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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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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레니건

벳바게와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내려가는 도로는 좁고 상당히 돌이 많고 먼지가 많은 길이다. 평소에는 다소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아 외딴 길을 걸어가는 고을이었으나 이 날은 사람들로 붐비고 시끄러웠습니다. 왕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있었고 군중들은 그분의 길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들이 감람산을 내려와 “주님께서 우셨다”는 뜻을 의미하는 도미누스 플레빗 알려진 곳에 가까이 가자, 제자들의 무리가 시편 118:26의 말을 인용하며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감람산에 있는 이 지점에서 도시 전체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도시가 태양 빛날 때 황금색의 전경입니다. 제자들에게 그것이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구주에게는 곧 눈물을 가져올 것입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이미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예수님께서 친히 나귀를 타시는 일이 그때에 성취되도록 정하셨으니 이는 제자들에게 나귀와 나귀새끼를 가져오도록 명하신 후에 성취되었습니다. 기록되기를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느니라. 그분은 온유하사 나귀 위에 앉으시되 나귀 새끼 곧 어린 수나귀 위에 앉으시느니라”(마​​ 21:4-5).

 

이제 그 도시가 눈 앞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편 118:26에서 언급된 노래 말을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그분의 거절당하고 죽음이 임박했음을 의식하면서 예수님 자신은 다락방에서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이 같은 말씀을 하실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유월절을 기념할 때 노래한 위대한 할렐의 마지막 말이었으며 그들이 찬송가 즉 시편을 불렀을 때였기 때문에 구주께서 그 마지막 저녁에 실제로 그것들을 노래한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들이 감람산으로 나가서 겟세마네로 갔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는 말에 누가는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를 덧붙입니다. 이것은 천사의 무리가 누가복음 2:14에서 노래했던 것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로다.” 구주의 탄생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먼저 와야 하고 그 다음에 땅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옳은 일입니까. 그러나, 지금은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 19:38)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흠을 찾는 바리새인들이 숨어서 군중 속에 섞여 듣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잘못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에게 그들은 “선생님,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이 분노했던 것은 군중의 외침이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이것은 나사렛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호산나가 의미하고 있는 그분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분에게 축복하고,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멸시했던 사람을 칭송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짧았지만 얼마나 강력한 책망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즉시 소리를 지르리라”(눅 19:40). 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침묵했지만, 지금 군중들은 이미 언급된 장소 오늘날 도미누스 플레빗으로 잘 알려진 곳에 도달했습니다.

 

누가는 단순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분께서 가까이 오사 그 도시를 보시고 그 도시로 인해 슬피 우시며”(눅 19:41).

 

예수님의 눈물은 감동스러운 연구이며, 그분의 기록된 모든 눈물은 감람산에서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분을 여기에서 우시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 도시를 향하여 “네가 알았더라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끔찍한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40년이 못되어 로마 군대가 도시를 점령할 것입니다. 그들은 대적에게 포위되어 “둘러싸서 사면으로 갇히”게 될 것입니다. 도시와 성전은 무자비하게 파괴될 것입니다. 돌 하나라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며, 주민들은 로마의 세력에 의해 진압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그들의 메시야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께서 그들 가운데 사셨던 몇 년 동안 그것은 방문의 기간이었지만 그들은 그분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고의적인 무지와 불신은 멸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가 그림적으로 설명한 것처럼 그것이 문자 그대로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황금 도시가 기드론을 가로질러 장엄하게 빛날 때 그들 모두 그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보다 멀리 볼 수 있으셨고 운명의 도시를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벳바게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을을 방문하신 그날을 확실히 결코 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날에 그들의 작은 길에 몰려든 군중들을 추억하고 기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살아서 갈보리를 보고 그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합당한 칭호가 적힌 십자가에 매달리신 동일한 예수님을 보려고 살았을까요?

 

벳바게 - 예루살렘 도로로부터 성 안으로 들어가셨던 구주께서는 그분의 권위를 증명하셨습니다(눅 19:45-47).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