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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__________ 신앙상담은 asan19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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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복음이 진리를 모르면 교회진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간단하게 말씀드린다면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1 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최근에 일본의 복음집회에서 간증이라는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보입니다. 구원받기 전의 경험을 일단 말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감동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보다도 사람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의 소개이지 복음이 아닙니다. 물론 복음 전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 복음을 믿으면 복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 그 자체를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요한복음 3 16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3 16절에는 부활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더욱이 요한복음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다는 말도 없습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놀라운 것입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갈라디아서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베드로는 행동으로 깨어버렸습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에베소서에서도 그것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명확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순종하지 않으므로 바울에게 베드로가 책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복음의 진리는 모임이 행동하는 것과 개인이 믿음을 발휘하는데 토대입니다. 규정, 즉 규칙과 복음은 다릅니다. 복음은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차별이 없습니다. 미국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의 사상이 그들의 삶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씨가 대통령이 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서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복음의 실천입니다. 복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형제 사랑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는 선민과 이방인이라는 구별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적인 모임에서는 차별이 없는고 하니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신분은 하나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보면 다른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할례를 받아서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도록 하는 다른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쓰면서 갈라디아 사람들의 좋은 점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종종 편지를 쓰면서 그 모임의 좋은 점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갈라디아에는 다른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은 하나입니다. 다른 복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로마서 1 1절에는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복음, 그리스도의 복음, 나의 복음, 은혜의 복음 등으로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름은 달라도 각각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은 절대로 없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는 복음을 믿고 있으면서도 이방인과 교제하고 있다가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오니까 이방인들과 교제 안 하는 것처럼 행동으로 나타내버렸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을 행동으로 거절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있는 가운데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했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훌륭한 형제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로 모임생활도 하고 믿음생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토대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돈을 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 3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말씀에 근거해서 복음을 전하는 모임은 돈을 받지 않습니다. 때때로 복음집회 때 왜 헌금하지 않느냐고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만 하나님은 값없이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때 돈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여기에 믿어 순종케 하나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어라는 이 말은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 순종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6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그래서 모임이라고 하는 곳은 이 복음에 순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율법의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어 순종이라고 하는 믿어는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1장과 16장에서 즉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믿어 순종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베드로를 향하여 그것은 틀렸다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말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 중에도 죄인들을 위해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일하게 사람의 아들(인자)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 할 때 하나님이 창조하시면서 바라시는 사람의 그 모습 그대로라는 의미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랑은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아는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는 거짓말이 없었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를 쓰면서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고 증거했습니다. 신약성도로서 베드로 사도는 대단히 중요한 성도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거짓이 없다는 것을 베드로는 경험을 했습니다. 33년 동안 주님이 몸을 가지고 생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에게 거짓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 시간에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최대의 사랑은 죄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발로가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그 거룩함의 토대가 언급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생명을 말합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죽음 이후를 알려고 하면 부활을 말하게 되고 부활이 없으면 참된 복음이 안될 것입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부활로 말미암아 생명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소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참으로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토대이고 또한 능력입니다. 복음에는 힘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능력이 나타나는고 하니 복음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가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빌레몬서에서 조금 말씀을 드리면 거기 나오는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의 삶의 방식이 변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로마 감옥에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오네시모는 종이 도망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주인의 물건을 훔친 것도 옳지 않다고 바울의 복음으로 통해서 오네시모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드러났을 뿐 아니라 오네시모는 이제 믿었으니까 종이 주인으로부터 도망가면 안되니까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가도록 바울은 가르쳤습니다. 오네시모에게는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큰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나의 주인이 나를 용서해 줄 것인가? 하지만 오네시모는 돌아갔습니다. 