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요셉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49:1~2).

이는 하나님의 사람 야곱의 마지막 말입니다.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 가지를 말하고 계십니다. 신명기 23장에는 모세의 마지막 말이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마지막 유언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에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말이 나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말은 주님께서 남기신 요한복음 13-17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말은 하나님께 가기 전에 자신의 경험을 총 결산하는 말이기에 우리가 주의 깊게 살피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말씀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1절에서 후일에 당할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린 인물들의 마지막 말은 항상 미래를 가리킵니다. 2절에서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아 그런데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고 말합니다. 그는 두개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야곱이스라엘입니다. 이 이름은 그가 하나님과 겪은 경험을 나타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입니다. 이는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입니다. 야곱 생애의 전반부는 속이는 자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과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은 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받을 때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 모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한 아들에 대해서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49:22~26).

야곱이 요셉에 대해 하는 말 중 셋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무성한 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입니다. 세번째는 축복입니다. 이 세 가지, 가지, , 축복에는 각각 그 비결이 있습니다. 가지는 샘이 그 비결입니다. 물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가지가 무성하게 됩니다. 활은 전능자의 손이 그 비결입니다. 축복의 비결은 요셉이 그 형제들과 분리되어 있다는 데 있습니다.

먼저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어떤 나무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입니다. 무성한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생애에 열매가 맺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에도 열매가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말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이는 시편 1편과 유사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맞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비결은 시내 즉 물에 있습니다. 물은 여기서는 율법,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요셉의 생애에서는 다릅니다. 그가 무성한 것은 말씀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읽을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창세기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에 한나가 나옵니다. 그녀는 2장에서 기도합니다. 그녀의 기도는 다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녀는 성경에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66권의 성경이 있으나, 한나는 모세오경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모세오경만으로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모세오경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생애에 번성을 준 샘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의식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분명합니다. 여러 곡식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했습니다. 그는 이 꿈을 부모님과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했을 때 형들은 기분이 나빴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형들은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와서 절합니다. 그러므로 이 꿈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말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39장을 살펴보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39:1~3).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형들에게 미움을 산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비참한 상황 속에 있으나 하나님과 교제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애굽 주인인 보디발도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봅니다. 요셉은 성경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이게 성경을 갖고 있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39:7~9)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하고만 있게 되는 상황에 처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그를 유혹합니다. 이제는 요셉도 나이가 들어 유혹 받을 수 있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요셉이 유혹을 이긴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죄에서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 의식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9:9,11).

바울은 죄수가 되어 로마의 감옥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군인이 그와 함께 묶여 있습니다. 그같은 상황 속에서 그는 빌립보서를 씁니다. 보통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군인이 내 바로 옆에 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5)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감옥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즐긴다면 많은 죄에서 보호될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요셉은 감옥에 갑니다. 거기에서 그는 두 관원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떡 맡은 관원이고 다른 하나는 술 맡은 관원입니다. 그들 둘은 다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 꿈을 해몽해줍니다. 그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은 풀려나고 떡 맡은 관원은 죽습니다. 술맡은 관원은 풀려나고도 요셉을 잊어먹습니다. 이제 바로가 꿈을 꿉니다. 바로는 꿈의 의미를 알고자 하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술맡은 관원이 이 때 요셉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이 바로 왕 앞에 오게 됩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41:15~16). 요셉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성한 가지의 비결인 샘입니다.

두 번째로 입니다. 이제는 나무와 열매가 아닌 전쟁터의 활을 말합니다. 요셉은 많은 화살의 공격을 받습니다. 많은 자가 요셉을 군박했습니다. 요셉의 생애에는 그에게 활 쏘는 자가 많았습니다. 형들이 그랬습니다. 그를 미워했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고 마침내 종으로 팔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활이 더 강했습니다. 그 비결은 전능자의 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4:13). 그러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그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안에 계신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요셉의 적은 얼마나 강했습니까? 요셉을 미워하는 자가 얼마나 않았고 그 적의가 얼마나 강했습니까? 요셉은 항상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더 강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한 하나님의 능력이 이기게 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축복입니다. 요셉에게 주어진 복은 다양하며 뛰어납니다.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왜 이 같은 축복이 요셉에게 주어졌습니까? 그는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뺀 형들은 크게 보자면 악한 자입니다. 요셉은 형들과 분리되어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만 하나님 임재와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요셉은 5가지 면에서 형들과 다릅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다 주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째로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37:3).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어떠함에 근거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나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을 주님의 어떠하심 때문에 사랑하셨습니다. 이 점에서 주님이 유일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점에서 우리와 다릅니다.

요셉은 헤브론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냈습니다. 헤브론은 교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함께 교제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님을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형제들에게 거부당했습니다. 주님도 그러했습니다.

둘째로 요셉만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없습니다. 이는 주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0:4).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17:8).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에서 주님은 우리와 다릅니다.

셋째로 요셉은 그 개인적 성품이 다릅니다. 형들은 악합니다. 레위는, 후에 제사장직을 맡지만, 시므온과 함께 살인합니다. 창세기 34장에서 이 두 형은 그들의 손을 피로 더럽힙니다. 유다는 왕가를 이룹니다만, 38장에서 보면, 창녀에게 갑니다. 형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요셉은 죄로 가득한 환경에서 삽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의 잘못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물론 요셉이 죄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사신 분은 주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이 요셉의 결함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가 주님을 가리키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요셉은 고난을 받았다는 점에서 형들과 다릅니다. 형들은 고난을 받지 않습니다. 다른 형제들에게 배척당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가는 것도 요셉뿐입니다. 감옥은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요셉은 죄가 없지만 감옥에 들어갑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주님에게 죄가 있어서 아닙니다. 우리 죄 때문에 주님이 죽습니다. 감옥에는 죄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석방됩니다. 주님 십자가에도 두 강도가 함께 달립니다. 한 사람은 지옥에 가나 한 강도는 구원을 받습니다

다섯째, 그 영광이 있어서 요셉은 형들과 다릅니다. 요셉은 총리가 된 후에 애굽 여인을 아내로 취합니다. 주는 이 세상에서 한 이방인(교회)을 구원해 아내로 삼습니다. 요셉은 애굽 총리로 있을 때 그 축복이 온 세상에 퍼집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오실 때에도 온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때 교회가 주님의 신부로 함께 할 것입니다. 총리된 요셉에게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습니다. 주님께도 모든 무릎이 꿇으며 모든 입이 주로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 짐 베이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브리서 2장  (0) 2009.03.15
복음의 확장(2)  (0) 2008.12.24
복음의 확장  (0) 2008.12.23
바른 교훈  (0) 2008.10.16
느헤미야  (0) 2008.09.13
히스기야  (0) 2008.07.17
아하스  (0) 2008.07.14
장로들  (0) 2008.05.17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