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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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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2. 16:15 횃불/1993년

탈 서울

계 경 자

 

집 안에서만 놀던 아이들이 싫증이 나서일까 밖에 나가 놀겠단다. 골목길까지 밀려든 자동차 홍수의 위험을 강조해 보지만 언제나처럼 만류할 수만은 없어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나섰다. 좁다란 골목길 한편으로 가득히 부려놓은 이삿짐이 눈에 띈다. 결혼 이후 분가하여 몇 해 안되는 서울 생활에 거의 매년마다 짐을 꾸려 이사를 해야 했었지. 어느 해인가는 6개월만에도 옮겨야 했던 적도 있었으니····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는 지난 봄에 이사를 했으니 이 가을에야 또 옮길 일이 없겠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 봄이 오기 전에 우린 다시금 그 옛날 다윗이 거처를 옮기기 전에 하나님께 여쭙던 것처럼 조용히 아뢰어야 하지 않을까!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유다 한 성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다윗이 가로되 어디로 가리이까 가라사대 헤브론으로 갈지니라”(삼하 2:1).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 집 주인은 계약기간이 끝났으니 전세금 4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했었다. 그날 우리 부부는 늦은 시간까지 함께 의논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방이 두개라고는 하지만 너무 작아서 우리 네 식구가 살기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 했으나 늘 상 조금만 더 넓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했었다. 이렇게 좁은 집에서라도 전세금을 올려주고 그냥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사를 해야 할 것인지 결정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방 시세가 어떤지 알아 보기로 하고 다음 날부터 동네 복덕방엘 들렀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금액으로는 또다시 반 지하로 가야 할 형편 밖에는 안되었다.

그 지난 해, 좁다란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우리는 반지하 두칸 방에서 살았었다. 싼값에 널따란 방이 두 개, 편리 한 주방 구조에 깨끗한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 겨울 동안에 연료비도 적게 들이면서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서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여름 동안에는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관계로 그 습한 공기가 집안 가득히 베어 냄새에 찌들어야 했고, 장마철에는 한꺼번에 쏟아지는 많은 비를 흘러 보내지 못해 역류하는 하수도의 범람을 경험해야 했다. 그래서 그때 그 지하방에서 이사를 생각해야 할 즈음에 우린 아예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조용한 시골로 갈 계획을 하게 되었었다.

우리 부부는 가끔, 볕 가득히 드는 앞마당 한편에 푸성귀들을 심고 툇마루에 걸터앉아 상추쌈에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그려왔고, 기회가 된다면 조용한 시골에 가서 살자고 얘기해 왔었다. 도시 생활에만 익숙해 있는 나로서는 시골 생활이 생소한 것이긴 하지만, 남편은 하고 있는 번역 일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니 농사를 지어야 사는 시골 생활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했다.

분가 이후, 지하 셋방부터 시작한 서울 생활이다. 밤낮으로 애써 모아 전세금에 보탰으나 따라 잡을 수 없게 오르는 전세금은 우리 부부의 마음에 서울을 벗어나고픈 생각을 더욱 부채질 해 준 셈이 되었다. 거기다 서울은 많은 열기로 너무도 뜨겁게 달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은 가장 최상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다. 자녀들은 어떻게 해서든 일들을 시켜서 일류 대학에 보내야겠다고 달아있는 교육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출세를 해야겠다고 권모술수를 일삼은 출세열, 한 평이라도 더 큰 아파트를 사야 한다고 혈안이 되어있는 투기열, 어디 그뿐인가 어느 동네 땅을 사야 졸부가 되는지 알선하느라 바쁜 부동산업자들, 또 거기에 합세하여 열 올리는 졸부 후보자들, 뭐니 뭐니 해도 아니했느냐며 증권가로 몰려드는 주식투자자들.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했다고, 가장 멋진 옷을 입어야 했다고, 가장 비싼 보석으로 치장을 해야 돋보이지 않겠느냐고, 가장 가장 가장 최상을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행열은 끊이지 않고 수요자의 만족을 채우려는 공급자의 노력은 쉼 없건만, 무엇으로 그 어떤 것으로 다고다고 외쳐대는 수요자의 요구가 채워질 것인지!

이러한 열기에 타버리지 않으려면 탈 서울을 감행해야 할 것 같았다. “서울을 떠나야겠습니다. 이 뜨거운 열기를 피해 조용한 곳에 가서 심호흡이라도 크게 하며 시원하게 살고 싶습니다.”

