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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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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6. 09:15 횃불/1993년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선물

이 춘 원

지난 겨울 어느 날, 나는 부산 역에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내 옆 좌석에는 현숙해 보이는 부인한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서로 가벼운 목 인사를 나눈 후 서로의 행선지를 묻고 대답하는 것으로부터 대화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가 부인이 자기는 문학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학창시절에 무엇을 전공했느냐고 내게 질문을 해왔습니다. 좀 거창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신학과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신()을 모르고서야 어찌 존재할 수 있고, 인생이 정신적인 확고한 사상이 없이 어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존재와 정신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적인 문학을 모른다면 어찌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으랴 하는 의미에서 그런 학문에 심취해 있었던 때가 내게 있었습니다

부인과 나는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인은 미국 작가 오우 헨리가 쓴 현자의 선물이란 단편에 관하여, 읽었지만 잘 모르고 있는 나에게 그 줄거리를 간추려 들려주었습니다.

때는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길거리마다 화려한 네온싸인과 상품이 행복에 들뜬 뭇 남녀들의 시선을 끌기에 족했어요.

델라는 가난한 의 아내였습니다. 그녀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뜻깊은 선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지금 델라에게는 단돈 1달라 80센트 밖에는 없었어요. 아무리 궁리해도 그 돈으로는 남편에게 가장 알맞고 쓸모있는 선물을 살 수가 없었어요. 생각하다 못해, 그녀는 자기가 항상 자랑스럽게 가꾸던 머리, 그러니까 갈색의 풍성한 두발을 몽땅 잘라 20달라에 팔았습니다.”

예에, 머리털을 몽땅 잘랐다구요!”

하고 나는 짐짓 더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믄요. 그 귀중히 아끼던 머리털을 더욱이나 여성에게 있어서는 생명과 같은 머리털을 몽땅 잘라 팔았다니까요!” 부인은 더욱 더 이야기에 열중했습니다. 나는 넋잃은 바보처럼 그 옛날 학창시절에 읽었던 작품의 줄거리를 회상해내면서 감탄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그럼 그 돈으로 부인이 무슨 선물을 샀는지 아세요? 그건요, 남편 짐에게 가장 적당한 실용적인 선물이었죠. 그러니까요. 평상시 남편은 금시계에 어울리지 않는 가죽 끈을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내는 머리 잘라 판 돈으로 21달라짜리 백금 시계 줄을 왔습니다. 아주 귀하고도 찬란한 것이지요. ···· 한편, 남편 짐은요, 직장에서 하루 종일 사랑하는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사다 줄까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귀가하는 길에 시계점에 들러 자기가 가장 귀히 여기는, 할아버지 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죽 끈이 달린 금시계를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아내가 늘상 갖고 싶어하던 진귀한 선물, 가장 자리에 빛나는 보석을 박아넣은, 그러니까 아주 순수한 거북껍질로 만든 아름다운 머리빗을 샀습니다. 가난한 남편 짐은 가장 귀한 금시계를 팔아서 사랑하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머리 빗을 사서 말입니다.

- 얼마나 훌륭한 선물들입니까! 참으로 진귀하고 멋진 선물이지요. 사내 아이와 같은 머리에 아름답게 빛나는 빗! 금시계가 없는 팔목에 진귀한 금 시계줄! 이거야말로 굉장한 선물이지요. 부부지간에 영원히 기념할 만한 선물이지요. 현자의 선물이지요····.”

이렇게 부인은 한참 동안 그 작품의 내용을 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와 부인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고 계속 창밖을 내어다 보았습니다. 서로 별 말이 없었으나 마음 속에는 깊은 감동이 오고 갔습니다.

나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메마른 이세상에서, 물질 때문에 이혼하고, 재산상속을 더 받으려고 부모를 죽이고, 아니, 돈으로 인격을 저울질하고, 매관매직하는 이 세태에 이런 사랑의 마음만이라도 서로 나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지고 더욱 더 풍성해 질 것입니다.

