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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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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한
여인 한나

-짐 베이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아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아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삼상 1:1~3)

먼저 사무엘상의 배경이 되는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의 첫 30년의 역사는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첫 30년의 역사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여호수아와 신약의 사도행전을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지 30년 후에 여호수아는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의 장사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매우 경건한 인도자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깁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함께 일한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깁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인도자인 여러 장로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쳤고 디모데는 충성된 사람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해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분들에게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시대가 지나고 나면 이스라엘은 이제 다른 형태의 통치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는 30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3장에서 약 450년간 사사의 통치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30년 세월, 사사기는 450년 세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는 13명의 사사가 나와 있습니다. 첫 사사는 옷니엘인데 그는 출발을 잘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호수아처럼 그도 경건한 인도자였습니다. 450년의 시간이 흐른 후 마지막 사사의 이름은 삼손입니다. 첫 번째 사사인 옷니엘은 영적인 인도자였으나 마지막 사사인 삼손은 심각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사람들의 통치는 처음에는 좋게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삼손의 마지막은 매우 비참해서 이방인들에 의해서 눈이 뽑히게까지 됩니다. 첫 번째 사사는 매우 영적인 인도자였지만 마지막 사사는 소경 인도자였던 셈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 반복됩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의 통치 제도는 왕입니다. 처음 왕도 출발을 잘합니다. 마치 첫 번째 사사가 출발을 잘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왕인 다윗이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었던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물론 첫 번째 왕은 사울입니다만,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한 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한 첫 왕은 다윗입니다.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도 아주 놀라운 통치를 합니다. 사사들처럼 왕들도 처음에는 좋은 출발을 보이나 마지막에는 사사들처럼 실패하고 맙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 앞에서 모두 죽이고 그의 눈을 빼버립니다. 마지막 사사가 눈이 뽑힌 것처럼 마지막 왕도 눈이 뽑힙니다. 마지막 사사가 이방인에 의해 수치를 당한 것처럼 마지막 왕도 이방인에 의해 수치를 당합니다.

시드기야 왕이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70년을 보냅니다. 바벨론 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두운 고난의 시절이었습니다. 7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이제 또 다른 형태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세 번째 통치는 제사장들에 의한 통치입니다. 귀환했던 제사장으로는 예수아를 들 수 있습니다. 사사들이나 왕들과 마찬가지로 제사장도 처음에는 출발이 좋습니다. 예수아는 영적인 제사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제사장 통치기간도 약400년간 지속됩니다. 400년은 구약과 신약 사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이스라엘은 제사장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서 그 제사장들의 이름을 압니다. 안나스와 가야바입니다. 그러나 안나스와 가야바는 첫제사장인 예수아처럼 영적인 제사장이 아닙니다. 항상 반복되는 것은 처음 시작은 좋지만 마지막은 늘 실패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마지막은 물리적인 소경이 아니라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와 같은 제사장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않는다( 19:4). 그들은 진정한 메시아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은 사사기의 마지막 시대입니다. 사사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것은 특히 젊은 성도님들 가운데 아직 성경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 원리를 잘 기억하시면 성경을 보실 때 유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의 첫 번째 부분은 1장에서 16장까지 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17장부터 마지막 장인 22장까지 입니다. 그리고 1장부터 16장까지 우리는 13명의 사사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부분에 제목을 붙여본다면 13명의 사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부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록은 본문은 아니지만 앞에 있는 본문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록은 앞에 있는 사사기 전체의 배경을 보여줍니다.

사사기 17 6절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장에도 그와 같은 말이 나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말은 사사기 시대를 꿰뚫어주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는 통치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시대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어린양의 보혈로 구속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바로왕의 권세로부터 놓여난 사람들입니다. 람세스 2세는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한 고역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셨습니다. 성도님들과 저는 더 강한 권세로부터 구속받았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바로보다 훨씬 강한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늘날 신약성경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기는 아주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5장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 제사장으로 삼으신 레위 지파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부도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죄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영적으로 격려가 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기도하고 있는 여인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의 기도를 통해서 그 시대의 영적인 성격이 바꾸어집니다. 그 여인은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아들을 주십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로 인도하는 영적인 선지자가 됩니다. 사무엘은 왕이 될 다윗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위를 이어 왕에 오르게 됩니다. 사무엘을 통해 사사기의 어두운 시대에서 솔로몬의 영광에 이르는 밝은 시대로 이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무엘을 주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한나가 살고 있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유명한 장소가 아닙니다. 에브람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입니다. 그녀는 두개의 산봉우리 사이에 있는 계곡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장소였습니다. 주님께서도 그와 같이 산지에서 사셨습니다.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1:46). 또한 그녀가 살고 있는 가정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부인이 둘이기 때문입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삼상 1:4-8).