주변의 이웃들에게 농담처럼 혹은 진담처럼 얘길 했더니, 듣는 이 모두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정을 해 주셨다.

어떤 분들은 자신들도 그렇게 하고 싶으나 아이들 교육 때문에, 혹은 직장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노라시며 그런 결심을 한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시며 격려도 해 주셨다.

그러나 시어머님은 다르셨다.

가난했던 시골생활에 지쳐 도시로 오셨고, 그나마 그때 도시로 와 정착했기에 자녀들의 교육도 이만하게 시킬 수 있었다시며, 말은 낳아 제주도로, 사람은 낳아 서울로 보내라는 말도 못 들었냐시며 나무라셨다. 서울에 직장이 있어 맏아들임에도 분가시켜 서울로 보냈더니 남들 다 싫다고 떠나는 시골에 더구나 아이들도 다 커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남들은 아이들 교육 때문에라도 서울로 모여드는데 무엇하러 시골로 가려느냐시며 노하셨다.

그러시면서도 너희들이 원하면이야 내가 어떻게 말리겠냐, 가서 살아보렴하시고 최종 결정을 우리 부부의 의사에 맡겨 주셨다.

우린 서울을 떠날 기회가 언제일까 종종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지하방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서울에서 두칸짜리 지상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고 서울을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어느 곳으로 갈까?’ 망서리며 허리가 잘린 우리나라 지도를 펴 보았다. 어디든 다 갈 수 있다고 생각되니 마땅히 한 곳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곳이 떠 올랐다.

정주!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들러보게 되었을 때 조용하고 자그마한 도시로 정이 가는 곳이었다. 그 곳에 가면 우리가 거처할 집이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살고 있던 집도 새로 이사올 사람이 결정되어 언제든지 이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둘러 계약금을 마련하여 정주로 향했다. 그러나 정주는 우리부부에게 전혀 새로운 곳이기에 도움을 받고자 정주교회로 연락을 드렸더니 그곳 성도들은 크게 기뻐하며 우리가 이사할만한 집을 미리 찾아보겠노라고 했다.

우린 부푼 꿈을 안고 금요일 밤 정주를 향했다. 이미 연락을 받은 정주교회 식구들은 밤늦게 도착한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다음 날 이른 시간부터 서둘러 정주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곳이었으나 돌아보기에는 하루가 짧았다. 어느 곳으로 다녀보나 물론 시내 중심은 비쌌지만, 서울의 웬만한 전세금이면 변두리 큰 집들을 살 수 있는 값이었다. 하기야 도시로 도시로 향한 민심은 농촌을 썰렁하게 만들어버렸고, 텅텅 빈 농가들로 더욱 고요하기만 했다. 별천지에 온 느낌마저 들었다. 널찍한 마당 한가운데 덩그머니 놓인 커다란 기와집 한 채, 역시 비어 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으리 만치 큰 집인데, 이 곳에서는 아무도 살지 않은채 빈 집으로 버려 진 것이다. 지하실 전세금이면 사고도 남은 헐값(?)이다. 남는 돈으로는 집수리를 하여 더 편리하게 살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하루 종일 돌아본 결과 한 집을 결정하여 계약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왕에 빈 집이니 좀 더 싸게 구입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정주교회의 한 형제님께 계약금을 건네드리면서 계약 전의 흥정을 부탁하고는 우린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서울로 향해 달리는 차내에서 나의 몸은 지쳐있었고, 마음도 여러 생각들로 무척 번뇌로 왔다. 그러다 보니 탈 서울 정주에로의 계획에 점점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과연 서울을 떠나야 하는가?

친정이나 시댁이 서울 가까운 부천과 인천에 다 있는데, 너무 먼 곳으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꼭 이렇게 먼 곳으로까지 와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뭔가 쫓기는듯한 마음으로 결정하고 온 것 같아서 흔들리는 차 속만큼이나 나의 마음은 어지러웠다.

또 그런 중에 시어머님께서 언짢아 하시며 하신 말씀도 귓전에 맴돌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꼭 가야 할 곳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필연이 아닌 선택이라면, 좀더 보류하고픈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

물론 남편은 정주를 돌아본 후 서울을 향하면서 매우 흡족해 했었다.