참으로 풍부히 사랑하는 것은 풍부히 사는 길입니다. 깨끗하고 갸릇한 사랑이 이 어두운 사회를 밝게 할 것입니다. 이해와 동정에 넘친 사랑을 조건없이 나누고 친절과 관용을 서로 베푼다면 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고 모두가 빛 가운데서 자신을 가지고 살게 될 것입니다. 상대자의 입장에서 이해하여 주고 그 아픔을 감싸주고 그 부르짖음에 겸허히 귀 기울여준다면 이 사회의 구석 구석 주름잡힌 것이 다 곱게 펴지고 막힌 곳이 시원히 뚫릴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수백 개의 꽃다발을 놓고 울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산 사람에게 주는 한 송이의 꽃잎이 필요한 것이니, 이를테면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친절한 말 한 마디, 미소 짓는 부드러운 얼굴, 신뢰하는 자세, 감싸주는 포용력, 대신 짊어져주는 봉사,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조그마한 사랑의 표시에 누구나 감동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한 작은 샘에서 소리 없이 흘러나와 만물을 소생케 합니다. 사랑은 좁은 길과 좁은 문을 통과하였을 때 온 천지를 넓게 적시는 물과 같습니다. 흐르는 물은 모든 장애물을 감싸고 피하고 넘고 자신을 부딪쳐 쪼개서 가냘프게 희생함으로써 목적지인 대해에까지 무사히 이릅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갔는지, 벌써 내가 탄 기차가 대전 역에 도착하여 손님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나는 음료수 두 병을 사서 부인에게 한 병을 건냈습니다. 그 동안 쉴새없이 많은 이야기를 주로 한 것은 부인 쪽이었기에 음료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듯이 부인은 단숨에 마셔버렸습니다.

지금부터는 내가 이야기를 할 차례가 왔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성경 창세기부터 펴서 1 27절과 2 7절을 읽은 후 이야기를 계속 전개했습니다.

부인! 이 세상 사람이나 사람이 쓴 작품 가운데서 나타나는 사랑의 이야기도 많지만요, 우리가 믿고 항상 보는 이 성경 말씀 속에는 그보다 더 엄청난 역사적인 큰 사랑의 이야기와 사건들이 수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사실부터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적인 사랑의 경륜과 섭리가 내포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고요? 사랑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 곧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것들-거룩하고, 참되고, 선하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성품-을 흙으로 창조된 사람 속에 영적인 생명으로 불어 넣으시고 동시에 때문입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이 주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신적이고 영적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내적인 형상(Image)과 외적인 형상(Make)이 주어져 있는 존재로서 모든 선한 성품이 하나님을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사람에게 주셨고 나타내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의 능력이시며 신묘불측(神妙不測)한 섭리이십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그 성품과 모든 좋은 것들을 사람에게 거저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드러내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 스스로의 사랑의 발로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고 또 사랑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물로서 그의 신성과 생명이 인격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이십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완전히 심판하여 지옥에 쳐넣을 수도 있으신 하나님이시지만,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 속에 생명적인 영혼이 멸망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그리고 아담의 표상인 인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구주로 보내시기 위함이십니다. 옛 아담이 입었던 가죽옷과 예수께서 지셨던 십자가는 사랑과 희생의 피로 얼룩이 졌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 대신 셋을 주신 것도, 노아 방주를 잣나무로 짓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한 것도,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신 것도, 우상을 섬기는 데라의 아들인 아브람을 불러내신 것도, 멸망의 도성인 애굽에서 밤중에 일어났던 놀라운 유월의 역사도,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한 이스라엘 두 지파 사람들에게도 도피성을 지정해 주신 것도, 다윗 왕의 불륜의 씨인 솔로몬을 후대의 왕으로 세우신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과 긍휼하신 섭리 때문입니다.

