 말씀과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이 최초로 전한 말씀을 비교하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13:43). 여기서 쫓았다는 말은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말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꾼의 천거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을 통해 영혼이, 심지어 많은 영혼이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 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14:19-23).

바나바와 바울은 많은 지역을 방문하고 더베에 이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구원받은 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돌아갈 때 이미 전도하여 세워진 교회를 방문합니다. 그 곳에서 첫째는 격려하고, 그 다음에는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장로를 세웠습니다. 여기서 택하다는 원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를 의미합니다. 이는 새로 거듭난 성도에게 누가 자신을 도울 수 있는지, 성숙해서 인도할 수 있는 자가 누군지를 알도록 도와준 것입니다. 장로들은 복수형입니다. 각 지역교회에서 복수의 장로를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장로는 하나님이 일으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 성도들을 돌볼 마음을 주신 자입니다. 그는 다른 성도를 격려하고 교회가 성장하게 돕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3, 5. 디도서 1, 베드로전서 5장에서는 이같은 장로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살전 5:12). 여기서 알고택하다와 같은 의미로서 장로가 누군지 알게 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장로들에게 영적인 존경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인도자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장로는 목자입니다. 또한 성도들을 권(경고)하는 자입니다. 이는 단지 책망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권면은 우리 생각에 무엇인가를 넣어준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말씀을 넣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모임이지만 하나님이 장로들을 일으키고 계심을 알게 해야 합니다.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 모임은 논쟁하거나, 성도들 사이에 불일치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영적 평강이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 5:14). 이는 장로들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규모 없는 자를 권면합니다. 그러나 장로는 책망만 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약한 자를 붙들어주고 모든 자에 대해 인내합니다. 하나님은 장로를 목자로 세우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양들은 항상 방황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항상 양을 찾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양은 바위에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야 합니다.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내 양을 방황하게 했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목자에게 너희 양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계신 장로 일을 하시는 형제님에게 말씀드립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양입니다. 교회는 장로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로에게 성도를 안내, 보호하는 특권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오래 참아야 합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쫓으라(살전 5:15). 이는 장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을 당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서로 다투어서는 안 됩니다. 장로회는 성도들을 위한 기도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이같은 말씀은 교회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같은 말씀이 성도님들에게 그리고 지역교회를 섬기는데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커다란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지역교회는 또한 엄청난 특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커다란 책임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제가 방문한 한국 교회가 이같은 말씀을 통해 도움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제가 한국을 방문한 유일한 이유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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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