남편은 시골에서 조용히 번역을 하거나 자신의 글을 쓰기 원했다. 또 군중 속에서 거센 물살에 휩쓸리듯 사는 것보다는 자연 속에 묻혀 그 가운데서 생활하며 생각하고 느끼며 즐기고 살면서, 주님께서 만드신 자연을 통해 주님을 배우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꿈같은 계획을 이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왜 이토록 나의 마음은 어수선해 있을까?

부푼 꿈을 안고 정주를 향해 갈 때와는 달리 장거리 여행에 차멀미까지 겹쳐 나의 몸은 완전히 지쳐 서울에 도착했다.

그날 밤, 나는 남편을 향해 나의 지친 마음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여보,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정주는 너무 멀어요.

주님께서 등을 밀어 지금 그곳으로 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저는 좀 생각해 보고 후에 결정했으면 싶군요.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꼭 가야 할 곳이라고 정해 주시는 곳이라면 더욱 분명한 확신 가운데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지금은 보류하면 어떨까요?”

평소에도 말을 아껴 말수가 적은 남편은 잠자코 나의 얘길 듣기만 하더니 아쉬워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주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합니다····중략···· 집 계약을 보류해 주세요.”

이렇게 해서 우리의 서울을 떠나려는 1차 시도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무산되고 말았다.

우린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를 위해 자신들의 일을 뒤로하고 애써 수고해 주셨던 정주교회 형제 자매님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좀더 심사 숙고하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한 우리들을 스스로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린 서울을 떠나려 했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말씀이 떠올랐다.

감상적인 사춘기도 아닌데, 무작정 상경이라더니, 우린 무작정 탈 서울 정주행을 계획했던 것이 아닐까.

무엇을 하든지 -이사조차도-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해져야 함에도 우린 그저 니느웨를 향한 적대감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뒤로하고 다시스로 향한 배에 오르려 했던 요나처럼, 열기에 달아오른 서울이 싫다는 감상적인 생각으로 탈 서울을 감행하려 하다니, 잠시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땐 역시 현실이었다. 그 집으로 이사올 사람이 결정되어 있으니 무작정 꿈 속을 헤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진 돈으로 빨리 우리가 이사가야 할 방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돌아보았으나 역시 지하방 외에는 마땅한 방 찾기가 어려웠다.

주님, 우리가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한다면 마땅한 집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지하는 싫습니다. 적어도 방은 두 개가 필요합니다 억지를 부리듯 기도하며 우린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해보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서울에서 방을 얻는다는 계획을 전해들은 어느 형제님이 전화를 하셨다.

방을 구하는 일이 있는 돈에 맞추려면 여간 어렵지요. 형제님 댁은 교회 가까운 곳에 있어서 형제 자매님들이 자주 드나들며 교제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그러니 꼭 방 두 개짜리로 얻으세요. 부족한 금액은 저희가 무이자로 빌려 드리겠습니다. 급히 써야 할 돈이 아니니까 형편이 되실 때 갚으시면 됩니다.”

우린 어리둥절했다.

우리가 돈을 빌려달라고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형제님은 아내와 함께 우리의 형편을 얘기하다가 우리의 필요에 도움을 주고 싶어졌노라며 일부러 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그 부부도 박봉에 단칸방을 쓰면서 알뜰히 사시는 분들이신데,

그때 우린 강권하시는 그 형제님의 권유에 못 이겨 사랑의 빚을 지고 서울에서의 작지만 지상 두칸짜리 방을 얻어 이사를 했다.

 

그 후 계약기간 1년이 지나 우린 방세를 400만원이나 더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어찌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이제 또 다시 그 옛날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하나님께 여쭙던 그 심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님, 집주인이 방세도 올려달라고 하고 가까이 있던 교회도 이사를 가서 교회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니 이사를 해야겠는데, 어디로 가면 좋겠습니까? 물론 지하는 말고요. 이번에는 좀 넓은 집을 주셨으면 합니다. 성도들이 와서 마음껏 교제할 수 있는 넓은 집이요. 서울에서도 우리가 가진 것으로 그런 넓은 집을 구할 수 있겠죠?”

이렇게 기도하면서 얻은 집이다.

전에 살던 집에 비하면 거의 배나 되는 넓은 공간이다. 오래된 집이라서 허름하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셨다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보금자리 임을 확신하기에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본 후, 내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나는 우리 가정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의 선하신 손길을 느끼면서 마음으로 깊이 감사를 드리게 된다.

에벤에셀!

 

(1993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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