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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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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

-짐 베이커

열왕기하 16장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읽기 전에 몇 가지 말씀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솔로몬이 죽고 나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됩니다. 다윗이 40년간 이스라엘 왕으로 다스리다 죽자 그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솔로몬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다 마침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못되어 나라가 둘로 분리되게 됩니다. 10지파는 북왕국을 이루고 2지파가 남왕국을 이루게 됩니다.

남왕국에는 예루살렘과 성전이 있었고 북왕국은 악한 왕인 여로보암이 다스리게 됩니다 그는 르호보암 왕에 대한 반역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개의 절기를 지키도록 명하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절기라고 불렸습니다. 첫 번째 절기가 유월절이었습니다. 한 해의 첫 부분에 3개가 있고 하나는 중간에 그리고 3개의 절기는 후반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7번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은 가족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고 절기의 정해진 기간 동안 거기 머물러야 합니다. 절기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만나 기쁨을 나누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짐승들을 가져왔고, 자기들이 거둔 좋은 열매들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라가 분열되자,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절기가 돌아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모두 모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만나 다시 하나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는 절기에 모든 이스라엘이 한꺼번에 만나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라가 둘로 분열되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도시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금송아지 우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광야에 있을 때 아론 제사장이 만든 우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론은 한 개를 만들었지만, 여로보암 왕은 두 개를 만들어 두 도시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북왕국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한약절기가 돌아오면, 이 두 도시 중 하나로 가라.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 거기서 이 금송아지를 경배하라. 이는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너희에게 두지말라. 여로보암은 북왕국에 우상을 도입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10개 지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관련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왕국 유다의 2지파는 여전히 예루살렘에서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물론 금송아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임재하셨습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경배 드렸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배경입니다. 이같은 분열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내내 치료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다루지 않고, 세계에 있는 이방 민족들을 다루십니다. 만약 교회가 완성이 되면, 주님께서 교회를 맞이하러 공중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루실 것입니다. 7년 환난 시대가 끝나고 나면, 주님은 지상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은 두 국가로 분열된 것을 치료하시고 다시 하나로 묶으실 것입니다.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 칠년에 유다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 16:1-4)

아하스는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있는 왕입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20세였습니다. 그는 16년간을 통치했고,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정직히 행하지 아니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했습니다. " 그는 올바른 장소에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었고, 성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일을 행했습니다. 이같은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올바른 곳에 있으면서도 잘못된 일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것이 성경에 있는 것인가를 항상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에서 이탈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하스 왕은 이렇게 타락하기 전에 두 단계를 거칩니다. 첫 번째는 10-16절에 나와 있습니다. "아하스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 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 어느 날 아하스 왕은 다메섹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혹시 신약 성경에서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간 인물을 혹시 아십니까? 그가 예루살렘에서 출발했을 때 아직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서 하늘로부터 빛이 비취는 것을 보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여행은 축복된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도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지만 이 여정은 복된 여정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백성의 적을 만나러 가고 있습니다. 그는 아람 왕입니다. 그는 거기서 아주 커다란 제단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사단을 숭배하는 단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그 단이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그 커다란 크기와 모양이 좋아보였습니다. 제단의 여러 가지 배치들도 아주 좋아보였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그리 오래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제단의 모양을 그려서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제단이 우리가 예루살렘에 가지고 있는 제단보다 낫다. 새 제단을 이 제단과 똑같이 만들어라. 그는 세상을 모방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세부적인 내용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단의 높이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넓이가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제단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다메섹 제단을 들여오고 하나님의 제단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제사 제도를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하나님이 보여주신 식양대로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제사 제도를 방해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대해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같은 제사와 제물에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모든 죄를 위한 제사가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제사를 끝내셨습니다. 주님께서 드리신 이같은 희생제사를 방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조그만 전도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전도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지 않으셨다. 마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밤낮을 지냈던 것처럼, 주님도 이 땅 속에 삼일 밤낮을 계셨다. 주님도 요나의 물고기를 언급하셨지만, 이 전도지는 잘못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도 죽지 않았다고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요즘 많은 종교계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부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영이 떠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만약 주님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 받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 죄가 용서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주님의 죽으심의 효과에 대해 자꾸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하스 왕의 죄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 이것이 아하스 왕이 저지른 두 번째 죄입니다. 그는 희생 제사를 잘못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전의 물두멍을 변경시킵니다. 희생 제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이 물두멍에서 씻었습니다. 손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물두멍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깨끗하게 씻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서서 씻기에 적합한 크기와 위치에 있었습니다. 모양도 씻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하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버리자. 물두멍은 금속으로 된 받침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받침의 옆판을 떼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물두멍이 밑으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제사장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씻기를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방법을 방해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될지를 알도록 디모데전서를 썼습니다. 우리는 우리 머리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는 안 되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물두멍을 자기 나름대로 아이디어로 고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제사장들이 깨끗하게 씻기를 어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단은 오늘날도 이와 같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통해서 사단은 우리 주님의 희생 제사를 약화시킵니다. 그리고 세상을 통해서 우리들의 영적인 거룩의 수준을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도덕적인 기준을 자꾸 떨어뜨리고자 합니다. 우리들이 만찬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일 때, 먼저 자기 자신을 살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가 있으면 자백하고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나와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예배에 참석할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모든 집회에 나오기 전에 우리는 자신의 죄를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그릇만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거룩하지 못한 곳입니다. 여러 가지 미디어들, TV와 영화가 그러합니다. 세상은 계속적으로 우리가 낮은 도덕적 수준을 살도록 폭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산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산다면 우리를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요한복은 17장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은 덧붙이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진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결한 삶을 살았던 사람의 비결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비결은 주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과 기도가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한 살을 유지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 아주 잘못된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방해했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의 궁전과 예루살렘 성전 사이에서는 연결 통로가 있었습니다. 낭실은 지나가는 통로 길이라는 뜻이 됩니다. 왕이 궁전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왕이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나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 쉽게 들어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는데 대해 흥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주 나아가기를 원치 않은 것입니다.

성도님들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의 정기 집회에 잘 참석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집에서 모임에 이르기까지 쉬운 길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은 성도님들이 있기에 안전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지역모임의 진리는 중요한 진리입니다. 저는 스코틀랜드의 어떤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만, 지역교회의 모든 정기 집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는 것이 기쁘도다. " 어떤 이유로 정기적인 집회에 참석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사단이 주는 것임을 기억해주십시오. 사단은 항상 성도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합니다.

아하스 왕은 이와 같은 세 가지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지만, 매우 심각한 교훈을 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방식에 순종해야 합니다. 왕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은 지역 모임에 장로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장로들에게 모임을 돌보도록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성도들을 인도하고, 꼴을 먹여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사단은 매우 영리해서, 장로들이 그와 같은 인도를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임의 장로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장로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장로들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아하스왕이 생애 가운데 했던 4번째 실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7장에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아하스 왕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에게 표적을 구하라. 내가 징조를 주겠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그와 같이 징조를 구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그 생애의 최고의 특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징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이 징조를 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친히 주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9:6) 이같이 하나님의 징조를 거부한 날, 그는 주님께서 처녀로부터 태어난다는 위대한 진리를 배울 수 있었던 위대한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인도자인 아하스 왕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심각한 죄를 저지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 시작합니다. 인도자들이 하는 것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둡거나 캄캄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하스 왕의 시대가 지난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부흥시키는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는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을 소생시켜달라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같은 하나님을 믿고 또 오늘 저녁 말씀을 축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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