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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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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 엘

짐 베이커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왔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을 인하여 나의 생명을 싫어하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면 나의 생명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27:41-46).

이삭에게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첫째 아들이 에서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두 아들 이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어머니 리브가에게 두 아들의 운명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다시 말해서 첫째 아들 에서가 둘째 아들 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두 아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여러 사건들이 창세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젊은 두 형제 사이의 장자권 거래와 각각의 결혼입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왔을 때,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에서는 팥죽을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과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약점을 이용해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 후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41절에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 때문에 미워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움이 장자권을 거래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이 야곱과 에서 모두에게 역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에서의 발자취를 좇거나 야곱의 발자취를 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특별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계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계보를 이어가게 하기 위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28:1-5).

여기 하나님의 계보가 야곱으로 흘러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결정적인 요소가 나와 있습니다. 이삭은 야곱이 아닌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이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하심에 의해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인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 게 하나님의 축복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를 기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야곱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의논하고 27장 마지막에서 하 나님의 뜻에 자기를 복종시킵니다. 하나님은 이 상황을 사용하셔서 야곱으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하십니다.

28 1절에서 이삭이 야곱을 부릅니다. 그리고 2절에서 이삭은 명백하고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일어나서 가라.” 3-5절까지 하나님의 축복을 그에게 확정해줍니다. “네가 가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로 번성케 하실 것이다. 너로 가족을 이루고 거기서 많은 자손들을 낳게 할 것이다그래서 야곱은 나그네가 됩니다. 이삭의 가정에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이 이삭의 가정을 강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 야곱을 멀리 보내게 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1절에서 5절까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일한 주권이 에서에게도 역사하는 모습이 6-9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28:6-9).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아버지가 야곱을 맛단아람으로 보내고 거기서 아내를 취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에서는 이미 27장에서 아내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로 취한 가나안 여인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 후손으로 아내를 삼습니다.

이스마엘은 성경에서 육신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에서는 육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잠깐 멈춰 적용을 하고자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정말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다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과도 구분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구원하실 때 성령을 주셨고 신의 성품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과 제 안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받았고 이런 축복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자연적인 성품이 있습니다. 이는 육신적인 성품입니다. 이와 같은 육신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5:17).

만일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려 다가오면, 거듭난 성도에게 있는 새로운 성품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언젠가 주님께서 오시면 영광스러운 몸을 입을 것입니다- 성령에 거슬려 반응하게 됩니다. 주님은 육체로 이 땅에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14:30). 이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육체를 갖고 사셨으나 죄를 범하지 않은 유일한 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갑니다. 야곱은 아직 자신이 스스로 온전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접근해 갑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었더니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미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28:1-10).

1-5절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이삭에게 역사했습니다. 그리고 6-9절은 하나님의 주권이 에서에게 역사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10절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주권이 야곱에게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제 야곱은 여행을 떠나갑니다. 이 여정은 그렇게 쉬운 여정이 아닙니다. 제가 어제 북경에서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이 거리가 500마일이 약간 넘는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비행기를 탓기에 약2시간이 걸렸습니다만, 야곱은 걸어가야 합니다. 이 길은 혼자서만 걸어야 하는 외로운 길이요, 아마 짐승들도 있는 무서운 길이었을 것입니다. 브엘세바를 출발해서 하란을 향해 아마 2일 반 정도가 지났을 때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28:11-19).

35 3절에 보면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에게 도웅이 절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에게는 벧엘까지 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으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주변을 대충 정리하고 돌 하나를 베개로 삼아 누워 잠을 잤습니다. 근처에 있는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며 잠을 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옆에 와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통해 야곱의 생애를 통째로 바꾸십니다.

그는 꿈에서 세 가지를 봅니다. 첫 번째는 사다리가 하늘에까지 닿아있는 것을 봅니다. 그는 자기 혼자 외롭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늘과 땅 사이를 연결하는 사다리가 있었습니다. 여기 참석하신 성도님들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늘로 가는 길 가운데 있습니다. 이 인생여정을 살아가는 동안 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구절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천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천사는 오르고 있었고 어떤 천사는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즉 이 사다리는 비어있지 않고 하나님의 천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마 야곱은 이제 여정에 대해 안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천사들이 통행하는 여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장면은 다음에 나옵니다.

