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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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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들

짐 베이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1:5-9)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로마의 감옥에 갇힌 것은 사도행전 2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로마로 가기 위해서 고난과 파선하는 여행을 했습니다. 그같은 여행 끝에 로마에 겨우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로마의 감옥이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감옥으로 들어가지 않고 셋집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집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로마군인과 함께 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 군인들을 빌립보서 1장은 시위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3). 시위대는 로마 황제를 경호하는 군인들입니다. 커다란 책임을 가진 냉정한 군인들입니다. 그같은 군인이 사도 바울과 묶여 24시간을 보냈습니다. 8시간을 근무한 후 다른 군인과 교대하였습니다. 그렇게 2년간 사도 바울은 시위대의 수많은 군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 몇이 구원받았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지역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성도님들이 있었고 바울을 방문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도 그같은 언급이 나옵니다( 28:15). 아마 이같은 대화를 함께 묶여 있던 시위대군인들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해 듣고 어떤 군인들이 구원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갇혀 있지만 이곳이 주님을 섬기는 장소임을 알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상황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1:4),

사도 바울은 갇혀 있는 2년 동안 4개의 서신을 씁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가 그것입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기쁨기뻐하라는 말로 가득합니다. 내가 만약 쇠사슬에 매인 죄수가 되었다면 기뻐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십시오. 골로새서는 우리 주님이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몸된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이러한 놀라운 영적인 사실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는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허무셨는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갖고 있는 부요를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하늘에 속한 놀라운 은혜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4번째 서신인 빌레몬서는 어떻습니까? 오네시모는 바울과 감옥에 함께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온 노예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해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재판이 끝나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서는 오네시모에 대한 천거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년간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석방됩니다. 그래서 약 1년 반 가량 자유롭게 여러 지역모임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디도서를 씁니다. 18개월이 끝나자 그는 다시 체포되어 갇힙니다. 이것이 마지막 투옥입니다. 그는 다시 석방되지 못하고 순교합니다. 빌립보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21). 이같이 말하는 그의 믿음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도 이같은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지막 투옥에서 그는 디모데후서를 씁니다. 첫 번째 투옥되었을 때 쓴 4개의 서신서를 읽으면, 석방되어 주님의 복음을 전할 소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는 다릅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 이제 그는 주님을 만날 소망을 말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다고 말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을 영원토록 누릴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사도 바울의 마음에 늘 있었던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무엇입니까? 광야에서는 성막이었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는 성전이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임재하신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성막, 성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역교회가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마다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집이 되고 주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 14:24-25).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지역 모임은 하나님이 계시므로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썼습니다. 교회의 집회는 우리의 생각을 따라 고안해 낸 것이 아닙니다. 신약 서신서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집에 관한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두었습니다. 그레데 사람들은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한 일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행함으로 하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늘에 들어가는 것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로만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하늘에 합당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집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선한 일이 먼저이고 구원이 그 다음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순서는 구원이 먼저이고, 그 후에 선한 일 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도서를 쓰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 이게 디도서 1장의 주제입니다. 왜 모임에는 복수장로가 있어야 합니까? 모세 시대에는 모세가 백성들을 재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담하기 위해 모세를 만나야 했고, 줄을 길게 서야 했습니다. 어느 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커다란 짐을 너 혼자 진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와 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을 세웁니다. 그들은 성숙한 사람, 경건하고 깨끗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입니다. 구약 역사 전체에서 이스라엘에는 항상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원리를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십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장로는 복수여야 합니다. 한 장로가 여러 개의 지역교회를 돌보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각 지역모임마다 복수의 장로들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를 사도행전에서 그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0:17,28). 사도바울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고자 가는 도중입니다. 오순절에 많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모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에베소 장로들에게도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오라고 요청합니다. 여기 장로들이라고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말합니다. 모든 지역교회의 장로들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대하여 스스로 주의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살을 살펴 죄악에서 떠나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하나님께 열매를 맺고 있어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삼가는 것입니다.

