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징검 다리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Recent Post

theWord Bible Software

Category

2013. 6. 28. 16:17 횃불/1993년

시어머니의 손

계 경 자

어머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어머님의 62회 생신을 맞으며 지금껏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 가정을 사랑으로 이끌어 오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어머님,

제가 결혼 전에 교회 자매회에서 한 말씀을 교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 해를 혼자서 여섯 자녀등을 키우시며 돌보신 고병숙 노자매님을 위로해 드릴 양으로 누가복음에 나타난 안나 선지자의 얘길 함께 나눈 것이지요.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저는 그때 혼자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왔던 안나의 생애야말로 혼자되신 자매님들의 삶의 본이며 위로라고 여겨졌기에 제 나름대로는 꽤 열심으로 지금의 현실과 비교해가며 말씀을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이제 저의 몇해 안되는 짧은 결혼 생활로 미루어 짐작컨대 혼자된 안나의 생애야말로 남모르는 눈물과 어려움이 얼마나 많이 감춰져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답니다. 그러기에 어머님의 생애도 제 마음에 다시금 그려야 했었지요..그런데 이렇듯 철없는 저의 얘기를 들으시며 고개를 끄덕여 주시던 교회 안에서의 노 자매님으로만 생각하다가 결혼하여 이젠 부지런한 시어머님의 집안 일에는 서투른 며느리 입장이 되어보니 제가 느꼈던 긴장감은 뭐라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매사가 혹 저의 실수로 어머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는 것은 아닌지 말 그대로 노심초사였지요.

그런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라도 저는 어머님과 마주 앉을 때라면 유난히도 좋아했던 커피를 좋아했던 까닭에 잔 가득히 커피를 끓여 내 놓고는 어머님과 함께 마시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늘 식사 외에는 별로 반가와 하시지 않으시는 것 같이 느껴졌기에 어떤 때는 저 혼자 커피를 타 마시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오후였어요.

그날도 어머님과 단둘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저는 설거지를 하고 어머님은 밖으로 나가셨지요. 금방 식사를 마친 터였건만 첫 아이를 임신한 때문이었을까요? 설거지를 마치고 젖은 손을 행주 치마에 닦으면서 무언가 또 먹고 싶다는 생각에 이쪽 저쪽 찬장문을 열어 보았어요. 그러나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부엌에서 보았던 콩 생각이 났어요. 얼른 부엌으로 나가 콩을 찾았지요. 그리고 볶았어요. 어렸을 때 친정 엄마가 가끔 콩을 볶아 주셔서 맛있게 먹어 보았던 기억들을 되살리며 군침을 삼켜가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어요. 그런데 한편 마음에서는 시집온 지 얼마 안되는 새색시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서 콩을 볶아 먹는다고 생각하니 뭘 훔쳐 먹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얼마나 놀랐던지 무심결에 남비 뚜껑을 닫고 얼른 그러나 태연한 척 부엌문을 열고 내다 보았을 때 들어오시는 분은 어머님이셨어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숨기며 어머니 어디 다녀오셨어요?” 라고 말씀드리면서도 저는 부엌문을 잡고는 그 부엌을 나오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랬더니 어머님께서는 그래. 요 앞 할머니 집에하시더니 집안을 한번 휘 둘러보시더니 다시 나가시는 것이었어요.

!-” 숨을 돌리고 얼른 남비의 볶은 콩을 치웠어요.

그런데 얼마 후 어머님께서는 손에 한 움큼 뭔가 쥐고 들어오시며 저를 부르셨어요. 그리고는 제 손에 그 들고 들어오신 것을 모두 다 건네 주셨지요.

어머니····

뭐라 말을 이어야 할지 할 말을 잊었어요. 제 손에 들려진 것은 볶은 콩이었거든요. 얼마나 당황했던지요.

어머님. 그때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는 걸요.

그러니 저는 그때 아무 말씀도 못 드리고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가 아까 제가 볶아 두었던 콩을 들고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지요. 그리고는 어머니 저도 조금 전에 콩을 볶았는데····라고 멋적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릴 수 밖에요.

