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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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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디도서 1)

짐 베이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1-4).

사도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것은 다메섹 도상이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음성과 밝은 빛을 보고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오니까? 하늘에서 이와 같은 대답이 들렸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 때까지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몸은 누군가가 훔쳐 갔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그같은 대답을 듣고 그의 생애는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22:10). 이 때 최초로 그는 예수님을 라고 불렀습니다. 몇 년 후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씁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9). 바로 그와 같은 방법으로 사도 바울은 구원받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계신 성도님들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구원받으셨을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죄가 깨끗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이 필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서 벌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지옥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와 같은 복음이 사도바울의 생애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이 복음을 가지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여러 지역모임의 성도들에게 편지도 썼습니다. 신약성경의 13개의 서신서를 사도 바울이 썼습니다. 만약에 히브리서를 사도 바울이 쓴 것이라고 본다면 14개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이 디도서는 사도바울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쓴 서신서입니다. 디도서를 썼을 때 그의 생애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2년간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풀려납니다. 그리고 18개월 동안 자유로운 몸이 됩니다. 18개월 후 사도 바울은 다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로마시 밖으로 나가서 처형당합니다. 사도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두 서신은 두 사람에게 보낸 것입니다. 하나는 디모데이고 다른 하나는 디도입니다.

디모데와 디도는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모두 사도 바울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닐 때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그 후 이 두 사람은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을 따라다니면서 다시 사도 바울이 전도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와같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들은 은혜 가운데서 성장해갔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에서 성장해간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지 않고는 자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하지 않는 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살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비결입니다. 젊은 성도님들이 주님의 일에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이 두 사람은 성장해가면서 복음의 다른 측면들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과 함께 다니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전도 여행이 고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았을 때 하늘에서부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 이미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을 것( 9:16)을 들었습니다. 디모데와 디도는 그 계시의 말씀이 사도 바울의 생애에서 진실로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여행에서 두 사람을 각각 다른 지역에 남겨둡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둡니다. 디모데전서는 디모데가 에베소에 있을 때 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작은 섬인 그레데에 남겨둡니다. 그레데는 주님을 섬기는데 좋은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고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으며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이 생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곳에 디도를 둡니다. 그렇게 한 목적은 디도더러 그 모임에서 목사가 되라고 한 게 아닙니다. 신약성경의 교회 진리는 한 모임에 한 사역자가 있을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한 지역모임에 복수의 장로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레데 인들은 거짓말쟁이였습니다. 또한 악한 짐승, 즉 순수하거나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로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디도를 그같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보내었습니다.

디도서 1-3장에서 선한 일이라는 단어가 6번 나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선한 행동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경은 이 진리를 아주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은혜요 믿음이지 결코 선한 행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구원받은 후 성도의 삶에서 선한 행실이 있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레데 사람들 가운데 구원 받은 성도는 그 삶이 변화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참이 더 이상 순결하지 못한 특징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자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구원은 단지 믿는다는 생각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 삶에서 그 변화를 입증하게 됩니다. 오늘 성도님들과 제가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과연 변화가 있는지 자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보내서 이와 같은 진리를 가르치도록 한 것입니다.

선한 일 1 16절에서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여기서는 말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실제의 행동에서는 선하지 못한 경우 그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자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삶 속에 그러한 변화가 없다면 아직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일을 언급한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2 7절에서 선한 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제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선한 일의 본이 되라.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오늘 이 강대상에 서서 성도님들에게 선한 일을 가르치는데 나의 실제의 삶이 악한 일로 가득 차 있다면 저는 제가 가르친 진리를 부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나의 삶은 내가 가르치는 진리에 대한 추천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선한 일에 대한 언급은 21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불법, 모든 더러운 것에서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친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선한 일을 위한 열심을 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다음 선한 일에 대한 언급은 3 1절에 있습니다.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성도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법률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법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된 또 다른 증거 중 하나입니다.

그 다음 선한 일 3 8절에 나와있습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이와 같은 가르침이 계속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디도는 그레데 모임에서 선한 행실을 계속적으로 가르쳐야 할까요? 그레데 사회에 그와 같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디도는 그레데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선한 일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또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마지막 언급은 3 14절에 있습니다.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사도 바울은 이 서신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선한 일(좋은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세상에 살면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직장에서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선한 일은 상사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것입니다. 상사를 주님처럼 섬기며 정직하게 섬기는 것입니다. 상사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원칙 중 하나입니다.

디도서는 짧은 서신이며 3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 장은 약간씩 강조점이 다릅니다. 1장은 모임생활을 할 때 모임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2장에서는 개인적인 생활과 가정생활에 대해 말합니다. 3장에서는 우리의 공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이 세가지 영역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이제 읽어드린 디도서 1 1-4절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자기가 하고 있는 봉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종으로 삼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종은 사도 바울이 얼마나 외롭게 주님을 섬겼는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종은 외로운 존재이지만 사도는 권위와 위로부터 부르심 받았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매우 고귀하게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 전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종으로 삼으신 것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시고, 겸손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진리의 지식을 가진 자입니다. 복음의 진리 중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으면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매님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어는 권위를 의미합니다.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유산을 상속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면 훗날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물려줄 나라를 이어받을 후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갈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오늘 공중에 오시면 오늘 떠나갈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유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가 된 것은 입양함으로써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아들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로 정하셨습니다.

2절에서 사도 바울은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소망입니다 2절 후반부는 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하나님은 창세전에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3절은 현재를 말해줍니다. 이 말씀을 전도를 통해서 드러내고 계십니다.

미래에 대해서 좀 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생명의 본질상 영생입니다. 시간적인 지속으로 봐서도 영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모든 경륜에 대한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소망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에 가게 되면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이 벗겨질 것입니다. 영원토록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앞에서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영광을 창세전부터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영광스러운 계획을 세상을 만들기도 전에 갖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자 놀라셨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죄를 해결할 것을 생각하셨다. 그러나 성경은 어린양이신 우리 주님께서 죽임을 당하기로 결정된 것은 세상을 만들기 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에도 결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고 2절은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레데 사람들이 이 놀라운 축복을 얻으려면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 성도님들도 직장이나 학교에 친구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친구들 사이로 성도님들을 보내신 것은 그들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해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강대상에서만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주님에 관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증거를 사용하셔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책임으로 표현합니다.

4절에 그 본이 나와 있습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 이는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그리고 디도가 복음을 믿고 구원 받았던 때를 상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은 얼마나 복된가요? 이 말에는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바라볼 때 마음에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부모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늘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고난의 전도 여행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디도입니다.

그리고 인사말이 나옵니다. 디도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는 항상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계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바울은 은혜만 아니라 긍휼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 자격 없는 세상에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이세상 사람들 중 누구도 하나님께 아들을 보내달라고 구하지도 요청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긍휼 다음에는 평강이 나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다면 우리 마음에는 평안이 없을 것입니다. 은혜는 강물처럼 흐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마음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보좌에 앉으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는 우리에게 지옥을 선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앉아 계신 보좌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을 때 여행에 피곤하셔서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가운데 아직 우리 주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못하신 분이 계신다면 지금 하나님께로 나오셔서 죄를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라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구세주이십니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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