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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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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래니건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그 다음 주간 동안 그분은 베다니에서 머무르실 것이며 요한복음 12장에 잘 알려진 아름다운 장면이 그 주간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그날에 베다니 가정에 여호와의 마음의 오랜 바램이 완전히 충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여러 세기 전에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기로 굳게 결정하셨습니다. 바로에게 그분의 말씀은 “내 백성을 가게 하여 … 나를 위해 명절을 지키게 하라 ... 내 백성을 가게 하여 … 나를 섬기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구속된 백성들로부터 예배와 교제와 섬김을 원하셨습니다.

 

슬프게도, 그분은 그들을 구원하셨던 것에 대한 것을 그들로부터 결코 충분히 받지 못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 될 섬김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원하셨던 교제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속된 백성들로서 수행해야 하는 그분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베다니에서 그분을 사랑하는 몇 사람의 마음이 그분께 만찬을 해드렸습니다. 물론 거기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상에 준비했던 것을 즐겼지만 만찬은 그분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상에서 중심이셨고 모두는 나사로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던 그분을 위한 그분의 영광을 위함이었습니다.

 

실천적인 여성 마르다는 봉사하느라 바빴습니다. 아마 실제로 그녀는 너무 바빴으며 그래서 많은 봉사에 정신이 팔렸지만, 주님은 결코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곳에서 그분은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눅 10:41). 그러나 그분은 그분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봉사를 높이 평가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마르다와 같이 봉사에 바빠서 그들이 사랑하는 그분을 신실히 섬기면서 결코 지치지 않지만 어쩌면 지쳐 있기까지 합니까?.

 

나사로는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모두, 기록된 모든 것 중 거기에는 그가 말하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용하게 교제를 즐기면서 상에서 그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또 한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용한 나사로와 같이 결코 들리지 않고, 목소리가 없지만 항상 거기에 구주와 그분의 백성들의 교제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마 나사로에게서 어떤 소식을 듣는 것은 좋을 것입니다, 조용히 앉아 있고 많은 집회들에 항상 참석하지만 절대로 소리 내어 참여하지 않는 많은 사랑하는 형제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도 거기에 있으며, 그녀가 우리에게 많은 모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분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나드향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순수한 액체 나드였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나드를 더 저렴한 발삼과 혼합했습니다. 마리아의 나드는 순수했습니다. 그것은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귀중한 것이었고, 향기는 방뿐만 아니라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하는데 비용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의 제사”(히 13:15)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러므로 베다니의 집에서 주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오래 전에 바라셨던 섬김과 교제와 예배를 즐기고 계십니다.

 

종종 베다니의 마리아는 구주의 발 앞에 있다는 사실이 지적됩니다. 그녀는 누가복음 10장, 요한복음 11장과 12장에서 그분의 발 앞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그녀는 배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그녀는 울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서 그녀는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언자의 발 앞에서 배우고. 그녀는 제사장의 발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왕의 발 앞에서 경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으며, 얼마나 많이 그분은 그녀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셨을까요?

 

“그녀를 가만두어라”고 그분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비판할 때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의 발 앞에 앉아 조용히 듣고 배우고 그녀는 그분께서 실제로 죽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분의 장사되는 날을 위해, 그분을 위해 보존했던 값비싼 나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계속 듣고 있을 때 그녀는 그분께서 실제로 부활하신다고 이해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경우에 그분은 실제로 그녀의 방부 처리제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분에게 그것을 부어드리려는 그녀의 의도를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목적을 위해 그것을 보관했습니다. 왜 그녀가 그녀의 오빠 나사로 그가 죽었을 때 그것을 붓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심지어 그녀의 오빠보다 더 사랑했던 그분을 위해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죽으실 때 그녀의 나드향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분이 살아있는 동안 그녀는 지금 그분에게 부어드릴 것이며 그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예배였습니다.

 

이제 그 향기가 방과 집에 가득하면 마리아 자신에게도 배어 들 것입니다. 그녀는 그녀가 주님에게 바쳤던 것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실행에 사랑스러움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 사이를 움직일 때 우리에게 함께 머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주의 옷에도 향기로움이 되는 그와 같이 귀중한 나드향의 영향력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수 일 동안 지속되었다고 말합니다. 군인들이 그분을 그렇게 잔인하게 취급하고 불손하게 그분의 옷을 빼앗았을 때도 그분의 옷은 아직도 그 향기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그분의 옷에 대한 도박을 할 때 그 자신들 중에 가져가는 옷을 나누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심지어 그 때에도 마리아의 예배의 냄새가 진동하였을까요?

 

누가 진정한 예배의 끝을 말할 수 있습니까? 예배는 다비의 말에 의하면 “영광과 경배는 그분께서 자신의 것에 대해, 그리고 그분께서 그것을 드리려는 사람들에 대해 의미하는 무엇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모임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위한 섬김, 교제와 예배와 함께 진실로 베다니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지상을 떠나 영광으로 돌아가시기 위한 때가 되었을 때, “그분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셨”다는 것은 아마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그렇게 거부했을 때 땅에서 그분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던 작은 곳에서 하늘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더라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니라”(눅 24:50-53). 그 길들 베들레헴에서 베다니까지 행로는 멀었지만, 완전한 사람이셨던 그분을 위한 완전한 행로였습니다.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