그때 어머님께서는 그랬었구나 어쩐지 아까 밖에서 콩볶는 냄새가 나서 들어왔는데 네가 아무 일 없이 있기에 내가 냄새를 잘못 맡았나 하고 옆집으로 놀러 갔더니 그 집에 볶은 콩이 있지 않겠니? 그래서 몇 개 집어 먹다가 너도 콩 볶는 냄새를 맡았을테고. 그러니 먹고 싶을텐데 하고 너 주려고 한 움큼 달라고 해서 가지고 들어왔다? 하셨어요.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감추려했던 아직도 채 식지 않은 따뜻한 볶은 콩을 접시에 담아 내놓으며 부끄럽고 미안함에 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름을 느꼈답니다.

어머님 그때 이후로 저는 어머님의 저를 향한 사랑이 어떠함을 알았기에 이제는 긴장감보다는 늘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님 손 가득히 있었던 볶을 콩을 건네 받듯이 어머님께 제게 주시려는 크고 작은 사랑들을 이제는 염치없다 할 만큼 넙죽넙죽 받는데 익숙해져 버렸나봐요.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저고 어머님을 많이 사랑해요.

주님 오시는 날까지 늘 영육간에 건강하세요

62회 생신을 축하드리면서

큰 며느리 올림

 

볶은 콩 사건이 있은 지 6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어머님의 생신에 이 글을 써서 내가 받고 있는 어머님의 사랑을 가족들과 함께 나눈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님께 이 일을 기억하고 계신 지 여쭈었다. 어머님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다시며 너는 그 일을 잊을 수 없었겠지.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구나하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첫날, 어머님의 신혼생활은 전쟁과 함께 시작되셨다고 했다. 여러 식구들이 함께 조그마한 섬으로 피난을 가서 사시던 때에, 어머님은 손위 동서들과 함께 지내셔야 했었단다. 먹을 것이 별로 없어 매끼 식사조차도 형편이 없었던 시절, 더구나 많은 식구가 같이 살았으니 무엇 하나 입에 넣으려 해도 서로 눈치가 보였다고 했다. 그래도 그나마 큰 형님 댁은 상점을 하고 계셨으니 들며 나며 손에 집어 잡수실 수 있으셨겠으나 우리 어머님은 그저 여러 식구들의 빨래며, 매끼 식사에 매여 쉴 틈조차도 없으셨단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지내시다가 밤 늦게 자리에 누우시면 고된 하루가 끝난 터라 언제 잠이 드셨는지 모르게 이내 새벽을 맞아 또다시 바쁜 하루를 준비하셔야 했단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방 하나에 여러 집안 식구들이 이쪽 저쪽으로 누워 자고 있었고, 어머님도 한쪽 구석에 누워 주무시려 하는데, 시할머님(어머님의 시어머님)께서 들어오시며 애미, 자냐?” 하시고는 더듬어 어머님이 누우신 곳을 찾아 어머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시더란다.

어머님 마음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꾸중하시는 것은 아닐까 혹 이런 염려를 하셨던 것은 아니셨을까? 물론 이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으니 그 때의 심정을 다 알 수 없지만, 며느리 입장에서의 시어머님의 부름은 언제나 긴장하고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얼굴을 더듬어 내려오시던 그 손에는 뭔가 들려 있었고, 할머니는 곧 그것을 어머니 입 속으로 밀어 넣어 주시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나가시더란다.

사탕!

어머니 입 속으로 밀어 넣어진 것은 조그마한 눈깔 사탕이었다.

그 많은 식구들 틈에서 애써 수고하는 며느리를 다독거려 주고 싶으셨겠으나 다른 식구들에게 행여 편애한다는 얘길 들을세라 조심스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밀어 넣어 주시고 나가신 것이었다.

그 사탕을 입에 물고 어머님은 밤새 소리 없이 벼개를 적시셨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그날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셨다. 어머님뿐만 아니라, 그날 어머님 생신에 모여있던 우리 가족들도 근대사 룻기편을 전해 들으며 저마다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1993 5월호)

 

'횃불 > 1993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단을 쌓으라(1)  (0) 2013.07.06
예정과 선택에 대하여  (0) 2013.07.06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선물  (0) 2013.07.06
헌 금  (0) 2013.06.28
요한계시록 강해(5)  (0) 2013.06.28
사자와 강아지  (0) 2013.06.28
죽을 뻔한 테디  (0) 2013.06.28
교사여! 경건 훈련에 전력을 다하라  (0) 2013.06.28
posted by 징검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