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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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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1장

-짐 베이커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1:1-5).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왜 그같은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들이실 때 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 곡식을 심고 거두어 복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심고 거두는 일을 6년간 하고 7년째는 심지 말고 땅을 내버려두라 명하셨습니다. 8년째 되는 해부터 다시 6년간 심고 거둘 수 있었습니다. 14년째 되는 해에도 역시 안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처음 6년뿐 아니라 7년째에도 심고 거두었습니다. 이를 490년 동안 불순종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은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예수의 어머니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초청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에 이의 제기가 아닌 순종을 기대하십니다. 저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아이들 둘에게 종이와 연필을 주고 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년마다 지켜야 하는 안식년을 490년간 불순종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몇 년간 불순종했는가 그 중 한 아이가 금방 대답했습니다. 70년 동안 불순종했습니다.

역대하 36 20-21절을 보겠습니다.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 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매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 안식년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 왕으로 70년간 포로 삼는 것을 허락했다: 성경은 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아마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밭에서 일하는 것까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실 리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생각으로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들은 바벨론에서 70년을 포로로 보내야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는 엄청난 고난입니다. 다니엘서의 첫 부분에서 이미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바벨론 왕궁에서 어떠한 고난을 받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갔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바벨론식 이름을 붙이고 바벨론 음식을 주었습니다. 바벨론 문화와 학문을 배우게 하고 바벨론 신 앞에서 경배하기를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음식을 거부하고 우상에게 절하기틀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우리는 하늘나라를 바라고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희생을 그 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9장에서 다니엘은 이제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포로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15-16세였을 것입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이제 85-86세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 9장에서도 여전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단지 기도만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예레미야)을 읽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포로생활이 70년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다니엘은 , 이 말씀은 참으로 복된 말씀이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나 보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시간이 기도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자백합니다. 다니엘은 그 죄에 책임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의 나이가 15-16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다고 다니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그 죄를 범한 것처럼 자백합니다. 만약 죄가 모임에서 발생하면, 좋아, 이제 이 일이 어떻게 되나 보자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임 안에 있는 죄를 내가 범한 것이라고 자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하지만 중요한 교훈입니다.

이같은 내용이 말라기의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두 개의 여정이 나옵니다. 하나는 구약성경의 처음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있습니다. 처음 것은 출애굽 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이고, 두 번째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물론 출애굽 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 대해 성경이 훨씬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홍해를 건너고, 물이 반석에서 나오는 수많은 기적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과정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출애굽 과정에는 구름기둥이 인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는 그와 같은 안내가 없습니다. 그렇게 더 멀고 어려운 길에서 그들이 가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사도행전 2장 교회의 초기에 많은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기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경험할 것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귀환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성전을 지어야 했고 성벽도 짓고 문을 달아야 했지만 이를 다 해냈습니다. 그 결과 느헤미야 8장과 에스라 8장에서 두 번의 부흥이 있었습니다. 말라기는 에스라, 느헤미야의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지 80년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역사해주셨는지 잘 모르지만, 틀림없이 복음을 밝혀주셔서 영혼들이 구원받는 복된 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묻혀 살 수 없습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축복과 임재를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방법과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에서는 7번이나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1:2).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 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6).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2:17).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3:7).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3:8).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3:13). 그들은 하나님 말씀마다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매에게 너울을 쓰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저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구원받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읽을 때 가져야 하는 태도입니다. 말씀을 통해 배운 바를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13).

주님 일을 할 때, 꼭 이렇게 해야 하는가? 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전부를 주셨습니다. 그와 같은 사랑으로 우리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하늘에서 보상받을 것입니다. 그 날 주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말하신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섬김의 동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1:1-3).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여러분을 위한, 저를 위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반응했습니다. 죄인임을 자백했습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말라기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지난 몇 주간에 성도님들의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을 움직인 적이 있습니까? 말라기 시대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여러 측면에서 자기 피로 살았고 항상 옳지도 않았지만, 하나님과의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은 사람을 사랑하시며 죄와 죄인을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6~10).

하나님은 출애굽기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아들이라 하시고 이사야 49장에서 나의 종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은 아비를 공경하고 종도 그 주인을 공경하는 법인데 나에 대한 공경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스라엘은 아들로서 그리고 종으로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닙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들이시지만 종이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아들의 최고의 모습을 주님의 생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42장에서 하나님은 주님을 내 마음에 기뻐하는 종이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양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들은 양 떼 중에서 제물로 드릴만한 양을 골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양을 보고 이것은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팔아야지 하고 절뚝이거나 좋지 않은 양은 팔아봐야 제 값을 못 받으니 이걸 하나님께 드려야지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 최악을 드리고 최고의 것은 자신이 가졌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 왕, 총독에게 드려보라. 너희들이 나에게 하는 것이 총독에게 하는 것보다 못하다. 성도님들의 삶에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첫 번째 우선순위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고 주님이 첫 자리에 계신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제사 드리는 성전 문을 여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은 헛되이 제단에서 제물을 태우고 있다. 나는 너희를 기피하지 않는다.고 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삶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기뻐하고 계실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에녹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을 바라보시고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설교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꼭 장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11-14).

이스라엘 백성은 주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땅에 임하실 때 주님의 이름이 만방 가운데 영광스럽게 나타나 모든 무릎이 주 앞에 꿇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모독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상에 더러운 것을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은 하얗고 둥근 꿀과 같은 과자인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합당치 않게 대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을 매 우리는 말씀의 신선함을 느끼고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우리는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하고 성도가 아닌 사람과 교제하고 모임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영적인 입맛을 상실합니다.

모임생활을 할 때,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주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길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지역모임이 이같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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