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복음의 확장

-짐 베이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 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1~12).

사도행전은 의사인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그는 두 권의 성경을 기록합니다. 하나는 주님의 생애를 그립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생애를 그립니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처음 30년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하고 교회가 탄생합니다.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1장에서는 주는 부활하셔서 제자들과 함께 40일간 계십니다. 그동안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 손의 못자국을 만지게 하셨고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후 세상에서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가 이 때입니까?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 바 아니다. 복음을 전할 능력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성령이 오셔서 주실 것이다 그들은 성령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새로운 것입니다. 구약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된 유일한 인물은 브살렐입니다. 구약에서는 단 한 사람이었으나 신약에서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에게 일어납니다. 주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십니다. 성령은 영향력이 아닌 인격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성도 안에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을 위해 살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전도의 프로그램을 말해주십니다. 이는 네 개의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먼저 예루살렘, 그리고 유대입니다. 유대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이 둥글게 퍼져갑니다. 그렇게 복음이 퍼져 가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행전에서 추적할 수 있습니다. 2장에서 성령이 임하자 곧 최초의 전도를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해 3천명이 구원받습니다. 이게 프로그램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이 구원받습니다( 5:16). 유대 지역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집니다.

7장 마지막에 최초의 순교자가 나옵니다, 스데반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면류관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최초의 면류관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복음의 말씀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찌릅니다. 그런데 그의 복음을 거절한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게 됩니다.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7:57~60). 스데반은 전도하다 목숨을 버린 수많은 순교자 중 첫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밖에서 죽습니다. 이는 주님이 죽으신 곳입니다. 죽으면서 그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이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기도입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이도 주님의 기도입니다. 돌이 스데반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받으셨습니다. 하늘은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린 자를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이방에게 복음 증거의 시작입니다. 이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같은 스데반의 죽음을 가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의 사울입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인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핍박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 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1). 여기 중요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흩어졌다 이는 모든 성도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아무 질서 없이 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주님이 마태복음 13장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13:3). 여기서 뿌리다는 단어가 흩어지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사단은 흩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씨를 뿌립니다. 흩어진 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흩어질 때 주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8:4). 그들은 뿌리고 있습니다. 사단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8:5). 이는 세 번째 과정입니다. 사마리아의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매우 재미있는 종교적 장소입니다. 열왕기 하에 보면 우상숭배가 성행한 곳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심산의 예배를 말한 것입니다. 이곳에도 복음이 전해 졌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11:19). 여기에도 흩어진 자들이 나옵니다. 이제 땅 끝의 시작인 안디옥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지역교회입니다.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은 이방 도시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요? 구원받은 사람이 모두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절기가 되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십자가는 유월절 기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어린 양의 피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 양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피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약의 절기를 폐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유대인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 많은 사람들 중에는 이방인 개종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오순절에 베드로의 전도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죽자 흩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씨를 뿌리고 계십니다. 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가정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약의 제사인 유월절 양이 아닌 주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구원받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제 옛날과 같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섬기게 됩니다. 주님께 헌신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 중 일부가 고향인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유대교로 개종했기에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지낸 자가 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여기서 태어난 자가 있었고 그들은 이방인이기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게 복음이 증거되는 과정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복음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에 차별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서 3장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는 로마서 10장입니다.

복음이 안디옥에 들어갔습니다. 이게 곧 유대인의 시대가 끝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11장은 예루살렘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을 주로 전하는 사도는 베드로입니다. 사도 행전의 두 번째 부분은 13장에서 18장입니다. 이를 안디옥 부분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복음을 전하는 자는 바울입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집니다. 이게 바울의 전도여행입니다. 이 전도여행은 3차례 진행됩니다. 이 여행은 안디옥에서 출발합니다. 이는 이방인 부분입니다.

바울은 구원 받은 후에 베드로를 만납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1장에 나옵니다. 둘은 14일간 함께 머뭅니다. 그들은 서로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의 생애에 있었던 많은 사건들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유대인의 사도로 삼고 바울은 무할례자인 이방인의 사도로 삼습니다. 하나님이 각각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만 복음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11:20). 그들은 나사렛 주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경멸 받은 나사렛 출신의 주님을 전합니다. 안디옥에 사는 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그 지역에 살게 하신 이유는 복음을 전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지역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자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도를 통해 복음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합니다. 그 직장에서 내가 유일하게 주를 아는 자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나를 통해 주님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그들도 주님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이게 안디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전했습니다. 전파하다는 단어는 신약에서 두 가지 단어가 쓰입니다. 하나는 공적으로 전파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대화로 전하는 것입니다. 여기 사용된 단어는 후자입니다.

안디옥 성도들은 주님을 삶과 입술로 전했습니다. 그 때 주의 손이 함께 했습니 다( 11:21).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강가에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함께 했습니다. 이는 보호를 의미합니다. 또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했다는 것은 말씀을 읽고,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과 관계가 밀접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간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결과가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 11:21).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이 이방에 닿았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복음이 유럽으로 증거됩니다. 저는 유럽인이라 이 부분을 좋아합니다. 한국에는 언제 복음을 전해졌는지요? 아마 복음이 확장되던 초기에 한국에도 복음이 전해졌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들이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저는 인도 남부의 오래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돌로매와 도마가 여기서 전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바울이 유럽에 전도했을 때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1:6). 복음은 여러 이방에 전해지고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국에도 복음이 일찍 전해졌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땅 끝으로 갈 때 오히려 복음은 풍성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11:22). 안디옥 교회의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전화 등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않았지만 이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에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냅니다. 그는 구브로 출신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거듭나고 교제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파송한 것은 선한 일입니다. 이는 어린 교회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3천명이 구원받았습니다. 4장에서 5천명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8장에서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사도 외에는 모든 성도가 다 흩어집니다. 그런데도 성도를 격려하기 위해서 바나바를 보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마음이 넓었다는 증거입니다.

바나바의 이름은 요세입니다. 그는 구원받고 교회에서 성장합니다.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 부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위로자 혹은 격려자입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격려의 일을 했습니다. 이제 안디옥에 와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권합니다. 주님을 위한 열심을 격려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합당한 자를 보낸 것입니다.

새로 구원받은 성도에게 처음으로 해 주어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먼저 교회진리를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언서를 통해 미래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은 주께 붙어있기 입니다. 이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의 삶은 주를 붙들고 있습니까? 주에 대한 사랑, 애정이 없으면 믿음 생활이 차갑고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만이 다른 자를 도울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붙들어라 우리는 주님을 더욱 붙들고 주님의 임재 앞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 합니다. 주를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은사의 목록이 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 로마서 12, 에베소서 4장이 그것입니다. 거기에서 보면 격려는 가르치는 은사와 다릅니다. 교사는 말씀을 설명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격려는 용기를 주고 앞으로 나가게 합니다. 성도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격려의 은사가 있는 자는 성경에 나오는 동사의 시제는 모르나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 속에서 삽니다. 격려는 누구나 받아야 합니다. 바나바가 어떻게 격려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24절에 나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11:24).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기에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보내 는 놀라운 일을 합니다. 이같은 지역교회 간의 교제가 우리 시대에도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축복해주시기 원합니다.

'주옥같은 말씀들 > 짐 베이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의 대상  (0) 2009.03.21
주님의 대제사장 되심  (0) 2009.03.18
히브리서 2장  (0) 2009.03.15
복음의 확장(2)  (0) 2008.12.24
바른 교훈  (0) 2008.10.16
요셉  (0) 2008.10.14
느헤미야  (0) 2008.09.13
히스기야  (0) 2008.07.17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