바울이 쓴 빌레몬서의 서신이 그 당시의 사회상이 대단히 어려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편지를 통해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로 기록했습니다. 도망 간 종은 그 당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만약에 죽임을 당하더라도 돌아가야 한다고 한 것이 오네시모였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으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회개는 복음을 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했습니다. 빌레몬은 모임의 장로였고 오네시모의 종이었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용서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용서하는 마음을 복음이 빌레몬에게 제공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서에서 일흔번씩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베드로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저들의 죄를 사해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모릅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용서를 했던 것입니다. 개인이나 모임이나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모임에서나 개인이나 문제가 있을 때 용서하는 능력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순종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복음은 은사를 줍니다. 은사로 말미암아 무엇이 태동이 됩니까? 거기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은 감사의 짐을 져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용서가 주어졌습니다. 그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은사)이라면 돈을 절대로 지불하지 않습니다. 지불하는 것은 감사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대단히 놀라운 것입니다. 복음을 순종한다고 쓴 것은 서신서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된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복음이 사도행전에서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을 순종하게 되면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모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열매와 모임을 사랑한다는 열매가 당연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구원의 주님은 단 한 분이십니다. 다른 것들을 가져다 붙이지 않기 때문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단은 사실 복음에 무엇을 첨가한 것이 이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또 하나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며 성경을 읽는 것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것으로써 율법을 행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순절파 같은 사람들은 성령을 받는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에베소서 1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안수로 말미암아 성령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성령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한 번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제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히는 것과 믿는 것,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까지가 사실은 하나님의 책임입니다. 인간의 책임은 그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믿는 성도들의 자녀들이 복음을 들으러 주일학교에 많이 옵니다. 그러나 지식적으로는 복음을 많이 알고 있지만 주일학교에서 나와서 복음을 듣는다 할지라도 구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 측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들은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로마서 10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모임의 책임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개인개인도 복음을 전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예를 들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가정하면; 만약에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훌륭한 행동을 사람들이 칭찬을 해도 그 사람을 통해서는 복음이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복된 것은 구약에서는 율법을 안지키면 심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신약에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만약에 알려버렸다면 이미 상을 받은 것이기에 하늘의 상급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권면은 심판이 아니고 상급에 관한 것입니다. 신약의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모임의 인원수도 늘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늘에서 반드시 상급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구약처럼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면 상급이 있고 전하지 않으면 상급이 없다고 말했지 심판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면 상급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상급이 있다고 복음을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해도 금방은 표시가 나지 않더라도 하늘에 상급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복음은 일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우리들의 실패를 중보해주시기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완전한 것입니다. 실패를 해도 실수를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중보를 해 주십니다. 그래서 한번 구원 받으면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라는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에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보증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때때로 모임 생활을 그만 둔다든지 믿음생활이 온전치 못한 모습들이 있습니다만 그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잃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잃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소망입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이 우리를 맞으러 와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대목자장으로서도 지금 일하시고 계십니다. 복음서에는 요한복음만 읽어보면 대목자장으로서 일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주셨는데 그 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두번째 나타나 주셨을 때 주님은 도마의 믿음 없음을 반듯하게 잡아주셨습니다. 주님 자신의 상처를 보이시면서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모습을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서도 그렇게 목회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앞으로 분명하게 준비해 주신다는 것을 증거로서 고기를 잡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돌아가신 후에도 부활하셔서 그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잡아온 생선이 아닌 생선을 떡과 숯불과 함께 주님이 직접 준비해 주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목자로서 다시 오실 때까지 분명하게 목자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그것을 통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는 다시 한번 사도로서 일하라고 그 사도직을 재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명백하게 그 이후에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 부인 한 것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세 번 주님을 시인하게 한 다음에 그 일을 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도 우리들을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구원을 기뻐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일백 마리의 양 비유를 통해서 목자는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찾아서 목자도 기뻐했고 그 양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에 아는 사람에게도 기뻐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기쁨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사람도 구원받은 사람도 4중의 기쁨이 있었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으로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멸망해 가는 사람이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복음은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생활이나 모임 생활이나 복음을 기초로 해서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2009 10 16일(금) 김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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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징검 다리