창세기 50 15~21절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을 사 인신매매 당하여 애굽까지 팔려가 온갖 고난 끝에 총리 대신이 된 요셉이, 기근을 면하려고 애굽으로 내려온 형들을 만나 복수를 하지 않고 도리어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셨지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진실된 요셉의 눈물 어린 간곡한 위로의 말로 인하여 그 형들은 너무나 고마워 가슴이 터질 듯 하였습니다.

요셉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했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고 형들의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었습니다.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었습니다.

요셉은 도리어 형들에게 노중에서 형제지간에 다투지 말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로 형들을 염려하고 불쌍히 여겨 보살펴 주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형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복을 빌었습니다.

우리 동양에는 형만한 동생이 없다는 속담이 있으나 성경에 보면 동생만한 형이 없다고 간주하는 것이 진담이라고 생각합니다. 형 가인보다는 동생 아벨이 낫고, 에서보다는 야곱이 더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였고, 하나님의 경륜과 복이 그리로 주어졌습니다.

하여간 요셉은 형들에게 넘치는 사랑의 선물을 안겨 드렸습니다. 심지어는 고국에 계신 노부 야곱과 유일한 아우 베냐민까지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요셉은 우리 주님의 예표입니다.

 

다음으로 사무엘하 9 1~13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왕이 된 후 자기를 핍박하고 죽이려던 전왕 사울의 남은 후손들을 불쌍히 여겨 돌봐주는 갸릇한 사랑의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원수를 갚을 때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르며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원수의 후손들인 어린 아이까지 모조리 처리하는 것이 상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죽은 왕자 친구 요나단을 인하여, 그 후손에게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에게 모든 재산을 다 물려주고 시종들까지 주었으며 심지어 왕자처럼 왕의 상에서 먹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큰 은혜를 입은 요나단의 아들 곧 사울의 손자 절뚝발이 므비보셋이 다윗 왕 앞에 절하며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실로 다윗은 우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성도이자 성군입니다. 다윗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입니다.

 

또 사무엘하 18 31~33절을 보면, 다윗 왕이, 자기의 아들 압살롬이 부왕의 후궁들과 더불어 대낮에 동침할 뿐만 아니라 부왕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다가 그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걸려 창에 맞아 죽었을 때 그 불효막심한 자식을 위하여 눈물로써 통곡하는 비참한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에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사랑하는 자식을 위한 아비의 가슴 아픈 절규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들을 모으려 한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느니라”( 13:34).

또 주님께서는 십자가 상에 못박혀 모든 피를 다 흘리며 돌아가시는 큰 고통의 순간에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3:34) ,

죄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했습니다. 그 구속의 은혜를 그냥 받아들여 믿는 자는 벌써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3:16~18, 5:24).

 

죄의 판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恩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선물 곧 영생에 대하여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나는 언제부터 일어났는지 나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나그네들을 향하여 계속 복음적인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내 옆 좌석에서 나와 같이 대화를 나누던 부인은 어느 역에서 내렸는지 얼굴이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열차에 타고 있는 손님들을 살펴보니 세 패로 갈라진 것 같았습니다.

내 죄를 사하시고 내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을 내가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영원한 은혜의 선물을, 여러분 모두가 받으십시오!”

이렇게 내가 외치자 얼굴에 소년 티가 나는 한 청년이 박수를 치면서 옳소!” 하자, 얼굴이 검붉게 생긴 많은 사람들의 집어 쳐!”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밖의 사람들은 무관심한 동태와 눈으로 표정없이 허공을 가로질러 먼 산을 보듯이 나를 건너다 보았습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하여 마지막으로 외쳤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믿으면 영생입니다! 믿지 않으면 멸망입니다! 지금 믿으세요!”

그러자 열차 안이 더 시끄러워졌습니다. 열차 공안원이 나를 향해 걸어오는 것이 작게 보였습니다. 우등 열차는 수원을 지나 죄악의 도성인 서울로 향해 계속 질주해 갔습니다.

 

(1993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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