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사무엘의 특징

짐 베이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삼상 3:1-3).

사무엘 당시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해서 구원 받았을 때 감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사사들이 통치하는 시대에 이르면 구원의 감격이 살아있던 시대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그같은 상황에서 벽지에 있는 한 여인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를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나의 경건한 삶을 존중하시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한나의 서원대로 사무엘은 여호와의 집에서 자라납니다. 당시 여호와의 전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실로는 홍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은 여러 곳을 거쳐 마침내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을 안치해 놓았습니다. 실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곳입니다.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고 그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였던 것을 볼 때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모일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는 매우 중요합니다. 신약의 교회 가운데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또한 성령님도 계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우리가 모일 때 하나님의 임재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 이 임재하는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무엘은 아직 아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임에 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은 집회 역시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절 한 절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 모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임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식을 위해서 주어진 게 아닙니다 그대로 실천(순종)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당시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희귀하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부족했고 무시당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존중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엘리의 두 아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제물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각 지역 모임에서 가장 슬픈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그 점일 것입니다.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들어야 합니다. 엘리는 자기 자리에 누워 있었고 눈은 어두워 사울을 잘 볼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영적인 비유로 말했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벧후 1:3).

하나님의 등불 ()등대의 불을 의미합니다. 성막의 등잔은 항상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제사장은 등잔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책임을 각 모임의 장로들에게 주셨습니다. 각 모임에서 말씀의 빛이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장로들의 삶이 깨끗할 때 성도들의 삶도 깨끗합니다. 장로들은 양들을 먹이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신선한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4-10).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도울 사람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응답으로 얻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아직 소년이지만 (어떤 성경학자들은 대략 12살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여기 사무엘이 하나님과 어떻게 개인적인 경험을 했는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예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 하나님과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바벨론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수천 년 전에 지어진 놀라운 도시입니다. 발전된 문명의 장소입니다. 많은 문화도 있었고 종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은 바벨론을 떠나 하나님을 위한 순례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되기 전에 하나님과의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자기 팔에 염소의 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형 에서가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그를 라반 집으로 보냈습니다.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했습니다. 3일을 갔고 날은 어두워졌습니다. 외롭고 어두운 날이었습니다. 그는 돌을 베개 삼아 누웠습니다. 그 날이 야곱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거기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서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영광의 하나님을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그의 생애를 변화시켰습니다.

출애굽기에 모세가 나옵니다. 그는 떨기나무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나무는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이 꺼지지 않으므로 가까이 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모세는 영광의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사다리 위의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것이 모세를 변화시켰습니다.

여호수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모세가 죽고 나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군대장관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는 영광의 하나님도, 사다리 위의 하나님도 불타는 떨기나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도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가 진정 헌신된다면 하나님께서 개인적인 관계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게 사무엘의 경험 입니다.

사무엘이 누워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엘리에게 갔고 엘리는 가서 다시 누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3번째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때도 사무엘은 엘리에게 갔습니다. 그러자 엘리는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누웠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를 성경은 하나님께서 임하셨다. 고 말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엘리는 여호와여 말씀 하옵소서.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그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므로 말씀 하옵소서.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놀라운 대답인지 모릅니다. 이제 하나님과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삼상 3:11-14).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합당한 종에게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격려의 말씀을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죄를 자백하기 전까지 격려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한 일을 행하시고 듣는 자의 귀가 울리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교리적인 죄와 도덕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흠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는 것은 진지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엘리에 대한 심판입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지만 그 직무에 실패했습니다. 제사장은 항상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는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가 영적으로 어두웠던 이유입니다. 어떤 민족도 그 인도자보다 높이 갈 수 없습니다. 어떤 교회도 장로보다 수준이 높아질 수 없습니다. 이 장면에서 하나님은 인도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세 번째로 엘리의 집에 대해 말한 바를 이루리라.입니다. 엘리는 처음은 좋았으나 끝에 가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심판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축복으로 이끌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착각합니다. 교회 장로를 존경받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책임이 있고 일하는 자리입니다. 사무엘 역시 이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는 맨 처음으로 심판의 말씀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죄 용서와 자유와 여러 가지 하나님의 축복을 알립니다. 그러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려면 경고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전해야 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을 때 닥칠 위험에 대해 경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엘리를 심판하는 것은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사무엘상 2장 후반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이미 심판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엘리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엘리 제사장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엘리의 가정을 보셨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이 잘못으로 가정이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입니다.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 3:15-20).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심판의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물었습니다. 숨기지 말고 말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인 자녀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의 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고후 6:11).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지만 그 입을 닫지 않았습니다 또한 잠언 말씀도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27:6)고 하십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 맞추었을 때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고 바울이 고린도 성도를 꾸짖은 것은 신실한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그가 들은 전부를 말해주었습니다.

이같이 시작한 사무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여러 가지 특징들을 지니게 됩니다

첫째 사무엘은 영적으로 성장해갔습니다.

사무엘은 자랐습니다. 몸은 자라는 것을 멈추지만, 성도의 삶은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욱 자라야 합니다. 사무엘은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성도들은 더욱더욱 경건해집니다. 계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다면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습니다.

둘째 사무엘의 사역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말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의 말은 듣는 사람들의 양심과 마음을 찔렀던 것입니다.

셋째 사무엘에게는 간증이 있었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알았습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이고 브엘세바는 최남단 성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를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실로에서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무엘서는 어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며, 적을 물리치며, 백성들을 기도하며, 나중에 왕에게 기름을 부을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다시 계셨습니다. 이제 어두운 심판을 잊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한 여인의 기도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 짐 베이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로들  (0) 2008.05.17
선한 일(디도서 1장)  (0) 2008.04.24
말라기 3,4장  (0) 2008.04.23
말라기 2장  (0) 2008.04.22
말라기 I장  (2) 2008.04.21
사무엘의 성장 배경  (0) 2008.04.19
한나의 기도응답  (0) 2008.04.18
기도한 여인 한나  (0) 2008.04.17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