그녀의 남편은 일반적으로 보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매년 하나님의 집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1년에 한 차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는 1년에 3차례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책임에 대해 올바로 응답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도 그렇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들을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힘을 다해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첫 번째 우선순위로 놓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주님께는 덜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신 바 된 자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닌 하나님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보실 때 우리의 모임생활만 보시는 게 아닙니다. 직장에서 생활할 때에도 하나님의 눈은 우리를 살피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은 장로들의 자격을 말할 때, 그가 모임에서 얼마나 영적인가 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여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여기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기 때문에, 또 우리 모두가 함께 있기에 영적으로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3, 디도서 1, 디모데후서 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사용하셔서 3번이나 장로의 자격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장로의 자격에는 3가지 범주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가 가정에서 어떤 사람인가, 두 번째는 그가 세상 가운데서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세 번째로는 그가 교회에서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가 교회에서 영적이기만 하면 된다.

사무엘상 1장을 통해서 우리는 가정에서도 영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엘가나는 좋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그 정준을 여시고 그 가정의 상태를 보신다면, 어떻게 느끼실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엘가나의 가정을 보면 이와 같은 의문이 당장 들게 됩니다 엘가나, 당신은 왜 부인이 둘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부인이 둘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 면에서 실수를 하여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성경에 사라와 하갈의 갈등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사라와 하갈에 대해, 하나는 영적인 예루살렘이고 다른 하나는 육적인 예루살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한나가 엘가나의 진정한 부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만, 부인이 둘인 이 가정에는 틀림없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브닌나는 여러 아이를 두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히고 격동시켰습니다. 브닌나는 육적인 여인이라면, 한나는 영적인 여인입니다. 브닌나가 한나를 격동시킬 때 한나는 대응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많은 악한 일들을 당하셨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한나가 격동시키는 브닌나에게 한 번이라도 불평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단지 한나는 울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울고 기도했습니다. 만약 우리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한국모임에 대해 모릅니다만, 만약 모임에 문제가 있다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장로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젊은 성도들을 위해, 그들이 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모임은 영적인 곳입니다. 늘 기도가 드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모임의 기도집회가 기도하는 유일한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각 가정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만약 모임에 와서만 성경을 보고 기도를 드린다면 그것은 슬픈 일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엘가나의 삶에는 이와 같은 모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인에게 격동 당했을 때 울면서 기도하는 한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적, 세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격동 당하지 않습니다. 한나가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테스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나로 하여금 아이를 갖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한나가 마침내 아이를 가졌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한 기도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9~11).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지었던 성막은 광야를 지날 때 여러 장소를 이동해왔습니다. 광야생활이 끝났을 때 성막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전은 솔로몬 성전이 아닌 성막입니다.

성막은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뜰과 성소와 지성소입니다. 뜰에서 성소로 들어가는 데는 휘장이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도 두 번째 휘장이 있습니다. 뜰에 있을 때는 지붕이 없기 때문에 태양빛이 그대로 비춥니다. 성소로 들어가게 되면-제사장들이 들어갑니다 -더 이상 태양빛은 비취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소 안은 매우 밝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7개의 등대가 밝히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등대의 불은 꺼지지 않고 24시간 타고 있습니다. 두번째 휘장을 지나 지성소로-여기는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에는 역시 햇빛이 없습니다. 등대의 빛도 없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은 어두운 곳에서 기도했을까요? 아닙니다. 어둡지 않습니다. 거기 무슨 빛이 있겠습니까?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과 빛이 비추고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는 장소입니다.

실로에는 여호와의 전인 성막과 제사장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그곳에 엘가나가 올라갔고 브닌나와 한나와 자녀들이 함께 갔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곳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울고 있느냐? 그는 한나가 왜 울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엘가나는 아내 한나의 영적인 감각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습니다. 간혹 자매가 남편보다 더 영적일 수 있습니다. 모임에서 형제들이 공적인 일들을 담당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제가 잠잠한 자매보다 더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는 모임의 자매님들의 영적인 기도가 그 모임의 영적인 성격을 규정한다고 믿습니다. 자매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적인 일을 안 하신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나의 기도는 영적인 사람을 만들어 냈습니다. 한나의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제사장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에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니 저희가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저희에게 응답하셨고 저희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저희를 사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99:6-8)

시편 99편은 세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제사장이고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은 여호와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이 세 사람이 드린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셨을 뿐만 아니라 응답하셨습니다. 이 세 사람은 하나님께 말씀 드렸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에서 저희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 여인의 기도의 결과입니다. 그녀의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무엘에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라고 기도부탁을 하는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사람들이 찾아와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영적이고 그의 기도가 응답되는 사람에게 기도부탁을 합니다.

산지에서 살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집도 아주 외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남편도 아주 일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집에 갈등과 눈물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 여인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기도는 민족을 바꾸어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시편 99편에서 높이 평가하는 인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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