양떼는 지역교회를 상징합니다. 양의 특징 중 하나는 길을 헤맨다는 점입니다. 목자의 첫 번째 책임은 양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어떤 양이 길을 헤매고 있으면 가서 찾아 데리고 와야 합니다. 풀도 없는 곳에서 헤매고 있으면 목초가 풍성한 곳에 데려가야 합니다. 그 좋은 예가 시편 23편입니다. 바위나 무거운 틈 사이에 들어가 있으면 꺼내오고 상처를 치료해주어야 합니다. 시편 23편은 이를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며 라고 말합니다. 즉 장로는 지배하지 않고 안내하고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이 양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이 주인이 아니라 다른 주인의 양떼를 돌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양떼인 교회를 위해서 누가 값을 지불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보배로운 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 교회는 값싼 존재가 아닙니다. 아주 소중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모임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교회 안에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여러 지역모임에서 장로들을 세우고자 합니다. 세운다는 단어는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4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했던 곳을 다시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세워진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했습니다.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14:23). 여기 택하다는 단어는 세우다와 원어상 같은 단어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입니다. 지역모임에서 질문을 하면 대담해줄 수 있는 형제들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와 같은 사람은 한 사람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을 장로로 세웁니다 각 지역 모임마다 그렇게 합니다. 각 지역모임은 독립된 단위입니다. 각 지역모임마다 돕고 가르쳐주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모임의 장로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청했을 때 에베소 장로들이 온 것으로 보아 누가 장로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이 일을 디도에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가 될 사람들의 특징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3, 디모데 전서 5, 디도서 1장 그리고 베드로전서 5장에서 장로의 여러 가지 특징과 자격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먼저, 세상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즉 세상에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지금 장로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장로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어느 지역모임의 책임 있는 장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의 수준을 보고 거기 모인 성도들의 수준을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말은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책임 있는 장로들의 경우에 강조되는 것입니다. 이 장로들의 삶을 보고 교회와 교제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대문에 중요합니다. -그는 책망 받을 만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장로들을 보며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했대 라고 말할 수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장로들의 세상에서의 삶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내부를 보십니다. 어떻게 자녀들을 기르는지 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경전한 가정인지, 등을 보십니다 가정의 영적 수준은 교회의 영적 수준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장로가 아닌 가정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로들의 삶이 본이 되어서 다른 성도들이 그와 같이 따라가야 합니다. 세 번째로 세상에서의 삶과 가정에서의 삶 외에도, 교회에서의 행동도 중요합니다. 지역모임 가운데 장로는 성도들의 신뢰를 받고 상담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강대상에서 공적으로 말씀을 전할 수는 없어도 개인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왔을 때 그를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장로는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일까요? 첫 번째 과정은 그가 성도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나오고 있는 젊은 모임 중 하나가 데살로니가 모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아직 장로가 없었습니다. 5 12절에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알고는 누가 장로인지를 알아주고 주목하라는 뜻입니다. 13절에서는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장로들은 바른 교훈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을 붙들어주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경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잠깐 바른 교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훈 혹은 교리는 가르침의 몸통입니다. 그런데 바른, 혹은 견고한은 건강과 관련 있습니다. 저는 42년간 건강과 관련된 직종에서 근무했습니다. 건강은 우리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켜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균형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단백질, 지방, 이런 것들이 균형 있게 섭취되어야 합니다. 비타민과 미네랄도 필요합니다. 영국음식과 한국음식은 매우 다릅니다만, 영양분을 보면 균형 잡혀 있습니다 이와같이 교리는 성도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매주 예언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매주 교회진리만 다루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진리나 예언이나 다 필요합니다. 그래야 균형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경건한 모습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균형있는 교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 66권을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은 매우 귀중한 교훈입니다만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관련해 적용할 원칙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교리는 신약성경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디도서가 그 중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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