세 번째로 그가 본 것은 사다리 위쪽에 계신 주님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다리 가운데 계시지 않고 사다리 위에 계셨습니다. 우리를 축복하신 주님은 이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이것이 야곱의 생애를 바꾸어갑니다. 주님은 사다리 위에 서 계실 뿐 아니라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녁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하나님께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셨습니까? 우리는 하늘과 연결된 사다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만난 후 아비 본토 친척 집을 떠나 믿음으로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직접 관련을 맺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도요한은 보라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일 3:2)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에 대해 항상 감사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외롭고 무서워하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위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니야곱은 500마일의 먼 길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입니다. 그는 이 땅을 완전히 떠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누웠던 자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날까지도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땅을 두고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은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천년왕국이 되면 주님께서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 후 주님은 영원한 통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나라 가 세워지기 전에 주님이 이 땅에서 천 년간 통치하실 것입니다. 그 때 이 약속이 실현될 것입니다. 땅만 아니라 후손까지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향한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야곱의 생애 가운데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해서 복을 얻으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가장 위대한 약속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덧붙이 셨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이보다 더 위대한 약속이 있을까요? 우리는 가끔 구약의 위대한 진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구약,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 15:4)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도 아니하리라”( 13:5).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리요”( 13:6). 이는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계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복된 말씀을 주십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야곱의 생애에 나타난 주권적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성도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계십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고 순종하여 영적이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 님의 임재를 느끼면,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28: 16-22).

야곱이 벧엘을 두려운 곳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의 무서운 곳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경외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느끼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부정한가를 느끼게 됩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즐기면 즐길수록 더욱 자신의 미약함을 느끼게 됩니다.

야곱은 또 다른 놀라운 발언을 합니다 여기는 다른 곳이 아닌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다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을 보면, 우리는 야 정말 놀라운 건물이다라고 감탄하며 말할 것입니다. 야곱이 마치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광야에 이렇게 위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있다니!’ 하나님이 거기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이며, 하나님이 계시면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로 하늘이 열렸기에 하늘의 문인 것입니다. 이는 야곱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입니다. 전번에 말씀드린 대로 야곱은 그의 생애에서 세 번 하나님과 위대한 경험을 합니다. 그 첫 번째가 여기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인식하는 경험입니다. 여기가 하늘의 문임을 인식하는 경험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 이름을 붙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 부릅니다. 그 전 이름은 루스였지만 지금은 벧엘입니다. 우리에게도 이같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인식하게 되는 경험이 꼭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야곱의 서원에서 만일때문에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 야곱이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시면이라고 말한 것은 의문을 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지키시고 돌아오게 하시기 때문에이제 야곱은 확신하게 됩니다. ‘언젠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 오게 할지라 28:15)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는 베개로 삼았던 돌(베개라는 단어와 기둥이라는 영어 단어가 비슷합니다)을 성전의 기둥으로 세웁니다.

지역모임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며, 하나님이 거기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8:20). 성령께서 우 리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어떤 때 좋은 건물에서 열리는 집회를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이를 알게 된 야곱은 하나님의 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에 대해 더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단어가 나온 곳이 이 28장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집은 어디입니까? 디모데전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4-16).

구약의 야곱이 하나님의 집에 대해 깨달았던 진리가 신약성경의 이 세 구절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서신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있는 에베소로 가능한한 빨리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마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록한 서신입니다. 내용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할 것인지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거나 또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지역모임에 가게 될 때, 그 집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우리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장로들이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이같은 신약교회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순절에 3천명이, 그 후 다시 오천 명이 구원받아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이 일어나 성도들이 각처로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분이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지하는 것이다이 말을 듣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생기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게 됩니다. 작은 무리들이 모여서 떡을 떼어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전하고,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지역모임이 하나님의 교회이고 벧엘이고,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지역 모임에 모여서 어떻게 행할 것인지는 성도들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대로 하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서신이 고린도전서와 디모데전서입니다.

예를 들어 자매님들의 잠잠함이 그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매님들이 형제님들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에게 다른 책임을 맡기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서신서에서 세 번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모든 지역모임은 진리의 기둥이며 터입니다. 야곱은 돌을 베개삼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베개를 세워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쉴 때 사용된 베개가,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공적인 증거물로 변화된 것입니다. 지역모임이 그와 같은 것입니다. 모임은 세상을 향하여 주님께서 여기 계시며 주님이 누구인가를 증거하는 곳입니다.

창세기 28장은 신약성경의 지역모임과 연관되어 이해되어야 합니다. 광야에서 외롭게 자고 있었던 돌들이 무엇이 되었습니까? 여행자들이 쉴 수 있는 안식의 베개가 되었습니다. 모든 지역모임은 성도들이 모여서 안식하며 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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